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3. 12. 10. 일요일.
집나이 일흔여섯인 탓일까?
나는 종일토록 무척이나 피곤했다.
오후 4시 넘어서야 아내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나가서 한 바퀴(2565m)를 천천히 걸었다.
날씨 기온은 봄날씨 같았다. 최고온도 15도, 최저온도 6도.
등허리가 아파서 뒷짐을 진 채로 천천히 걸어야 했으니 영락없는 늙은이의 추한 모습이다.
두 손을 등허리 뒤로 돌려서 맞잡으면 허리가 다소라도 곧게 서는 것 같다. 내 착각일 수도 있다.
2.
<한국국보문학> '등단 시인방'에 초포 황규환 시인의 시가 올랐다.
' 군에 가는 손자에게 겨울밤에 꾸는 꿈'
내가 댓글 달고는 퍼서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군에 입대하는 손자.
황선생님은 장교출신.
충성!
제가 기억하는 1960년대, 70년대...
서해안에서는 북한의 무장/ 간첩들이 준동하고...
저는 말단사병으로 제대했지요.
직장은 서울 용산구 삼각지 MND.
방산00 수출허가담당, 00백서담당.
수출허가는 둘이서 수행하다가 나중에는 저 혼자서....
00백서는 혼자서 담당했기에 '적', '주적'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지요.
대한민국 이외의 모든 국가는 우방이면서, 때로는 적이 될 수 있지요.
시대, 상황에 따라서 '적'의 개념이 약간씩 다르게 재해석되겠지요.
제 친손자는 한 명.
이제 아홉 살이니 앞으로도 10년은 더 커야 군에 입대할 것 같습니다.
황 선생님의 손자가 훌쩍 커서 대한민국의 현역으로 활동하게 되다니....
부럽습니다.
내가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날은 1968. 1. 21.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31명)이 서울로 남침해서 청와대를 까부수러 왔던 그날.
* 31명 가운데 29명 사살, 1명 북으로 도주, 1명 생포(김신조)
사살된 사체들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적군묘지'에 안장되었다. 지금은 '북한군묘지'라고 부른다. 묘역 머리는 북한으로 향하도록 인도적으로 배려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심각하게 뒤숭숭하게, 불안한 시대가 꼬리를 이었다.
*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AGER-2) USS '푸에블로'가 1968년 1월 23일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서 조선인민군 해군 근위 제2 해군전대의 공격을 받고 강제 나포당한 사건. 승조원 83명 중에서 나포 도중 총격으로 1명이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82명이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훗날 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해 1968년 가을부터 대학생은 학생군사교련을 받기 시작했다.
나무로 만든 목총, 목검으로 총검술 16개 동작을 배우며,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고...
대학교 졸업 후에는 곧 군에 입대했다.
만나이 23살에서야 군에 입대해서 병사 기초훈련을 받았다.
해안 초병이 되었고, 얼마 뒤에는 중대본부로 보직을 옮겨서 만기제대를 했다.
나는 훈련병일 때 고생을 꽤나 했다.
어린시절부터 단거리 육상선수였는데도 훈련을 받을 때에는 훈련화/군화가 맞지 않았는지 발바닥 살갗과 허물이 벗겨지고, 진물이 줄줄 흘려서 의료 치료를 연거푸 받아야 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내가 군사훈련 구보에는 지지리도 못나게 꼴찌에 가까워야 했다.
발바닥에 염증이 생겼으니 군사훈련 장거리에는 나는 정말로 병신 머저리였다. 달리기에는 젬병이었다.
훈련받으면서 기합도 숱하게 받고는 속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군가를 부르면서 얼마나 울었던가.
이런 나에게 훗날 직장은 중앙행정기관이였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있는 MND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뒤 정년퇴직했다.
이런 나이기에 군에 입대하는 애숭이 젊은이를 보면 늘 안쓰러워 한다.
내 아들 둘도 사병으로 근무했고, 제대했다.
내 어린 자식들을 군대 훈련소에 보내면서 나는 속으로는 울었다.
군대가 어떤 곳인지를 짐작하기에....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군 관련 업무를 종사한 내 시각에는 '적', '주적'이란 개념이 어느 정도껏 섰다.
함부로 나불거려서는 안 되는 정치용어, 군사용어이다.
...... 이하 생략.
3.
며칠 전인 2023. 12. 4.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 영화관에서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내, 큰딸, 나. 셋이서....
1979. 12. 12.
그날밤 나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있는 MND에서 비상계엄 관련하여 당직근무를 섰다.
상관 두 분, 그리고 말단인 나. 셋이서....
초저녁에 어떤 낌새/정보를 들었고, 직속상관에게 보고했고, 상관은 그 위 상관에게 보고했고.....
아무런 지침도 지시도 없었기에 그저 막연히, 초조하게 ....
밤중에 기관총 총소리와 함께 사무실 북쪽 유리창이 박살되어 무너져 내렸고, 순식간에 깜깜한 암흑천지가 되었다.
빗발치는 총격소리, 나중에는 이따금씩 들렸다.
그날밤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면 영화의 줄거리가 무엇인지, 또 어떤 것은 거짓인지를 얼추 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그냥 허구와 진실이 마구 뒤섞인 영화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먼저이다.
함께 영화를 관람했던 아내가 나한테 몇 차례나 거듭 말했다. 내 등을 쓰담으면서....
'세상에나.... 그날밤 당신은 .... 큰일날 뻔했군요.'
영화 관람객은 현재(2023. 12. 10.) 7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
4.
나는 기억력이 까무락거리는 세월에 와 있다.
오늘이 내 조부의 기제사기일로 착각하고 있었다.
시할아버지 제사 준비를 하지 않는다?
나는 아뭇소리도 하지 않은 채 아내를 은근히 살펴보고 있었다.
... 은근히 속을 썩이고 있었다.
달력을 여러 차례나 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오늘은 12. 10.이지... 하면서.
다음 주 일요일인 12. 17.(음11월 5일)이 제삿날인데도 자꾸만 오늘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내 기억력도 이제는 자꾸만 까무락거린다.
위 1979년 1212사태, 군사반란 사태도 이처럼 마찬가지일 게다.
내 기억력이 자꾸만 흐려지고, 때로는 엉뚱한 착각조차 일어난다.
'긴가민가' 하면서....
2023. 12. 10.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