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32]
김병수(金炳洙, 1898-1951)②
김병수가 세운 광희여숙은 일제의 강압으로 폐교되었고, 그가 섬겼던 이리제일교회는 해방을 앞둔 1944년 일본기독교회라는 이름 아래 인근 교회들과 통폐합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리 YMCA를 설립하고 구제 활동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어갔고,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건준이 설립 취지를 벗어나 인민위원회처럼 변하자 그는 결별하고 1947년 이리시장이 되어 시정을 맡았습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내려가서 제5육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다가 1951년에는 결핵 악화로 사망했고, 이리제일교회에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이처럼 김병수의 인생여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나라에 큰일들이 연속으로 이어졌기에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의사였지만 교육에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리(현 익산)제일교회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었을 때 교회 부설 유치원을 설치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힘썼고, 보모 양성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보모 양성학원을 세워 원장으로서 섬겼습니다. 청년들을 위해서는 청년회관을 건립해서 지역사회를 위한 공헌을 이어갔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독립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나라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공헌했으며, 배우고 닦은 의술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했으며, 교육과 사회 운동에 물질적으로 헌신적으로 앞장섰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이웃과 나라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보기가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가 사망한 후 약 40년이 된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참고: 전정희,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