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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발을 치고 준비된 방석에 희와 연이 나란히 앉았고, 연은 잔뜩 긴장한 듯 손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성수청에서 국무가 왕의 부름을 받고 오기로 한 날이였다. 희는 연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고, 어제 밤새워 연에게 해준 말을 곱씹었다. 모든 사실을 말해주었고, 연이 원자를 회임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말해주었다. 그러나 믿지 않았다. 그것을 관상감에서 어떻게 알 수 있었고, 관상만으로도 그것이 확인가능한것인가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믿기 싫었다. 연 역시 믿고 싶지않았다.
“전하, 성수청 국무 입시하였사옵니다.”
“들라하라.”
신복인 불사의대를 입고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국무는 발에 가려진 희와 연을 보고 예를 올린 뒤 조금 물러나 앉았다. 머리를 조아린 채
“소인을 부르셨사옵니까.”
“너의 신기로 알아내고자 하는것이 있다.”
“미천한 소인의 신기로 아시고자 하는것이 무엇이옵니까.”
“그 전에 물을것이있다.”
“하문하시옵소서.”
“관상만으로도 복중에 있는 태아를 맞출 수 있느냐. 사내인지 아니면 여아인지 알아낼 수 있느냐.”
“관상으로는 알아 낼 수 없사옵니다. 허나 관상으로 남아복이들었는지 여아복이 들었는지는 알 수 있사옵니다.”
“그럼 이제 너의 신기를 시험해볼것이다.”
희가 손짓을 하자 옆에 서있던 상궁이 연 쪽의 발 모서리를 살짝 들어 연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국무는 여전히 바닥을 보고있었다. 그러자 희가 크게 호통을 쳤고 국무는 쭈뼛쭈뼛 고개를 들어 연의 얼굴을 보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
“신기로도 남아복이 들었는지 여아복이 들었는지 맞춰보거라.”
“…….”
“어찌 아무런 대답도 하지못하는것이냐. 사실만을 고하거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사옵니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인의 신기로는 중전마마께오서는 여아복을….”
“…….”
“…….”
“남아복을 북돋아줄 방법은 없는것이냐.”
“그것은 주술로도 바꿀 수는 없사옵니다. 하오나 딱 한가지 방법은 있사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소인이 부적을 올리겠사옵니다. 그 부적을 중전마마께오서 계신 교태전 기둥 아래에 묻으시면되옵니다.”
“그리하면 원자를 볼 수 있는것이냐.”
“그건 소인의 힘으로는 장담할 수가 없사옵니다. 중전마마와 전하의 간절함과 의지가 필요하옵니다.”
“그것 또한 걱정하지말라. 그렇게하면 원자를 볼 수 있느냐.”
“예, 전하. 소인의 신기로는 중전마마께서는 남아복 하나와 여아복 둘을 갖고 계시옵니다. 헌데 하나의 남아복은 전하이옵고 둘의 여아복 중 공주아기씨를 생산하셨으니 이제 여아복 하나가 남았사옵니다. 하오나 소인이 올리는 부적으로 여아복을 남아복으로 바꿀 수 있사옵니다.”
“참으로 신통하구나.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니 말이다.”
“부적을 쓰려면 먹이 필요하온데 이 부적은 천기의 흐름을 바꾸는 부적이라 특별한 먹이 필요하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태어난지 달포밖에 되지않은 소의 피이옵니다.”
“구할 수 있을것이다. 그것은 걱정하지말라. 너는 기도를 올려 부적에 힘을 실도록 해라.”
“명심하겠사옵니다.”
국무가 나가고 발을 거두었다. 연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강녕전을 나가던 국무의 발길을 잡은 건 하정이였다. 마침 강녕전을 지나가고 있던 하정이 강녕전에서 국무가 나오는것을 보고 최상궁을 시켜 국무를 조용히 경선당으로 불렀다.
“오늘 강녕전 앞을 지나다 너를 보았다.”
“…….”
“어찌 강녕전에 발걸음하였느냐. 궐 출입이 제한되어있지않느냐.”
“소인은 어명만을 받잡사옵니다. 오늘 입궐 또한 어명이였사옵니다.”
“전하께 안좋은 일이 생긴것이냐.”
“그것이 아니오라 전하께오서 기우제를 지내라 하시어….”
“기우제를 지내라 하셨다?”
“예, 마마님. 관상감에서 비가 오지않아 가뭄이 들어 흉년이 될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해서 전하께오서 기우제를 지내는것이 좋겠다하셨사옵니다. 해서 소인에게 입시를 명하셨사옵니다.”
“한치의 거짓도 없어야할것이다.”
“소인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내가 너를 경선당으로 부른것을 아무도 몰라야한다.”
“예, 마마님.”
국무가 경선당에서 나와 주위를 살핀 뒤 궐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정은 국무의 말을 들었어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단지 기우제때문에 국무를 친히 강녕전까지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였다. 반드시 숨기는 것이 있어보였다.
희는 사옹원에 있는 사옹원정을 불러 태어난지 달포밖에 되지않은 소를 구하라 어명을 내렸다. 하지만 그런 소는 구하기 어려웠고 더군다나 소라 더더욱 구하기 어려웠다. 교태전에서 시들어버린 화분을 보고 있는 연. 그동안 챙겨주지못해 말라버렸다.
“숙의가 준 화분이 말라버렸구나.”
“지밀나인들이 소홀했던 모양이옵니다. 대신 소인이 벌을 받겠사옵니다.”
“괜찮다.”
“다른 화분으로….”
“다른 화분은 됐으니 이 죽은 화분을 처리하도록해라. 흉물스럽구나.”
연의 말에 지밀상궁인 한 상궁이 말라버린 화분을 가지고 방에서 나갔다. 연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마마, 영의정의 자제가 들었사옵니다.”
“방금 누구라고 하였느냐.”
“영의정의 차남 유규희가 들었사옵니다.”
“들, 들라하라.”
연은 놀랐다. 규희는 분명 희의 벗이였고, 교태전은 왕 이외에는 사내가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였다. 또한 발각될시에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규희가 들어와 인사를 하고는 준비된 방석에 앉았다.
“강녕전에 가지 않고 교태전에는 어인 일입니까.”
“강녕전에 가던 길에 문안인사를 올리러 교태전에 들었사옵니다.”
“발각되면 어쩌시려구요.”
“신하로써 또한 벗으로서 마마께 문안인사를 올리는것이니 오해하지마시옵소서.”
“허면 전하를 먼저 뵙지아니하시고 교태전으로 걸음한것입니까.”
“그러하옵니다, 마마. 책방에 갔다가 문득 마마께오서 책읽기를 좋아하신다는 소문을 들은적있어 마마께 드릴 서책을 가져왔사옵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받아주시면 아니되겠사옵니까. 그저 소인의 작은 선물일뿐이옵니다. 적적하실까 염려되어….”
“나는 정말 괜찮으니 서책은 전하께 올리는것이 좋겠습니다.”
“…….”
“이 곳은 상감마마 이외에 사내들은 쉬이 들 수 없는 곳입니다. 앞으로는 주의해주십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얼른 강녕전으로 가십시오. 전하께서 기다리실것입니다.”
연의 단호한 말에 규희는 서책을 다시 품 속에 넣고 교태전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양의문을 통해 강녕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규희가 교태전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하정이였다.
하정은 이조판서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말했고, 손훈은 상소문을 써 승정원에 넘겼다.
희는 반갑게 규희를 맞이했다. 규희의 마음은 편치않았다.
“기다리던 벗이 과인을 찾아와주니 정말로 기쁘구나.”
“그간 강령하셨사옵니까.”
“그대는 어찌 지냈는가.”
“학문에 정진하였사옵니다.”
“혹 중전이 공주를 생산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참으로 감축드리옵니다.”
“고맙구나.”
“…….”
“지금 석강에 들 시간이구나. 잠시 기다려주겠느냐.”
“송구하옵니다, 전하. 소인도 출궁을 해야할듯싶사옵니다.”
“다음에 오면 다과상을 준비해놓겠다.”
“물러나겠사옵니다.”
규희가 먼저 나갔고, 희는 규희가 나간 문을 몇분동안 보다가 강녕전에서 나와 사정전으로 향했다. 용상에 앉은 희의 앞에 여러 신료들이 앉아있었다.
“어찌 석강을 사정전에서….”
“석강을 경연청에서만 하라는 국법은 없지않은가.”
“…….”
“이곳 사정전에서는 석강 대신 상소문을 읽을것이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전하.”
“시끄럽다. 그동안 경들이 과인의 백성들에게 한 짓을 낱낱이 파헤칠것이오. 그리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고 왕권을 강화시킬것이오.”
“…….”
“그럼 어느것부터 읽어볼까.”
희는 빠른 눈길로 상소문들의 갯수를 세고 맨 위에것을 집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눈으로 읽었다.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영의정의 자제 유 규희가 교태전에 출입을 한것을 보았고, 그것은 분명 중전마마가 꼬드겨 부른것이 틀림없다는 내용이였다.
“이판.”
“하문하시옵소서.”
“방금 영상의 차남인 유규희가 교태전에 들었다가나오는것을 보았다고 하였소?”
“그, 그러하옵니다.”
“이 상소문의 내용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음이렷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헌데 추측성의 글이 써있는듯한데.”
“무엇이옵니까.”
“분명 중전이 유규희를 꼬드긴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사옵니까. 대나무같이 곧은 절개를 가진 영의정대감의 자제인 유규희가 교태전에 들리가 없지않사옵니까.”
“다분히 추측성이질않은가.”
“중전마마께오서….”
“이것을 과인에게 올린 이유가 무엇이오.”
“응당 전하께오서 아시고 계셔야할 내용이라 생각되었사옵니다. 중전마마께오서 만일 다른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면….”
“…….”
“그리하여 소신이….”
“만일 사실로 밝혀진다면 중전을 폐서인하고 영상의 자제 또한 국법으로 다스려야한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경의 말에는 가시가 있는듯하오.”
희는 코웃음을 치며, 상소문을 둘둘 말아 다른 곳에 올려놓았다.
“영상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것이오?”
“소신이 어찌….”
“남의 자리를 탐하지말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것이 더 현명한 길임을 명심하시오.”
“소신의 상소문을 곡해하지마시옵소서, 전하.”
희는 재빨리 편전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 그곳에 있다가는 불신의 마음만 더 커질 것 같았다. 그리고 곧바로 교태전으로 들었다.
“어인 일로….”
“중전에게 하나 물을 것이 있소.”
“하문하시옵소서.”
“혹, 내 벗이 교태전에 들었었소?”
“그러하옵니다.”
“…….”
희가 연을 보는 표정이 달라졌다. 간간히 한숨도 쉬었다.
“하오나 전하 오해하지마시옵소서.”
“무엇을 말이오!”
“그 분이 신첩을 찾아온것은 분명하나 별 다른 이유는 없었사옵니다. 신첩이 적적할까싶어 서책을 주기위해 온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절대로 전하를 배반한 것은 없사옵니다. 신첩을 믿어주시옵소서.”
“…….”
“신첩이 크게 야단을 쳤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것이옵니다.”
“오히려 그대만 더 위험해지게되었소. 교태전에서 내 벗이 나오는걸 본 이가 있소. 분명 중전을 책잡으려들것이오. 남색을 밝히는 그런 여인으로 낙인될것이오.”
“…….”
“폐서인하라는 상소문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낼것이오.”
“어찌….”
“중전이 다른 사내에게 곁눈을 주는 일은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거니와 충분히 폐서인될수있는 명분이오.”
“…….”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정녕 신첩을 믿지못하시는것이옵니까.”
“…….”
“신첩이 다른 이에게 곁눈을 주다니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옵니다. 야망과 탐욕에 눈이 어두운 자들일 뿐이옵니다.”
“…….”
“…….”
희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탐욕에 굶주린 이들이라 신첩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해서 신첩을 폐서인시키려는 음모임이 분명하옵니다. 제발 신첩을 버리지마시옵소서.”
교태전에 유규희가 찾아왔네요
그로인해서 연은 오해를 받게되고, 희마저 혼란스러워집니다.
하지만 희는 연을 믿고있고, 이번 일로인해 연이 입게 될 상처와 고통을 걱정합니다.
드디어 이조판서 손훈과 손하정의 가려진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죠!
본격 토끼몰이! ㅠ^ㅠ
첫댓글 이거 정말 재미있어요...다음편 기대할게요^^
ㅠ0ㅠ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