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3부 일통 천하 (205)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22장 여불위(呂不韋)의 몰락 (7)
양측간의 싸움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날이 밝을 무렵, 노애(嫪毐)는 사세가 자신에게 불리함을 깨달았다.
재빨리 내사 사(肆)와 좌익 갈(竭)을 거느리고 옹성 동문 밖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동문 밖 5리쯤 이르렀을 때 저 앞에서 한 떼의 군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진왕 정(政)의 출동 명령을 받은 장수 환의(桓齮)와 그 정예 병사들이었다.
싸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노애(嫪毐)와 그 일당은 환의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때쯤 해서 진왕 정(政)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머니 조태후의 배신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 노애(嫪毐)를 문초하여 그간의 모든 정황을 자백 받아라!
기년궁(蘄年宮)은 국문장으로 변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혹독한 문초를 견디다 못한 노애(嫪毐)는 결국 그 동안의 일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너와 태후 사이에 난 아들이 정말 대정궁(大鄭宮) 안에 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진왕 정(政)은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그는 문초를 하다 말고 친히 대정궁(大鄭宮)으로 달려갔다.
궁중을 수색한 결과 정말로 세 살짜리 아이와 한 살짜리 갓난 아이가 발견되었다.
두 아이가 군사들에 의해 끌려나가자 조태후(趙太后)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으나 차마 살려달라고 사정하지는 못했다.
방 안에 쓰러져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댈 뿐이었다.
밖으로 끌려나온 두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진왕 정(政)은 냉정함을 잃었다.
"때려 죽여라!"
군사들이 두 아이를 포대에 집어넣어 몽둥이질을 해댔다.
서너 차례의 매질에 두 어린아이는 개구리처럼 널브러져 죽었다.
진왕 정(政)은 더 이상 어머니 조태후의 얼굴을 보기가 싫었다.
그대로 수레를 돌려 기년궁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옥리가 노애(嫪毐)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 보고했다.
"노애의 진술에 따르면 그에게 가짜 환관 노릇을 하게 한 것은 문신후 여불위(呂不韋)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진왕 정(政)은 또 한 번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우선 노애를 거열형(車裂刑)에 처하고 그에 동조한 모든 역적들을 참수형에 처하라!"
이리하여 노애(嫪毐)는 온몸이 다섯 갈래로 찢어지는 참혹한 죽임을 당했고, 내사 사(肆)와 좌익 갈(竭) 또한 시장거리로 끌려나가 목이 잘리는 참형을 당했다.
아울러 노애의 일족과 그 연루자들에게도 형벌을 가하니 그 수가 무려 4천여 명에 달했다.
노애(嫪毐)를 처단한 진왕 정(政)은 이어 조태후에 대해서도 응분의 조처를 취했다.
- 태후는 국모로서 자격이 없다.
녹봉을 줄이고 규모가 가장 작은 역양궁(棫陽宮)으로 거처를 옮겨 엄중히 감시하라.
어머니인지라 차마 죽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사가(史家)들은 이때의 사건을 '노애의 난' 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별 의미를 담고 있지 않으나, 후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진왕 정(政)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이때의 사건이 그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론해본다.
노애의 난을 평정한 진왕 정(政)은 함양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분노와 배신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한 사람의 일을 처리하지 않은 것이었다.
"여불위, 여불위(呂不韋)는 어디 있는가?"
그동안 아버지처럼 생각해온 여불위.
온갖 소문이 나돌아도 그럴 리 없다며 굳게 믿어온 여불위.
그런데 그 여불위(呂不韋)가 바로 추악한 사건의 배후 조종자일 줄이야.
아니 어쩌면 소문대로 그는 자신의 친아버지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신은 영씨의 핏줄이어야 했다.
진장양왕(秦莊襄王)의 친아들이라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진왕 정(政)은 새삼스레 여불위에 대해 더욱 더 분노가 솟아올랐다.
"여불위를 들라 하라!"
그때 여불위(呂不韋)는 진왕 정의 분노를 눈치채고 병을 핑계로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지금 나가면 죽는다. 진노가 누그러 들때까지 일단 기다려보자.'
아무리 불러도 여불위가 입궐하지 않자 진왕 정(政)은 차라리 잘 되었다는 듯 대신들을 불러모아 의논했다.
"과인은 여불위(呂不韋)를 죽여야겠소. 경들의 뜻은 어떠하오?"
이 무렵 조정 대신들의 대부분은 여불위가 천거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당(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신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여불위(呂不韋)는 지난날 선왕(진장양왕)을 조나라에서 구출해와 진나라의 사직을 이어받게 한 공로가 있습니다."
"더욱이 노애(嫪毐)는 이미 죽었습니다. 여불위와 대질시켜 그 진위를 가릴 수도 없습니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나라의 사직을 보존시킨 공신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며칠을 이렇게 의논하는 사이 진왕 정(政)의 분노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아니 어쩌면 무리하게 여불위를 죽이려다가 오히려 역공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위험을 느낀 것인지도 몰랐다.
- 승상의 인수를 거두어 들이고 집에서 근신하게 하라.
이렇게 해서 여불위(呂不韋)는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고, '노애의 난'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의 모습뿐이었다.
진왕 정(政)의 가슴속에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