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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비의 이야기인 즉 글 잘하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고, 재산 많은 아름다운 절세미인(絶世美人) 수원 최고의 기생 소백주가 글 잘 짓는 선비를 찾아 남편으로 삼겠다고 그새 이년도 넘게 저 방을 붙여놓고 수많은 글 잘하는 선비들을 제 집으로 불러들여 지은 글을 본다는 것이었다.
이 나라에 소문난 수많은 선비들이 기생 소백주의 미모와 재주와 재산을 보고 그녀의 남편이 되겠다고 그 앞에 나아가 글을 지어 올렸으나 지금껏 죄다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실은 우리도 지금 그 소백주 집에 다녀온다오. 죄다 떨어졌지만 아무튼 거기 가면 안주로 나온 수육 한 접시에 술 한 잔은 그냥 얻어먹을 수 있다오. 당신도 한번 가보시구려!”
“으음!.......”
그 선비의 말에 김선비는 쪼르륵거리는 허기진 배를 매만지며 입 안 가득 고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잖아도 하루 종일 걸어온 몸에 곡기를 하지 못해 죽겠는데 한 접시 수육 안주에 술 한 잔을 생각하니 대번 입 안에 질질 단침이 돌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글을 잘 지어 재주도 많고 돈도 많은 조선 최고의 미인이라는 기생 소백주의 마음에 들어 그의 남편이 된다면야 꿈에라도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이겠지만 내로라는 글 잘하는 선비들도 죄다 낙방했다는데 그것은 꿈에도 바랄 일이 아니겠지만 아무튼 이 고통스러운 시장기를 우선 면할 수 있다고 하니 발이 보이지 않게 잽싸게 그곳으로 달려가고 볼 일이었다.
‘허어, 산입에 거미줄 안친다고 하더니!’ 김선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잽싸게 기생 소백주 집을 향해 마치 여우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발이 안보이게 바람처럼 내달리는 것이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내달리던 김선비가 ‘에헴!’하고 큰기침을 하고는 갑자기 길 가운데 우뚝 멈춰 섰다. 한 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한갓 노류장화(路柳墻花) 기생의 글 시험 질에나 체통(體統) 없이 놀아나려 들다니 자신의 꼴이 참으로 참담했기 때문이었다.
저 나관중은 인류사의 불후의 명작 삼국지연의에 수호전을 남겼고, 조설근은 천하 명작 홍루몽(紅樓夢)을 썼지 아니한가! 더구나 시선(詩仙)이라 일컫는 이백은 당나라의 황제 현종이 총애하는 양귀비를 전한 왕조를 망하게 한 악녀 조비연에 비유하는 시 청평조사 제 2수를 황제의 면전에서 휘갈겨 쓰지 않았는가!
또한 시성(詩聖)이라 일컫는 두보는 또 어떠한가! 그의 명시 석호리(石壕吏)에서 전쟁의 참상을 겪는 백성들의 고통을 가슴 저리게 노래하지 않았는가!
이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는데도 글을 배운 자로서 가난하고 불우한 삶을 살면서도 그 글을 세상에 펼쳐 천하만민(天下萬民)의 숭앙을 받고 있지 아니한가! 김선비는 문득 가슴가득 몰려드는 자괴감으로 별빛 돋아나는 밤하늘을 우러러보며 혼잣말로 탄식하는 것이었다.
“어허! 참으로 식자우환(識字憂患)이로구나! 세상에서 글줄을 좀 배운 자로 살아가기가 이토록 힘든 일이란 것을……내 미처 몰랐구나! 몰랐구나!”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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