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전상서] 鄭炳京.
ㅡ49재를 맞아ㅡ
장미꽃 붉게 물든 오월에 별이 된 아버님(장인)의 모습을 그립니다. 어느덧 이승과 이별하는 49일째를 맞았습니다. 사랑 가득한 가족 곁을 떠난 후 생전의 모습이 더 생생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뇌한 40일간 병상 치료가 현대 의술로는 한계였습니다. 90년간 살아온 세월 중에 제일 힘든 고통과 긴장의 시간을 보내다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유언 한마디 못 남겨 더욱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스스로 병원 문턱을 밟은 후 세상과 이별하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만물이 탄생하는 봄에 떠나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가족과 마지막 작별하는 날을 맞으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풀냄새가 좋아서 새벽부터 들에 나아가 농작물과 눈을 마주하는 모습이 선합니다. 논에는 모가 파릇파릇 잘 크고있습니다. 지난해 거둔 벼를 창고에 남겨 두셨지요. 햅쌀맛 난다며 수시로 찧어준 미니 방앗간 기계는 녹이 슬어갑니다. 보은 장에 타고 다닌 자전거는 먼지가 자꾸 쌓입니다.
지난해 담근 곰삭은 김장 김치에서 아버님의 향취를 느낍니다. 지갑에는 손주들에게 줄 용돈이 남아있습니다. 평소 아끼며 쓰던 유품에서 절제의 미덕을 발견했습니다. 받기보다 베풂이 몸에 밴 아버님은 평생 이타행으로 사셨습니다.
장례일엔 안개와 비바람이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구름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노심초사 자식 걱정으로 흘린 아버님의 눈물이 아닌지요. 온기가 남아 있는 아버님을 차가운 땅 속에 묻어놓고 돌아서려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쟁 후 삶의 지난至難함을 인내하셨습니다. 가족을 위해 반세기 동안 객지에서 보낸 시절이 눈에 선합니다.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느라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회초리 한 번 들지 않고 다섯 남매를 길러주셨지요. 지니고 있는 성품에서 지혜로움을 알게되었습니다. '부모은중경'을 새삼 깊이 새깁니다. 부모님 업고 수미산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고 합니다.
책상위에 놓인 사서삼경은 책장이 덮힌 지 오래입니다. 즐겨 쓰던 먹과 붓은 일필휘지를 기다립니다. 세상살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논어ㆍ맹자 한 구절 읊조리셨지요.
무언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다섯 남매에게 등불이 되어준 스승같은 분을 다시 만날 기약 없어 애통합니다. 자손들 다녀갈때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문앞에서 배웅하는 손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아버님이 떠나신 후 어머님은 눈물로 지냅니다. 지난 겨울 어머님이 무릎 치료차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마음 아파 하신 아버님이지요. 홀로 집에 계신 아버님께 따뜻한 밥을 손수 못 지어드린 게 한스러럽답니다. 원앙鴛鴦처럼 금슬이 남다른 두 분을 누가 갈라놓았는지요.
속리산 수정암水晶庵 주지스님의 독경소리가 계곡에 스밉니다. 일곱주간 동안 정성을 다해 스님들의 간절한 기도가 감동입니다. 불경과 목탁소리가 가족을 부르는 애절한 음성으로 착각됩니다.
아버님!
가족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는지요. 달이 둥근 음력 삼월 보름날 떠나셨지요. 오늘 초생달이 뜨는 오월 초나흘입니다. 아버님이 떠나시고 4주 후에 작고하신 당숙부님과 해후상봉하셨겠지요.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을 의미하는 윤회를 상기합니다.
오늘은 아버님과 작별하는 날입니다. 늙고 죽음과 괴로움도 없다는 반야심경을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근심 걱정과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행복한 세상에서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공평하다고 합니다. 이생에서 뜻을 다 펼치지 못하셨지요. 숨은 재능을 아름다운 세상에서 마음껏 펼치시길 바랍니다.
'경주 최씨 32세손 좌랑공파휘'로서 종가에 누가 되지 않게 사셨습니다. 우주의 미물로 부끄럽지 않게 세상을 살다 떠남을 존경합니다.
다음 생엔 만인에게 가르침을 주는 학자로 거듭나시길 염원합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2023.06.21.(음5/4)
속리산 수정암에서
상주 올림.
첫댓글 평생 베풀면서 살다가신 아버님의 49재를 맞아
쓰신 애절한 전상서가 감동을 줍니다...
정병경 작가님
아버님의 49제
속리산 수정암 푸른 숲길에
편안한 생의 수고 내려놓으시고
자손들 행복한 축원으로 이승을
떠나셨겠습니다
서리서리 생전의 모습을 한동안
기억하실 듯 합니다~~
천륜이 세상이별 앞에
슬프기만 합니다
감동이 넘칩니다
마음에 평정 속히 이루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