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한복판 ‘쥴리 벽화’ 논란… 野 “인격 살인”
윤석열 부인 의혹 비방 그림-문구
일부서 車로 가리자 고성 오가
건물주, 논란 커지자 “문구 지울것”
尹 “대한민국 수준이… 배후 있을것”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그림이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벽면에 걸려 있다. 이날 시민단체 ‘자유연대’ 관계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인격 말살”이라며 차량으로 그림을 가렸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 도심인 종로구 관철동의 한 건물 벽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내걸려 논란이 일고 있다.
중고서점이 입점한 이 건물 외벽에는 모두 6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중 벽화 2개가 ‘쥴리’와 관련이 있다. ‘쥴리’는 이른바 ‘윤석열 X파일’로 알려진 문서들에서 김 씨의 예명으로 거론됐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외벽에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김 씨의 얼굴을 본뜬 듯한 여성의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여모 씨(58)로, 그가 서점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 씨는 광주에서 5층 규모의 호텔과 400석 규모의 공연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알려졌다.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여 씨는 특정 정당 당원으로 가입하거나 선거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여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벽화는 풍자로 그린 것이다. 벽화를 절대 지우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사업하는 사람일 뿐 정치적 의도는 없고, 배후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논란이 확산되자 그는 “배후설 등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 ‘쥴리의 꿈’ 등 지적된 문구는 내일 전부 지울 예정”이라고 물러섰다.
건물 앞에서는 이 벽화를 비판하는 보수 유튜버 10여 명과 시민들이 뒤엉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벽화 앞에는 차량 3대가 일렬로 주차돼 있다. 28일 저녁부터 이곳에 차량을 세워뒀다는 염모 씨(59)는 “부인을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모욕한 그림 아니냐. 꼴도 보기 싫어 차로 가렸다”고 말했다. 어떤 시민은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며 직원에게 “응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저질 비방이자 정치 폭력이며,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인격 살인”이라고 했다.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 여배우 스캔들을 풍자하는 벽화를 그리면 (여당 지지자들이) 뭐라고 할까”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상희 국회부의장도 “누구를 지지하냐 아니냐를 떠나 이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은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 “정치판이 아무리 엉망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수준이 여기까지 왔느냐”라며 “(그림을 그리게 한)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배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윤석열 캠프는 이날 김 씨에 대한 불륜설 등을 제기한 열린공감TV 관계자 등 10여 명을 형사 고발했다.
★‘쥴리 뮤비’ 제작자, 3년전 文 선물 받아...‘혁명동지가’도 만들었다
또 다른 제작진은 이재명 지지모임 대표
가수 백자(맨 오른쪽)가 2018년 1월 청와대 초청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식사를 한 뒤, 대통령으로부터 백자를 선물받고 있다. /KTV
윤석열 전 총장의 배우자 김건희씨를 모욕·조롱하는 내용의 뮤직 비디오 ‘나이스 쥴리’의 제작자인 가수 ‘백자’가 3년전 문재인 대통령로부터 ‘블랙 리스트 피해 예술인’으로 지정돼 오찬을 함께하고 선물까지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한 또 다른 인물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전국 지지 모임 대표였다.
29일 백자란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하는 백재길(49)씨의 유튜브 채널 ‘백자tv’에는 ‘나이스 쥴리’라는 곡의 뮤직비디오가 올라왔다. 지난달 18일 백자가 공개한 이 곡엔 여권에서 제기하는 김씨 관련 각종 미검증·미확인 의혹이 담겼다. 김씨가 과거 유흥업소에서 ‘쥴리’라는 닉네임의 접대부로 활동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곡에는 “나이스 쥴리 르네상스 여신, 볼케이노 불꽃 쥴리, 서초동 나리들께 거저 줄리 없네, 나이스 쥴리 춘장의 에이스, 비즈니스 여왕 그 엄마에 그 딸, 십원 짜리 한장 피해 줄리 없네”라는 가사가 붙었다.
뮤직 비디오가 공개되자 문재인 대통령과 백씨의 인연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월 7일 백씨에게 직접 선물을 전달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소위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피해자’와의 간담회를 열었다. 백씨는 배우 김규리, 김서령 이오공감 대표, 서유미 작가, 신동옥 작가, 윤시중 극단 하땅세 대표, 정유란 문화아이콘 대표 등과 이 자리에 참석했고, 문 대통령은 백씨에 대한 맞춤형 선물로 ‘백자 천공 주병세트’를 줬다.
당시 청와대는 백씨를 가리켜 “국정원 개혁위원회 발표 ‘좌성향 예술인 249명’에 포함되었음에도 왕성한 민중가수 활동을 지속한 점 등을 고려해 서민의 투박한 정감이 녹아있는 백자주병을 통해 서정적이고 민중적인 감각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해주기를 바라는 의미로 ‘백자 천공 주병세트’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백씨는 운동권 사이에서 유명한 ‘혁명동지가’를 지난 1991년 지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1996년 경기남부총련 노래단 ‘천리마’ 1집에 수록됐다. 가사에는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 진격하는 전사들의 붉은 발자욱 잊지 못해. 돌아보면 부끄러운 내 생을 그들에 비기랴마는 뜨거웁게 부둥킨 동지 혁명의 별은 찬란해. 몰아치는 미제에 맞서 분노의 심장을 달궈. 변치말자 다진 맹세 너는 조국 나는 청년”이란 내용이 담겼다.
2013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이 한창일 때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이적표현물인 이 노래를 부른 사실이 드러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백씨는 법정에 “이 노래는 북한과 관계가 없다. 김좌진과 홍범도, 안중근 등 독립운동가에 대한 노래일 뿐”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이 노래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백씨와 비슷한 시기 운동권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이 노래는 중국공산당 지휘 아래 만주에서 조직돼 보천보 전투를 수행한 김일성의 항일군사조직 ‘동북항일련군'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라며 “백자는 이 노래가 독립운동가의 노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혁명의 별’에 대해 ‘어려운 상황에도 밤하늘 별빛을 바라보는 듯한 희망의 은유적 표현’이라는 궤변을 쏟아냈다. 혁명의 별은 운동권에서 김일성을 가리킨다. 게다가 그는 미제에 대해 ‘미국의 걸프전이나 패권주의 등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는데 김좌진 때랑 걸프전이 무슨 상관인가? 또 장백은 백두산의 중국식 표현”이라고 했다. 지난해 5월 14일 대법원은 이 노래가 이적 표현물로 규정한 판결을 확정했다.
/백자tv
백씨는 지난 5일에는 “국격을 완전 말아드신 윤짜장과 그 주변 분들께 곡을 바친다”며 ‘윤짜장 특집송 23곡’을 공개하기도 했다. 공개된 곡 대부분은 2분 가량으로 ‘건희 트롯’ ‘춘장 트롯’ ‘조국 장관 털듯이’ ‘윤짜장 구속송’ ‘윤비어천가’ ‘도리도리 윤도리’ 등 윤 전 총장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백씨와 함께 이 곡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또 다른 인물은 유튜브 채널 ‘이사람tv’를 운영하는 운동권 출신 이석주 ‘촛불백년경기이사람’ 대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지난달 19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위치한 주민교회에서 이 지사의 정치 철학을 지지하는 3040세대 전국 조직인 이 단체 출범식을 개최했다. 앞선 12일 이 대표는 김병욱 국회의원과 조광주 경기도의원이 조직한 이 지사 지지 모임 ‘이재명과함께하는성남사람들’ 출범식에도 참석했었다.
이 지사 캠프는 29일 “다양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작금의 통념으로 볼 때도 쥴리 벽화는 금도를 넘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서울 종로구 관철동 옛 우미관 터 건물 외벽에는 김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등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윤 전 총장 캠프는 같은 날 이와 같은 음모론 유포자를 고소했다.
★윤희숙, 쥴리 벽화에 “여가부·여성단체는 어디있나”
국민의힘 대선 주자 윤희숙 의원./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주자 윤희숙 의원이 서울 종로의 한 건물 외벽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아내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등장한 것을 두고 “여성인권을 보호한다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며 여성가족부와 여성운동가들을 비판했다.
윤 의원은 30일 페이스북에 ‘우리나라 여성운동은 여당이 허락한 페미니즘 뿐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종로 중고서점 주인이 문구를 삭제하겠다고 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될 것 같습니다만 이것이 우리 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는 오래 갈 것 같다”며 “비열한 짓을 막아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시민이 많아진다면 이런 혐오스런 사건도 내리막이 아닌 오르막 계단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꼭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정치적 공격을 위해 한 인간이 ‘여성임’을 도구로 삼아 공격한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력”이라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여성 인권과 양성평등 관련해 명함을 판 사람이라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목소리를 냈어야 하는 사건인데 모두 어디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여성운동가들과 여성가족부가 추구한다는 ‘가치’는 어떤 정치세력과 관련된 일인지에 따라 켜졌다 꺼졌다 하는건가”라며 “지원금을 나눠주는지, 자리를 약속하는지, 정치적 득실이 무언지에 따라 주머니에서 꺼냈다 다시 넣어뒀다 하는 게 무슨 ‘가치’인가”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8일 종로구 관철동 종로12길의 한 건물 옆면에는 김씨를 비방하는 내용을 담은 대형 벽화가 등장했다. 문제의 벽화에는 한 여성의 얼굴 그림과 함께 ‘쥴리의 남자들’,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 등 문구가 적혔다. ‘쥴리’는 김씨 관련 의혹에서 나온 김씨의 멸칭이다.
벽화의 문구는 30일 오전 9시15분쯤 모두 지워졌다. 서점 직원이 직접 페인트로 문구를 덧칠해 문구를 제거했으며, 현재는 여성과 하트 문양 등 그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