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무것도 즐겁지 않다고 말할 때,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마음이 보내는 도움 요청일 수 있습니다."
Q.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엄마입니다. 작년 겨울부터 아이가 다이어트를 한다며 밥을 조금씩 줄이더니, 요즘은 식사 시간만 되면 예민해지고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합니다. 살도 눈에 띄게 빠졌어요.
그런데 먹는 것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노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가 이제는 약속도 잡지 않고, 주말이면 방에만 있어요. 좋아하던 그림도 안 그리고, 뭘 물어봐도 "그냥", "별로"라는 대답뿐입니다. 표정도 많이 없어졌고요.
사춘기라 그런 건지, 아니면 먹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다시 예전처럼 웃을 수 있을까요?
A. 안녕하세요, 어머님.
어머님이 느끼신 대로, 먹는 문제와 아이의 무기력은 서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웠던 일에서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자주 함께 나타나는데, 이것을 '무쾌감'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요. 영국의 한 연구에서는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즐거움을 훨씬 덜 느낀다고 보고했습니다. 친구를 피하고 방에만 있으려는 아이의 모습은 단순한 사춘기 반항이라기보다 이런 마음 상태에서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같은 연구에서는 자기 감정을 알아차리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수록, 그리고 우울감이 클수록 이런 무기력이 더 심했습니다. 아이가 "그냥", "별로"라고만 대답하는 것도 말하기 싫어서라기보다 자기 마음이 어떤지 스스로도 잘 모르기 때문일 수 있어요. 또 몸에 충분한 영양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자체로 기분이 가라앉고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는 사실도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지쳐 있는 상태인 거지요.
희망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섭식장애 치료를 받은 청소년과 성인 약 500명을 살펴본 연구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이런 무기력과 무쾌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회복된 사람들은 아직 아픈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다만 치료가 끝날 무렵까지 무기력이 남아 있던 사람들은 섭식 증상도 더 많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먹는 문제만이 아니라 아이가 다시 즐거움을 느끼도록 돕는 일도 회복에서 함께 챙겨야 할 부분입니다.
집에서는 먼저 식탁이 싸움터가 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먹는 양을 두고 다그치기보다, 식사 시간이 함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상관없는 즐거운 시간을 조금씩 만들어 주세요. 함께 산책하기, 짧게 드라이브하기, 아이가 좋아하던 그림 도구를 슬쩍 꺼내 두기 같은 작은 것이면 충분합니다. 실제로 섭식장애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도 음식이 없는 사회적 상황을 함께 고민해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어요. 아이가 감정을 말로 꺼내기 어려워한다면 "오늘 좀 지쳐 보이네", "속상한 일 있었어?"처럼 어머님이 먼저 아이의 마음에 이름을 붙여 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섭식장애는 가정에서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일찍 도움을 받을수록 회복이 빠른 문제입니다. 체중이 눈에 띄게 줄었고 기분과 대인관계에도 변화가 생긴 지금은 소아청소년과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함께 심리 상담을 꼭 받아 보시길 권해 드려요. 아이의 몸 상태와 마음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특히 아이가 "사는 게 의미 없다"는 말을 하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내비친다면 지체하지 말고 바로 전문가를 찾아 주세요.
지금 아이가 웃지 않는 건 즐거움을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잠시 그 즐거움에 닿기 어려운 상태에 있기 때문이에요. 적절한 도움을 받으며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아이는 다시 친구와 웃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어머님도 혼자 너무 애쓰지 마시고 함께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식탁 위의 회복만큼, 일상 속에서 다시 웃는 순간을 되찾는 것도 회복입니다."
가정에서 해볼 수 있는 해결 방안 3가지
① 음식과 상관없는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세요
섭식장애를 겪는 아이에게 식사 자리는 부담스러운 시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섭식장애를 겪은 당사자들은 음식이 없는 사회적 상황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산책, 함께 보는 영화, 보드게임, 그림 그리기처럼 음식이 중심이 아닌 활동을 짧게라도 자주 함께해 보세요. 처음에는 아이가 즐거워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즐거움을 느끼는 힘은 천천히 다시 자라납니다.
② 아이가 감정을 알아차리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어려울수록 사람들과의 즐거움도 줄어듭니다. "오늘 기분이 어땠어?"보다 "아까 친구 이야기할 때 조금 속상해 보였는데, 맞아?"처럼 구체적으로 물어보세요. 아이가 대답하기 어려워하면 "답답한 것 같기도 하고, 지친 것 같기도 하네"처럼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때 아이의 감정을 고치거나 판단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③ '즐거움의 회복'도 치료 과정에서 함께 살펴 주세요
치료를 받으며 무기력함은 줄어들 수 있지만, 많이 남아 있다면 회복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예전에 좋아하던 것에 다시 관심을 보이는지,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같은 작은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해 보세요. 그리고 이런 변화를 담당 선생님과 꼭 공유해 주세요. 특히 우울감이 함께 있는 아이는 무기력함이 더 클 수 있으므로, 아이가 지나치게 처지거나 모든 것에 의욕을 잃은 모습이 계속된다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 센터는 아동과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연령의 상담을 진행하는 센터로 사회성 발달을 위한 집단상담, 치료놀이 및 각종 상담방식이 다양한 치료센터입니다. 또한 전문 치료사가 배치되어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시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언제까지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뜬구름 잡기식의 잔소리만 할 것인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는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사회성에 대해 20여 년간 상담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온 이향숙 박사의 오랜경험과 노하우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소개 中)
*참고문헌
Tchanturia, K., Davies, H., Harrison, A., Fox, J. R. E., Treasure, J., & Schmidt, U. (2012). Altered social hedonic processing in eating disorders. International Journal of Eating Disorders, 45(8), 962–969.
Dolan, S. C., Brown, T. A., Wierenga, C. E., Kaye, W. H., & Reilly, E. E. (2022). Changes in anhedonia over the course of eating disorder treatment. International Journal of Eating Disorders, 55(3), 399–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