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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를리의 포토 에세이 원문보기 글쓴이: 길손
파포스(Pafos))
섬의 남서쪽 해안가에 위치한 파포스는 한때 사이프러스의 수도였으며 아프로디테의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파포스 남쪽 해안가에 고대 도시 하(下) 파포스(low Pafos)의 유적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 있다.
BC 316~309 년에 파포스 왕국의 왕 니코클레스(Nicocles)는 조그마한 어촌을 헬레니즘과 로마시대의
사이프러스의 수도가 된 항구 도시로 만들었다. 이곳은 신들과 신화의 땅이었다. 신화에 의하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이 도시 바로 인근에서 "거품에서 태어나" 이 땅을 걸었던 것이다.
-영국군 주둔지-
** 숙소 라르나카에서 파포스로 가기 위해서는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해안도로 가에 영국군의 주준지가 있다. 섬에는 영국군 주둔지가 두 곳이 있다(삽입 지도 참조).
-영국군 영내의 시설물-
** 군인 가족들의 주거 시설로 보이는 건물들이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엑소도스(ΕΞΟΔΟΣ =Exodus)-
**엑소더스(Exodus)란 탈출이라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이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빠저 나온것을
엑소더스라고 해 왔다. 그리스에서는 도로 싸인에 이 엑소도스(ΕΞΟΔΟΣ=EXODOS)를 볼 수가 있다.
우리의 개념으로는 "나가는 길"이다. 영어의 출구 "엑시트(Exit)"가 바로 엑소더스(Exodus)인것이다.
여행팀의 목적지 방향은 왼편으로의 엑소도스이다.
-아프로디테(Aphrodite)의 고향-
** 라르나카와 파포스 중간지점 해안 돌출부에는 지중해의 파도를 오랜 세월 견디어온 바위가 있다.
이 해안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Venus)의 탄생 신화가 서려있는 곳이다.
-아프로디테의 바위-
** 지중해의 거품 속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가 거대한 조개껍질을 타고 서풍에 밀려와 닿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바위는 두 조각이지만 아프로디테가 도착할 당시에는 거대한
한 개의 바위로서 이곳을 신성하고 위엄있게 보이도록 했을것이다.
이 해변에는 "청정 해변 상(Quality Coast Award 2009)" 이라는 상패가 바위 벽에 붙어 있다.
2009년 5,27 이후 24개월간 수상을 상징하는 깃발과 배너 사용을 허가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5 km를 가면 아프로디테 신전 유적이 있다.
-하 파포스(Kato Pafos = low Pafos) 요도-
**현재의 파포스 바로 남쪽에 도시 국가였던 고대 도시 파포스 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 하下 파포스(Kato Pafos = low Pafos)이다.
이곳에 그리스의 고대 유적 중에서 가장 유명한 모자익과 박물관이 있다.
-노천에 노출된 모자익-
** 모자익 작품들이 천 수백년을 노천에서 온전히 견디어 온 것은 모자익의 재료가 보석에 가까운
돌들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하더라도 탁월한 기능의 접착제가 사용되었음은 분명한것 같다.
-바닥의 모자익을 박리하여 옮긴 후의 현장-
-모자익 박물관-
** 유적 현장의 모자익을 수습하여 한 곳에 집중하여 전시하고 있다.
테세우스의 집(HOUSE OF THESEUS)
이 모자익이 있던 건물은 로마의 지방 총독 저택의 메인 홀이었으며 접견실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AD 5 세기)
-아킬레스(Achilles)의 최초 목욕-
** 테세우스의 집에서 남아 있는 얼마 안되는 것 중의 하나인 이 모자익은
아킬레스의 삶과 성취 과정의 에피소드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신생아 아킬레스의 최초 목욕을 묘사하고 있다.
아기는 패늘 중앙, 침대에 기대어 앉은 그의 어머니 테티스(Thetis)의 팔에 안겨있다. 이 장면은 굉장히 손상되어 있다.
아킬레스는 그의 보모인 아나트로페(Anatrophe)의 무릎에 앉아있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보모는 아기를 원통형 욕조에 담글 준비를 하고 있다. 보모 뒤에는 의인화 한 암브로시아(Ambrosia)가
물 단지를 들고 있다. 반대편 침대 끝에는 펠레우스(Peleus)왕이 지팡이를 들고 왕좌에 앉아 있다.
왕좌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운명의 3 女神인 클로토(Clotho), 라체시스(Lachesis), 그리고 아트로포스(Atropos) 이다.
-테세우스의 모자익(Mosaic with Theseus)-
- 메달 형태의 모자익(AD 3~4 세기)-
**크레타의 미궁속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Minotaur)의 뿔을 왼손으로 잡고있고
오른 손은 몽둥이를 치켜들고 있다. 왼편에는 미궁을 의인화한 노인이 두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윗쪽에는 의인화한 아리아드네와 크레타가 있다. 왼편에 ARIADNI 와 오른편에 KRITI라는 글자로 확인 할 수가 있다.
미로를 표시하는 실타레 무늬와 다이아몬드 체인은 아리아드네의 실을 상징한다.
모자이크 장인들은 회화적 기법은 뛰어났으나 그리스어 글자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글자의 형태에 관한 한 균형을 갖춘 글자가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원칙없이 단어를 잘라서 줄 바꾸기를 하고 있다.
아이온의 집(HOUSE OF AION)
- 접견실 바닥의 모자익-
**위의 모자익은 심하게 훼손된 왼쪽 부분을 제외한 아이온의 집 접견실 바닥의 일부분만 촬영한 것이다.
다음의 스켓치는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AD 4 세기 전반의 작품이다.
-아이온의 집 접견실(Reception Hall)모자익의 스켓치-
** 이 모자익 바닥은 5개의 패늘로 나누어져 있다.
- 패늘 上. 右 : 아기 디오니소스(Baby Dionysos)의 목욕-
** 아기 디오니소스가 헤르메스(Hermes)의 무릎에 앉아 있으나.
곧, 늙은 트로페우스(Tropheus)에게 아기를 건네 주려 하고 있다.
주변의 인물들은 디오니소스의 장래의 스승 셀레노스(Selenos)와
니사山(Mount Nysa)의 님프들이 목욕을 준비하고 있다. 욕조 뒤로는 의인화한 니사山,
아나트로페(Anatrophe)가 보인다. 어린 신神 뒤편에 의인화한 테오고니아(Theogonia),
넥타르(Nectar), 암브로시아(Ambrosia) 세명이 서 있다.
- 패늘 上, 左 :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Leda)-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Leda)가 목욕하기 위해 에우로타스(Eurotas)강으로 들어가고 있다.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Zeus)가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문이 있고 사진 상단 중앙에 ZEYC(ZEUS)라는
글자는 확인을 할 수 있으나 백조는 찾을 수가 없다. 아마도 레다의 머리위 ΛΗΔΑ(Leda)글자 위에
훼손된 시키먼 그림이 날아 오는 검은 고니일 가능성이 있다. 이 장면은 의인화한 에우로타스와
스파르타(Lacedaemonia=Sparta)를 표현한 것이다.
-패늘 중간, 중앙 : 아이온(Aion)과 카씨오페이아 -
** 패늘의 중간 부분은 육지와 바다, 두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훼손이 적은 오른편 부분만
게시하였다(스켓치 참고). 패늘의 왼편 장면은 영원한 시간의 신 아이온(Aion :몸체는 훼손되고
얼굴 부분만 남아 있다)이 미美의 경연에서 카씨오페이아(Cassiopeia)에게 우승을 선사한다.
젊은 우승자는 날개 달린 여신 크리시스(Krisis)가 왕관을 씌워 주는 동안 심사원들 앞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한 소년은 카씨오페이아에게 행운의 당선 상품을 주고 있다.
한편 오른편의 바다의 장면은 네레우스 바다(Sea Nereus)의 왕의 50명 중의 세명의 딸들이
(Thetis, Doris 그리고 Galatea) 심사 결과에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여자들은 비토스(Bythos),
바다 켄타우로스(Sea Centaur), 해면(海面)을 의인화한 젊은 해신(海神)인 폰토스(Pontos) 같은
해저 동물(반인 반수)들의 등에 앉아 있다. 바다의 에로스(Cupid)는 황소 등에 앉아 있다.
한편, 제우스와 아테나는 우승자 카씨오페이아를 축하해 주고 있다 (사진의 맨 윗편).
-패늘 下, 右 : 음악과 예술의 신 아폴로-
** 이 패늘은 플류트 연주자 마르시아스(Marsyas) 와 예술의 신이고 예술가(Muses)들의
수호자이며 또한 탁월한 수금(lyre)연주자이기도 한 아폴로(Apollo)간의 경연 장면이다.
아폴로에게 패배한 마르시아스는 신에게 감히 도전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바위에 걸터 앉은 아폴로 앞에서 두명의 스키티아인들이 아폴로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
아폴로 발 앞에 앉은 아폴로의 제자 올림퍼스(Olympus)는 아폴로에게 자비를 베풀것을 간청한다.
-패늘 下, 左 : 디오니소스(Dionysos)-
** 이 패늘은 세상을 통하여 디오니소스가 성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플류트와 수금을 각각 든 두 마리의 켄타우로스가 끄는 전차를 타고 있다.
패늘 가운데에는 사티로스(satyr)가 신에게 바칠 과일을 들고 있고 반라(半裸)의 매나드(Maenad)가
앞서 가고 있다. 전차 뒤로는 신의 스승인 트로페우스(Tropheus) 와 광주리를 머리에 인
여인이 따르고 있다. 현재 이 패늘에서는 휏불을 든 디오니소스의 손만 보일 뿐이다.
※ 사진을 촬영한 이 글의 작성자도 안내문의 내용을 전부 찾을 수는 없다.
모자익 박물관에는 조명이 없고 거대한 평면을 찍어 사다리꼴로 나온 사진을
최대한 후보정하고 일으켜 세웠으나 해상도도 그렇고 알아보기가 어렵다.
-기하학적 무늬의 모자익-
**이 패늘은 별 모양의 패턴과 4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4각형들은 십자 모양, 마름모 꼴,
솔로몬 매듭의 모티프, 장미, 양날 도끼 그리고 종려 나뭇잎 등으로 장식되고 있다.
-극 장-
** 극장은 도시 성곽 북동쪽 가에 위치하고 있고 대부분 복원이 되어 있다.
-비잔틴 성채(vizantin castle)유적-
왕의 무덤들(Kings tombs)
下 파포스(Kato Pafos)에서 북쪽으로 약 5 km 지점에는 광범하게 흩어저 있는 커다란 자연석과 암반을
굴착하여 카타콤베 혹은 인도의 엘로라 석굴 같은 형태의 많은 지하 묘지 시설을 건설해 놓았다.
-제 3의 무덤의 평면도(Tomb 3)-
** 이 지하 묘지 시설은 BC 4세기 부터 건설되었다.
-위에서 본 열주랑(列柱廊)-
** 지표면에서 들여다 보이는 이 열주랑 안 마당은 통로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간다.
-도리아식 열주랑-
-지하 석실-
-노천 석실 묘지-
-파포스(Pafos)를 떠나면서-
-북 키프로스 입국 검문소-
-키레니아 산맥(Kyrenia Mountains)과 국기-
**북 키프로스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키레니아(Kyrenia)는 북 키프로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키레니아로 가기 위해서는 북쪽 해안과 나란히 160 km 를 뻗어있는 키레니아 산맥을 넘어야만 한다.
키레니아 산맥 중턱에는 남쪽에서 북키프로스로 들어서면 곧 바라다 보이는 거대한 터키 국기의
이슬람의 초생달과 별 그리고 북 키프로스의 국기가 보인다. 방대한 크기의 홍보시설을 설치한
터키계 북 키프로스인들이 그동안 받아온 박해에 대한 반발의 크기인것 같이 보인다.
-키레니아 산 정상의 터키 국기와 북키프로스 국기-
**산맥을 넘어와 북쪽 해안도로를 달리며 찍은 이 장면은 산정에 설치한 거대한 국기 계양대와 사람의 모습이다.
역경 속에서도 북 키프로스를 지키겠다는 민초의 모습을 형상화 한것으로 보인다.
키레니아 산맥은 최고봉 1024 m 에서 740 m 고지들의 연봉이다.
국기와 시설물의 크기를 상상하기가 어렵다.(200 mm zoom 촬영)
-성 바르나바스(St. Barnabas)의 이콘 과 고고학(Icon & Archaeological) 박물관-
** 성 바르나바스(St. Barnabas) 교회와 수도원은 살라미스 공동묘지(Salamis necropolis) 서쪽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다. 성 바르나바스가 순교한 후 432년 만에 그의 유해가 발견되어
AD 477년 수도원이 건설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모습은 오토만 통치 시기인 1756년에 완성되었다.
교회 본당은 이콘 박물관이며 교회 앞 4각형 정원 주위로 ㄷ 자 형태로 배치된 수도원 건물은 고고학 박물관이다.
-교회 제대를 장식했던 이콘(Icon)-
-박물관(교회) 내부-
-전시된 이콘-
** 서양에서는 악(惡)으로 상징되는 용을 조지 성인(St. George)이 창으로 찔러 죽이는 테마의 그림이다.
왼편으로 부터 1962년, 1959년, 1905년에 그린 동일한 테마의 그림이다.
그림 상단에 그리스 어로 AGIOS GEORGIOS(Saint George)라는 글자가 보인다.
- 성 바르나바스(St. Barnabas) 무덤교회(Tomb Chapel)-
** 성 바르나바스는 살라미스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고
AD 45년 사이프러스로 돌아와 사도 바울과 함께 전교를 하다가 유대인에게 암살되어 암장되었으나
그를 추종하는 은밀한 목격자가 마테오 복음서와 함께 이장하였다.
그의 매장지는 432년 후 주교 안테미오스(Anthemios)의 꿈에 현몽하여 발굴되었다.
삽입된 사진은 성 바르나바스의 이콘이다. 자연광이 그림에 반사되어 흰 부분이 생겼다.
-성인의 지하 무덤-
** 비잔틴 양식의 조그마한 교회 1 층은 기도실이고 지하에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살라미스 고대도시(Ancient Salamis) 요도-
**살라미스와 파마구스타의 위치는 섬의 모양을 가오리로 가정했을 때 몸통과 꼬리 연결 부분이 된다.
극장, 원형극장, 열주 광장, 목욕탕 등 중요 유적은 요도의 아래부분(도상으로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살라미스의 역사는 BC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주거인들은 BC 1075년, 지진 발생 후에 이곳에 들어 왔다.
살라미스는 지중해의 암흑기가 끝난 BC 8세기 후 지중해의 중요한 무역항으로 역사의 場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지진과 아랍 해적들의 습격으로 주민들은 떠나고 도시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후에 현재의 도시 ㅎ파마구스타(Famagusta)라는 이름으로 재건 된다.
- 짐나지움(Gymnasium)-
** 코린트식 대리석 열주가 4각형의 광장 주변에 늘어서 있고 광장 중앙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BC 31~AD 14)의
대리석 상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 광장은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하에 있던 이곳은 대왕의 급서 이후 헬레니즘 세계는 분렬되고 키프로스는
이집트의 프톨레미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헬레니즘 과 로마제국 시대에 살라미스는 알렉산드리아, 안티옥,
에페수스, 페르가몬, 아테네와 함께 무역항으로 다시금 부를 누리게 된다.
- 극 장 (Theatre : BC 1세기 말 ~ AD 4 세기)-
**살라미스는 잦은 지진, 특히 AD 1세기와 4세기의 지진으로 발전의 중단을 맞게 되지만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AD 337~361)는 도시를 재건하고 콘스탄티아(Constatia)로 명명하지만 곧 항구는 부서지고
아랍 해적의 습격으로 도시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 극장의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50열에 수용인원 15000명, 무대 뒤로는 대리석 상 들로 장식되었었으나 4세기의 지진으로 파괴된 후 재건되지 않았다.
-파괴된 극장에서 옮겨온 석상들-
** 지진으로 파괴된 극장 무대 뒤를 장식했던 석상들이다.
-아취형 통로-
-반 아치형 지지대-
** 이러한 지지대 건축 방식은 지진에 취약하거나 고층 건물의 벽을 보강하기 위해 적용되었다.
벽체의 석재는 다른 건물에서 헐어 오거나 폐자재를 사용하는 예가 많고 이곳에도 폐 돌기둥들이 보인다.
-궁형 천정의 벽화와 모자이크-
-석벽에 사용된 흰색의 몰탈(접착제)-
** 석재 보다 더 단단한 몰탈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파마구스타(Famagusta) 시가지-
-파마구스타 읍성 요도(안내판)-
-성문과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
** 성문 밖은 지중해의 동쪽이다.
-성벽 위에서 보이는 항만과 지중해-
-성 조지( St. George) 교회의 잔해-
-라라 무스타파 파사 모스크(Lala Mustafa Pasa mosque) -
** 1298~1312 년에 건설된 이 모스크의 원래 이름은 성 니콜라스 대성당(St. Nicholas Cathedral)이다.
- 모스크 내부-
-베네티안 궁전의 유적(Venitian Royal Palace)-
-석관 묘-
** 시난 파샤 모스크(Sinan Pasha Mosque) 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비교적 큰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
(St. Peter and St. Paul Cathedral) 옆에 놓인 석관이다. 왼쪽 묘는 석관이 묻혀있고 오른쪽 묘는 노출되어 있다.
특이하게 두개의 원기둥이 붙어있으나 모양은 다르다. 합장형의 무슬림 묘제라는 설이 있다.
-완충지대-
** 완충지대를 표시하는 것은 2중 철책도 지뢰지대도 아니고 검정 폴리에틸렌 천이 전부이다.
-완충지대 내의 건물-
**인간이 떠나고 난 완충지대의 건물은 급속하게 퇴락하고 있지만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비무장 지대처럼......................
-이스탄불을 향하여-
** 귀로는 이스탄불을 경유하였다.
-Above All of Cyp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