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 (외 1편)
김유섭 붉은 비가 내린다. 죽은 자의 자세로 서 있는 창문 날아가 버린 콘크리트 벽 잔해들 도시를 뒤덮는 그림자마저 붉다니 살을 뚫고 들어오는 방사능 빗방울 함성, 공중을 걸어 다니는 먼지 발자국 햇살과 바람의 냄새를 맡던 코가 사라진 두개골 증발해버린 피가 구름으로 회오리쳐 떠다니다가 세슘에 섞여 비로 내린다. 지나가 버린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수만 년째 붉은 비만 내리고 있다. 비보이
컵밥이 좋아, 자판기가 던져주는 하루가 가볍게 음미하는 삶에 오우, 소리 질러 버튼을 누르면 위이잉 쏟아져 나오는 바코드 찍혀 있는 하늘 바다 들판 뜨거운 물 부어서 2분 30초 기다렸다가 먹는 어디까지 날아오를까. 동전 하나로 되살아나는 웃음이 싫어 날개는 잘린 것인지, 삭제되었나? 대낮에도 즉석 별들이 은하수 유성으로 떠다니는 두 평 반 옥탑방에서 퍼덕거리다가 뒹굴뒹굴 반지하에서 질척거려보다가 뻥 내쫓겨, 시멘트 바닥을 굴러 비보이 춤을 춘다.
―시집 『비보이』 2024.6 ----------------------- 김유섭 / 2011년 《서정시학》 시 부문 신인상. 2014년 《수필미학》 평론 신인상. 시집 『찬란한 봄날』 『지구의 살점이 보이는 거리』 『비보이』, 평론서 『이상 오감도 해석』 『한국 현대시 해석』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