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79장(구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본문의 중심 내용 : 계속해서 욥은 악인에게 재앙이 닥치는 것조차 쉽게 볼 수 없다고 반박하면서 친구들과의 둘째 논쟁의 회전을 마무리합니다.
[성경읽기]
17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18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되었도다 19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0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 보게 하며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할 것이니라 21그의 달 수가 다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22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23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4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25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27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속셈도 아노라 28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30악인은 재난의 날을 위하여 남겨둔 바 되었고 진노의 날을 향하여 끌려가느니라 31누가 능히 그의 면전에서 그의 길을 알려 주며 누가 그의 소행을 보응하랴 32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33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앞서 갔으며 모든 사람이 그의 뒤에 줄지었느니라 34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
[말씀해설]
욥은 21장 앞 부분에서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별탈 없이 장수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편안히 죽는다고 하소연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앞에서 악인이 행복하게 잘 산다고 한 것에 이어서, 악인이 당연히 받아야 할 재앙이 좀처럼 악인에게 내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내릴 때도 있다는 것을 욥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실상 그런 일에 드물다고 말합니다. “(욥 21:17)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라고 되묻습니다. 악한 자들의 등불이 꺼진 일이 있느냐? 과연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 일이 있느냐?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그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신 적이 있느냐? 고 되묻습니다. 그런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이렇게 변명할지 모릅니다. 비록 악인이 직접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지 몰라도 자식대에서라도 심판이 임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욥은 주장합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가 벌을 받아야 하지 애꿎은 자손들이 그 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욥 21:19) 하나님은 그의 죄악을 그의 자손들을 위하여 쌓아 두시며 그에게 갚으실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개역성경 번역은 좀 부정확합니다.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아버지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 갚으신다고 말하지만, 그런 말 말아라! 죄 지은 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제 죄를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22절부터 26절에는 이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본들 선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고 한탄합니다. “(욥 21:23-26)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4)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25)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욥에게 인과응보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삶보다 더 부당한 게 있습니다. 바로 ‘죽음’ 입니다. 욥의 생각에 의인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다가 평안히 죽어야 합니다. 악인은 힘들고 비참하게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는 의인과 악인의 구분이 무의미해집니다. 둘 다 흙에 묻히고 구더기에 덮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전 9:2)고 고백했던 전도자처럼, 욥은 보응신학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죽음 앞에서 허무를 느낍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번성하게 하는 증거를 보여달라’ 요구하는 친구들에게, 욥은 길 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고 합니다. “(욥 21:28-29) 너희의 말이 귀인의 집이 어디 있으며 악인이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 하는구나 (29)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행복하게 사는 악인을 본 경험이 누구든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재앙을 내리셔도, 항상 살아남는 사람은 악한 자”라고 합니다. 그 악한 자를 꾸짖는 사람도 없고, 그가 저지른 대로 징벌하는 이도 없습니다. 그가 죽어 무덤으로 갈 때에는, 그 화려하게 가꾼 무덤으로 갈 때에는, 수도 없는 조객들이 장례 행렬을 따르고, 골짜기 흙마저 그의 시신을 부드럽게 덮어 준다고 합니다.
욥은 마지막으로 “(욥 21:34)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느냐 너희 대답은 거짓일 뿐이니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빈말로만 나를 위로하려 하느냐? 너희가 하는 말은 온통 거짓말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ᅟᅡᆫ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예측을 넘어섭니다. 악인이 여전히 번영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다 해도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인내를 갖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반 원리를 존중하해야 합니다. 그런 중에도 그것까지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겸손히 받아들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