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리적 진리
부활의 기쁨이 있습니다. 순리와 역리에 대한 대표적인 문구‘순천자존 역천자망’은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말로 다시 말해‘하늘의 순리에 순응하는 자는 잘 되고 번성하게 되지만, 하늘의 순리를 거역하는 자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바다에는 역풍과 순풍이 있듯이 인간 사회에는 순리와 역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역리는 비진리가 아니고 그 역으로 진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죽으신 사건이나 주고도 미안하다 하는 것이나 사랑하기 때문에 매질을 하는 것이 역리적 진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으면 살고, 잃으면 얻고, 지면 이긴다는 이치가 참 이치란 뜻입니다. 성경은 순리와 역리로 엮어졌으며, 역리의 영역을 이해 못하면 진리의 절반은 무시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만 주장하는 의사가 없고 과학의 배후에 파악 못하는 신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만한 현대 과학자는 없습니다. 과학은 사실에 근거하고, 순수이성 비판에는 종교의 항목이 없으나 이성으로 해결 못한 13범주부터는 종교의 영역입니다. 이점에서 칸트는 이성에서 이성으로 끝냈고, 헤겔의 논리에서도 비약이 없는 평면적 사고 과정뿐이었습니다.
발달된 문명권마다 월등한 종교가 있었고, 각 문화권은 그 나름대로 영적 세계를 묘사했습니다. 철학의 본산인 그리스에는 희랍 사람다운 신비종교가 있었고, 피라밋, 스핑크스의 기초에는 미신적 종교 신념인 애굽의 다신사상, 그리고 영혼 불멸설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종교적 본능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서구의 물질문명에는 신의 존재를 두고 2천년 동안 싸워왔으나 그래도 여전히 종교가 군림했고, 기독교는 유럽인의 사상을 구축했습니다.
시대의 역행아 히틀러는 초토화되기 전에 자살했고, 그의 정신적 할아버지 니체는 정신분열증과 병적 고독으로 많은 독백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은 죽었고, 그 자살을 위해서는 신의 존재가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과학에서 볼 때 역리 같으나 사실은 초과학이요, 이성에 앞서며 철학에서 볼 때 형이상학 이상이나 아리스토 틀의 사고 이상입니다. 비과학이기에 그리고 비합리이기에 종교를 배격하는 것은 엄청난 지성의 역행입니다.
만일 종교가 초과학이기에 그리고 역리적이기에 도외시하는 것은 학문에 대하여 이율배반적 태도입니다. 과학 때문에 종교를 가질 수 없는 자는 아인슈타인에게 물어야 하고, 정치인이기에 신앙생활 할 수 없는 자는 링컨을 찾아야 하고, 불행하기에 예수를 믿지 못한다면 헬렌 켈러를 만나야 하고, 실업인이기에 신자가 될 수 없다면 카네기를 더듬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역리적 진리도 진리라고 역설한 일은 역사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