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청 제공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고라니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 문정희시집 '사랑의 기쁨'(시월, 2010)
첫눈의 폭설과 추위로 온 세상이 얼어붙은 날, 겨울여행을 다녀왔다.
문정희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으로 향했다.
눈 속을 뚫고 아슬아슬한 굽이 길을 돌고 돌아 한계령에 올랐다.
김수근 선생이 설계했다는 정상 산장은 눈 폭풍을 피해 들어온 인파로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간신히 커피 한잔을 받아 난간에 자리 잡고 달려온 길을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달려온 눈 내리는 수 십 개의 굽 돌이 길은 처다만 봐도 아찔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했던가! 한계령은 깊은 산중에 있었다.
험하지만 깊고, 아찔하지만 장엄했다.
뜨거운 커피한잔을 마시는 동안 우린 고성 화진포로 행선지를 돌렸다.
한계령 정상에서 내려다 본 굽 돌이길
한계령 휴게소 : 건축가 김수근 설계
- 화진포, 화진포해수욕장
거진항에서 화진포를 거쳐 대진항까지 이어지는 약 5㎞의 해안도로는 겨울바다의 낭만과 쓸쓸함이 교차했다.
북한 금강산 끝자락이 보이는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 화진포해수욕장이 자리한 화진포는 호수와 바다,
송림이 어우러진 곳으로
남.북 초대 통치권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일성 일가 그리고 이기붕가족이 찾았던 휴양지다.
민간통제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됐다가 1999년부터 개방된 고성 화진포,
천혜의 자연뿐만 아니라 분단의 역사까지 새겨진 곳이다.
화진포해수욕장의 쪽빛 바다, 사진 왼쪽 산 밑이 화진포호다.
호수의 하늘빛 고요함과 대비되는 에메랄드빛 겨울바다는 황홀한 장관이었다.
- 김일성별장이라 불리는 화진포 성
하얀 모래사장이 화진포 호수와 바다를 가르고, 그 끝에 해금강이 보인다.
거북모양을 닮은 바위섬 옆 언덕에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는 '화진포 성'이 북녘땅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켰을 때,
일제는 비행장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강제 철거하고 화진포로 강제 이주시켰다.
조선의 결핵퇴치에 앞장서 크리스마스실을 처음 발행한 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1893~ 1991) 박사는
히틀러를 피해 망명해 왔던 독일 건축가 베버(H.Weber)에 의뢰해 예배당으로 사용할 별장을 암벽 위에 지었다.
이 건축물은 화진포 해안 절벽 송림에 우아하게 자리 잡은 하얀 외관으로 인해 '화진포 성'이라 불렸다.
경관이 수려해 1945년 해방 이후 북한 땅이 되자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로 사용하였다.
당시 김일성 가족이 여름 휴양지로 사용하면서 ‘김일성별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김일성 별장
화진포 해안 절벽위의 송림속에 우아하게 자리 잡았다
화진포 성 위에서 내려다보면 왼쪽의 호수와 오른쪽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호수를 에워싼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화진포 호수의 하늘빛 고요함과 대비되는 화진포 해수욕장의 쪽빛 에메랄드빛 겨울바다는 장관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저도 한계령에 고립되고 싶네요..^ㅡ^
좋은 시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