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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장 1-13절. 어찌 죄 가운데 더 살리요
1. 지금까지는(3:21-2장)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以信稱義:justification)를 말씀했는데, 여기서부터는(6장–8:17) 성결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순간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되는 것을 가리키지만, 성결 생활이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가 죄악 세상에서 계속적으로 성령님과 말씀 속에서 이루어가는 여정입니다.
2. 좀 더 세분하면 6장 1-11절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을 가리키고,
6장 12-23절은 죄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것이고
7장 1-6절은 새로운 혼인 관계로서 율법과 이혼하고, 성령님과 함께 살라는 것이고
7장 7-27절은 율법을 따라 살면 죽음이지만
8장 1-17절 성령님을 따라 살면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3. 6장 1-11절을 좀 더 세분하면, 1-6절은 예수님과 우리가 함께 죽었음, 7-11절은 예수님과 우리가 함께 부활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1-6절은 세례(침례)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인데, 세례(침례)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며, 세례(침례) 시에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것을 상징함으로 우리는 죄악의 옛 사람은 죽고, 이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4. 지난 시간에는, 5장 끝부분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폭탄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혹시 어떤 성도님은 이 말씀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면, 행함은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면, 죄를 지을수록 은혜가 넘칠 터이니, 은혜를 많이 받기 위해서 죄를 많이 지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오해를 시정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6장 1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 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실제로, 교회역사상 <율법폐기론자>(anomist)들이 그런 잘못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즉, <육은 무익한 것이기 때문에, 죄를 아무리 지어도 영에는 아무런 악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잘못된 신앙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5. 바울 사도는 성도가 <죄에 거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2절.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6. 오늘은 <어찌 죄 가운데 더 살리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1-13절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2절. 성도가 죄 가운데 더 살 수 없는 이유 (이미 죄에 대하여 죽어버렸기 때문에)
3-10절. 성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같이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11-13절. 이제는 몸을 죄의 도구로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서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1-2절. 성도가 죄 가운데 더 살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죄에 대하여 죽어버렸기 때문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1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at shall we say then? Are we to continue in sin so that grace may increase?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Τί οὖν ἐροῦμεν;
What then will we say?
‘말하리요’(ἐροῦμεν)는 미래형입니다(will we say).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ἐπιμένωμεν τῇ ἁμαρτίᾳ, ἵνα ἡ χάρις πλεονάσῃ;
Shall we stay on in the sin, so that the grace may abound?
직역하면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죄 안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인가?’란 뜻입니다.
‘더욱 풍성하게 하려고’란 동사(πλεονά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may abound), 확실히 더욱 풍성하게 하려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계속 머물러 있다’는 동사(ἐπιμένωμεν)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Shall we stay on)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1. 본 절은 앞에서 율법을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이제 의롭게 된 성도는 율법이나 범죄를 신경 쓰지 말고,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는 의문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은혜를 더하려고 계속 죄에 거하여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입니다.
답은 2절에서 ‘그럴 수 없느니라’입니다.
이유는 ‘죄에 대해서 이미 죽어버린 우리가 어찌 더 율법을 어기는 죄에서 살아야 하겠는가’라는 답입니다.
즉 이미 죄악 생활 하던 옛 사람이 죽어버렸으니, 이제는 성령님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죄에 거한다>는 것은 죄에 머물러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악 생활하던 것을 청산해야 하는데, 죄 가운데 계속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악 생활 가운데 머무르는 이유가 참 희한합니다.
<은혜를 얻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에 머물러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망령된 이론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3. 그러면, 왜 우리가 죄악 생활을 청산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미 <죄에 대하여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성령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2절.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May it never be! How shall we who died to sin still live in it?
그럴 수 없느니라.
μὴ γένοιτο.
never may it be
여기 동사(γένοιτο)는 부정과거 기원격(optative) 동사로서(may it be) 부정어(μὴ:never)와 함께, 결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말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οἵτινες ἀπεθάνομεν τῇ ἁμαρτίᾳ, πῶς ἔτι ζήσομεν ἐν αὐτῇ;
who we died to the sin, how still shall we live in it
‘죽은’이란 동사(ἀπεθάνομεν)는 부정과거로서(we died) 역사적으로 우리 성도가 죄에 대해서 단번에 확실히 죽어버린 사실을 가리킵니다.
‘살리요’란 동사(ζήσομεν)는 미래형으로서(shall we live) 장차 살 것을 가리킵니다.
1.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에서 ‘죽은’이란 동사(ἀπεθάνομεν)는 부정과거로서(we died) 역사적으로 우리 성도가 죄에 대해서 단번에 확실히 죽어버린 사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와 세례를 통해서 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죄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상태인 것을 가리킵니다.
2.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에 안 믿을 때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죄를 위해서) 살았으나, 이제 우리 성도는 죄에 대하여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죄하고는 <단절되어버렸다>는 뜻입니다.
(1) <살았다>는 것은 관계를 갖고 교제한다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관계가 끊어지고, 교제가 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기 공사하는 사람들은 <이 선 살려? 죽여?>라고 합니다.
선을 이어서 전기불이 들어오게 하면 살리는 것이고, 선을 끊어서 전기불이 안 들어오게 하는 것은 죽이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시골 할머니는 호롱불 시절을 생각하셔서, <저기 전기불 죽여라! 저기 전기불 살려라>고 하십니다.
사실 그 말씀이 정확합니다.
(2) 어떤 자식이 부모를 떠나서 아무런 연락도 않고, 찾아오지도 않는다면, 그 자식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 사람도 영혼이 몸과 붙어 있어서, 말도 하고, 사랑도 하고, 기도도 하면,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버리면, 말도 못 하고, 사랑도 못 하고, 기도도 못 하고 죽은 것입니다.
(4) 우리가 예수님 믿고 영생 얻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이어져서 교제하는 것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교제하지 못하면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영원토록 오래 사는 것은, 천국에 간 사람만이 아니라, 지옥에 간 사람도 그렇습니다.
(5)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가 436장처럼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면서,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늘 예배드리러 오신 것은 모두 <날마다 하나님과 끊임없는 관계를 갖는 영생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날마다 주님과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은 참 복된 분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시면서도, 형식적으로 다니시고,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를 못 하시는 분들은 참 안타깝습니다.
날마다 나오셔서 기도하시는 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맺어나가시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도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주님 만나고 주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보통 하루에 한 시간은 기도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가 전에는 죄에 대해서 살았으나, 이제는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1) 전에는 마귀의 지배 아래서 죄에게 종노릇 했습니다.
에베소서 2:2-3.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 그러나, 지금 우리의 위치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신분입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탄의 노예였던 우리가 현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은 지금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3) 과거에는 에베소서 2장 1절대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로마서 6장 2절 말씀대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입니다.
(4) 그러니까 어떤 성도님이 묻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도 죄를 짓고, 실수하고, 넘어지는데,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죄와 관계가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뭐라고요?
<근본적으로 죄와 관계가 끊어졌다>
다시 말해서, <죄와 사망의 권세자 마귀에게서 벗어났다>는 말씀입니다.
(5) 예를 들어서 설명드립니다.
① 시골집에 예쁜 강아지, 해피가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유롭게 뛰놉니다.
② 그런데, 도둑놈이 들어와서, 강아지의 목에 사슬을 묶고 끌고 갑니다.
강아지는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을 쳐도, 강제로 끌려갑니다.
도둑놈이 끌고 가니까, 상추밭도 망치고, 보리밭도 망치고, 몸도 찢기면서 끌려갑니다.
마치 마귀에게 끌려가는 사람처럼, 죄도 짓고, 병도 들면서, 끌려갑니다.
③ 그런데, 주인집 아들이 학교 갔다가 오다가, 자기 집 강아지를 보았습니다.
그 아들은 강아지를 보자마자, <해피야, 해피야> 소리치면서 달려왔습니다.
그러자, 도둑놈이 도망갔습니다.
④ 그래서 강아지 해피는 다시 주인집에 돌아왔습니다.
끌려가던 쇠사슬을 벗고, 다시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⑤ 이처럼, 과거 불신자일 때는 마귀와 죄에 노예로 끌려다니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을 따라 삶으로 마귀와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서 생명과 평안과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마귀와 죄의 사슬에 끌려가는 것은 감옥이고,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것이 참 자유고 생명입니다.
4.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
(1) 죄와는 이미 관계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죄 가운데서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 예화
① 과거에 창녀 생활을 하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신학교에 가서, 수녀가 되었습니다.
②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오랫동안 이 여성을 좋아하던 동창생 남자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여성이 창녀가 된 것도, 이 남자에게 실연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녀를 찾아갔습니다.
과거의 배신에 대해 용서를 빌면서, 자기도 이 여성의 과거를 묻지 않을 테니,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청혼을 했습니다.
③ 그러자, 이 여성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성도님, 과거의 영숙이는 죽었습니다. 지금은 마르다 수녀만 살아있을 뿐입니다>
그러고서는, 조용히 뒤돌아서 가버렸습니다.
④ 이 여성은 더 이상 과거 동훈이의 애인도 아니고, 과거의 창녀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 여성은 예수님만을 신랑 삼고 사는 하나님의 종일뿐이었습니다.
⑤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마귀의 종이 아니요,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성령님)을 모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영생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3)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
여기서 <산다>는 것은, <계속 머무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4) 우리 성도는 실수하여 범죄 함으로, 회개하며 애통하는 일이 있더라도, 계속 마귀의 종이 되어, <죄 속에 살지는 않습니다.>
5. 죄에 대해 죽은 것을 11절에서는,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1) 죽은 자로 <여긴다>는 것은 <간주한다> <계산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객관적, 역사적으로 이루어 놓으신 죄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2) 즉, 나는 살아가면서, 실수하고 범죄 하더라도, 하나님의 장부책에는 <범죄 기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범죄하고, 실수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속죄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장부책에는 항상 <무죄>로 기록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의로 죄를 지으면, 히브리서 12장 7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무서운 사랑의 징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지금이나 심판대 앞에서도 <무죄>이고, <의인>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할렐루야!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님을 모시고, 죄와 사망과 마귀를 담대히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하면서, 예수님 모시고, 성령님 모시고, 영적 전투에서 항상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10절. 성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같이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1. 3-8절은, 2절의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9-13절은, <어찌 그 가운데(죄 가운데) 더 살리요>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입니다.
2. 어떤 성도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경험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렇습니다.
<성도가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소위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입니다
3. 3-8절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와 함께> <연합한 자>등의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3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New King James Version: Or do you not know that as many of us as were baptized into Christ Jesus were baptized into His death?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알지 못하느냐?
ἢ ἀγνοεῖτε ὅτι, ὅσοι ἐβαπτίσθημεν εἰς Χριστὸν Ἰησοῦν,
Or are you unaware that, as we have been baptized into Christ Jesus
직역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세례받은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εἰς Χριστὸν Ἰησοῦν:into Christ Jesus)는 세례(침례) 받으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버린 행동을 가리킵니다.
‘알지 못하느냐’는 동사(ἀγνοεῖτε)는 현재형으로서(are you unaware) 언제나 알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세례를 받은’이란 동사(ἐβαπτίσθημε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 have been baptized) 우리 성도들이 역사적으로 성령의 세례 받아서 예수님과 함께 완전히 죽어버린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εἰς τὸν θάνατον αὐτοῦ ἐβαπτίσθημεν;
into the death His we have been baptized
직역하면 ‘그의 죽으심 안으로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즉 세례(침례)는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을 상징합니다.
여기도 역시 ‘세례를 받은’이란 동사(ἐβαπτίσθημεν)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완전히 죽어버린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저자는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난 중생(거듭남)의 교리를 세 가지 예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의식인 세례(침례)를 통해서 가르치고 (6:3)
둘째는 사회 제도인 노예 제도를 통해서 가르치고 (6:16)
셋째는 가정생활인 결혼 관계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7:2).
2. ‘세례받다’(βαπτίζω)는 동사는 원래 물에 잠기는 침례의식을 가리키며(specifically of ceremonial dipping), 이 단어는 원래 물에 잠기다는 단어(βάπτω)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Derived from βάπτω, meaning "to dip" or "to immerse.")
그래서 <침례>를 통해서 물에 잠겼다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오는 것은 불신자인 옛사람은 죽고,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살아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구약 성전의 제사에서 피를 뿌려서 죄를 정결하게 하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 당시에는 침례를 주로 사용했으나, 초대교회 시대에는 침례와 관수례(물을 머리에 붓는 것)와 세례를 병행해서 사용하다가, 120년경부터 주로 세례를 사용했고, 13세기부터는 대부분 세례 형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재세례파에서 세례받은 성도를 다시 침례를 주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도 침례교단에서는 침례를 하고, 희랍정교회에서도 침례를 하고 있지만, 오늘날 천주교회에서나 개신교 대부분에서는 전통대로 약식 세례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세례의 방식으로 침례(immersion)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 살아난 것을 의미하고, 관수례(pouring: 물을 머리에 붓는 것)은 성령을 부어주심을 의미하고, 세례(sprinkling: 물을 뿌리는 것)은 죄를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we have been buried with Him through baptism into death, so that as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through the glory of the Father, so we too might walk in newness of life.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συνετάφημεν οὖν αὐτῷ διὰ τοῦ βαπτίσματος εἰς τὸν θάνατον,
we were buried therefore with Him through baptism into death
직역하면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죽음 속으로 장사되었다’는 뜻입니다
‘장사되었나니’(συνετάφημε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 were buried) 과거에 확실하게 장사된 틀림없는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ἵνα ὥσπερ ἠγέρθη Χριστὸς ἐκ νεκρῶν διὰ τῆς δόξης τοῦ Πατρός,
so that as was raised Christ from dead through the glory of the Father
‘살리심과 같이’에서 동사(ἠγέρ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raised) 역사적으로 확실히 살리심을 받은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οὕτως καὶ ἡμεῖς ἐν καινότητι ζωῆς περιπατήσωμεν.
so also we in newness of life we should walk
‘행하게 하려 함이라’(περιπατήσωμε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we should walk) 단호하게 행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우리’(ἡμεῖς:w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1.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죽음 속으로 장사되었다’는 것은 침례(세례) 시에 우리가 물속에 잠기는 것은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어 장사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 후에 물 밖으로 나온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이제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 성도들은 확실히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περιπατήσωμεν:we should walk:부정과거 가정법 동사.)
즉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5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f we have become united with Him in the likeness of His death, certainly we shall also be in the likeness of His resurrection,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εἰ γὰρ σύμφυτοι γεγόναμεν τῷ ὁμοιώματι τοῦ θανάτου αὐτοῦ,
if for united we have become in the likeness of the death of Him
‘되었으면’(γεγόναμεν)은 완료형으로서(we have become) 이미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연합한 자’(σύμφυτοι)란 ‘함께’란 접두어(σύν)와 ‘자라다’란 동사(φύω)의 합성어에서 나온 말로서(Derived from σύν, "with" and φύω, "to grow), ‘함께 자란, 연합한’이란 형용사입니다.(United with, grown together).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ἀλλὰ καὶ τῆς ἀναστάσεως ἐσόμεθα·
but also of the resurrection we will be
직역하면 ‘또한 그 부활의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우리도 되리라’는 뜻입니다.
‘되리라’(ἐσόμεθα)는 미래형으로서(we will be) 우리도 장차 될 것을 가리킵니다.
1. ‘연합한’(σύμφυτοι)이란 원래 ‘함께 자란’이란 뜻에서 유래해서 ‘연합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세례(침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가 되었으면, 예수님과 함께 부활에도 연합한 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과의 연합이란 마치 접붙임을 받은 가지가 원목에서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성령으로)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예수님의 생명을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롬 11:17-18.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knowing this, that our old self was crucified with Him, in order that our body of sin might be done away with, so that we would no longer be slaves to sin;
우리가 알거니와
τοῦτο γινώσκοντες,
this knowing
직역하면 ‘이것을 알고 있는데’란 뜻입니다.
‘알거니와’(γινώσκ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knowing) 현재 알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ὅτι ὁ παλαιὸς ἡμῶν ἄνθρωπος συνεσταυρώθη,
that the old of us man was crucified with (Him)
직역하면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그와) 함께 못 박혔다는 것은’이란 뜻입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συνεσταυρώθη)은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crucified) 역사적으로 과거에 확실히 십자가에 못 박힌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죄의 몸이 죽어
ἵνα καταργηθῇ τὸ σῶμα τῆς ἁμαρτίας,
so that might be abolished the body of the sin
직역하면 ‘그래서 죄의 몸이 죽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죄의 몸’에서 몸(σῶμα)은 신체를 가리킵니다.
‘죽어’(καταργηθῇ)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might be abolished) 단호하게 확실히 죽은 확실한 사실을 가정한 말이고, 원형(καταργέω)은 ‘밑으로’(κατά)란 접두어와 ‘게으른’(ἀργός)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κατά, meaning "down" or "against" and ἀργός, meaning "inactive" or "idle"), ‘철폐하다, 무효시키다, 효력을 없애다, 끝내다’(abolish, nullify, render ineffective, bring to an end)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τοῦ μηκέτι δουλεύειν ἡμᾶς τῇ ἁμαρτίᾳ·
the no longer to enslave we of the sin
‘종노릇하지’(δουλεύ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enslave) 언제나 종노릇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앞 절에서 ‘연합의 교리’를 말씀하면서, 우리 옛사람이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옛사람으로서 죄악 생활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2. ‘죄의 몸이 죽었다’는 것은 죄에게 도구로 사용되던 몸이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연합되고, 십자가에서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 몸이 죄의 도구로 쓰이지 않고, 죄에게 얽매어서 종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고, 진정으로 성령님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사춘기 이후로 사람은 성욕의 노예가 되어서, 마음속으로 죄를 짓고, 실제로 이성을 성적 악행으로 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욕의 노예에서 해방되면(이것은 큰 은혜입니다), 성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체로 남성들은 75세 경이 되면, 성적인 노예 생활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이런 성적인 노예 생활만이 아니라, 돈에 노예 생활하는 것이나 권력 욕에 노예가 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로 노예 생활에서 해방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거룩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찬송가 189장> 진실하신 주 성령 성도 곁에 계시사 순례 길을 갈 때에 손을 잡아 주소서 모든 곤한 사람들 기쁜 소식 들으니 성령 말씀하기를 나를 따라오너라.
3. 이 구절들은 모두 <예수님과 우리가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연합의 교리를 나타냅니다.
(1)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라.
(2) 아담과 하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 되는 교회의 연합에 대한 모형입니다.
에베소서 5:21.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리스도와 성도 간의 연합과 행복은 성령의 중생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비밀 중 가장 큰 비밀입니다.
이 신비적 연합으로써만, 구원은 가능합니다.
4. 먼저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했습니다.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오늘날 나도 성령의 중생 속에서 2천 년 전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입니다.
이 <연합의 교리>는 잘 아셔야 합니다!
(1) 전 시간에, 원죄의 교리를 배웠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다고 했습니까?
네, 아담의 허리지요.
즉, 우리 조상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때, 우리도 아담의 허리에 있으면서,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따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원죄였지요?
그 <원죄>도 연합의 교리로 설명했습니다.
(2) 그런데, 오늘 우리가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교리도 같은 <연합의 교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네? 아직 태어날 꿈도 꾸지 않았다고요?
네, 맞아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는데, 우리도 성령의 중생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말씀이어요!
오늘 6절 말씀이 그것이어요.
6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시작!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he who has died is freed from sin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ὁ γὰρ ἀπ οθανὼν δεδικαίωται ἀπὸ τῆς ἁμαρτίας.
The [one] for having died has been freed from the sin
직역하면 ‘왜냐하면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는 우리 번역은 첨가한 것입니다.
원문에는 없으나, 옛날 영문 성경에는 있었습니다.
American Standard Version, English Revised Version: for he that hath died is justified from sin.
‘죽은’이란 동사(ἀποθαν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died) 과거에 확실히 죽어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벗어나’란 동사(δεδικαίωται)는 완료 수동태로서(has been freed) 이미 벗어나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1. 1-6절은 세례를 통해서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님을 따라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7절부터는 세례를 통해서 우리 새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님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국가의 법 규정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에 의하면 죽은 자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죄인을 정죄하려고 달려들어도, 죄에 대한 옛사람이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버렸으면 마귀가 더 이상 정죄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예수님 믿고 세례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은 마귀가 정죄하지 못하고, 죄가 그를 다시 사로잡지 못하고, 그 성도는 죄에서 자유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마치 평생을 성욕에 매어 죄책감으로 고통을 당하며 살아오던 사람이 은혜를 받거나 나이가 들어서 성적 유혹에서 자유롭게 되면, 성령님의 인도 안에서 참 행복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8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if we hav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shall also live with Him,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εἰ δὲ ἀπεθάνομεν σὺν Χριστῷ,
if now we died with Christ
‘죽었으면’이란 동사(ἀπεθάνομ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we died) 우리가 역사적으로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되어 죽어버린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πιστεύομεν ὅτι καὶ συνζήσομεν αὐτῷ,
we believe that also we will live with Him
‘함께 살 줄’이란 동사(συνζήσομεν)는 미래형으로서(we will live with) 장차 함께 살 것을 가리킵니다.
‘믿는다’는 동사(πιστεύ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believe) 언제나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에서 동사(ἀπεθάνομ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we died) 우리가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되어 죽어버린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는다’에서 ‘살 줄’이란 동사(συνζήσομεν)는 미래형으로서(we will live with) 장차 예수님의 재림시에 우리 육체가 부활할 것을 가리키고, ‘믿는다’는 동사(πιστεύ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believe) 언제나 믿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버린 사건은 역사적으로 이미 결정적으로 죽어버린 사실을 가리키고, 살 줄을 믿는다는 것은 장차 부활할 것을 언제나 믿고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9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knowing that Christ, having been raised from the dead, is never to die again; death no longer is master over Him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앎이로라
εἰδότες ὅτι Χριστὸς, ἐγερθεὶς ἐκ νεκρῶν, οὐκέτι ἀποθνῄσκει,
knowing that Christ, having been raised from (the) dead, no more dies
다시 번역하면 ‘우리가 아는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은 죽지 않으신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살아나셨으매’란 동사(ἐγερθεὶ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raised) 과거에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살아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죽지’란 동사(ἀποθνῄσκει)는 현재형으로서(dies) 항상 죽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앎이라’는 동사(εἰδότες)는 완료 분사로서(knowing) 이미 알고 있는 상태를 가킵니다.
‘앎이라’(εἰδότες:knowing)는 6절의 ‘앎이니라’(γινώσκοντες:knowing:경험적으로 아는 것)과 달리 초경험적으로 성령님의 감동으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θάνατος αὐτοῦ οὐκέτι κυριεύει.
death Him no longer rules over
‘주장하지’란 동사(κυριεύει)는 현재형으로서(rules over) 언제나 주장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앎이로라
우리가 장차 부활할 것을 아는 근거는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서 장차 우리들이 모두 부활할 것을 확실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다’는 동사(εἰδότες)는 초경험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믿음으로 아는 것을 가리키고, 6절의 ‘앎이니라’(γινώσκοντες)는 동사가 경험적으로 아는 것과 비교가 됩니다.
2.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사망이 주인이 되어서 종살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써 사망을 철폐하셨고, 우리도 장차 육신의 몸이 죽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부활해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는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나 항상 섬기네. 온 세상 조롱해도 주 정녕 사셨네. 그 은혜로운 손길 부드러운 음성 주 예수 나와 함께 늘 계시네. 예수 예수 늘 살아 계셔서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하시네. 예수 예수 내 구세주 예수 내 맘에 살아 계시네. 늘 살아 계시네.
3.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으매,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않을 줄 앎이다’는 것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셨듯이, 우리도 성령님 따라 살아가면 다시 육체도 부활할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4.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영원히 사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세례(침례)를 통해서 한 번 죽었으므로, 성령님 모시고,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5. 사망이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망이 주인 노릇을 하고, 인간이 종노릇 한 것을 가리키는데, 죄에 종노릇 하던 옛사람이 세례를 통해서 죽어버렸으므로,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종노릇을 못 시킨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정욕에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 돈에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 명예에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이 해방되고, 성령님 안에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할 일인 줄 모릅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10절.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e death that He died, He died to sin once for all; but the life that He lives, He lives to God.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ὃ γὰρ ἀπέθανεν, τῇ ἁμαρτίᾳ ἀπέθανεν ἐφάπαξ·
that for He died, to the sin He died once for all.
‘죽으심은’이란 동사(ἀπέθανεν)와 ‘죽으심이요’란 동사(ἀπέθανεν)은 다 같이 부정과거형으로서(He died) 예수님이 과거에 역사적으로 죽으신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ὃ δὲ ζῇ, ζῇ τῷ Θεῷ.
that but He lives, He lives to the God
‘살아계심’이란 동사(ζῇ)와 ‘살아계심이니’란 동사(ζῇ)는 다 같이 현재형으로 예수님이 현재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단번에’(ἐφάπαξ)는 ‘단 한번에 영원히’(once for all) 이루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를 모아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을 가리킵니다.
구약시대 성전에서 제사하는 것은 수없이 반복적으로 짐승의 피를 흘려서 속죄의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님은 자신의 흠 없는 피로써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히브리서 10:11-15.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2.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신다는 말씀은 속죄를 다 이루신 예수님이 죄와 상관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신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예수님께 잘 붙어 있으면, 장차 부활하여 죄와 상관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찬송가 237장>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있네. 믿는 이만 그 곳으로 가겠네. 황금 문을 들어가서 주님 함께 살리로다. 너와 날 위해 황금 종 울린다. 저 울리는 종소리와 천사들의 노랫소리. 영광일세 할렐루야 기쁘다. 빛나는 저 강 건너편 아름답고 영원한 곳. 너와 날 위해 황금 종 울린다.
3.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다고 했습니다.
5절에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는 말씀은 앞으로, 부활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볼 때 시간적 차이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부활했으므로, 반드시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는 뜻입니다.
(5)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안 나오지만, 에베소서 2장 6절에 나옵니다.
에베소서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함께 앉히시니’(συνεκάθισεν)는 부정과거 시제로서(seated together) 역사적으로 확실히 앉혀버리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믿으십니까?
네.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이런 죄의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네.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죄의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장사된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믿으시기 바랍니다!
(5)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십니까?
아멘, 아멘!
11-13절. 이제는 몸을 죄의 도구로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서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았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제 우리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의의 도구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 않고, 하나님께 헌신하려면, 3가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 먼저,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11절. <같이 읽으십시다>
11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Even so consider yourselves to be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in Christ Jesus.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여길지어다
οὕτως καὶ ὑμεῖς, λογίζεσθε ἑαυτοὺς εἶναι νεκροὺς μὲν τῇ ἁμαρτίᾳ
so also you, consider yourselves to be dead indeed to the sin
‘여길지어다’란 동사(λογίζεσθ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consider) 항상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로’(εἶναι νεκροὺς)에서 동사(εἶναι)는 현재 부정사로서(to be) 언제나 죽은 자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ζῶντας δὲ τῷ Θεῷ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living but to the God in Christ Jesus
‘살아있는’이란 동사(ζῶντας)는 현재 사로서(living) 현재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여길지어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은 죄의 정욕이 사라지는 것을 가리키는데, 불교 같은 곳에서는 고행과 수련을 통해서 죄의 정욕을 없애려고 극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죄의 정욕에서 해방받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성욕은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해방받지만,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아 지체의 정욕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23.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 살아가는 자’는 성령님 모시고 살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금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즉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3. <여기라>는 것은 <간주하라, 계산하라, 믿으라>는 뜻입니다.
어떤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여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빚을 갚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내가 그 빚을 다 갚았으니, 그리 알아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꾸 빚쟁이에게 매달려서 돈을 갚고 있으면, 얼마나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입니까?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의 빚을 다 갚았으니, 이제는 마귀에게 종노릇 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떳떳이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서 <죽었구나>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4. 이제는 사탄 마귀가 우리를 정죄해도, <사탄아 물러가라!>고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5. 이제는 사망에 대해서도 담대히 승리를 외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혹시 실수하고 넘어져도, 예수님 안에서 넘어진 것이고, 성령님께서 기어코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6. 어떤 할머니가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고 갑니다.
그런데, 기둥을 붙잡고 벌벌 떨면서 갑니다.
그래서, 승무원이 물어보았습니다.
승무원: <할머니, 어째서 벌벌 떨고 계세요? 속이 불편하세요?>
할머니: <아니. 잘못해서 넘어지면, 제주도에 가지 못 할까봐 겁나요>
승무원: <할머니, 무슨 걱정을 그리 하세요! 넘어져도, 배 안이라서, 제주도에는 틀림없이 도착해요. 걱정 마시고, 푹 주무세요. 다 오면 제가 깨워드릴께요!>
우스운 이야기 같지요?
그러나, 천국의 배를 타고 가는 우리도 할머니와 마찬가지인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교회 안에서, 천국행 배를 탔습니다.
선장님은 예수님이시고, 승무원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천국에 도착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배 안에서 넘어져도 천국은 갑니다!
그런데, 성도가 실수하고 넘어졌다고 천국 못 갈까봐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없습니까?
누가 있다고요?
꼭 자기는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해요.
정말 자기는 천국 확신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수하고 여러 번 넘어져도 천국 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11절 말씀처럼,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제 마귀 따라서 죄악 생활 하던 나는 죽어버렸고, 앞으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노라고 선포하십시오!
7. 또한 성도로서 승리의 삶을 살려면, 몸을 죄에게 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12절. <다같이 읽으십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2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do not let sin reign in your mortal body so that you obey its lusts,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Μὴ οὖν βασιλευέτω ἡ ἁμαρτία ἐν τῷ θνητῷ ὑμῶν σώματι
not therefore let reign the sin in the mortal your body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란 동사(βασιλευέτω)는 명령형으로서(let reign) 부정어(Μὴ:not)와 함께,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εἰς τὸ ὑπακούειν ταῖς ἐπιθυμίαις αὐτοῦ,
in order to obey the desire of it
직역하면 ‘그것(몸)의 사욕을 순종하도록 (죄가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순종하도록’이란 동사(ὑπακούειν)는 현재 부정사로서(to obey) 언제나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고, 앞 소절의 부정어(Μὴ:not)와 연결하여, ‘순종하지 않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1. 그러므로
12-14절은 1-11절의 예수님과 연합의 원리를 실천에 결합하여,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을 명령한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의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입니다.
2.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첫째 명령은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죄가 주인이고 우리가 종인 과거의 종살이에서 벗어났으므로, 죄가 다시 우리 몸을 주장하지 못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온각 영상을 통해서 우리는 성적 유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적 유혹이 나에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쫓아야 합니다.
예컨대, 새들이나 날벌레들이 공중에서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는 있어도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지는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유명한 설교가 Moody의 말)
물론 나이가 75세가 되면 이런 성적인 유혹에서 자연적으로 벗어나게 되지만, 젊은 사람들은 늘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죄악이 나를 종 삼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3.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몸의 사욕이란 육체의 정욕인 성욕이나 물질적인 탐심이나 권력욕 등을 가리킵니다.
아담과 하와도 이런 시험을 당해서 넘어졌고, 예수님은 이 시험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요한1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4. <너희 죽을 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죽을 몸을 지나치게 가꾸는 분이 있어요.
물론 웰빙 시대이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적당히 운동을 하고, 건강을 위해 적당히 투자하고, 미용을 위해서도 적당히 투자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건강이나 미용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고, 신앙생활에도 지장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안 계시나, 등산한다고 주일날 교회에 결석하고, 몸치장한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가서, 유명 미용사에게 마사지하느라고 교회의 직분을 감당 못 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입니다.
5. 그런데,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10절에서,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죽었다고 했는데, 왜 <죄가 지배 한다>는 말입니까?
누가 설명할 수 있나요?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죄가 어디를 지배하지 못 하게 하라고 했습니까?
네. 맞아요!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지요?
(3) 우리 영혼은 죄가 지배하지 못해요.
단지 우리 몸을 죄가 지배할 수 있어요.
즉, 우리 영혼은 완전히 구원받았으나, 아직 우리 몸은 부활을 얻지 못했어요.
우리 몸에는 아직 <죄의 요소>가 남아 있어요.
그래서 로마서 6장 6절에는, <죄의 몸>이라고 했어요.
(4)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는,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몸을 쳐 복종시킨다>는 것은 전투적 용어입니다.
전투하는데, 다른 사람과 전투하는 것이 아니고, 내 몸과 싸워 전투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면, 내 몸의 정욕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체의 정욕과 싸워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서, 성령님이 나를 주관하시면, 날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몸을 죄가 주관하지 못 하게 하고, 성령님이 주관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
6 그리고, 성도로서 승리의 삶을 살려면, 우리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13절. <다같이 읽읍시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3절.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do not go on presenting the members of your body to sin as instruments of unrighteousness; but present yourselves to God as those alive from the dead, and your members as instruments of righteousness to God.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μηδὲ παριστάνετε τὰ μέλη ὑμῶν ὅπλα ἀδικίας τῇ ἁμαρτίᾳ,
Neither yield the members of you [as] instruments of unrighteousness to the sin
직역하면 ‘너희의 지체들을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드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내주지 말고’(μηδὲ παριστάνετε)에서 동사(παριστάνετ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yield) 부정어(μηδὲ:neither)와 함께, 계속 드리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ἀλλὰ παραστήσατε ἑαυτοὺς τῷ Θεῷ, ὡσεὶ ἐκ νεκρῶν ζῶντας
but yield yourself to the God, as from (the) dead living
여기서 ‘드리라’(παραστήσα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yield) 단호하게 드려버리는 동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살아난’이란 동사(ζῶντας)는 현재분사로서(living)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서 현재 살아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καὶ τὰ μέλη ὑμῶν, ὅπλα δικαιοσύνης τῷ Θεῷ,
and members of you, [as] instruments of righteousness to the God
직역하면 ‘너희 지체들을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뜻입니다.
1.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우리 몸의 지체들은 사지오체를 가리키지만, 특히 성기를 표현하는 완곡한 어법입니다.
즉 우리 몸의 지체들을 죄에게 내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의 지체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헤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우리의 혀와 입술로 명예를 훼손하거나 거짓 증거를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2.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유치부 찬양에서 말하듯이 <눈 눈 눈 성경보고요. 코 코 코 숨을 쉬고요, 입 입 입 찬송부르고, 귀 귀 귀 말씀 들어요. 머리 머리 머리 예수님 생각, 가슴 가슴 가슴 예수님 사랑. 손 손 손 봉사하고요, 발 발 발 교회 가지요>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12절에서는 <몸>이라고 했는데, 13절에서는 <지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체>란 손과 발과 입과 눈과 귀 등을 가리킵니다.
우리 지체를 죄에 내주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손발과 입과 눈과 귀를 죄에 내주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체를 죄에게 내주면, 우리의 지체는 불의의 무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무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4. 똑같은 칼이라도, 도적질하고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하면, 뭐가 됩니까?
(불의의 무기)
그런데, 똑같은 칼이라도, 물건을 제조하고 수술하는데 사용하면, 뭐가 됩니까?
(의의 무기)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의 지체를 죄에 내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여, 성령의 열매, 의의 열매가 가득하고, 영생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