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하실 때
창세기 40:1~23
지난 시간 우리는 요셉의 생애를 총괄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한 마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에게는 젊은 나이에 그에게 일어났던 모든 불행한 사건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요셉은 그의 원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형제들에 의해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골육의 형제들이 결국 그의 적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서 맡은 일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맡은 일에 불평하지 아니하고 무슨 일이든지 집주인의 성실한 청지기로 그 집안의 일을 잘했기 때문에 주인에게 신용을 얻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 그 집안의 모든 일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순전히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깨끗하게 살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가서도 그가 맡은 일을 잘 감당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꿈을 해몽해서 감옥 안에서도 간수와 같이 일하는 자리에 있게 되고 그 결과 왕의 술을 맡은 집사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술 맡은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 뜻을 몰라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있는 것을 요셉이 발견하고 물었습니다.
“오늘 내가 보니 얼굴에 수심이 서려 있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좀 도와 드릴 수가 없겠습니까?” 그때 술 맡은 사람의 대답이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 뜻을 알 수가 없어서 그런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요셉이 그에게 말하기를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제게 말씀해 주세요.”
왕의 술을 맡은 사람이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었소.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그 가지에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열려 있었소. 그리고 그 포도가 잘 익었었소. 내 손에 바로 왕의 잔이 있기에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짜서 바로 왕의 잔에 담아 바로의 손에 드렸소. 이 꿈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도무지 불안해서 그래요.”
이 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셉이
“그렇습니까? 그 꿈에 대한 해석이 이렇습니다. 포도나무의 세 가지를 보셨다고 했는데 그 세 가지는 사흘을 의미합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여 당신이 기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당신 손에 맡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사람인데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술 맡은 집사는 자기가 출옥하면 당신을 꼭 기억하겠다고 그 꿈 해석에 대해 감격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굳게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옥해서 바로 왕의 술 맡은 집사의 직에 오르게 된 그는 요셉에 관한 모든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감옥에서 2년 동안 더 살게 되었습니다.
이 술 맡은 집사에 관한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 집사는 요셉에 대해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요셉과 그의 지혜를 이용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뒤를 돌이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처럼 그 전에 하던 직책을 맡게 되었는지 생각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2년 동안 더 옥살이를 해야 했는데 이것은 그가 특별한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이유 없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하고 지나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일생에 어떤 국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 후에는 그들을 잊어버리고 만 경우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편지 한장 쓰지 않고 전화 한번 걸지 않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위로의 말과 도움의 손길을 준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넘어간 적이 많습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도 도움을 주었으나 과거에 묻혀 버린 그런 사람들을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이나 친구나 이웃이나 친척들 가운데서 말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가운데 나오는 바로 왕의 술 맡은 그 집사의 이야기는 인생의 여정 가운데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특정한 사람들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약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마웠던 일은 잊어버리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에 보면 다윗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불러 깨우지 않으면 은혜를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오늘 밤에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위해 고난 당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성찬에 참예했습니다. 왜 우리가 떡과 포도즙을 듭니까? 이것을 행하여 주님께서 우리 위해 고난 당하신 것을 다시 상기시키며, 기억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는데 우리는 이와 같이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찬을 행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재차 생의 불공정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아무런 죄도 없이 처음에는 노예, 다음에는 죄수가 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로마 여행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여행은 위험한 여행으로 그가 탄 배는 풍랑으로 표류하다가 난파되었습니다. 주의 천사가 말한 대로 바울은 로마 황제 앞에 서게 되는데 이것은 바람이 거슬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만 우리를 거슬리는 바람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 드리는 분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아홉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22살 때 상점 점원의 일자리도 잃었습니다. 그는 법률학교에 가기를 원했지만 그의 실력이 딸렸습니다. 그는 빚에 몰려 23세에 구멍가게의 점원이 되었습니다. 26세 때 그의 동료 점원이 몇 년 동안 갚아야 될 많은 빚을 그에게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28세 때 그는 4년 동안 사귀어 왔던 처녀에게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하는 가슴 아픈 일을 당했습니다. 37세 때에 그는 세번째 시도 끝에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 후에 그는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45세 때 그는 상원의원 선거에 실패했고, 47세 때에 대통령 지명선에서 탈락되었습니다. 49세에 그는 다시 상원의원에 재출마했으나 또 낙선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드디어 그는 51세에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우리 기억에 남은 훌륭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링컨 같은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나 장애물도 인간의 운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고 의심하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 대답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역경과 부당함이 있는 곳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역경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며 불안을 신뢰로 바꾸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실 때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요셉에 대해서 그리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와 같은 상황 속에 있는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다. 요셉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요셉으로 말미암아 번영을 누렸습니다. 문자 그대로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축복을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나로 인해 복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셉은 다른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간수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며 바로의 궁에서 시중 들다가 옥에 갇힌 집사들도 도와주었습니다.
요셉은 근심의 빛을 띠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임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자기에 대한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변명하기에 급급했을 것입니다. 그가 당한 일에 대해서 불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자신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주의 깊게 살피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도와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귀를 기울일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돕기를 원했습니다. 펜실바니아 대학의 정신의학 교수이며 의사인 데이비드 번스(David Burn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확신을 갖고 말하려는데 있어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는 당신의 생각과 느낌에 지나친 비중을 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원하는 것은 들어주는 것이며 존중히 여겨 주고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당신의 생각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신앙을 누구에겐가 증거하려고 할 때 귀담아 들어 두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베풀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믿음의 행위로서 그의 고용주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요셉이 가정의 청지기고 감옥의 옥사장이고 이런 직책이 그에게 허락하신 자리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좋은 직업을 허락해 주실 때까지 나는 여기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로 인생을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는 그의 불행한 상황을 최선의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부당하고 불공평한 일을 당할 때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바로 거기에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실 때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연이건 하나님의 뜻이건 우리는 바로 책임을 져야 할 곳에 있습니다. 요셉처럼 우리가 처해 있는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함으로 최악의 경우를 최선의 기회로 만드는 삶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