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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신앙인답게 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이웃들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네가 파마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어느 날 하루는 국수와 칼국수가 만나서 서로 피 터지게 싸웠는데 국수가 엄청나게 얻어터졌습니다.
국수가 질질 짜면서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일렀습니다.
국수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칼국수를 잡으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마침 라면이 걸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국수 엄마가 라면의 멱살을 잡으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칼국수, 너 이 놈! 네가 파마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칼국수가 파마하면 라면이 되나 봅니다.
우리 싸우지 말고 잘살아 봅시다.
요즘은 안 싸우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정치계에도 국회에서 매일 싸우고 있습니다.
좌파니 우파니 싸웁니다.
교회에서도 싸웁니다.
가정에서도 매일 가족들끼리 싸웁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매일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싸우지 않으려고 하면 조금만 더 생각하고, 양보하고, 용서하고, 져주고 배려하면서 살면 됩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은 서로 화목하고 이해하고 격려하고 위로해 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P4.
예수님께서 아주 작은 겨자씨를 예화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20세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약 10년 만인 BC333년에 유럽과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한 위대한 정복자로 잘 알려진 왕이다.
당시 적군이었던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와 최후의 결전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다리우스는 결전을 앞두고 알렉산더에게 선전 포고하며 참깨를 보냈다고 한다.
다리우스는 “페르시아의 군대는 참깨처럼 셀 수 없이 많으니 승산 없는 싸움을 하지 말고 항복하라”라는 뜻으로 참깨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답장으로 작은 봉투 속에 아주 작은 것을 넣어서 다리우스에게 보낸다.
전쟁은 시작되었고 알렉산더가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보낸 선물은 바로 작은 겨자씨 하나였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아주 작은 겨자씨를 보내면서 “우리의 수가 적다고 무시하지 말아라! 이 겨자씨처럼 작지만 무섭고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린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는 의미로 보냈다고 한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 작지만, 땅에 떨어져 싹이 나면 이듬해 그 지역이 온통 노랗게 변할 만큼 놀라운 생명력과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에는 겨자씨처럼 아주 작아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이루어내는 능력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중동지역에서 아주 작은 겨자씨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으로 온 세상을 주름잡는 민족으로 세우고 싶어하신다.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거룩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
D4.
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절에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하게 살라고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과 구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닮은 삶을 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룩이란 구별하는 것이다.
거룩이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과 구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유독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거룩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은 결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인정하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좋아하고 즐긴다.
그래서 거룩한 백성들은 잡동산이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는다.
거룩한 백성들은 잡동산이 신상을 만들어 세우지 않는다.
거룩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날, 안식일을 잘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간다.
거룩한 백성들은 육신의 부모님을 업신여기지 않고 존경하고 경외하며 복되게 살아간다.
거룩한 백성은 세상의 헛된 것들을 쫓아가지 않는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탄, 마귀, 어둠의 세력들, 악한 영들을 따라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은사와 축복을 사모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고 순종하며 살려고 한다.
② 정해진 제사의 규례를 잘 지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화목제 제사를 드린 제물은 제사장과 화목제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
제물을 먹을 때 제사를 드리는 날에 다 먹을 수 있으면 가장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제물이 많이 남아서 이튿날까지도 먹다가 남았을 때 3일째 되는 날 화목제 제물을 먹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이틀째 날까지 먹다가 남게 되면 남은 것은 불에 태워야 하는 것이다.
불에 태우지 않고 아깝다고 먹으면 화목제 제사가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8절에서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리니 그가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곧 3일째 되는 날에 화목제 제물을 먹게 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곧 죽는다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이틀째 되는 날까지는 먹어야 하고, 그래도 제물이 남았다면 반드시 불에 태워서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냉동, 냉장 시설이 전무했던 고고고고대시대에는 중동지역의 독특한 기후 때문에 부패하여 변질 될 수 있고, 변질 된 음식을 먹게 되면 아주 쉽게 질병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부패한 음식, 변질 된 음식 자체가 부정한 음식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육체가 질병에 노출되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지고 각종 질병에 걸려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매우 강하게 ‘끊어진다. 죽는다.’라는 말씀까지 하는 것이다.
거룩하게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제사의 규례를 잘 지키며 사는 것이다.
③ 이웃의 딱한 처지를 최대한 배려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9-10절에서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고아, 과부, 나그네, 각종 병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폐아법을 실시하고 있다.
어려움을 당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정한 긍휼법이다.
이들을 위해서 밭모퉁이까지 싸그리 수확하지 말고, 과일 열매도 다 따지 말고 조금씩 남겨두어서 생계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도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하늘을 향하여 원망하고 하소연한다면 하나님께서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징계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거나 하소연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웃들을 돌아보고 배려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돌아보고 배려하는 삶은 거짓말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이웃을 억압하지 않고, 착취하지 않고, 품꾼들의 품삯을 그날그날 해결해 주고, 저주하지 말고, 장애물을 놓지 않는 삶이다.
재판할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하도록 빈부의 격차에 따라 차등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올곧게 재판하며, 모의하거나 모함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원수 갚거나 원망하지 말고 이웃을 자기 자신이나 가족처럼 사랑하며 사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은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면 우리들보다 더 잘 살기도 하고, 여러모로 우리들보다 뛰어나고 우월할 때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이 넉넉하고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여전히 넉넉하고 부유하게 산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불투명한 미래세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살이이지 않은가.
언제든지 삶의 상황이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교만하거나 완악하지 말고 겸손하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배려하고 돌아보면서 사는 삶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거룩하게 사는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④ 혼합시키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9절에서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라고 말씀하신다.
거룩한 백성들은 집에서 키우는 가축을 다른 가축과 교미시키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들어주신 그대로 암수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같은 가축끼리 교미하여 새끼를 낳아 번식시키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이다.
곡식의 씨앗을 뿌릴 때도 같은 식물의 씨앗을 뿌리고, 다른 식물의 씨앗과 함께 혼합하여 뿌리지 말라고 하신다.
옷도 두 종류의 재질로 만든 옷을 입지 말라고 하신다.
신명기 22:5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솔로몬 시대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에는 여자가 들어갈 수 없었다.
여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와서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제2성전이 세워지고, 헤롯대제에 의해서 헤롯성전으로 거듭나면서 성전에 여인의 뜰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게 된다.
바벨론포로기 이후에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거하는 지역에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회당들이 세워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회당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그 회당에도 남자들이 들어가는 공간과 여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유대인의 회당에도 남자들의 공간과 여자들의 공간이 구별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하나님은 철저하게 구별하기를 원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거룩이란 구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합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과 혼합시키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모든 것들이 단순했던 고고고고대사회에는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거나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명예롭지 못하고 수치스러운 일로 취급되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신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다른 가축과 교미시키기도 하고, 다른 품종의 씨앗과 교배시키기도 한다.
하나님은 민족도 혼합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혈손들을 중심으로 단일민족으로, 유일한 민족으로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족에게 멸망 당한 후에 앗수르족은 북이스라엘에 잡다한 이방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혼합 민족을 만들어내고 만다.
그 혼합 민족이 사마리아인이다.
하나님은 혼합민족을 만들지 말고 단일민족을 만들기를 원하셨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혈손으로 이어지는 단일민족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나안 사람들, 아람 사람들, 애굽 사람들을 비롯하여 여러 잡다한 민족들이 포함되어 이스라엘 민족과 나라로 형성되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혼합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다문화시대, 국제화시대, 다인종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혼혈족들을 구성하고 있다.
지금 성경에서 말씀하는 규례들은 고고고고고대사회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⑤ 과일나무에게도 여유를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3-25절에서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넷째 해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다섯째 해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할례는 남자아이에게 태어난 지 8일만에 행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과일나무에게도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중동지역에는 대추야자, 올리브, 석류, 포도, 무화과, 아몬드와 같은 과일나무들이 많은 지역이다.
어떤 과일나무를 심든지 나무를 심고 3년 동안은 과일나무의 할례 기간으로 정하고, 4년 째에는 첫 소산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5년째 되는 해부터 백성들의 소산물로 삼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과일나무를 심고 그해부터 수확을 거두려고 하면 과일나무가 너무 원통해하고 힘들어하기 때문에 3년 동안은 과일나무에서 수확을 거두려고 하지 말고, 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많은 열매가 열릴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너무 성급하여 나무를 심고 곧이어 열매를 추수하려는 완악함을 가지고 있다.
과일나무도 충분히 자라야 견고해질 수 있고, 튼튼해질 수 있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과일나무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농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⑥ 절대로 이방인의 죄악을 따라 살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6-30절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삶이다.
하나님은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째 먹지 말며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며,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네 딸을 더럽혀 창녀가 되게 하지 말라. 음행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31-33에서도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조류를 따라서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하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뜻과 의지를 따라서 신본주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기를 원하고 계신다.
B4 & L4.
하나님께서는 혼합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그렇다면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를 표방하는 WCC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WCC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라는 단체인데, 2013년10월에 부산에서 제10차 WCC총회가 열렸는데, 우리나라의 유능한(?) 교회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이 행사를 진행시켰다.
거기에서 어떤 정신 이상 나간 목사는 기도하면서 ‘석가와 알라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라고 하였다.
무당을 불러서 귀신을 불러오는 초혼제를 지내면서 수많은 정신 나간 목사들이 박수치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우상숭배의 죄악, 혼합종교의 죄악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저질러놓고서도 어느누구 한 사람도 “자신들이 자행한 WCC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되었다.”라고 회개하는 사람이 없었고, 아직까지도 없다.
WCC는 일제 강점기에 행해진 신사참배와 똑같은 죄악들이다.
지금 한국교회에 산재하고 있는 WCC는 한국교회의 커다란 암적인 존재이다.
굴직굴직한 교단들과 교회들이 이 WCC에 참여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루속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혼합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씀하고 계신다.
거룩이란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한 거룩한 삶은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사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사는 삶이 거룩한 삶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계명들, 특히 모세5경에서 613개의 계명을 주셨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으면서 산다.
어느 날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여러 율법들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가요?”라고 묻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5경에는 613개의 율법이 있다고 가르치면서 613개의 율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율법사의 질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22;36-40)라고 대답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 속에는 모세5경에서 말씀하는 613개의 모든 율법이 함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을 종적인 계명이라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을 횡적인 계명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계명을 다시 하나로 묶는다면 종과 횡이 서로 만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이 최고의 율법이요 완성의 율법이요 완전의 율법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과 계명과 율법과 법도와 규례는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인카네이션(Incarnation)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成肉身)하여 이 땅으로 내려오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면서 보여주신 사랑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율법의 박사라고 하는 사도바울도 로마서 13;8-10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 성령님의 사랑을 함축적으로 실현한 사랑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다.
십자가의 사랑 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613개의 모든 율법이 다 포함되어 있다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신앙인으로서, 성도로서, 복음의 사명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딱한 처지에 놓인 이웃을 돌아보면서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와 복음으로 배려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야고보서 2:15-17에서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고 말씀하신다.
말을 했으면 그 말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신앙인의 삶은 말과 행동이 다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언행일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요한일서 3:18에서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말씀하신다.
곧 말과 행함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말만 해서도 안 되고, 행함만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말도 하고, 아울러 행함도 뒤따라와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의 삶은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이웃들에게, 지인들에게, 가족들에게 배려하는 삶, 곧 사랑을 나누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