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숍녀 C씨가 ‘성접대 동영상에 나온 여성이 나’라고 밝히면서 별장 성접대 의혹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여성 C씨는 동영상이 본인의 동의 없이 찍혔다면서 이를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건설업자 윤 씨를 카메라 촬영 이용 등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지난해 수사에서 경찰도 윤씨에게 이 혐의를 적용했지만 등장 인물이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검찰은 성접대 동영상에 나온 여성이 과연 여성 C씨가 맞는지, 남성은 누구인지, 그 동영상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찍었는지, 동영상을 찍는 과정에 동의가 있었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성접대 동영상은 이미 알려진 대로 남성이 여성을 끌어안고 ‘연’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찍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배달사고로 유출된 성접대 동영상
이렇게 은밀한 동영상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종의 배달사고였습니다. 동영상 유출 경위를 설명하려면 여성 사업가 A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성 C씨처럼 여성 사업가 A씨도 건설업자 윤씨에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여성입니다(두 여성은 일면식이 없습니다). 윤씨와 우연한 기회에 만나 원주 별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차에서 성폭행을 당했고, 차에서의 장면이 찍힌 동영상 때문에 오랫동안 끌려 다녔다며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터라 윤씨에게 벤츠 승용차와 사업 자금까지 대줬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고소전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일을 도와줄 사람을 수소문하다 이른바 해결사 P씨를 만나게 됐습니다.
여성사업가는 해결사 P씨에게 자신이 윤씨에게 사 준 벤츠 승용차를 빼앗아 와 달라고 요청했고, P씨의 수하들은 견인차를 이용해 벤츠를 가져 옵니다. 아마 여성 사업가 A씨에게 벤츠가 넘겨졌다면 ‘별장 성접대 동영상’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P씨의 수하들은 A씨에게 벤츠를 돌려주지 않고, 자신들이 카센터에 가서 키를 만들어 차를 빼돌리고는 차안을 뒤졌습니다. 그리고 카 오디오 CD플레이어 안에 있던 CD속에서 문제의 동영상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그 동영상을 컴퓨터에서 재생시키고는 휴대폰으로 찍어 여성 사업가 A씨에게 ‘카톡’으로 동영상을 보냅니다.
이처럼 여성 사업가가 받은 동영상은 원본이 아니기 때문에 화질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여성사업가는 등장인물이 누군인지도 몰랐습니다. 고소전을 준비하면서 이 변호사 저 변호사와 논의하던 중에 동영상 얘기를 꺼냈고, 마침 김학의 전 차관을 알고 있던 검찰 출신 변호사가 동영상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알려지게 됐습니다. 여성 사업가 A씨는 평소에 건설업자 윤씨로부터 ‘학의형’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변호사 정도로만 알고 지내다 비로소 윤씨가 말한 학의형이 김학의 전 차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경찰은 여성 사업가 A씨가 서초경찰서에 접수시킨 고소건과는 별도로 첩보를 입수하고는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A씨가 가지고 있던 동영상을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동영상의 주인공이 쉽게 밝혀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국과수는 얼굴 윤곽을 볼 때 김학의 전 차관일 확률이 있지만, 단정할 수 없다는 애매한 결론을 내놨습니다. 동영상을 보면 김 전 차관인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던 경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됐죠. 수사 대상이 법무부 차관(당시에는 사표를 내기 전)인데다 등장 여성은 특정할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경찰, 동영상 원본 확보해 ‘십년감수’그런데 경찰은 해결사 P씨와 수하들을 소환조사하는 과정에서 원본을 확보하면서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리고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에 성문 분석을 의뢰한 결과, 등장 남성의 목소리가 김학의 전 차관과 95% 일치한다는 감정을 받게 됩니다(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경찰이 의뢰하기 전에 TV조선 취재팀이 이미 동영상에서 음성만 뽑은 자료를 의뢰해 90%이상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경찰이 TV조선이 의뢰했다는 얘기를 듣고 성문분석을 의뢰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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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말 건설업자 윤씨의 원주 별장을 압수수색하고 있는 경찰.
자료를 넘겨 받은 검찰은 비공식적으로 수사 관계자들이 모여 동영상을 보면서 등장하는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이 맞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고위층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에구에구’ 혀만 찼다고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고위층은 기자들에게 “내가 보니 김 전 차관이 아니다”라고 말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동영상 유출의 장본인인 P씨를 취재진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 P씨가 김 전 차관을 만난 적이 있다고 얘기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나중에 말을 바꿨지만 준비 안된 상태에서 만났을 때 말한 내용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당시 취재진의 판단이었습니다. 피해 여성들도 P씨가 이 동영상을 이용하면 수십억원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감이 오시나요?
관련된 TV조선의 기사입니다.(링크)동영상을 둘러싼 진실들. 당시 취재진은 P씨의 전화 통화내역과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면 모든 게 드러날 것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시간에 쫓겼고, 검찰은 이 부분을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대목입니다.
동영상이 세상에 나왔지만 건설업자 윤씨 측과 P씨 측은 끈질기게 언론 플레이를 통해 물타기를 시도했습니다. 다섯번째 이야기에서는 동영상을 둘러싼 뒷얘기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