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난 전시회
석야 신웅순
아내가 난 전시회를 열었다고 가보자고 한다. 친구 남편이 키운 난을 보러가자 한다. 제일 멋있고 최고라는 것이다. 따라 나섰다.
난화는 더러 주위에서 보았지만 별도의 전시회는 처음이었다. 동양난은 화려한 서양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떤 기품을 갖고 있었다. 단아하면서도 운치가 있고 격조가 달랐다.
난화가 노란색, 황색 같은 것들도 있었고 자주색, 연두색 같은 것들도 있었다. 색상, 명도, 채도만 조금씩 다를 뿐 뭐라 집어 말할 수 없는 고결한 꽃들이었다.
오묘한 난 빛깔을 어찌 빚었을까. 소쩍새가 더 많이 울고 천둥이 더 많이 울면 시늉할 수나 있을까. 사랑과 정성이 다하면 저런 빛깔이 우러나는 것인가. 단아한 자태에 그윽한 향기는 어디 비할 데가 없을 것 같다. 어떤 것은 옷고름을 입에 무는 듯하고 어떤 것은 님이 먼 길 떠날 듯하고 또 어떤 것은 학이 막 비상할 듯 하다. 그렇게 한 인생이 조용히 피어있다.
공자는 정치의 꿈을 접고 고국인 노나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인적 없는 산속을 지나고 있었다. 어디선가 향긋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공자는 수레에서 내려 향기가 나는 것을 가보았다. 잡초 사이에서 아름다운 난이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보아주는 이가 없어도 묵묵히 그윽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고결한 태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군자의 모습이라고 했다.
논어의 학이편은 이렇게 썼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교수시절 연구실로 손님들이 난분을 갖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그분 생각에 정성을 들였지만 바쁘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까마득 잊기 일쑤였다. 천덕꾸러기였다 생각하니 수명인들 온전했으랴. 이후 나의 난 선물들은 난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 주인을 만나게 해 주었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내게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준 난분들이다. 잘 키워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해 주는 것이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결한 태도를 잃지 않는 난이다. 추사는 난을 제일가는 향기를 품은 군자(國香君子)라 했으니 어디 간들 은은한 향기야 잃겠는가. 소인인 나이다. 어찌 이 깊은 향기를 헤아렸을 것인가.
서예를 시작한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글씨는 뱁새 걸음인데 세월은 황새걸음이다. 빠른 세월을 글씨가 따라갈 수 없다. 묵의 길이 끝이 없고 멀기만 한데 난을 치는 것이나 난을 기르는 것이 어찌 다르다할 것인가.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경지는 서예만이 있으랴. 깊은 경지가 아니면 이런 난화를 피울 수가 있었을까.
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아내 친구의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기품 있는 난으로 키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난을 닮았을 것 같은 그 분들이 자못 경외스럽다.
난을 키우는 것만도 군자이다.
-2023.1016.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첫댓글 난 그리기에 매진하고 있는 중에 난에 대한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