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 있느냐?” -새 에덴동산이자 생명나무인 예수님- 파스카의 삶
2025.2.15.연중 제5주간 토요일 창세3,9-24 마르8,1-10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나이다.”(시편90,1)
화답송 후렴이 큰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오늘도 옛 현자의 말씀에 호감이 갑니다. 파스카의 겸손한 삶에 어울리는 모습이자 말씀입니다. 겸손과 예의와 더불어 파스카 주님의 은총이겠습니다.
“꽃향기를 맡기 위해서는 먼저 허리를 숙여야 한다. 시냇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한다.”<다산>
“육포 한 묶음 이상을 예물로 갖춘 자를 나는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논어>
오늘 제1독서 창세기 장면과 마르코 복음의 장면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대로 파스카의 신비를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에덴동산 낙원은 실낙원이 되었고, 사천명을 먹이신 복음의 기적은 낙원의 회복인 복낙원이 된듯합니다. 실낙원과 복낙원, 아담과 예수님의 대조가 극명합니다. 흡사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인 파스카의 신비를 연상케 합니다.
선악과 나무 열매야 말로 넘어선 안될 마지막 한계였습니다. 흡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처럼 선악과 나무 열매를 따먹는 순간 시작된 재앙이자 불행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 했습니다. 이제 한계를 넘음으로 시작된 지옥의 현실은 오늘날 역시 무수히 목격됩니다.
“너 어디 있느냐?”
바로 이 질문이 분기점입니다. 이 질문은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사람에 대한 물음은 바로 우리 모두에 대한 물음이겠습니다. 바로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몫을 다하며 제대로 살고 있는가 묻습니다. 정말 깨어 제자리에서 제대로 준비된 삶을 살았다면, “예, 저 여기 있습니다.” 대답하고 즉시 뛰쳐 나갔을 것입니다. 아담이 용기가 있는 정직한 사람이었다면 부르심에 회개로 응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알몸이 두려워 숨었고, 주 하느님의 추궁에 대한 답이 적반하장, 비겁하게도 오히려 자기의 잘못이 여자를 아내로 주신 하느님께 있다는 듯이 하느님께 책임을 전가합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하느님이 책임이 있고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철면피, 후안무치의 답변에 하느님의 실망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아담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한순간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이어지는 하느님의 추궁에 여자의 변명입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사람과 여자 둘다 책임적 존재가 되는데 실패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구차하고 비겁한 핑계나 변명이 아니라 용기있는 솔직한 회개였습니다. 핑계와 변명, 바로 사람이나 여자뿐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는 우리 인간의 보편적 부정적 현실입니다. 다윗의 즉각적인 회개의 응답,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고백도 생각나고, “I was wrong!(내가 잘못했다!)”의 명수였다는 인도의 성자 간디의 일화도 생각납니다. 죄에 대한 결과 선고의 벌은 역순으로 뱀에, 다음에는 여자에, 마지막 사람에게 내려집니다. 마지막 하느님 처사에 대한 묘사가 참 엄중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동산 동쪽에 불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였다.’
이런 비상조치를 취한 하느님이지만 마음은 참으로 착잡했을 것이며 정말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실패를 일거에 만회할 당신의 효성스런 아드님 예수께서 나타나실 날만 학수고대 기다렸을 것입니다. 아담이 우리의 절망이라면,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회복된 복낙원, 새 에덴동산입니다. 바로 그 생생한 증거가 오늘 복음의 4천명을 먹이신 일화에 오늘 지금 거룩한 성전에서 거행되는 미사전례입니다.
광야에서 굶주린 군중을 가엾이 여기는 예수님의 연민의 마음은 그대로 하느님의 자비심을 반영합니다. 광야의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일곱 개의 빵을 받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 하십니다. 이어 물고기 몇 마리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 하시니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은 일곱 바구니, 먹은 사람은 사천명 가령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진인사대천명 믿음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에 감동하신 하느님의 응답이자 군중들의 응답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믿음에 감동한 군중들이 감춰뒀던 빵을 모두 나누어 먹으니 참 풍요한 기적입니다. 무지한 군중의 인기와 호기심, 열광을 피해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타고 미련없이 떠나는 예수님의 뒷모습이 참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공성이불거, 공을 이루면 거기에 머물지 말라는 노자의 지혜가 생각납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주 예수님이야말로 새 에덴동산 복낙원이자 생명나무가 됩니다. 바로 이 거룩한 파스카 미사전례를 통해 앞당겨 실현되는 새 에덴동산에서 예수님의 생명나무 열매인 성체를 모심으로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내 삶의 꽃자리, 제자리에서 날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날마다 새롭게 폈다지는 파스카의 꽃같은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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