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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망하지 않는다.(6월 2일 오전 예배 설교)
고린도 후서 4:1-15(신약 289)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답답하고 한심하게 생각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며칠 사이에 들은 뉴스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훈련 중인 군인들이 수류탄 사고로 생명을 잃었는가 하면 군기 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이틀 만에 사망한 육군 훈련병 사건 관련도 있습니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군에서 일어난다는 소식은 아들을 둔 부모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그동안은 군 복무 기간이 줄어들었고 군대 내에서 괴롬 힘도 많이 줄었다고 하고 고참들이 오히려 힘들어 하는 것이 지금의 군대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 사고와 같은 마음 아픈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기도할 때 군에 있는 자녀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아들이 아니더라고 군 복무 중인 모든 자녀들을 위해서 사고 없이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서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때까지 세상은 계속해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을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상황들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이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인간이 타락하고 에덴 동산에게 쫓겨난 다음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은 자는 마귀이고 사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도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살고,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봉사할 때도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든지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이 있지만 우리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갈 때 망할 것 같지만 망하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우리가 받은 직분은
바울 사도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 섬기는 교회에서 받은 직분과 관련한 이야기를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이 직분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울 사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자기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받은 이 직분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낙심하다는 말의 헬라어의 의미는 ‘당황하다, 어쩔줄 몰라하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헬라어의 의미로 해석하면 우리가 복음을 위한 직분을 받았는데 직분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이 올 수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기 때문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지 않고 담대하게 맡겨진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받은 직분을 감당할 때 낙심할 만한 상황들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어떤 상황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받은 직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우리는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2절을 보면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숨은 부끄러움의 일이란 ‘드러내지 못할 창피스러운 일’(공동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숨어서 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모르게 어떤 일을 하거나 내가 하는 일을 남이 모르게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알려지면 창피하고 부끄럽기 때문에 숨어서 몰래 하는 것입니다. 숨은 부끄러움의 일이란 숨어서 하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직분을 받아서 일하는 것은 숨은 부끄러움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숨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도 감추시는 분이 아니라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의 사역이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있게 사역을 하셨습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감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참빛 교회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우리가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숨길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감추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과 도우시는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증거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모든 것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최대한 못 알아듣게 혼잡하게 하지 않고 진리를 드러내지만 망하는 자들에게 복음은 가리어졌습니다. 3절을 보면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말씀을 깨닫고 믿게 하십니다. 그런데 망하는 자들 즉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가리어졌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가리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어도 무슨 말이지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고, 설교를 들어도 이해가 안 되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쉽게 성경을 풀어서 이야기 해 주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안 되고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망하는 자들에게 복음은 가리어져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가리어져 있는가 하면 이 세상의 신이 마음을 혼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은 공중 권세 잡은 자 마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이 세상의 신인 마귀들이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마음이 비추지 못하게 함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셔서 어둠에서 빛을 비춰주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는데 마귀는 빛 가운데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어서 빛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함으로 작은 일에도 낙심하게 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전하는 것은
바울 사도는 앞에서 우리가 받은 직분은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린 것이고 망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가리어져 있고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빛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 다음에 우리가 전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5절을 보면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우리가 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하는 일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거나 알리는 것은 우리 교회가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님을 전하고,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를 알리는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홍보물을 만들거나 할 때 담임 목사님의 사진을 넣는다거나 담임 목사님이 이런 분이라고 학력과 업적 같은 것을 소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셨나 모르겠는데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소개글을 올렸습니다.
참빛교회는 흑암의 세상에 희망의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교회이며, 오늘도 사도행전 시대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을 믿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이시고, 복음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심을 믿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
우리는 우리를 자랑하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교회인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참빛 되신 주님을 전하는 것이 우리 교회가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고 마지막 날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지혜를 주시고 도와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전하는 하나님은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6절을 보면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하지 않고 어둔 데에 빛이 비추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을 어둠의 영이 덮으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둠이 임하면 걱정과 근심과 절망과 좌절과 슬픔이 늘 마음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지면 낙심하고 근심하고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빛을 바라봄으로 희망이 넘치고, 감사와 기쁨의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습니다. 7절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이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빛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기에 보배입니다.
그런데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질그릇은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그릇이라고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금이나 보석으로 만들어진 귀한 그릇이 아니라 흔하고 보잘것 없는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질그릇인 우리가 보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인데 우리 안에 보배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보배를 이야기 하면서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고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것은 하나님은 심히 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보배이고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인 우리 안에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즉 보배가 있고, 영원한 생명이 담겨 지는 것입니다.
3.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가 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구세주가 되시고 하나님의 빛이 어둠의 세상에 임하신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란 의미로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주님을 믿고 빛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답답한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8절을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우겨쌈을 당하여도’ 에 해당하는 헬라어 ‘들리보메노이’은 ‘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르다’ 는 뜻으로 바울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가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질그릇인 우리 안에 큰 보배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능력이 없지만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는 큰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여도 결코 싸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우겨쌈을 당한 것 같습니다. 즉 포도즙을 짜기 위해 짓누르는 것 같은 상황이 올 수 있고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히 큰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우겨쌈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라고 했는데 이 표현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전투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적들이 포위하여 한곳에 몰아넣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완전히 포위된 것 같지만 큰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낙심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1절에서 낙심하다는 말은 “용기를 잃다, 낙심하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고 8절에서 낙심하다는 말은 1절과 다른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방책이 전혀 없다, 절망에 처하다.”는 뜻입니다.
1절에서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기를 잃지 않는다는 의미라면 8절의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벗어날 길이 준비되어 있고 절망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답답한 일을 만나고 결코 절망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벗어날 길을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9절을 보면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가 복음 때문에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상황이 와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하면서 종종 너무 힘들 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 나를 포기하셨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를 절대고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고 또한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망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다는 말의 의미는 내 던져버리다. 쓰러뜨리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내 던지고, 쓰러뜨리려고 하지만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다는 말은 멸망하다. 죽다. 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큰 권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고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과 관련해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의 삶을 저주 아래 놓게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탄의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망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더 크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망하지 않는 근거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10-14절을 보면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4: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4: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바울 사도는 우리가 망하지 않은 이유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고 주님 앞에 서게 하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큰 권능의 하나님께 맡기면 낙심하지도 않고 망하지도 않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절을 보면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고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망하지 않게 됨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으로 우리에게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갈 때 더 큰 은혜가 임하고 더 큰 하나님의 복이 임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야속의 말씀처럼 낙심하거나 망하지 않고 더 큰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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