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說敎)는 선생님(先生任)‘말씀’을 중심(中心)삼고 해야<1>
<말선206-285~286> 이제 돌아가서 전부(全部)다 선생님의 설교집(說敎集) 읽으라구요. 내용(內容) 골자(骨子)를 알아서 제(第)1, 제(第)2 내용(內容)을 뽑아가지고 설교(說敎)하면 은혜(恩惠)는 그냥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설교(說敎)를 할 필요(必要)가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통일교회(統一敎會) 책임자(責任者)는 어렵지 않다는 결론(結論)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先生任)의 설교집(說敎集)에는 시대감각(時代感覺)과 역사배경 (歷史背景)을 전부(全部)다 엮어 가지고 사회첨단(社會尖端)에서 악마(惡魔)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내용(內容)이 있어요. 어느 시대(時代)든지 악(惡)이 남아있기 때문에 악(惡)과의 투쟁(鬪爭)에서 승리(勝利)할 수 있는 모든 내용(內容)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통일교회(統一敎會) 책임자(責任者)는 복(福)도 많다는 결론(結論)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설교(說敎) 준비(準備)한다고 도서관(圖書館)의 책(冊)들 볼 필요(必要) 없어요. 하늘이 원(願)치 않아요. 선생님(先生任)이 말할 때는 설교(說敎)를 준비(準備) 해 가지고 말하지 않아요, 5분 전(前)에 하늘이 제목(題目)을 줘요, 그때까지는 형장(刑場)에 나가는 죄수(罪囚)와 같이 하늘에 달라붙어 판결(判決)을 지어야 됩니다. 어느 때는 단상(壇上)에 나가서 제목(題目)을 세우는 것입니다. 청중(聽衆) 가운데 필요(必要)한 사람을 위한 제목(題目)을 붙이는 거예요. 단(單) 한 생명(生命)이라도 구도(求道)하기 위한 표제(標題)를 중심삼고 그것을 불어넣게 된다면 청중(聽衆)이 전부(全部)다 불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설교(說敎)를 준비(準備)하고 그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說敎)하는 데는 눈물을 흘리고 나가야 됩니다.
<말선277-103> 말씀을 듣게 되면 말씀에는 재 창조(再創造)할 수 있는 힘(力)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고 감동(感動)을 받게 되면 내가 말씀과 더불어 살면서 얘기해야지 듣는 말씀 자기(自己)와 상관(相關)없는 말씀을 해 가지고는 감동(感動)받지 않습니다. 피살이 통(通)하는 그런 말씀을 전(傳)해야 됩니다. 그런 말씀만 들으면 그 말씀에 돌아가서 씨(氏)가 되어 가지고 잊어버리질 않습니다.
<신천성경p258> 이제는 설교(說敎)가 필요(必要) 없습니다. 설교(說敎)하지 말고, 선생님(先生任)이 말씀한 제목(題目)을 빼서 시기(時期)에 적절(適切)하고 환경(環境)에 적절(適切)하게 맞춰서 쓰면 됩니다. 제목(題目)들을 뽑아 그 제목(題目)마다 거기에 무슨 내용(內容)이 있다는 것을 한 석 줄씩 정리(整理)해서 단행본(單行本)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自己)가 설교(說敎)할 제목(題目)을 정(定)하고 거기에 해당(該當)하는 부분(部分)을 찾으면 다 나오게 됩니다. 무슨 설교(說敎)를 해야 되겠다고 하면 그것을 중심삼고 말씀집(集)을 읽고 설교(說敎)를 하고, 기도(祈禱)도 선생님(先生任)이 기도(祈禱)한 내용(內容)을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 이상(以上)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그렇게 설교(說敎)하라는 것입니다.
<말선306-9> 앞으로 통일교회(統一敎會) 지도자(指導者)들은 설교(說敎)니 무슨 강의(講義) 같은 것은 염려(念慮) 안 해도 괜찮아요. 훈독회(訓讀會)하면 어디든지 교회책임(敎會責任)을 대신(代身)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가정(家庭)이 얼마만큼 훈독회(訓讀會)를 많이 하느냐에 따라 그 가정(家庭)의 가치(價値) 중량(重量)이 결정(決定)된다는 거예요.
<말선290-217> 교육(敎育)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훈독회(訓讀會)만 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밥 먹을 때마다 가족(家族)들 일족(一族)이 모여서 자꾸 훈독회(訓讀會)를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先生任)은 시간(時間)만 있으면 훈독회(訓讀會)를 해요. 그러면 자꾸 큰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사람인데 자꾸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상(理想)을 향유(享有)할 수 있는 무슨 주의주장(主義主張)이 없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이것을 안 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先生任)을 만나려면 훈독회(訓讀會)하고 시험(試驗)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 훈련(訓鍊) 해가지고 훈독회대장(訓讀會大將)이 되면 세계(世界) 어디를 가더라도 밥 벌어먹을 수 있습니다. 매일(每日) 열심(熱心)히 하면 밥 먹고 살아요. 그 양반(兩班)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말선309-129> 지금(只今)은 강의(講義) 못 해도 좋아요. 훈독회(訓讀會)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못 할 것이 없어요.
<말선30-129> 여러분이 설교(說敎)할 때 그 제목(題目)으로 옛날에 한 번 했다는 것을 식구(食口)들이 알면 기분(氣分) 나쁘게 생각(生角)한다는 것이다. 원리강의(原理講義)를 할 때 옛날식(式)으로 하면 기분(氣分)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春夏秋冬) 4계절(季節)에 따라 변화(變化)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때의 분위기(雰圍氣)에 맞추어 필요(必要)한 강의(講義)를 해야 한다. 내용(內容) 면(面)에서는 심령적(心靈的) 발전(發展)을 하는데 필요(必要)한 체험담(體驗談)을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자극(刺戟)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축복가정과이상천국Ⅰp267> 설교(說敎)는 준비(準備)가 아니라 심정(心情)이 문제(問題)이다. 설교(說敎)를 잘하려고 생각(生角)하지 말고 진실(眞實) 되게 하라. 설교(說敎)는 먼저 설교(說敎) 제목(題目)을 정(定)하지 말라 준비설교(準備說敎)는 가공(加工)이 들어간다. 설교(說敎)는 말씀의 동기(動機)가 자신(自身)에서부터가 아니라 하늘이 동기(動機)가 되어야 한다. 설교(說敎)를 할 때는 심정(心情)의 불(火)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목회자의 길 p179> 선생님(先生任)은 설교(說敎)를 위하여 준비(準備)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산 체험(體驗)으로 사실(事實)을 말할 때는 모두 감동(感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先生任)은 설교(說敎)하기 전(前)에 설교(說敎)를 위해서 기도(祈禱)하는 시간(時間)보다 식구(食口)를 위해 기도(祈禱)하는 시간(時間)을 많이 갖는다. 선생님(先生任)은 단(團)에 나설 때는 특별(特別)히 기도(祈禱)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단(團)에 나설 때까지 설교(說敎) 제목(題目)도 없을 때가 있어요. 준비(準備)도 안 하고 성경(聖經)을 읽고 나서 기도(祈禱) 가운데 제목(題目)을 잡을 때가 많다구요.
<목회자의 길 p182>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참 불쌍하고 고독(孤獨)한 사람입니다. 인간(人間)하고 의논(議論) 해가지고 생명(生命)의 복음(福音)을 받겠다고 책(冊)을 보면 그것은 참고(參考)는 되지만 인공적(人工的)인 잎은 되지만 원칙적(原則的)인 잎은 못 됩니다. 책(冊)을 보는 것도 그 사람이 느낀 사상적(思想的)인 감촉(感觸)을 중심삼아 가지고 반응적(反應的)인 느낌을 얻는데, 조금도 도움이 못 됩니다. 오히려 방해(妨害)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지도자(靈的指導者)는 고독(孤獨)한 사람이라구요.
<축복가정과 이상천국p 701~702> 설교(說敎)를 할 때 에도 사적(私的)인 말을 못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자(說敎者)는 자기(自己)의 설교(說敎) 가운데 공적(公的)인 것이 더 많은가 사적(私的)인 것이 더 많은가 늘 살펴야 한다. 공적(公的)인 말을 많이 한 사람은 선(善)한 사람이요. 사적(私的)인 말을 많이 한 사람은 선(善)한 사람이 못 되는 것이다.
<말선300-104> 앞으로는 훈독회(訓讀會)를 해야 돼요. 방송(放送)을 통(通)해서 전세계(全世界)의 누구에게나 훈독회(訓讀會)를 시키려고 해요. 참부모(眞父母)를 중심(中心)하고 영계(靈界)와 육계(肉界)의 사실(事實)을 확실(確實)히 알아 가지고 내 자신(自身)이 가야 할 거점(據點)을 알고 정착(定着)해야 할 중심(中心)으로 알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공개(一般公開) 훈독회(訓讀會)를 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 반격파(統班擊破)도 이걸 중심(中心)삼고 완전(完全)히 일원화(一元化) 시켜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말씀선집(選集)을 파는 것입니다. 그래 놓으면 그 가문(家門)에서 어디 가든지 지도자상(指導者像)을 배출(輩出)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宣敎師)를 언제든지 보낼 수 있는 가문(家門)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선교사(宣敎師)를 보내느냐 하는 것이 세계(世界)에 자랑할 수 있는 기준(基準)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문(家門)은 하늘의 축복(祝福)을 받는 혈족(血族)이 되느니라. 아멘
<말선351-19>(2001.8.20.제주국제연수) 시시한 모든 책(冊)들 도서관(圖書館)을 다 불살라 버려야 돼요. 내가 원(願)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自己)들이 원(願)해서 하는 거예요. 가만 나 둬가지고 자기문화(自己文化)를 자랑하고 전통(傳統)을 자랑하던 모든 문서(文書)를 자기(自己)나라 사람들이 불사르기 전(前)에는 해방(解放)의 민족(民族)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나중에 그걸 해야 돼요, 알겠어요? 자기 족보(自己族譜)까지 불살라 버려야 돼요. 족보(族譜)까지, 엄청난 놀음을 하지 않고는 최후(最後)의 고개를 못 넘게 돼 있다구요.
<목회자의 길 p183> 영적지도자(靈的指導者)는 그런 체휼적(體恤的) 무엇이 없어가지고는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책(冊)가운데 계시는 것이 아니라 신령(神靈)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신령(神靈)을 통(通)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되겠어요. 그래서 체휼적(體恤的)인 신앙(信仰)은 가장 귀(貴)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직접(直接) 밀접(密接)한 관계(關係)에 있다면 설교(說敎)를 준비(準備)하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훈련(訓鍊)도 필요(必要)합니다.
<목회자의 길 p196> 여러분 설교(說敎)라든지 대중(大衆) 앞에 나설 때는 심각(心覺)한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심각(心覺)한 자리에서 말씀을 전(傳)하게 되면 그 말씀은 하나님을 대신(代身)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양심(良心)의 가책(苛責)을 받았던가, 혹(或)은 마음에 불쾌한 일이 있었더라도 그 시간(時間)만큼은 싹 씻어버려야 됩니다. 집(家)에서 뭐 여편네가 아프고 뭐 애기가 어떻고 어떻게 좋지 않는 편지(片紙)가 왔더라도 단(團)에 나설 적만은 완전(完全)히 씻어버려야 된다구요. 또 은혜(恩惠)를 받았으면 돌아와 가지고는 반드시 하늘 앞에 찬양(讚揚)해야 된다는 거예요.
<말선277-103> 말씀을 듣게 되면 말씀에는 재창조(再創造)할 수 있는 힘(力)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고 감동(感動)받게 되면 내가 말씀과 더불어 살면서 얘기해야지, 들은 말씀 자기(自己)와 상관(相關)없는 말씀을 해 가지고는 감동(感動)받지 않습니다. 피살이 동(動)하는 그런 말씀을 전(傳)해야 됩니다. 그런 말씀만 들으면 그 마음(心)에 들어가서 씨(氏)가 되어 가지고 잊어버리질 않습니다.
<말씀소식 P.10 > (91년2월호 1991년1월2일 한남동공관에서 세계지도자회의)
이제는 설교(說敎)가 필요(必要)없어요. 설교(說敎)하지 말고 선생님(先生任)이 설교(說敎)한 대목(對目)을 전부(全部)다 빼가지고 시기적절(時期適切)하고 환경적절(環境適切)한 것을 맞춰서 쓰면 된다 이거예요.
<말선292-310> 앞으로는 부흥회(復興會) 할 필요(必要) 없어요. 훈독회(訓讀會) 하면 됩니다. 훈독회(訓讀會)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말선361-203> 선생님(先生任)이 말씀한 것은 하늘땅에 선언(宣言)한 거와 마찬가지에요. 그렇기 때문에 영계전체(靈界全體)가 기독교전체(基督敎全體)가 재림(再臨)해 가지고 협조(協助)할 수 있게끔 선생님(先生任)이 지시(指示) 했다구요.
<말선297-115> 내 설교집(說敎集)을 참고(參考)로 해요. 뭐든 다 가르쳐 줬어요. 사탄 세계(世界)의 교육(敎育) 필요(必要) 없습니다. 똑똑히 알라구요.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말할 수 없어요. 아들딸이 학비(學費)내고 공부(工夫)해 봐야 그 나라가 망(亡)할 때는 그 나라의 교육(敎育)이니 뭐니 다 없어집니다. 필요(必要) 없다구요.
<말선382-307> 훈독회시간(訓讀會時間)은 하늘나라에 자기(自己)가 살 집을 짓는 시간(時間)입니다.
<말선295-70> 훈독회(訓讀會)를 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설교(說敎)고 뭐고 다 필요(必要) 없다 구요. 훈독회(訓讀會)를 하게 되면 자기(自己) 아들딸들이 훌륭하게 되고 통일원리(統一原理)가 바라는 소원(所願)을 다 성취(成就)할 수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