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은수자에게 어느 제자가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마귀도 열심히 기도할 수 있습니까?”
은수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암, 열심히 기도할 수 있지.”
다시 제자가 물었습니다. “마귀도 열심히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은수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마귀도 좋은 일을 하고 멋진 설교도 할 수 있지.”
그러자 제자가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마귀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에 은수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귀는 모든 능력을 갖고 있지만 단 한 가지, ‘겸손’은 가지고 있지 않다네.”
마귀를 타락한 천사라고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천사가 타락한 것은 겸손의 반대말인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타락도 결국은 교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더 이상 하느님께 속하지 않으며 스스로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교만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죄의 뿌리는 하느님께 속하기를 거부하는 교만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와 사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많은 시간을 내어 기도를 한다고 해도, 겸손하지 못하면
그 안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고 자기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겸손한 이의 기도만이 구름을 꿰뚫는다고 집회서에는 말하고 있습니다(35,17).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관심을 받으려고 자신이 가진 것과 아는 것으로 온갖 치장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졌더라도 ‘겸손함’을 가지지 못했으면, 세상살이에서 첫째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세계에서는
꼴찌일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아오스딩 성인께서는 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겸손의 덕이라고 말하였으며,
바로 이 겸손의 덕에서부터 신덕과 망덕 그리고 애덕이 완성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가진 것은 그 사람 것으로 끝나지만, 겸손한 사람이 가진 것은 모든 것이 다 하느님 것이기에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의 길을 잘 걷기 위해서는 성모 마리아를 우리의 인도자와 보호자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벨라도 성인께서는 “성모님은 겸손하심이 지극하여 그 겸손에 견줄자 아무도 없고,
모든 사람위에 존재하시는 분 이시면서도 스스로 겸손하여 가장 작고 약한 자와 같이 생활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천주의 모친이 되신 것도 바로 이 겸손으로 말미암아서였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의 겸손을 배워 성모님의 보호아래 은총을 받는 진정한 레지오 단원들이 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