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지구
민 구
지구는 평평하다
피켓을 든 사람들과
비난하는 사람들이
사이좋게 눈을 맞고 있었다
나는 녹색불이 켜지길 기다리며
지구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다가
건너가도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신이여, 저는 불신이 가득한 자
이것은 어디로 건너가라는 계시입니까
그때 신이 말했다
네가 평평하지 않고 공평하다면
세모일 수도 있고
네모일 수도 있고
청설모일 수도 있지
만약 네가 공평하지 않고 공허한 행성이라면
사랑에 목마른 자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물음표이거나
낭떠러지로 향하는 이정표겠지
그래요, 모르겠습니다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가까이에서 보면 못생겼을 것 같아요
천사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눠준 전단을 받았다
진실을 밝혀라
지구는 평평하다
미안해요 천사
나는 아직도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해
하지만 엄마의 병이 다 나아서
검은 머리가 난다면
그때는 평평지구
―격월간 《현대시학》 2024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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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 1983년 인천 출생.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세모 네모 청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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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지구 / 민구
박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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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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