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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사내들의 짓궂은 장난과 그 등살에 놀아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것이 생활이 되고 보니 지긋지긋했다. 서른이 올려다 보이는 어느 봄날 소백주는 모진 것이 세월이라고 울밑에 난향같이 싱싱하던 자신의 몸도 초가을 단풍 물 들어오는 나뭇잎처럼 한풀 시드는 낌새를 느끼고는 떠억 하니 평소 꿈꾸어오던 것을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내놈들은 인생살이의 목적이 권력이고 돈이고 출세인줄은 몰라도 또 계집들 또한 남편이나 자식들 출세시키는 일인 줄은 몰라도 소백주는 그것이 아니었다. 기왕에 이 세상에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마음이 통하는 멋있는 사내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며 비록 고대광실 좋은 집에 살며 맛난 것 먹고 호의호식하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진실한 마음 교환하며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여인으로서의 소박한 꿈을 실현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소백주는 담장너머로 따뜻한 바람 불어오는 봄 진달래꽃 피는 앞산을 바라보며 남녘 파란하늘 멀리 그 꿈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그날부로 소백주는 당장 기생 일을 집어치우고는 글 잘하는 단정한 사내 하나를 찾는다는 방을 저자거리에 대담하게 내다 붙였던 것이다. 적어도 글을 아는 선비라야 세속의 권세와 지위와 돈의 탐욕에서 벗어난 진정한 사람의 도리를 알 것이고, 또 시절 따라 모진 칼바람 불어오는 궂은 세상사를 지혜롭게 간파하며 살 줄 알 것이고 또 무엇보다도 사람으로서 삶의 진실한 멋과 고매한 운치를 알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백주가 수원 저잣거리 골목마다 방을 내다붙이자 사내들이 거센 태풍에 격랑을 타고 구름같이 들이닥쳤다. 과연 소백주의 명성은 그저 빈말에 뜬 구름만은 아니었다.
예쁘고, 글 잘하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소백주와 인생의 뜨겁고 질긴 사랑의 연을 맺어보려는 일대의 이름 난 사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한양 땅에까지 소문이 퍼졌는지 조선 각지의 선비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무리지어 날마다 몰려드는 것이었다.
내로라는 학식을 지닌 문장가들이며 고관대작들이 소백주의 환심을 사려고 들이닥쳤던 것이다. 높은 관리를 지내며 과거께나 급제했다는 사내들은 그저 소백주를 눈 아래로 흘겨보며 네깟 기생 주제에 무슨 글재주를 시험하느냐는 식으로 깔보며 허세가 잔뜩 담긴 글을 휘휘 내리갈겨놓고는 거드름을 잔뜩 피우는 것이었다.
화려한 기교와 잔재주 잔뜩 부린 허세 가득한 글 내용은 곧 그 사내의 삶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소백주는 그런 류의 교만과 허풍에만 가득 찬 글들을 두어줄 읽다가 그만 구겨 불 쏘시개거리로 내팽개쳐 버리는 것이었다.
“고명하신 대감께서는 어려서부터 어렵게 익힌 천재적인 글 솜씨로 얻은 높은 지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났군요. 그리하여 진실 한 톨 없는 치기에 가득 찬 허세로 교만하게 세상을 살아가시는 구려! 안됐지만 낙방이올시다!”
소백주는 보기 좋게 낙방을 쾅쾅 먹였다.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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