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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 27일(목요일).
자심도(동백섬) : 경남 거제시.
▣산행코스 : 지심도선착장-동백하우스-마끝전망대-지심분교-포진지-탄약고-활주로-샛끝전망대-지심도선착장.
▣산행시작 : 지심도선착장 10시 48분.
▣산행종료 : 지심도선착장 12시 22분.
▣전체거리 : 약5.56km.
▣전체시간 : 01시간 34분.
▣운동시간 : 01시간 34분.
▣휴식시간 : 00시간 00분.
▣누구하고 : 드림산악회.
10 : 48 지심도선착장.
10 : 49 동백하우스.
10 : 55 마끝전망대.
11 : 05 지심분교.
11 : 10 포진지.
11 : 11 탄약고.
11 : 32 활주로.
11 : 32 그대발길 돌리는곳.
12 : 22 지심도선착장.
▲ 09시 53분 : 장승포항 지심도터미널.
▲ 출발 10시 30분... 소요시간 10분 ~ 15분... 요금(왕복) 20000원.
▲ 정원 98명의.. 지심도여객선..
▲ 거제애광원.. 한국전쟁이 낳은 비극과 사랑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앞쪽의 거대한 건물은 거제문화예술회관 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 발발.. 그리고 그해 12월 23일에 흥남 부두를 떠난 '메르디스 빅토리' 호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 1만 4천 여명을 거제 장승포항에 내려놓았고 거제는 피난민들과 고아들로 가득 찼다.
1952년 27세의 김임순은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100세의 연세에 지금도 애광원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 거제시 장승포항 상징 조형물.. 작품명은.. "태양의 어머니"다.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 '메르디스 빅토리' 호가 내려놓은 오갈데 없는 피난민들을 어머니 마음으로 품에 안은
거제인들의 넓고 깊은 정을 상징하고 있다.
▲ 출발 5분만에 지심도가 보인다.
▲ 옥녀봉 정상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설치된 대삼각점으로1910년 6월 <일본 대마도의 유명산>과 <부산의 영도 봉래산>과
<거제의 옥녀봉>을 관측계산하여 대삼각본점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두 삼각점을 기준으로하여 전국에 대삼각본점 400점을 설치하여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려는 의도에서 토지조사
를 실시하였던 매우 씁쓸한 기분의 삼각점이 저곳에 있다.
▲ 더욱 가까워 진 지심도..
지심도(只心島)의 지명유래는 문헌상으로 지사도(知士島, 1469년 경상도속찬지리지)로 알려졌다가, 1760년 여지도서
(輿地圖書)에는 지삼도(只森島)로 적고 있다. 다른 문헌에는 지삼도(知森島), 지심도(只心島)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지삼도나 지심도는 한자마다 읽는 과정에서 바뀌었다고 보기엔 힘들고 섬의 자연적 변화에 따라 불렀다고 하겠다.
이전부터 지심도에는 각종 나무들이 울창하게 심어져 있었다고 해서 지삼도라 불렀고, 이후 섬이 마음 심(心)처럼 생겼다
고 하여 지심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위키백과 발췌>--
▲ 지심도에 있다는 몽돌해수욕장이 생각나서..
▲ 당겨 보니.. 규모는 작지만 몽돌이 자리하고 있다.
▲ 지심도 선착장에 접안하자 말자 재빠르게 두번째로 하선하여..
▲ 인어공주를 선착순으로 만나는 영광을 누리고..
▲ 돌아보니.. 아직도 하선중이다.. 98명이 정원인 배에 주중임에도 7~80명은 탄것 같다.
지심도 식당에서 손님유치를 위해 운영하는 서비스용 4륜차 툭툭이가 손님을 태우는 모습도 보인다.
▲ 때로는 홀로여행이 좋은점은..
▲ 조금만 부지런히 서두르면..
▲ 적어도 이시간 만큼의 지심도길은.. 온전히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 여기에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마끝전망대로 갈수가 있지만..
▲ 10시 49분 : 동백하우스를 경유 한다.
▲ 성모마리아님이 내려다 보시는 곳에서 우틀하여..
▲ 첫번째 상가를 지나고..
▲ 두번째 상가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마끝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 트레킹순서는.. 마끝전망대를 보고 포진지를 경유하여 샛끝전망대에서 선착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 지심도 발전소..라는데 출입금지다.
▲ 10시 55분 : 마끝전망대..
▲ 마끝전망대와 마주보이는곳은 거제시 일운면의 "망산"으로 섬산행을 더러 오는 곳이고 망산 뒤편에는 수선화로 유명한
"공곶이" 농장이 있다..
▲ 뒤돌아 본 마끝전망대..
▲ 마끝전망대에서 돌아 나오다가 발전소라 하기에.. 어떻게 전기생산을 하는지 궁금하다.. 태양열이 아닐까..
▲ 해돋이 민박집을 지나가는데..
▲ 사륜차 툭툭이가 지나간다.. 서비스 운행중이다.. 젊은 사람이 부모의 일을 도우는 듯하여 보기가 좋다.
▲ 11시 05분 : 지심도분교 삼거리..
▲ 일운초등학교 지심분교.. 지금은 마을회관..
▲ 지금은 지심도주민마을회관..
▲ 지심분교 운동장...
1982년까지만 해도 17가구 69명에 달했으며 당시 일운초등학교 지심분교에는 재학생이 35명에 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4년에 폐교 됐다. 운동장을 관통하면.. 산 위쪽의 활주로와 연결 된다.
▲ 국방과학연구소 앞...
1945년 광복 이후 지심도는 미군이 점령하게 되고 일본군으로부터 포진지와 각종 무기 등을 접수한다.
이후 소유권이 국방부로 넘어왔지만 한동안 관리되지 않다가 1995년 섬 중앙에 국방과학연구소 해상시험소가 건설된다.
이러한 지심도에 인근 어민들이 어업활동을 하기 위한 교두보로 임시거주를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 강제
이주를 떠났던 주민들이 되돌아 오면서 다시 민간인이 사는 섬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거제시는 국방부로부터 지심도 소유권을 반환받기 위해 2005년 '지심도 이관팀'을 구성하고 4만 8743명이 동참한 범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국회 청원 등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2008년 8월 제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청원서가 폐기되면서
지심도 반환사업은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거제시는 2011년 6월 13일 국방부에 이관 건의를 시작하며 다시 불을 붙였다.
국방부, 환경부 등 12개 기관과의 끈질긴 협상을 벌인 끝에 지심도에 있던 국방부 해상시험소를 섬 밖으로 이전 완료하고,
2017년 지심도 소유권을 넘겨받는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섬 주민을 내쫓고 군사기지화 한 이후 81년 만에 이로써 지심도는 거제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 국방과학연구소였던곳이 궁금하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다.
▲ 포진지로 이동.
▲ 처음 만나는 포진지..
일제는 1935년 지심도 일대의 토지를 국방용으로 매입하면서 주민들을 지세포와 대동마을로 강제 이주시키고 포진지
구축은 1936년 7월 10일 시작되어 1938년 1월 27일 완성된다.
▲ 두번째 만나는 포진지..
지심도 포대는 일본의 중국침락을 2년 앞두고 계획되었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진해해연방비
부대에 소속되어 미연합국과 일전을 준비하였던 곳이다. 지심도 포대설치는 1935년 11월 30일 구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포대건설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 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 45식 15밀리 캐논포 4문..
38식 기관총.. 96식 측원기등을 각각 배치 했다.
▲ 탄약고.. 터널속을 관통하게 되어 있다.
1935년 11월 30일 ~1936년 1월 25일 사이 지심도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었다. 내부는 전등을 설치하였고.. 탄약
이나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역을 보관하고 있었다. 1936년 5월 7일 현재 38식
기관총 고사포구 38개.. 캐논포 탄환 10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탄약고의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활을 하는 구멍이 2곳이
있으며,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모양의 수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방식은 4곳의 탄약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당초 탄약고는 포대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어 포탄이나 탄약을 운반하는데 편리하도록 건설되었고.. 4곳 모두 정문은
부산쪽 방향이며.. 후문은 쓰시마 방향이다. 또한 모든 탄약고는 비탈진 곳에 은폐되어 있어 눈에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 탄약고를 나오면.. 세번째 만나는 포진지에서 뒤쪽으로 내려간 흔적이 있어서 따라가 본다...
▲ 여기가 끝이다.
▲ 오른쪽을 보니 조금전에 다녀갔던 마끝전망대가 보인다.
▲ 왼쪽 해안선..
▲ 다시 올라 와서...샛끝전망대로 가다가..
▲ 많이 다닌 흔적이 보여서..
▲ 멀리 대한해협의 수평선이 고요하다..
▲ 가시덤불과 도깨비풀이 많아서 하절기에는 다니지 않는게 좋을 듯 하다...
▲ 낭도의 신선대에 온것 같은 분위기다.
▲ 이런 멋진 뷰(view)가 기다리고 있기에.. 약간의 발품을 파는 것이다.
▲ 다시 국방연구소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 지심도의 화장실은 두개다.. 이곳 산 위에 있고 선착장에 있다. 이곳은 재래식이다.
▲ 밀수가 성행하던 시절.. 지심도에 세관 감시초소가 있었음은 처음 알았다.. 그것도 자그마치 20년이다..
▲ 11시 32분 : 지심도 활주로..
▲ 활주로를 나와서 샛끝전망대 쪽으로...
▲ 지심도 곰솔할배..
▲ 방향지시석은 망루나 발전소와 가까이 있는 곳으로 지심도의 주변 지역을 표시한 것이며,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설치되었다. 총 6개의 지시석이 있었으나, 현재 제일 왼쪽으로 장승포 방향(長承浦方向), 가덕도등대(加德島燈臺),
절영도(絶影島, 현 영도), 쓰시마 남단(對馬島) 등 총 5개만 남아 있다.
▲ 곰솔할매.. 해송을 바닷가에서는 곰솔이라고 한다..
▲ 곰솔할매..
▲ 찬 물고랑쪽의 바위들..
▲ 국기 게양대(國旗 揭揚臺)..
광복 70주년을 맞아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지심도 역사의 아픈 흔적을 지워버리고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섬을 만드는
시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욱일기 게양대를 세웠던 곳에 지심도 주민들이 뜻을 모아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다.
우리가 사랑하는 거제도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지심도를 위하여...
2015년 08월 15일 지심도 주민일동
▲ 11시 47분 : 샛끝전망대.. 일명.. 그대 발길을 돌리는 곳..
▲ 올때는 샛끝전망대.. 갈때는 선착장 바라기..
▲ 방향지시석에서 우틀하여..
▲ 육지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통큰 대나무다..
▲ 서치라이트 보관소.
조명이 도달하는 거리가 7km ~ 9km나 될 만큼 커다란 서치라이트를 방향지시석으로 끌고 가서 사용했다고 한다.
▲ 지심도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只心島 舊 日本軍 電燈所 所長 舍宅).
이 전등소 소장의 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지심도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 27일 준공 되었다.
▲ 11시 57분 : 몽돌해수욕장 입구.
선착장 도착이 12시 40분까지 이니.. 다녀와도 될듯하다.
▲ 동백은 세 번 핀다고 했다.. 가지에서 한 번.. 땅에서 한 번..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다시 붉게 피어난다..
오늘의 지심도 동백이 내마음에 피어나는 순간이다..
▲ 몽돌해수욕장.. 규모는 작지만... 가족들과 조용히 하루밤 파도소리를 듣는 것도 좋을것 같다.
▲ 수종이 다른 두나무가 사랑에 빠졌다.
▲ 후박나무...
▲ 12시 22분 : 지심도 선착장 트레킹종료.
▲ 시간이 남아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쥔장 없는 낚시대 대여소에서 쥔장 행세를 하며.. 휴식모드로..
▲ 12시 38분 : 서서히 줄을 서야 하는 시간.. 오늘은 경남 창녕에서 대형버스 한차가 왔다.
▲ 새우깡을 낚아채는 순간 포착을 하려 했는데..
▲ 얼마나 빠른지..
▲ 타이밍 실패다..
▲ 13시 14분 : 장승포항 도착..
버스에 탑승하여 다음 행선지인 양지암등대길을 걷기 위해 10분 거리에 있는 능포의 조각공원 입구로 이동.
첫댓글 지심도는 1월에가도 2월에가도 3월에가도 동백꽃을 제대로 본적이 없네요
세월이 흘러도 크게 바뀌지 않는 지심도 작년 3월에 지심도에서 권기택이사님도
만나고 했는데 언제 활짝핀 동백꽃을 볼수가 있을까요?
지심도 동백은 오리지날 한국토종이라서 꽃이 작고 날씨에 민감해서
그야말로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올해는 일기가 불순해서 더더욱 맞추기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도 기대는 안하고 갔지만 역시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