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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2에는 시나리오를 시작할 때 각 국가별로 거창한 소개문이 있는데 빅토리아에서는 그게 없어서 아쉽더군요.
그래서 예전에 직접 한 번 써보았습니다.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1836년 시나리오 기준입니다.
영국
양 차례의 혁명으로 입헌 왕국 체제를 확립한 섬나라 영국은 스코틀랜드인과 민족적 융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에스파냐 계승 전쟁, 7년 전쟁 등을 거쳐 유럽의 강호로 떠올랐다. 또한 한 편으로는 세계 최초의 산업화가 일어나 경제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고, 동시에 다른 나라에 비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확립되어 유럽에서 가장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이기도 하였다. 아메리카 독립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큰 위기를 겪기도 하였지만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를 1년 앞두고 영국의 미래는 매우 밝아 보였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는 대내외적으로 수많은 과제들이 산재하여 있었다. 전통적인 보수적 귀족 계층이 지배하는 영국에서 노동 계급의 선거권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제국령에서 흥기하는 식민지 민족주의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영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아일랜드 민족 문제는? 마지막으로, 분열되어 있는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통일된다면 그 때에도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에스파냐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한 200년간은 에스파냐에 영광의 시대였다. 이베리아 5왕국을 통일하고 레콩키스타를 완수하여 막강한 통일 국가를 이룬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유입된 막대한 부와 합스부르크의 광범위한 영지로 유럽의 실력자로서의 위치를 누렸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위기가 닥쳐오던 에스파냐는 계승전쟁 이후 뚜렷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에스파냐는 본토를 제외한 유럽 대륙 전역의 영지를 상실하였으며, 나폴레옹 전쟁 중에는 프랑스의 괴뢰 정부가 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광대한 에스파냐 식민 제국은 프랑스 대혁명과 맞물려 일어난 라틴 아메리카 민족주의로 인해 필리핀과 쿠바를 제외하고 거의 해체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카를로스주의와 같은 반동주의 운동으로 인해 극도로 불안정한 정국이 계속되었다. 에스파냐가 위기를 극복하고 이전과 같이 제국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프랑스
절대 왕정 시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를 하나 꼽는다면 바로 프랑스 왕일 것이다. 이 시기 프랑스는 넓은 영토와 부강한 농업 생산력을 지닌 강력한 국가로서 유럽 정치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대외전쟁으로 국가 재정이 파탄이 나자 눌려 있던 프랑스 인민들의 불만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왔고, 마침내 1789년의 대혁명이 발발하였다. 그로 인해 20여년 동안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군주 국가들이 혁명의 진통을 앓았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 체제가 유럽의 시간을 되돌리려고 했지만 프랑스의 전통적인 귀족들은 몰락하였고 자유주의 성향의 혁명 부르주아지들과 능력 위주로 선출된 관료 계급이 프랑스 정치 패권을 잡게 되는 경향을 막을 수 없었다. 1830년의 혁명은 그들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체제 역시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프랑스는 유럽 혁명의 중심지였고 앞으로도 새로운 혁명의 중심지일 것임이 예고되고 있다. "프랑스가 감기가 걸리면 유럽은 재채기를 한다."는 말과 같이 앞으로 프랑스에 일어날 변화가 곧 유럽 전역의 변화가 될 것이다. 그 변화를 주도할 세력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일까, 아니면 반동 보수주의자일까? 어쩌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사회주의자일지도 모른다.
프로이센
프로이센 왕국은 변방의 작은 국가 프로이센 공작령에서 시작하였다. 프로이센(프러시아)은 본래 이교도의 영역이었으나 독일기사단의 개척 이후 독일인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루터교 전래로 기존의 신성 봉건 국가에서 세속 국가로 탈바꿈하였고 1701년에는 그 군주가 왕을 칭하였다. 처음에는 작고 가난한 국가였지만 북방 전쟁과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을 거쳐 수많은 독일 영방 국가 중에서 독보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떠올랐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주춤하기는 했지만 빈 회의 이후 적절한 개혁과 관세 동맹으로 새롭게 중앙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프로이센의 군대는 매우 막강하였고 산업화에 필요한 부존자원은 넘쳐났다. 그런데 이 군국주의 국가에 새로이 위협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인민들이었다. 그들은 독일인으로서 민족적 자각을 점점 깨우쳐가고 있었다. 통일된 독일이라는 것은 곧 막강한 국가를 뜻했으나, 동시에 '프로이센'인으로서 지배 계층의 위치도 약화된다는 것이었다. 프로이센의 지배 계층인 융커들은 민중의 도전에 대응하여 그들의 왕국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는 신성 로마 제국 황위와 적절한 혼인 관계로 인한 영지 상속으로 유럽 최대의 왕가로 떠올랐다. 카를 5세(카를로스 1세) 때 합스부르크 가는 오스트리아-헝가리-보헤미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남부 이탈리아, 에스파냐에 대한 통치권까지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유럽 전역에 세를 떨치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일 지역에 대한 패권을 상당히 상실하긴 하였으나 여전히 막강한 제국였다. 하지만 갈수록 민족 국가화되어 가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단일 민족 체제를 확립하지 못하고 중세 보편 제국를 지향하는 합스부르크 제국은 불안정하고 국가의 총력을 집중하기 힘들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체제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의식 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르데냐-피에몬테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였지만 통일 국가가 성립하지 못하고 군소 국가가 난립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 때문에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제국과 같은 강력한 패권의 영향 하에 자주 놓여있곤 하였다. 사부아 공국은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사르데냐 섬을 차지하고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개명하여 타국의 패권에서 벗어나 절대왕권 체제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에 프랑스에 영토를 빼앗긴 적도 있었지만 동시에 이탈리아 민족주의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보수적인 사르데냐 왕국의 지도자들은 급진적 성향을 띤 민중적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띠었다. 하지만 사르데냐가 이탈리아 통일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결정과 외세의 도움뿐만 아니라 민중의 지지 역시 필요할 것이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개혁으로 러시아는 어느 정도 서구화에 성공하였지만 여전히 후진적인 제국에 머물렀다. 러시아는 신성 전제 군주가 지배하는 보편 제국 체제로 유지되었고 전 인민의 반 이상이 농노 상태에 머물렀다. 러시아에서도 유럽의 혁명 운동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나긴 하였지만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제국의 차르는 오히려 반동주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다. 러시아의 국력은 충분하였다. 나폴레옹 전쟁에서도 (비록 지형 덕이 컸을 지라도) 나폴레옹에게 승리를 거둬 최종적으로는 그를 몰락시켰다고 볼 수 있었고, 영토는 동서로 광활하였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제국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그 패권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
1776년 영국령 북아메리카 13개주는 영국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켜 승리를 거두워 독립하였다. 1812년 다시 한 번 영국과 전쟁을 치루어 유럽으로부터 간섭에서 벗어난 미국은 진취적인 에너지를 지닌 신생 국가였다. 국토의 자원은 풍부하였고 대륙의 서부로는 미개척된 땅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최강대국이 되기 위해 걸어야 할 길은 아직은 멀고 험했다. 제임스 먼로가 먼로주의를 천명하긴 하였지만, 그것을 지키기에 미국은 아직 약했다. 그 뿐만 아니라 대륙 내부에서도 영국령 캐나다와의 영토 문제는 아직 잔존하여 있었고, 미국과 멕시코는 곧 대륙의 영토를 놓고 싸우게 될 운명이었다.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미국에 동화되지 못한 채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니며 미국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에 가장 중요하게 남겨진 과제는 합중국 정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합중국'은 군소 국가의 집합체인가, 단일 연방 국가인가? 그 문제는 항상 불안의 소지를 안고 있으며, 내전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지도 모른다.
오스만 제국
아나톨리아 투르크인들이 세운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의 막강한 이슬람 제국이었다. 유럽 세계의 온 국가가 힘을 합쳐 오스만의 침공을 방어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신항로 개척 이후 무역의 중심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아니라 유럽 서안으로 이동하자 오스만 제국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여러 군주들이 쇠퇴해 가는 제국을 되살리기 위해 여러 개혁 조치들을 단행하긴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발칸 반도에서는 한 때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인 빈을 함락할 정도로 맹세를 떨치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오히려 수세에 밀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서구의 간섭으로 그리스가 제국에서 독립해 나갔다. 제국의 다른 영토는 '사실상 독립' 상태의 봉신 국가들이 증가하여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무함마드 알리로, 이집트와 시리아 등을 차지하고 오스만 제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었다. 이 늙은 제국은 서구적인 개혁을 효과적으로 완수하고, 남진하는 유럽 열강들을 저지함과 동시에 옛 봉신국을 통합하고 또다시 제국의 패권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
청 제국
중국 문명은 역사상 가장 부유한 문명 중 하나이고 오랜 기간 동안 연속성이 존재하여 왔다. 1644년 명 왕조가 붕괴되고 만주인들의 청 왕조가 새로운 중국의 주인이 되었다. 청 제국은 강희제, 옹정제, 건룡제와 같은 뛰어난 세 황제의 치세를 거치면서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다. 중국 문명을 이어받고 있던 청 왕조의 황제와 관료들은 제국의 부와 위신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제국은 여전히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였고, 그 중심이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만이 진실이였다. 그들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차차 문명의 중심도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제국 내부로부터 피어나고 있는 불안정도 몰랐다. 비대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한 제국의 사회와 경제를 유지하기에 전제 정치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불만감이 표출되었다. 그러나 청 제국 체제는 앞으로 다가올 도전에 대하여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인지하지도 못하였다.
일본
일본은 고유의 천황제를 유지하였으나 실권은 세습되는 막부 정부가 쥐고 있었다. 에도 막부는 쇄국 정책을 통하여 서구와의 통교를 저지하여 왔다. 다른 한 편으로는 제한된 경로를 통해 서구인들과 접촉을 하고 있기는 하였다. 발달한 시장 경제에도 많은 일본인들은 전통적인 사회에서 살아갔다. 그들중 일부는 제한적인 서구인들과의 접촉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내었고,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어렴풋이 인지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일본을 '개화(문명화)'하기 위해서는 더 큰 계기가 필요하였고, 막강한 전통 지배 세력과도 투쟁을 각오하여야 했다.
첫댓글 와 역사적 지식이 대단하시군요. 부럽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인 빈을 함락할 정도로 맹세를 떨치었지만---함락된적이 없지 않나요?
그러게요. 포위한 적은 있어도...
그렇게 되어있네요. '함락할 뻔할 정도로' 이렇게 읽어주세요.
으아아아 엄청나게 잘적엇다 ㄷㄷㄷ
하와이 - 절망 , 알제리 - 풋 , 기사단 - 뭔..
조선-먼치킨 중국-최강국 버마-...... 페르시아-먼치킨
으헠... 중국은 프로빈스와 인구가 너무 많아 노가다라서 하기가 힘들던데요 거기에 큰 만큼 얻어맞을 곳도 많아서.
기사단은 원본 시나리오들에서는 독립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중국은 땅 좀 떼 줘도 여전히 산업력으로 1위...
바이에른이 없다니
잘 쓰셨네요..
프랑스가 감기가 걸리면 유럽은 재채기를 한다. 감기가를 감기에로 고쳐 주세요.
'(병)이 걸리다'는 약간 비문법적인 구어체 표현으로 많이 사용됩죠.
'가'가 연속으로 사용되니 어감이 이상해지잖습니까.
'내가 고자가 되었다'는 별로 이상하지 않지요? ㄲ
물론 '감기 ~~' 문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사소한 것에 너무 깊이 파고들지는 맙시다 ㄲ
VIP 모드에서 1월 2일에 발생하는 이벤트로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오스만투르크가 빈을 함락시킨적은 없습니다. 포위에만 성공했죠
재밌게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