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었다. 혼자서 적군 일천 명을 상대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의 마지막 구절은 이랬다.
(삿 16: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많은 죄인들을 살렸지만, 삼손은 죽음으로써 수많은 원수를 죽였다. 그리고 그 자신도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실인으로 태어나 그에게 주어진 간단한 나실인의 서약만 준수했더라면 그는 블레셋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른 다윗처럼 이스라엘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로는 승리 중에서도 비참했다.
(삿 16: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삼손은 좀 더 좋은 길을 택할 수 없었는가? 왜 이스라엘의 영웅은 그렇게 일그러지고 말았을까? 그것은 그가 자신의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욕망을 의지의 지배하에 두지 못한 까닭이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우리의 첫 조상도 바로 여기에서 넘어지지 않았는가? 그는 하나님이 금하신 금단의 과일을 바라보았다. 그랬을 때 그의 마음은 자신이 바라보는 대로 이끌렸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본즉” “보암직도”했다. 삼손도 그랬다. 실패한 첫 결혼도 그는 자신이 본 것에 이끌렸다. 그리고 두 번째도 그랬고 세 번째도 그랬다.
(삿 16:1)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감각적인 사랑에 탐닉한 삼손은 위대한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슬프고 불행한 기록으로 그의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소렉의 여인 들릴라는 그가 사랑한다고 표현한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그 사랑마저도 “아하브, אָהַב”라는 단어를 쓰는 것처럼, 그 대상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랑이 원칙이 아닌 감정적, 감각적 사랑이 될 때 그 결말은 언제나 상처와 아픔으로 끝이 난다. 들릴라는 은 일천 개를 각각에 받기로 하고 삼손의 비밀을 캐기 위해 매일 밤 졸랐다.
(삿 16: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거짓 사랑의 대가는 참혹했다. 삼손은 자신의 나실인 비밀 규약을 발설하고 말았고 원수들은 그를 잡아 두 눈을 뽑고, 맥 빠진 힘으로 맷돌을 돌리는 웃음거리가 되게 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 한순간에 적국의 포로가 되고 말았고 마지막 그의 기도는 응답 되었으나 가장 행복하고 존경받을 수 있었던 그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 우리들의 하늘 아버지! 매사가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달렸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최선의 길을 가도록 이끄심에 감사드립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저항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시고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전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