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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미스테리 1 (이성계)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1772
■ 한국사의 미스테리 2 (려진과 이성계)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1838
■ 한국사의 미스테리 3 (대한민국)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055
■ 한국사의 미스테리 4 (무역대국 고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480
■ 한국사의 미스테리 5 (타타리아)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767
■ 한국사의 미스테리 6 (위안스카이와 모택동)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880
■ 한국사의 미스테리 7 (왜 하필 china 일까)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3096
■ 한국사의 미스테리 8 (진시황의 병마용 무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3191
■ 한국사의 미스테리 9 (아시아 Asia)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3375
■ 한국사의 미스테리 10 (한글과 이두)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3520
■ 한국사의 미스테리 11 (삼국사기)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3592
■ 한국사의 미스테리 12 (강화도)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4716
■ 역사의 미스테리 13 ("왜"의 정체에 대하여)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4841
■ 역사/ 가설과 팩트의 사이에서...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5140
■ 한국사의 미스테리 1 (이성계)
일단 이글 졸라 길구...영양가도 별루고...시간남는 분만 재미로 읽기를......
별 의미없이 재미루 쓴 글이니까...딴지는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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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반도 정세를 보면 ... 소위 폭풍전야 ...
쓸글이 많지만 ...잠시 뒤로 미루고 ....평소 궁금하게 생각되던...역사에서 몇가지 미스테리..... 사실 이해하기 힘든 건데...모두들 너무나 쉽게 지나간 몇가지 사실들......
그중에서 이성계, ... 참 이해가 안되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대한민국4천5백만 국민이 모두 알고 있듯이 전주 이씨이다, 근데 이 사람의 고향은 조선북부 동북면이다....
이성계의 조부 이안사는 원나라 관리 출신이고 대대로 동북면에서 귀족노릇을 했던 사람이다. 본가는 전주인데, 고향은 함경도.....몬가 이상하다.
그때는 지금처럼 무슨 글로벌 시대도 아니구... 말 그대로 고향땅 떠나면 목숨조처 보장 받지 몬할만큼 철저하게 씨족 중심의 사회였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본래 전주에서 살았는데, 정치적 혼란기때 북쪽으로 갔다가 걍 눌러 산거라...말하지만....그게 말이 안되는게, 이성계는 그쪽의 최대 호족이었거든 ...호족이란...자신의 근거지에 대한 지지와 통제가 가능해야 한데.....
당나라가 평양성을 함락하고도 고구려 영토에 대해 단 한치의 땅도 몬 빼앗은 것은 토착민의 강력한 저항때문거든... 근데 전주에 살던 사람이 홀로 함경도에 가서 호족이 된다? 웃기는 소리이다.
그래서 결론은, 본래 전주이씨의 집성촌이 함경도 였는데, 후에 떼로 남쪽으로 이민했거나, 아니면 그 반대거나....
그도 아니면 둘다 구라거나.... 아니면 이성계는 본래 여진인 이거나....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면, 진짜 이상한게.....용포의 색이 청색이다... 근데 이성계 이후 모든 조선의 왕의 용포는 적색으로 바뀐다...그럼 이성계는 왜 청색의 용포를 입었나? 조선왕조 통털어 청색 용포를 입은 사람은 공식적으로 딱 2사람...하나는 이성계...또 다른 하나는 흥선대원군...아이런하게두 조선왕조 창시자와 마지막 인물이 똑같이 청색 용포를....
청색은 하늘을 뜻한다... 칭기스칸 테무진도 푸른늑대라고 했는데, 여기서 청은 역쉬 하늘을 뜻함....하늘아래 있는 늑대....
후금 를 건국한 여진족은 아예 국명을 청으로 하구.....그래서 청색은 대륙조선 즉 청나라의 신성한 나라의 색깔인 셈이다, 근데 이성계의 용포가 청색이다....아무래도 몬가 냄새가 난다.....
글구 조선 초기때 명나라와 가장 심각한 외교갈등을 보였던게 모냐믄?
무신 경제문제도 아니구 군대문제도 아니라...바로 이성계의 족보 문제였거든....명나라 너것들이 쓴 이성계 족보 문제 있으니...이렇게 고쳐 달라...이 짓을 무려 200년두 넘게 했다...말이 200년이지 대한민국이 건국된게 고작 60년이거든...근데 이백년 동안 이성계의 족보의 오류를 고쳐달라구 명나라와 신경전을 했으니..
역쉬 위대한 한민족이다... 당췌 조선에서는 이성계의 모를 그렇게 감추고 싶어했을까???
이성계 하구 이방언 하구 부자기간 이라구 보기에..너무 서로를 미워했는데, 당시 한양에 있던 방언은 함흥에 있던 태조에게 차사를 보내지만 매번 거절당한다...근데 생각해 보자.....한양과 함흥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대충...서울에서 속초거리 되지 않을까..생각된다..... 자동차로 2~3시간...말로 달리면 하루길...걸어서는..잘 모르겠다......
이성계가 이방언을 치기 위해 그쪽 동네서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며 훈련하고 있었는데, 이방언은 그걸 전혀 모르고 있다....말타고 가면 하루길인데...몬가 이상하쥐?? 그정도 대규모 군대 훈련이라면 입소문을 타고와도 몇일이면 충분한데...
그래서 이 모든걸 종합해 보면...결론은....
전주 이씨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이성계 이전의 전주 이씨는 개뻥이다....
이성계의 본가는 조선 북부지역이고..... 그 지역은 여진족이 사는 땅이구....이성계의 조상은 여진부락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의 부족장일 가능성이 높으며...몽골제국에 의해 발탁되어 관리로서 출세했을 것임.... 그러다가 고려왕실에 충성을 하는데...
이건 자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고려말기때는 몽골도 쇠락기...그래서 고려의 반몽골 정책이 시작되어 북부 지역에 대한 고려의 영향력이 다시 강성해 지자 이 지역에서 대대로 강력한 호족이었던 이성계의 조부 이안사가 고려에 투항한 것....이렇게 대충 정리가 된 듯 합니다.
그러다가 구테타로 정권을 잡아 개국을 했는데, 문제는 족보이다....정통성을 위해서는 조선의 오리지날 귀족이어야 했는데, 실재로는 북부지역의 여진인 호족 출신이었거든....그래서 이걸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와중에 나온게 전주이씨...... 그래서 조선은 명나라에게 이성계의 족보를 고쳐달라고 200년간 요청...
근데 이성계 자신은 스스로가 북부 여진 출신인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왜냐믄?
북방의 상징인 청색을 용포로 당당하게 입을 걸 보면.....
근데 누가 조작하길 원했을까? 당연히 이방원이다, 형제를 쥑이고 애비를 핍박해서 왕권을 찬탈했으니....본래 근거지인 북방에서 사람 취급 받기는 틀렸거든... 게다가 북방은 아직도 방언을 왕으로 인정안하구....
그래서 함흥에 직접 몬가고 차사만 보냈던 거다,,, 거기는 방언이의 나와바리가 아니거든.... 돌 맞아 죽기 딱이다....
그래서 청색 용포를 입지 몬한거다....청색은 북방의 천자가 입은 옷인데, 방언은 북방에서 개차반 취급당하거든...그래서 적색으로......
근데 내가 진짜 궁금한게...과연 이성계가 방언 꼴보기 싫어서 갔던 함흥이 지금 함흥이냐, 라는 것이다. 말로 하루길....천천히 술마시고 놀다가두 3일길인데...
글구 그쪽 동네는 산이 험준하고 먹을 것도 별루 없구....협소해서...태조가 대군을 양성하고 있기에 몬가 적당치 않다....
그래서 유추해 보면....이성계의 본가는 몽골에서 쌍성총관부를 설치한 인근이다.... 그리고 그곳은 여진부락이 방대하게 퍼져 있는 곳이다....여진족은 유목을 한다...양떼와 소떼들......유목을 하려면 당근 광활한 초지가 있어야 하는데, 함경도 지역은 더덕이나 캐기 딱 좋은 곳이거든.....개 키우기도 괜찮구.....
그래서 구글 지도를 펴보고 살펴보니.....대규모 목축이 가능한 곳이 딱 보인다, 첫째는 만주벌판이구...둘째는 중앙 아시아 이다...근데 중앙 아시아는 넘 멀지?
유목하는 사람이야...만주에서 지금의 동유럽까지 자유로이 다녔으니....중앙아시아도 결코 먼거리는 아니지만...어쨋든....
지리적으로 보면 파미르 고원을 전후로......천산 산맥을 전후로 대충 갈라지는데.... 이성계가 머문 함흥은 결국 천산산맥 안쪽 즉 현재 동만주 지역이거나...아니면 파미르 고원 안쪽 즉 신장 위그르 지역이라는 소리인데....
개성의 이방언이가 태조의 대규모 군대 훈련에 대한 어떤 정보를 얻지 못한걸 가정하면, 한반도 가까운 만주땅은 아니구....지금의 중국 내몽골 자치구...정도나..아니면 적어도 지금의 요하 서쪽 즉 옛 요동지역인데....
아무래도 요하 서쪽일 가능성이 높음, 왜냐믄? 사서에서 나오듯 이성계는 요동을 점령하고 통제했거든..... 따라서 옛 요동 즉 지금의 난하 인근에 머물렀다는 것이고 본래 여기가 함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옛 요동은 고구려 시절부터 여진의 본거지이거든.... 본래 전주이씨의 본향일 것이구.....
나중에 세종때에 북방지역 사람들을 위문하고 애쓴 것은, 실상 이방언에게 강한 반감이 있던 요동과 만주 지역에 대한 포용정책이구... 후에 북방의 영토를 더 개척하는 밑걸음이 되는데...만주 요동이 태조때 부터 조선의 영토 였다면 과연 세종이 개척한 북방은 어데??
북부 연해주와 북만주( 바이칼 호 인근)로 생각되는데, 나중에 이순신 장군이 녹둔도 에서 복무한 걸 보믄....근데 녹둔도는 어데??
섬인데...지도를 보면... 현재 사할린 섬일 가능성이 높다, 사료를 보면 녹둔도를 빼앗기면 도성까지 휘리릭~
지도를 보면 사할린에서 오면 흑룡강을 우회하여 곧장 함경도 북부 지역으로...여기서 한양까지는 말로 하룻길...졸라 위험하지.... 내가 볼때 본래 압록은 흑룡강이거든....지리적으로 흑룡강과 현재의 압록은 크기만 다르지 똑같음... 지도를 보기 바람.... 그리고 현재 압록은 서해 쪽이나 강같이 보이지 동쪽은 거의 시냇가 수준....강이라고 말하기도 힘듬.....그냥 내울가.....
그래서 세종이 개척한 땅은 현재 러시아 령으로 되어 있는 흑룡강 남쪽의 연해주와 사할린 섬...... 본래 발해 영토...
이 영토는 조선 말기때 까지 유지되다가....일제때 다 날아감.....이건... 소련과 중국이 본래.. 북한의 영토로 만주를 포함시켰다가...후에 전국을 통일한 중국이 ...아쉬울게 없으니...없던걸루 해주세요~ (어서 읽은 내용...객관성 책임 못짐) 한 걸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옛 근대 서양지도를 보면 ...
지금....대충 황하 이남은 차이나....그 이북은 타타르 혹은 타타리아....
지도들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충 황하나 난하 이북은 타타리아...이남은 차이나....
근데 이상한게...18세기쯤 되면 대륙조선 즉 청나라가 대륙을 석권하거든...연해주는 물론 지금 몽골땅 까지......
근데 왜 양넘들은 속된 말루 만리장성 이북땅은 타타르 라고 있을까????
그건 그땅의 주인이 조선이기 때문..... 청을 건국한 여진은 나중에 자신들의 본거지를 까묵을 정도로 만주지역을 잊었거든...그래서 일방적으로 만주 지역을 봉금지대로 선포하고 ...사람즉 조선인 출입을 금했는데.....신성한 지역이라고 해서....
그렇다구 그 지역을 청 즉 대륙조선이 관리한 것두 아니구..걍 사람만 몬 다니게 했음... 그래서 한때 관리가 안되는 땅이었는데....
그때가 서양넘들이 지도 졸라 많이 그리던 때......양넘들이 볼때...그땅은 청나라 땅도 아니구....조선땅 같은데...사람이 거의 안살구.....
그래서 따로 분류해서....타타리아.....이렇게.... 뜻은 걍 북방 아시아 유목 민족을 둥리뭉실 하게 부른 것.....
나중에 청나라에서 봉금해제 하니까...본래 살던 조선인이 다시 그 땅으로 귀향하구..... 그러니까...청과 국경선 분쟁도 있었구.....
그 분쟁 지역은 지금의 압록강과 송화강이 아니라 지도상 아무르강과 송화강 접점에 북쪽으로 올라가는 강줄기 즉 흑룡강.....거기가 토문인듯 싶구.....지도를 참조...
그니까 조선말기 청과 조선은 남북으로 가르는 흑룡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조선땅 서쪽은 대륙조선(청)땅...이렇게 싸웠던 거 같음...
그니까...지금 간도 회복 단체에서 알고 있는 간도 지역 역쉬...잘못된 것이라는 거....
하긴....지도를 보면 명나라는 요동을 넘어온 적이 없거든....그럼...그 광활한 요동과 만주땅이 주인없는 빈땅이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참 골때는 건데...지금까지 누구하나 태클 건넘이 없거든...특히 역사 공부한 넘들....
그럼 이성계는 주인 없는 땅에 혼자 원맨쇼 한건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원래 정명가도...명나라 정벌하려 하니 조선은 길만 빌려 달라고 했거든....
근데 조선의 지금의 한반도 라면...궂이 왜넘들은 조선길이 필요했을까??
일본 북부에서 지금의 블라디 보스톡에 상륙해 걍 바로 명을 치면 되었거든...당시 배에 관한 기술이 가장 선진국이었다는 일본이.....(내생각...)
괜시리 조선하고 전쟁할 필요가 있었을까????
근데 압록이 흑룡강이라고 보믄...그 북쪽은 넘 멀구 영구 동토층이거든...돌아갈 수 없는 땅......그래서 조선의 길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히데요시의 정명가도가 사실이라는 가정아래......
더 쓸게 있는데.....
넘 길고...귀찮구.....
부채도사 출동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1772
■ 한국사의 미스테리 2 (려진과 이성계)
지난번에 이성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가 여진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진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부담없이 심심풀이로 읽어주길~
한국 고대사를 보면 이상한게....중간 중간...영화의 엑스트라 처럼 잠시 얼굴 내밀구 후다락 사라지는 애덜이 있다...
애네들은 뚜렷한 근거지도 없구....기록은 더더욱 없구...잊을만 하면 나타났다가...약탈을 하거나 아니면 고구려의 압력에 의해 특히 신라를 졸라 공격한다.
고구려 시대에는 애네들을 말갈이라 불렀고, 후대에는 읍루 혹은 숙신이라고 하기도 했고...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여진이라 불리우는 애덜이다.
대조영이 본래 말갈 족속이라고 하고.. 어쨋든 말갈 중에 가장 대빵은 흑수말갈이었는데, 애네는 심지어 고구려 시대에도 독립을 유지했다니...강성하긴 강성했던 것이 틀림은 없는 것 같다.
어쨋든 여진에 대해 말해보믄.....
여진의 뜻부터 알아봐야 한다......여진은 본래 려진이다...ㄹ 이 앞으로 가면 ㅇ 으로 변하는 한글 법칙...음..기억이 안나지만 그런게 있다.....-.,-
여진은 즉, "려" 인데.....그럼 려는 몬뜻이며...주변에 려 무리가 또 있나?
잘 생각해 봐라...졸라 많다....일단 고구려...고려도 마찬가지....앞의 고, 는 한자의 높을 고이다... 즉 하늘의 뜻이다....앞글에서 여진인들은 하늘의 색을 청색으로 한다고 했다..어쨋든....
려는 무리를 뜻하는 말이다...무리 라기 보다면 민족을 뜻하는 것으로 봐도 된다... 따라서 고려는 하늘의 무리 혹은 하늘의 민족...이란 뜻이고 강력한 천손사상이다....
그럼 여진은....현재 한자로 보면 기집녀 에다 참진자 인데... 해석해 본다믄?
진짜 여자이다...진짜 싸나이도 아니구 진짜 여자.....말타구 주변국 약탈하는 소위 야만의 이미지가 여진족인데...진짜 여자...아무래도 이상하쥐? 후대에 한자가조작된 거루 봐야한다.
그럼 본래 뜻은....여 즉 려는 고려의 려와 같다,,...무리 혹은 족속이란 뜻이다...이뜻이 아무래도 계집이란 뜻보다는 더 자연스럽지?
진은 참진...그래서 해석하면 ......... 진짜 려의 무리란 뜻이다...다른말로 하면 오리지날 려의 무리......
그래서 결국 고려나 여진이라 같은 말이다....
그럼 궁금한게..."려"의 무리는 과연 역사에서 누굴 말하는 걸까???
오늘날 우리 고대사의 상당 부분은 중국측 사료에 의존하고...그게 오리지날이라 고명하신 강단 사학자들은 강변한다.... 우리자료란게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빼곤 없구..그나마 삼국유사는 신화라고 별종으로 치부한다.
동이족을 뜻하는 흉노, 북적,등은 중국 사서에서 이름을 준 건데...한마디로 야만족이란 뜻이다....우리가 우리조상을 야만족 이라고 사서에 적을리가 없겠쥐?
그럼 중국 애덜은 "려"를 어떻게 읽었을까???
"리 혹은 례"이다.....그래서 고구려를 고구리 혹은 가오리 라고 한다....
본래 "려" 를 "례"로 읽었다면.....중국 사서에서 반듯이 그 민족을 언급했을 것이다.....
누굴까???
바로 예족 이다...우리민족이 통상 예맥족 이라고 하쥐? 즉 예족과 맥족의 융합이란 뜻인데.....예맥의 예 즉 례가 여진의 려인 것이다.
따라서 고려나 여진이나 알고보면 다 예족이란 뜻이다......단군의 자손.....
갠적인 생각인데...우린민족 역사의 미스테리를 푸는 열쇠는 ..... 발음에 있다고 본다...몬 소리냐구??
풍신수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이다.....가등청정은 가또......
즉 한자표기와 본래 발음은 다르다는 것이다...어쩌면 대조영 보다 발해건국에 더 큰 공헌이 있을 걸사비우....이름이 어째 쫌 쭈구리 하지....대조영의 아버지 이름은 걸걸중상 .........
근데...대조영의 성씨는 대씨인데...아버지는 걸걸씨.....무신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명색이 황제집안인데...몬가 졸라 이상하쥐?
그래서 내 생각에는 우리 이름과 지명의 본래 오리지날 발음을 찻아야 역사의 미스테리가 풀린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성계의 본래 오리지날 발음은 몰까? 걍 이성계 라고 말한다면 할말이 없다...-.,-
그럼 우리 주변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을 찻아보자....일단...당나라의 태조..이연이....그의 오른팔..이적...그리고...이씨 당나라 황제들....근데..아쉽게도 당나라 태조 이연의 오지지날 발음을 알길이 없다....
그리고 또 누가 이씨 일까???
그렇다...얼마전 종영된 사극드라마 천추태후의 적국인 거란 이다....거란은 이진충과 이굴가 이해고등 쟁쟁한 이씨들이 대륙을 휘젓구 다녔다.....즉 이씨의 자손이 거란의 초대황제가 되었고...거란 태조의 이름은 야율아보기이다.....
야율아보기...바로 야율, 성씨이다...즉 대조영과 함께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거란의 카인 이진충의 성씨 이를 거란인들은 야율로 불렀던 것이다....
한자표기 야율의 본 발음은, 옐뤼 이다.(위키백과 사전 참조)
근데 거란의 발음과 조선의 발음이 다르니....거란의 이를 옐뤼 라고 읽는다 해서 우리도 같은 발음은 절대루 아니다.
그럼....여진인들은 이성계를 모라 불렀을까???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등잔 밑이 어둡다......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이...백안 첩목아 이다....오리지날 발음은...빠이앤 티무르..... 고려 말기 많은 왕족의 이름은 티무르 였다...아마 몽골의 황실성씨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이씨에 대한 오리지날 발음이 사서에 있다.... 이지란..이란 사람인데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했고...기타 여러 전공이 있어 일등공신으로 봉해진 자인데...이 사람의 오리지날 이름이...쿠룬투란 티무르 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성씨 이씨가 원래는 첩목아 즉 티무르, 가 아닌가생각이 든다.
왜냐믄?
몽골의 황족 성씨가 첩목아 즉 티무르 였는데.. 13대 문종은 투쿠 티무르....15대 순제는 토곤 티무르.....
근데 이지란이 쿠룬투란 티무르 이니...본래 여진의 부족장이던 구룬투란 티무르를 한자표기한게 이지란 이니 티무르는 이씨가 되는 셈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건데...
왜냐하믄?
이성계의 집안은 대대로 몽골제국에서 관리로 지냈거든...그러면 당연히 몽골식 이름을 가졌겠구....그럼 성씨가 티무르 인게 당연한건데.....
그리고 다른 인물을 봐도 이씨는 거의 티무르로 표기한다... 이성계와 적으로 싸운 동녕부의 장수 이원경은 이우로 티무르~
몽골 황씨 성이 티무르니 칭키스칸의 성도 당근 티무르 .....한자로는 첩목아....
그러니까...결론적으로...
티무르 란 한가지 이름을...필요에 따라 고려때는 첩목아 혹은 특목 이라구 표기했구....조선때는 이씨로 표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이해고도 티무르 이고,....당나라 태종도 이세민이도 결국 티무르~
하긴 당나라를 세운 민족이 선비 유목족 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면 북방 유목민의 이름인 티무르가 너무나 당연한 명칭......
근데 쫌 어색하다...
세종대왕의 이름이 이도인데...원래는 티무르~ -.,-
사실
100년전에 일어났던 안중근 의사의 행적도 사료가 없으면 알길이 요원한데... 오백년전의 일을 걍 오늘날과 같겠지..라고 생각한게 오히려 현대인의 오만이 아닐까?? 라고 생각도 해본다....
어쨋든 역사 공부하는 분덜.....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음운학(맞나??)에도 신경써....원래 우리의 발음과 표기를 찻는 것도 힘써주길...내생각에는
이게 역사의 미스테리를 여는 판도라의 키인데..... 그렇다면 신라의 대야성의 위치와 백제의 한성 그리고 고구려의 평양의 원래
위치는 저절로 드러날듯...
갑자기 번뜩이는 생각인데...
왜 조선은 티무르를 이씨로 불렀을까??
근데 그걸 내손으로 문장 전반부에 써놓구...음...@.@
여진의 려를 중국에서 례 혹은 리로 불렀으니까.....
이성계는 여진의 려를 성씨로 쓰지 않았을까??
려에는 천손 즉 하늘의 자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니까...왕실 성씨로는 따봉인 셈이쥐...
근데 이걸 한자로 李 로 표기했는데, 처음에는 려로 읽었는데...나중에 중국식 발음인 리..즉 이 로
바뀌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냥 갑자기 생각난 건데.....생각은 자유니까...넘 모라 하지 말구.....
부채도사 출동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1838
■ 한국사의 미스테리 3 (대한민국)
대~한민국 ....뜻풀이하자믄....위대한 칸이 다스리는 백성의 나라......여기서 위대한 칸을 뜻하는 대한은 고구려의 고와 같은 의미가 있다. 고구려 혹은 고려는 하늘을 뜻하는 고와 백성들을 뜻하는 려가 합한 이름이다, 그래서 하늘의 자손.... 대한도 위대한의 의미는 대자와 재왕을 의미하는 한이 합하여 위대한 칸이 다스리는 나라....천손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고려와 대한민국은 글자는 다르지만 뜻은 같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야만인이라고 멸시하던 여진이 사실은 려진이고 고려와 동일한 "려"의 무리임을 지적했다. 또한 려는 례와 같은 음이니 예맥족의 예(례)족이 사실상 고려이고 또한 려진이라고 했다.
또한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려진 출신이다고 했다.
여진은 다른 말로 말갈이라고 불리우며 말갈은 크게 7개로 분류된다, 이중 가장 대빵은 흑수말갈이다.
그럼 대한민국과 여진 혹은 말갈과 몬 관계가 있냐구??
아주 깊고 깊은 관계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우리가 여진임을 부인할 수 없는 반증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허~ 우리같은 동방예의 지국이 어찌 그런 천한 오랑캐와 같은 족속이란 말인가, 하며 방방 뜨실 분덜도 있겠지만....인정하든 말든 부인할 수 없는 팩트는 우리 핏속에 여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라의 왕을 칭하는 호칭은 후반에 가서야 왕이지...초중반은..거서간, 마립간 그리고 차차웅이다. 앞으로 태왕의 영원한 노예가 되겠다고 맹세하던 내물왕도 사실은 내물 마립간이다. 왕이란 호칭은 지증왕때 부터 씌여졌다.
마립간 혹은 거서간의 "간"은 칸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고, 칸은 본래 한을 발음한 것이다, 따라서 한 -> 칸 -> 간.... 이렇게 변한 것이다. 중국 사서에도 보면 한의 무리가 와서 변방을 약탈했다, 라는 기록이 빈번한 걸 보면..한은 특정 무리를 뜻한다기 보다는 북방 초원 유목민을 광범위하게 이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완성했던 몽골은 다섯개의 연방으로 이루어졌는데, 차카타이 한국, 일한국, 오고타이 한국, ㅤㅋㅣㅍ차크한국, 완안부 한국.....우리가 원나라 라고 부르는 것은 실상은 몽골 울룹의 5개의 연방국중 하나인 완안부(元) 한국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한을 국호로 뜻한 곳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한, 변한 그리고 진한이다. 백제는 마한 소속의 무리가 성장하여 이룩 제국이고 신라도 역시 진한의 무리가성장하여 세운 나라이다.
어쨋든,,,,고려나 백제나 글구 신라나 전부 결국 한의 무리가 세운 나라인셈이다.
이렇게 보면 "려"는 곧 "한"이고 "한"은 곧 "려"이다. 또한 "려"는 "례"와 같으니...동방의 례의지국이란 말은 곧, 본래 "례"의 무리를 지칭하는 말과 같다.
2002년 월드컵때....터키는 감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물론 4강이라는 신화때문이기도 하지만...이만리 타국에서 보여준 열렬한 터키응원 때문이란다....
근데 생각해보면...단순히 응원때문일까???? 거기에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는 한국사의 미스테리가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관문이다. 즉 터키를 기준으로 아시아와 유럽이 나뉜고 또한 터키는 기독교가 성장하고 뿌리를 내린 일종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이 충돌하는 곳이 바로 터키이다. 터키는 크게 둘로 나뉜다, 동터키 그리고 서터키.....서터키는 우리가 티비에서 자주보는 터키이고...현재 터키의 주류라고 보믄된다, 반면 동터키는 이른바 몽골로이드이다, 즉 한국사람과 외모가 비슷하고,문화와 풍습도 또한 유사하다.
터키는 영국 촌놈들이 식민지 발음으로 부른 것이고, 본래는 투르크 이다. 투르크를 한자로 음차하면 돌궐이다...어서 마니 들어보지 않았나??
고구려가 수나라와 박터지게 싸우고 있을때 배후에서 연개소문을 도왔던 북방유목민이 바로 돌궐족이었다. 갑자기 생각되는게, 어떤 이유로 돌궐은 이렇게 멀리 유럽 변방까지 이주를 했을까? 라는 점이다.
우리는 터키를 걍 6.25때 도와준 유엔군의 일부라고 알고 있지만 터키가 한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 보다 훨씬 더 애틋하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한국은 터키와 같은 핏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유럽에 출장 나가면...심심치 않게 듣던 말이....오 피를 나눈 형제여~...졸라 징그럽지만....언뜻보면 가식이 있는 건 아니었다.
갸네들이 모라 생각하든 말든...중요한 건, 우덜의 생각인데....
그동안 백의민족 논리에 빠져....우덜과 중국만 빼구 모두 오랭캐 라고 폄하했었는데 ... 실은 알고보면...그 오랑캐와 우덜은...같은 형제인기라~ 한마디로...혈통적 딜레마에 빠진건데.... 근데 생각해보면...언제 부터 우덜이 이런 좁은 혈통적 도그마에 빠졌을까??
딱 답이 나온다...첫째는 병자호란때이다, 삼전도의 치욕을 잊지 몬하는 인조가 결국 편협한 논리로 북방의 형제들과 결별을 선언한 뒤로...점차 멀어졌다고 보믄된다....근데 말이다...전 부터 졸라 궁금한게 하나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도 망하고... 일본도 중앙정치무대가 뒤집어 졌구....근데 조선만 멀쩡하거든...게다가 몇십년후 대륙조선(청)의 침입으로 조선은 항복을 하며.....항복의식도 하구....
그러면서...몇백년을 계속 더 이어간다??
나는 여기에 몬가 모르는 미스테리가 숨어있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일단 왕조사를 보자....선조때 임진왜란 터진다, 졸라 비겁한 선조는 의주까지 토낀다....그리고 모든 전쟁은 실질적으로 광해군이 수습을 하며 진두 진휘를 한다....
글구 광해군은 즉위하고 임진왜란도 쫑난다.....여기까지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그 다음이 당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간다. 모냐믄?
인조가 반란을 일으키는데, 명분은 인목대비 폐비건이다.....효에 대한 명분이라... 근데 생각해보자...당시 상황이 어떤가를....임진왜란으로 당시 농토의 절반이상이 소실되었고 젊은 노동력 역시 부족한 때이다.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경제적으로는 위기이며....신분제 조차 흔들릴때이다, 이건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다는 말이된다.
이와중에 외교적 감각으로 국제사회에서 전쟁을 피하고 있던 광해군은 인조의 반란으로 폐위당하며....반청 정책을 쓴 인조는 결국 청나라 즉 대륙조선과 한판 뜨게 된다.
나는 여기에 두가지 별개의 사건이 하나의 사건으로 편집되었다고 생각한다, 첫째...임진왜란과 광해군 사건과 둘째 인조와 병자호란 사건은 사실 각각 별개의 사건이다. 여기서 별개의 사건이란...별개의 왕조에서 일어난 사건을 뜻한다.
이는 다시말하면 조선이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실은 두개의 나라 라는 추측이다. 여기서 부터 잘 따라오시기 바란다....
이성계는 이방언의 역모에 열받아서....이방언을 저주하며 떠나 버렸다...함흥으로.... 그래서 이방언은 이성계를 다시 모시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실록에는 말년에 이성계를 모셔왔다고 하지만 나는 그걸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 이성계는 홀홀단신이 아니라..수십만 병사를 움직이던...사실상의 군통치자인데...
이성계를 모셔왔다면...당연히 이성계를 지지하는 정치세력과 군부 그리고 수십만 군대까지 투항해야 한다...근데...실록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즉 이는 몬말인고하니??
이성계를 지지하던 세력은 이방언과 별개의 조선을 건국...아니 정확히 말하면...조선이 이방언 지지와 이상계 지지로 분단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조선은 초기부터 분단되 2개의 조선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신록에는 이성계가 이방언을 죽이려 활을 쏘고 철퇴를 숨겼지만 그때마다 이방언은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 이건 사실상 전쟁으로 봐야 한다. 즉 군사반란을 일으킨 이방언을 제압하려 태조가 직접 정벌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신록에도 이성계는 이방언을 치기 위해 엄청난 수의 군대를 보유했지만...그 이후 이군대에 대한 기록은 없다....이상하쥐?
글구 고려말 부터 조선초까지 밥먹을 시간도 없이 오로지 전쟁에만 매달리던 시국이 갑자기 조선개국 후..조용하게 된다...임진왜란까지 전쟁이 단 한건이 없다?? 이게 말이 될까??
사실은 치열한 전쟁이 있었고, 이걸 역사는 이성계의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럼 두개의 조선인데...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역사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알지 몬한 대륙의 역사이다. 이 대륙의 역사가 바로 실록에서 침묵하고 있는 이성계를 지지하고 있는 조선의 역사이다.
그럼 이런 의문이들 것이다??
그럼 이성계의 조선은 역사에 존재했는가 ? 어떤 이름으로??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상상이다....
두개의 조선의 역사는 하나의 역사로 편집되었고...그 편집본이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다.....(갠적인 상상...객관적 보증 전혀 몬함)
일단 이방언 이후에 보면....태종의 형인 정종을 겁박해 왕권을 찬탈한다....이게 말이 안된다...일단 구테타를 일으켰으면...왕위에 올라야 한다, 방언이 반란을 일으킨 목적이 바로 보위인데...그걸 형에게 양보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거든.... 몬가 이상하다....
글구 그 형도... 아무 이유없이 태종에게 다시 양보한다...이것도 이상함.....
그 다음은 더더욱 이상함....세자 양녕이 있었는데....괴이한 행동을 하여 충년에게 보위를 양보한다?? 보위가 무신 오락기 게임도 아니구... 이것도 위의 정종과 태종의 레파토리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구 똑같쥐?..몬가 부자연스럽다....
그 다음은 더더욱 골때린다.... 세종의 아들 문종은 건강이 나빠...어린 단종만 두고 죽는데...숙부인 수양과 안평이 왕위를 노리고 난리를 피운다..그 와중에 대신들은 모두 다 죽는다..왕족도 다 디지구....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구..거기서 사사된다.... 이것도 태종과 정종의 레파토리와 똑같쥐??
그 다음은 ???
보위를 찬탈한 세조는 저주를 받아 아들들이 몽땅 병사한다......그나마 예종도 비실비실 하다가...죽고...성종이 등극하는데...실록에 보면, 한명회와 대비가 결탁을 한다.... 몬가 이상하지?? 왕의 아들이 몽땅 죽고....신하와 대비가 결탁해서 왕을 옹립한다??
그 다음은?? 지루해 하지 말구...쭉 따라와봐라...무지 재미있다...
희대의 스타~ 연산군이다....연산군..역시 광적인 지랄의 결과로 폐위된다...소위 박원종 반란.....중종이 등극한다.... 그 유명한 조광조의 개혁이 바로 중종때 이루어 지는데,결국 실패하쥐.....우리의 대장금이도 이때이구....
어쨋든...그 다음은....
인종....독살당한다....바로 명종의 모후에 의해서....... 이것도 부자연 스럽다...
그다음..명종....그 유명한 임꺽정의 시대이다...... 조선의 혼란기이다.
그 다음은...선조이다.....선조때 임진왜란이 터지구......선조와 광해군이 분조...즉 두개의 정부를 구성해 나라를 수습하구,,,두개의 정부?? 이거 수상하다ㅡ.,ㅡ
그다음....인조 반란이 일어난다.....그리고 터진게 병자호란.....조선 항복함...
그 다음....효종이 등극한다...
집권 내내 북벌을 꿈꾸다.....죽음.... 그 다음 현종....별일없음..ㅡ.,ㅡ
그 다음 숙종...장희빈 사건으로 유명세을 탐....정치적으로는 뛰어나서 정국을 안정시킴.....경종... 별일 없음....영조...대왕으로 불릴만큼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정조...제2의 세종이라고 불릴만큼 뛰어난 군주... 그 이후 별변화 없음.....
여기까지 보면...이상한 점이 있다...인조까지는 규칙적으로 역모가 일어난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왕이 독살 혹은 시해당한다...
그런데 효종때 부터는 그런 현상이 전혀 없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셈인데... 순전히 내생각인데....이성계 때 부터 경쟁을 해오던,,,두개의 조선은 끊임없이 내전을 치른다...이게 실록에서는 왕의 독살과 군사역모로 나옴.... 그러다가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항복함으로...경쟁은 끝나게 됨......
실록에 보면...세조 즉 소위 한명회의 반란으로 김종서가 죽자....이징옥이 군대를 일으킨다.
그리고 정부군과 전쟁을 하면서 도성을 압박을 하지만....부하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끝난다. 또한 야사에는 이징옥이 여진족으로 부터 황제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이징옥의 난이 실패하자 단종도..영월로 유배가 죽는다.
이건 내가 볼때 두개의 이야기의 짬뽕이다, 세조와 한명회를 주축으로 하는 군대와 단종과 이징옥을 주측으로 하는 군대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패배한 단종은 유배를 떠나고....이징옥은 죽는다. 후에 연산군 반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두개의 조선이 아니고는....규칙적으로 일어난 반란과 왕의 독살 그리고 이방언의 난 후에 이성계의 행적과 그 군대에 대한 미스테리가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과 대륙조선(청)은 이해가 가지만, 청나라 이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때 또다른 조선은 당췌 어떤 나라인가?
조선초에 보면, 명나라, 조선...이렇게 두나라만 보인다...근데 그건 우리의 짧은 시각의 결과일 뿐이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요동은 여전히 빈공간으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명나라의 영역은 기껏해야 만리장성 이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중 하나이다, 또하나의 조선의 역사가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든지,....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나라의 역사가 실은 또다른 조선의 역사든지......이성계 때 부터 청나라 발흥 사이의 역사를 자세히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지 눈을 좀더 멀리하여 중앙아시아를 면밀하게 보면 말이다.
이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참고로 위의 글은 순진히 개인적인 상상의 발로이다, 그 어떤 객관성도 그 어떤 학문적 검증도 책임 몬진다.......하지만 부채도사의 점괘는 인간의 영혼을 가르는 힘이 있다....신통력 하나는 보증한다는 것이다......
부채도사 출동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055
■ 한국사의 미스테리 4 (무역대국 고려)
옛날 고려의 상선들이 아라비아는 물론 유럽 이태리 까지 무역을 했다는데 ... 정말로 우끼고 자빠지는 건, 조선시대...그러니까...조선 효종땐가?? 암튼 그때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 인지 근처 섬인지 그곳에 표류한 게 최초로 서양인이 조선과 조우한거라구 얼마전까지 떠버렸는데...
그럼...고려시대 무역선들은 아라비아나 유럽에서 유령들과 거래한건가???
어쨋든 이땅에 역사학자들의 구라는 끝도 없다...어쨋든..
고려의 상선들의 오대양 육대주는 몰라도 적어도 유럽은 갔었는데,,, 하긴 케비ㅤㅆㅠㅤ의 역사스페셜에 보니까...신라의 양탄자는 아라비아에 수출하는 최고급 품종이었다쥐??
근데 신라도 알구 고려도 알던 유럽의 존재를 왜 조선만 몰랐을까?? 조또 씨바스러운 개구라이다.
당시 고려의 최대 무역항은 벽란도이다. 근데 벽란도가 어딘쥐 불분명하다. 옛부터 오랜된 또 하나의 무역항구 제물포를 오늘날의 인천이라고 하는 것에 아무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데.... 알다시피 인천은 밀물과 썰물...즉 조수간만의 차가 지구상 그 어떤 것보다 심하거든....
서해 똥물 해수욕장-,.- 에 놀라간 분들 다 아는 사실이다... 근데 옛날의 배가 오늘날의 무역선 처럼 거대할리가 절대루 없겠쥐?? 오늘날로 치면 중.소형의 배들이 과연 그 험한 조수의 간만의 차의 불편함과 위험을 무릅쓰고 인천항으로 왔겠느냐....이거다.
이건 서해안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이 벽난도로 알고있는 개성인근도 별반다르지 않다, 이거다...
씨바....아침 저녁으로 ...바다가 육지라면~ 혹은 육지가 바다라면~ 으로 변하는 트랜스포머적 항구가 과연 세계적인 무역항이 될 수 있느냐...이거다... 내가 볼때 서해 앞 바다는 조개따구 낙지 잡고 회치기 딱이거든.....
무역항이란게 대규모의 선박이 정박해야 하고 시시때때로 출발과 이동이 자유로워야 하는데...개성과 인천은 그런 전제조건으로 보면 최악이거든....
따라서.....지금 개성인근으로 알고 있는 벽란도는 구라이다, 이 말은 개성도 지금 북한에 있는 개성...역시 구라이다....왜냐하면 벽란도는 사서에 분명 개성과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하는데, 벽란도가 개구라이면 개성도 자동빵으로 개구라가 되는셈이다. 제물포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지도를 쫘~악 펼쳐보자..... 아라비아와 유럽과 교역하기 편한 해상교통의 요충지를 살펴보자....
글구....장보고의 청해진....흔히 완도로 알고 있는데....옛날에 완도에 모 해처먹을 것이 있겠냐.....동아시아의 해상을 통제했다면 적어도 해상무역로의 핵심이 되는 지역을 통제했다는 말이다.
역사가 변해 사람이 바꿔도 지리학적인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볼때 장보고의 청해진은 오늘날 말라카 해협 인근이 딱이다. 왜냐하면 아라비아와 인도 그리고 중국의 모든 해상 무역 루트를 통제하고 다스릴 만한 곳이 여기박에 없거든..
이건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말라카 해협을 통제함으로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오는 모든 무역선의 안전을 담보하고 있거든....
만일 완도라면...그 완도가 아라비아나 인도 글구 중국과 의 해상교통을 통제하는데 몬 도움이 될까??? 암 도움이 안된다...이해가 안되면 지도를 보라...
그럼 청해진은 동남아 인근의 말라카 해협 근처라면...벽란도는 딱 답이 나온다, 사서에 보면 벽란도는 청해진 보다 북쪽에 있거든...그럼 현 인도네시아 보다 북쪽으로 쭈욱 올라가면....결국 상해이다. 오늘날에도 대규모 도시가 들어서 있지? 지리학적 잇점은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거든....
내가볼때 벽란도는 상해이다...그럼 개성은 어데???
오늘날의 남경이라고 본다.
그럼 제물포는...제물포는 벽란도 보다 아래에 있다고 하니...오늘날 중국 복건성 인근 해안이 될 것이다. 강화도는 대만일 가능성이 높고....
중국 남부 그러니까...베트남과 국경인,,곳이 중국 계림이다. 근데 계림하면 생각난게 없나?? 바로 신라이다. 신라를 계림이고 불렀다. 그러니까...본래 신라 사로는 오늘날 경주가 아니라...중국 남부 계림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서 북쪽으로 가면..중국 황산이 있다....황산...계백의 오천 결사대가 신라의 오만대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유서깊은 곳....황산벌이다. 벌은 넓은 들판을 나타내는 말..
황산 인근의 넓은 벌판에서 한판 붙었다는 야그가 된다.
위서에 보면 북위가 백제 동성왕때 기병 20만을 몰고 쳐들어왔지만 백제 장수 사명법에게 대패하여 말한마리도 살아가지 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북위는 오늘날 황하이북이나 그 근처인데...기병 20만이 몬수로 오늘날 한국의 전라도 까지 쳐들어 왔겠느냐... 이거 지리적으로 설명해봐라...가능하면 아마도 노벨상감이다... 북쪽에는 고구려가 버티고 있는데...그럼 고구려가 당시 적국인 북위에게 길을 내줘 북위의 군대가 고구려 수도 평양을 유유히 통과 했다는 야그??
결론은 북위의 기병 20만이 쳐들어간 백제는 오늘날 전라도가 아니라, 현재 중국의 산동이나 화북지방이 되는셈이다. 그러니까.....
백제의 위치는 화북과 산동지방...신라는 양자강 아님의 계림과 강서 복건 광동성이 되고...그 위가 호남성이다..호남...왠 전라도가 여기에도 있나??진짜 웃끼쥐???즉 광동성 위에 있는 호남성은 본래 백제땅이란 말이다....
고구려는 화북과 산동 이북지역..그러니까..황하이북이고....내가 볼때 양자강이 한수이다....전통적으로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구려의 경계지역... 황하는 요하이고.....후대에는 난하가 요하....
그러니까 고려시대 패서지역은 최소한 난하인근이 되겠지..아니면 황하 근처...
신라경순왕이 서라벌로 줄어든 나라를 왕건에게 바치며 항복했는데, 그게 오늘날 계림이고...그렇게 보면 이미 고려는 초기때...현재 중국 동해안 지역을 거의 다 통제했다는 야그...... 장보고가 개척한 동남아 인근 말라카 해협의 해상기지도 유지되었고....그걸 발판으로 고려의 상선이 아라비아와 이태리 까지 가서 장사한거라구....
그러니까...유럽 스페인 제국 시절 유럽애덜이 인도를 발견했다는 말도 사실은 구리이다.... 왜냐..이미 신라시대 아라비아와 무역을 했고...그 이전에도 옛 실크로드 길이 분명히 있었는데...비잔틴...즉 오늘날 터키 사람도 알고 있는 인도와 신라를 과연 그 옆에 있는 유럽 놈들이 몰랐겠느냐...
무엇보다 칭기스칸이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통합했고 그길로 수백년동안 무역이 활발했는데, 왠 개소리??
고로 유럽애덜이 근세의 지리상의 발견은 사실 그들의 식민지 수탈을 정당화 하기 위한 역사적 개구라 라고 보면 된다.
내 말은 개소리 라고 욕하기 전에...단 한번 쯤이라도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지식을 포멧하고...정상적인 상식으로 세계지도를 펴보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럼 장보고의 청해진이 완도가 아니라..오늘날 말라카 해협이고 ..벽란도가 상해..라는 것 어느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역사는 깨진 유리조각을 주어 하나씩 마추는 과정이다....조각 하나는 별의미 없을지 몰라도 그것이 판위에 마추어 질때 추후에 거대한 그림이 드러나게 하는 하나의 심볼이 되는 셈이다.
부채도사 출동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2480
■ 한국사의 미스테리 5 (타타리아)
고지도를 볼 기회가 있어...쭈~욱 살펴봤는데...옛날이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라...현 지도에 비해 물론 정교한 면이 떨어지지만 대체로 비슷...대단혀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더라....물론 지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러장의 지도가 공통적으로....
현재 중앙아시아 전체와 동유럽의 일부 그리고 만리장성 이북은 거의 타타리아로 영역 구분이 되어 있고, 산동지방을 포함은 남부지역은 차이나... 한반도와 요동은 꼬레아... 특이한게 인도와 현제 베트남..캄보디아등 동남아 지역 전체를 하나의 제국으로 영역구분을 했다는 것이다..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은 페르시아, 글구 타타리아 북방에 좌우 길게 있는 몽골 임페리아 이렇게 구분이 되어 있었는데
특이한건, 타타리아가 동.서로 분단되어 있구...서타타리아.동타타리아...분단선은 현재 카작스탄과 중국 국경 근처쯤 ..... 지도 작성 연대는 1732판을 포함한 대개가 1700년대의 지도들....
1732년이라면, 청나라가 들어서구 가장 전성기인 옹정제와 건륭제 통치시절인데... 그때는 청나라가 아시아의 패권을 완전히 다진 시기라고 알고 있는데...그래서 일반 지도에는 당시 청의 영토가 현재 중국영토에다 연해주 지역 그리고 몽골까지 포함한,....거대 제국으로 표기됨...
그런데 당시 제작된 고지도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일단 조선을 제외하고 중국에는 두개의 제국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하나는 차이나 와 또 하나는 타타리아... 어떤 지도에는 타타리아가 동.서로 분단된채 나오고 또 어떤 지도는 하나된 거루 나오지만 60프로 이상이 하나된 거루 나오니까..일단 하나된 상태로 보구.....
내가 궁금한 건, 청나라 건륭제 당시 과연 대륙에 청 이외에 또다른 나라가 있었는가? 라는 점이구...지도에서 청나라는 타타리아 인가 아니면 차이나 인가....라는 점이다.
만일 대륙조선(청)이 타타리아 이면,,현재 중국 황하이남의 핵심 지역에 있는 차이나는 무엇이며??? 만일 대륙조선이 황하이남의 중국이라면, 만주에서 동유럽까지 거대하게 있는 타타리아 임페리아는 도데체 어떤 나라인가, 라는 점이다.
사람의 글은 현란한 기법으로 거짓말을 해도 지도는 거짓이 없거든....궂이 해석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당시에 타타리아 북방에 역시 동서로 거대하게 퍼져있는 몽골 임페리아는 또 어떤 나라인가?? 북쪽으로 밀려간 북원이 청나라 전성기때 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분명한 팩트는, 1730년대에 황하이북을 포한한 중앙아시아 동유럽까지 퍼져있던 거대한 타타리아 임페리아, 황하이남의 대륙에 있는 차이나...아주 북방에 동서로 퍼져있는 몽골 임페리아, 그리고 꼬레아....이런 나라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타타리아와 몽골에는 임페리아 라는 제국의 호칭이 있는 반면 왜 꼬레아와 차이나는 아무 호칭이 없을까??
어쨋든 현재의 중국은 차이나에서 유래된게 옳다, 왜냐하면 장개석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모택동은 곧바로 티벳을 침공하고 신장 위그르를 침공 그리고 만주와 요동을 일방적으로 선점해 버리거든.....
그러니까..나중에 침공해 선점한 지역을 빼면...지도에서 나온 차이나 영역과 대략 일치한다는 거다. 현재의 몽골인민공화국은 지도에서 몽골임페리아 영역과 크기는 줄었지만 위치는 유사하고.....나름 설명이 된다.
근데 문제는 타타리아....애네들이 증발했다는 점이다... 칭기스칸의 제국에 비견될 만한 거대한 나라가 갑자기 증발된 건데.....
더욱이 문제는 중국의 역사 그리고 우리 역사 그 어디에도 타타리아 제국을 언급한 곳이 없다는데 있다. 그래서 결론은 둘중 하나이다.
첫째는 타타리아 제국이 통째로 하늘로 증발되었거나....둘째는 역사가들의 의도적으로 삭제했든가.....
여기까지는 증명된 팩트이고.....
아래글 부터는 개인적인 추리이다...
그러니까..내 생각에는 타타리아가 대륙조선이다...이른바 청나라는 러시아를 상대로 나선정벌을 하고...조선에게 파병을 요구했거든....그런데 이 나선정벌 시기가 청나라 강희제때 그러니까..대륙조선이 잘 나가던때이다... 지도를 봐도..러시아는 당시 모스크바 인근에만 있었거든...
따라서 러시아와 대륙조선과 분쟁이 있었다면 현재 모스크가 동쪽 인근이었을 거다...지도상으로 그렇거든.... 황하 이남의 차이나 라면 러시아와 국경분쟁 할일이 없었겠쥐??
따라서 대륙조선의(청) 강역은 우리가 생각했던거 보다 더 거대했다....서쪽으로는 거의 모스크바 인근까지 이르렀으니....
이제 문제는 남쪽의 차이나의 정체이다...애네들이 대륙조선(청)과 관계없는 별개의 무리라면 도대체 애네들은 모하는 애덜이냐???
당시 명나라는 이미 망해 역사 뒷길로 사라졌구....기타 다른 나라는 사서에서 언급이 없는데....
근데 나중에 차이나에서 반청 운동이 벌어지면서..독립운동이 벌어진 걸 상기해 보면...애네들도 결국 타타리아 즉 대륙조선의 영향력 아래 간섭받던 나라임은 틀림이 없다...그러니까..반청운동하며 독립을 요구했지.....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게...
이 차이나의 정체는 과거 명나라의 무리....즉 대륙조선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그걸루 끝났다고 사서에는 나오지만, 실은 왕조만 제거하고 대륙조선에서 총독을 파견하거나 아니면 똑두각시 위성정권을 세워 간첩통치 했거나.....
그도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신비의 나라든가...근데 그럴활율은 거의 없겠쥐?
그래서 정리해 보면....
조선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대륙조선은 원래 조선의 강역인 만주를 봉금지대로 선포하여 사람의 왕래를 금지했는데....이게 나중에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영토와 거의 들어맞는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붕괴된 명나라의 지배세력을 해체시키고 대신 친 대륙조선 정권을 수립해 간접통치했다고 본다.
그래서 나중에 대륙조선이 세력이 약화되어 봉금해제하니까...조선에서 애초에 봉금지대는 우리강역이니까...우리꺼....
근데 대륙조선의 입장에서는 거기는 조상의 땅이거든...그래서 서로 갈등을 한게 정계비 사건.....이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두나라 거의 동시에 망했거든.....
근데 이 대륙조선은 조선초기 이방언의 난때 분리된 이성계의 조선일 확율이 높고...이방언으로 이어온 조선은 오늘날 한반도의 우리일 확율이 높고....
내 생각에는 이제는 이성계와 이방언이 좀 화해할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현재 남북 분단은 사실 과거 대륙조선과 만주한반도 조선의 축소판으로 보여지거든...진작에 통일했더라면...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은 없었겠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통일해서 오랫 동안 경쟁하며 옥신각신 했던 두조선이 진정으로 화해하여...다시금 옛날의 영화를 되찻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참고로 아래 지도는 만주국 지도인데..조선이 봉금지대로 잃었다가 다시 찻은 조선의 만주영역이다. 글구 이땅이 바로 간도이다....
지금까지 부채도사표 ~카더라 통신이었음...
부채도사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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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미스테리 6 (위안스카이와 모택동)
위안 스카이 !
우리에게도 아주 낮익은 이름이다, 조선말기때 대륙조선(청)에 의해 파견되어 당시 조선의 정치를 간섭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왜 위안 스카이에 주목을 했냐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사람 이력을 봤는데, 아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어쩌면 내가 가끔씩 궁금해 왔던점...거대한 대륙조선(청)이 어떻게 한순간에 침몰했을까?, 에 대한 실마리를 찻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이사람 이력을 나열해 보자.
1882 - 조선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파견됨.
1895 - 천진에 주둔하던 정무군에 파견, 거기서 신식군대화된 무기 훈련을 받음
1898 - 개혁파 동지들을 배신하고 대륙조선의 실권자 서태후의 신임을 받음
1899 - 신식 훈련으로 무장한 무위군을 동원하여 의화단 운동을 진압
1901 - 북양대신으로 임명
1905 - 북양군을 확대하여 재편성함
1906 - 북양군의 군권을 잃음
1909 - 모든 직무에서 해임됨..낙향..
1911 - 무창에서 봉기발생, 흠차대신으로 임명, 진압군으로서 육군과 해군의 군권장악.
북양군을 이끌고 북경을 점령.
대륙조선의 모든 권력 독점.
쑨원과 막후 협상으로 초대 총통은 자신이 한다는 조건으로 공화제로 감.
황제 푸이를 강제퇴위 시킴,
1913 - 중화민국 대총통 취임, 중국 국민당 및 국회 해산
1914 - 국무원 해산, 임시약법 폐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짐
1915 - 중화제국 대황제로 칭제, 중화민국 연호를 폐지하고 중화제국으로 바꿈
1916 - 군주제를 취소하고 중화민국으로 다시 유턴,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나고 지방 성의 군벌들이 그와 단절을 선포함. 그해 5월 요독증 발병, 그해 6월에 사망.
- 위키백과에서 펌 -
위안 스카이의 권력은 북양군의 배경이 있었고, 그는 그가 창설한 북양군을 사병화 하였고 그의 심복을 중요 자리에 심었는데,
그가 죽은후 그의 심복들은 각각 지방 군벌로 독립하여 서로 내전을 벌였고, 이 전쟁은 1928년 까지 계속됨.
여기까지 보면, 대륙조선은(청) 신해혁명으로 망한게 아니라, 위안 스카이, 이 한사람의 권력욕에 의한 내부 붕괴로 봐야 한다. 즉 위안스카이가 군사 반란을 일으켜 기존 권력을 밀어내고 황제가 되고 싶은 야망에 공화제로 가는 것에 찬성하고, 결국은 황제나다름없는 대총통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대륙조선이 망했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도 힘든것이, 황제는 퇴위 되었지만 위안스카이가 대륙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위안스카이의 중화민국은 이성계의 조선의 경우가 아니라, 구한말 대한제국의 경우와 오히려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의 사후 그의 부하였던 군벌들이 내전을 벌였고 이른바 춘추전국시대, 장개석은 그 와중에 북경을 점령 입성하면서 사실상 내전의 최후 승자가 되면서 전국을 통일했다. 일본 항복 이후 모택동의 공산군과 다시 내전에 돌입...결국 대만으로 도피함.
나는 중국의 현대사를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자신보다 훨씬 강자인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대륙을 통일했다면 나름대로 유능했을 것인데, 왜 바보 멍텅구리 같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을 했을까? 결국 그 여파로 중국은 거지 국가로 전략되었고, 오늘날 까지 미국의 사실상 속국으로 전락되었다.
모택동은 정말로 멍텅구리 였을까??
결론은, 모택동은 멍텅구리가 아니었다, 이다. 오히려 그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 정확히 아는 어쩌면 영리한 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 같은 어리석은 일을 자초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위안스카이의 행적을 보면서 발견했다, 몬소리냐믄?
대약진운동과 문혁은 모택동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건이라는 점이다, 위안스카이는 모든 군권과 권력을 독점하고 지방의 여러 세력들의 강력한 지지도 얻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원인이 몰까?
그건 그가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대륙조선이라는 그림자가 그를 계속 따라다녔다. 그가 공화제로 유턴을 해도, 그가 대총통이라는 어쩌면 황제보다 더 강한 지위에 올라도, 그의 발끝에는 항상 대륙조선(청)의 북양대신 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었고, 인민은 늘 그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가 대륙조선을 배신하고 쑨원과 야합으로 공화정을 하는 순간, 그의 권력을 끝났다고 봐야 한다. 권력은 인민의 지지로 부터 나오는데 인민은 그를 대륙조선의 북양대신으로 주목했으니...그의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모택동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즉 그의 공산당이 대륙을 석권하고 그가 권력을 독점한다해도 인민들의 눈에는 또 다른 북양대신일 뿐이다. 따라서 모택동으로서는 이러한 한계를 타파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거기서 대약진과 문화혁명이 발생했다.
대약진과 문혁으로 당대의 지식인과 반공산적인 모든 지식과 역사는 모두 거세를 당했으니 사실상 대륙조선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이었다. 역사가와 지식인을 숙청했으니 이제 누가 있어 대륙조선을 기억할 것이며, 또한 당시의 공포분위기로 인해 입이 있으나 누가 말을 하겠는가!
이렇게 모택동은 과거를 기억하는 모든 것을 포멧시켜 버리고 맨땅에 헤딩이라고 처음부터 자신만의 왕국을 다시 건설한 것이다, 그러니 한때 세계 재화의 40프로를 보유했던 대륙조선이 부가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즉 현재 중국 공산당은 인위적으로 대륙조선의 역사와 기억을 제거하고 그 거짓의 토대위에 세워진 매트릭스와 같다. 또한 지금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등 역사왜곡은 그들이 제거해 버린 대륙의 조선의 역사를 자신들 즉 중국공산당 영구 집권을 위한 이념적 토대를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일이다.
그들이 고구려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단순히 역사 전쟁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고구려의 역사의 진실이 다시 밝혀지고 이어서 대륙의 역사가 재조명된다면, 지금 중국 인민들의 기억속에 잠자는 있는 조선 이라는 두 글자가 다시 환생하게 되고,
그 의미는 지금 중국공산당에게 위안스카이의 경우에 같이 북양대신의 꼬리표가 달리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두려워 하는 것이다. 동북공정에 막대한 예산을 퍼 붇고 할 수 밖에 없는 궁극적 이유이기도하다.
부채도사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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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미스테리 7 (왜 하필 china 일까)
공식적으로 중국은 대륙조선(청)을 계승했다고 하구... 그러면서 동시에 대륙조선의 역사적 흔적을 삭제하거나 왜곡하고 있고...만주족은 이미 소수민족화 되었고 만주어는 사실상 죽은 언어가 되었는데....
얼마전에 중국에서 국제회의가 있었는데 호금도와 온가보등 중국 지도부가 대륙조선(청)의 복색을 하고 환담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봤는데....
개인적으로 진짜 궁금한 건, 왜 오늘날 중국 국호가 타타리아가 아니라 차이나 라는 점이다. 한자표현 즉 중화민국...이건 원세개가 군사 구테타 하며 손문과 함께 내세운 공화국 이름... 그래서 정통성 차원에서 중국이라는 국호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데, 차이나는 어차피 영문 표현이거든....
따라서 중화민국 처럼 처음부터 어떤 표현을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내생각에는 대륙조선 즉 전세계를 호령했던 제국은 타타리아 이고 그 제국의 구탱이에 처박혀 있는게 당시 차이나 인데....
어떤 이유로 새로운 제국을 꿈꾸는 중국이 광대한 천자의 제국 타타리아를 버리고 구탱이에 처박힌 차이나를 영문표현으로 했을까?? 그것이 무척 궁금했는데...그런데 사실 그건 아주 단순한 결과..다시 말하면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원리 ..... 한자 표현은 스스로가 우리의 국호를 정하는 것이지만 영문표현은 양이들이 불렀던 것을 정하는 것....초딩들도 아는 기본 상식이쥐??
근데 쪽팔리게 부채도사가 이문제로 잠시나마 고민을 했다는 것...-.,-
그렇다! 차이나는 중국 지도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양이들 즉 서구에서 현재 중국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국제화 된거다, 왜냐하믄..현재 모든 국제화의 표준은 어째거나 서양넘들이 정하거든....
왜 터키의 130살 할머니 보다 프랑스의 114살의 할머니가 공식적으로 가장 장수한 모범으로 기록되어 있을까?? 터키의 경우 ..그런 사실을 증빈 몬해서....그건 프랑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따지고 들어가면 끝도 없거든...
결국은 표준...노인들 나이 표준도 서양넘들이 한다는 거다.....
그럼 왜 양이들은 현재의 중국을 타타리아가 아니라 차이나 라고 했을까?
그것도 간단하다...한마디로 현재 중국 지도부는 타타리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중국 지도부 역시 입으로는 대륙조선 즉 청나라를 계승했다고 떠들지만 내용적으로는 대륙조선의 모든 문화적 정치적 흔적을 말살 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거든....
진짜루 대륙조선을 계승했다면 이렇게 조상을 욕보이는 짓은 하지 않겠쥐??
아래 지도를 보면 북쪽의 광대한 지역이 타타리아, 남쪽에 있는 것이 차이나....그렇다면 양이들이 현재의 중국을 차이나 라고 부른건, 현재의 중국 지도부의 출신이 북쪽의 타타리아가 아니라 남쪽의 차이나 라고 봤던 거다...
애네들이 대륙을 통일한 후에 티벳과 내몽골 그리고 신장과 요동 만주까지 차례로 처 드신거다...그 결과 오늘날 중국의 덩치가 된거구....
난 궁금한게...한국전쟁때 당시 중공군이 압록강 인근까지 주둔했쥐....근데 생각해 보면 당시 일본 패망기 즉 1945년 까지 만주와 요동에는 만주국이 있었거든.. 그땅은 본래 우리꺼...당근 일본이 패망한 후에 우리에게 돌아왔어야 할 땅인데... 그때 우리가 남북으로 분단되어서 서로 대치하고 전쟁까지 하는 바람에...무주공산이 되었고...중국넘들이 슬쩍 잡아 먹은 땅이 된거다.
나는 그래서 북일간의 식민지 지배 배상 및 청산이 중요하다는 거다...왜냐하면 북일 협상에서 일본이 ...원래 만주국이 있던 영지는 조선의 것이다, 라고 인정하며 그에 따른 배상을 하면...돈이 문제가 아니라....
물론 그전에 간도협약이 있었지만....일본 패망후 일본과 체결한 모든 조약은 무효화 선언이 되었기 때문에 국제법상 간도협약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조약이 된 것이다. 다만 현재 중국이 실효적 지배를 할 뿐이다.
이건 몬소리냐믄, 향후 북일 협상의 결과를 가지고 북한이 중국과 협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소리이다. 불법식민 지배 결과물은 당연히 무효화 하고 원상복귀해야 한다는 논리로 중국은 이미 홍콩과 마카오를 얻었기 때문에...딴소리 하기 힘들다...
그래서 장래 이 땅에서 미군이 철군한다면... 필연적으로 북중간에 영토문제가 이슈화 되고...어떻하든 결론이 날 것이다.
그래서 식민청산은 단순히 배상금 얼마가 문제가 아니라, 각 나라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은 6자 회담에 목을 걸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다자회담으로 가면 일본과 중국의 요구도 전제조건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거든..그러면 회담 타결 자체도 힘들지만 타결되어도 일본과 중국으로 부터는 돈 몇푼 외에는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 대결은 중.일이 끼여들 여지가 처음부터 봉쇄되거든...그러니 미치고 환장하겠쥐??
그래서 북미가 협상의 종착에 가까울 수록 북미 양국은 차분하데 오히려 주변국 특히 중국과 일본이 길길이 날뛰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래 지도는 1702년에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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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미스테리 8 (진시황의 병마용 무덤)
통상 차이나의 유래는 대륙 최초로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중국 애덜만 그리 생각하는게 아니구 우리 사학자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근데 너무나 당연한 이사실이 조금 생각해 보니까... 의혹 투성이... 몬소리냐믄?
진시황이 왕위에 있던게 대략 30년 조금 넘는다, 그리고 대륙통일 후는 11년을 더 지속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현재 발견된 병마용 무덤과 시왕릉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많은 인부가 거의 30년의 세월이 걸렸을 거라구 예견되거든.... 그만큼 거대하다는 거지...내 말이 아니라...중국의 학자들이 그렇게 예견하는 것임...
근데...통일된 진나라가 대략 35~36년 정도 유지되었으니까....시황제는 등극 이후 부터 자기 무덤만 팠다가 세월을 죽였다는 말이 되는데...사서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부역을 요구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30년 세월동안 만리장성도 쌓아야지...지 무덤도 파내지야....주변 나라도 복속시켜 통일도 시켜야지...
아무리 널널하게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되거든,,,
그래서 본인은 과감하게...차이나가 진나라 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바이다, 그럼 어느 나라에서 유래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신라 유래설을 언급한다, 이건 본인도 어느정도 수긍하는 가설인데...원래 china의 명칭은 cina 거든....어차피 h 는 묵음이라 발음되지 않구...
따라서 발음하면 치나 혹은 시나 인데...실라와 비슷해 보인다...
여기까지는 꼴통 교과서 추종자만 빼구 역사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는 분덜은 다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
근데 여기에다 뿌라스 알파로 한가지 가설을 더 보태고자 한다, 그 가설이란?
본래 삼국이 있기 전에 삼한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 다 아는 설이다...
마한,진한,변한...이렇게 해서 삼한....
원래 삼한이란 모두 한의 무리가 모여서 이룬 나라 이다, 한의 무리란? 중국애덜은 변방을 침탈하던 무신 오랑캐로 묘사 했지만, 사실상 우리 민족이다, 그래서 국호도 대한민국 아닌가? 즉 거다란 한이 다스리는 나라...
즉 한은 칸이고 칸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정치적인 용어이다. 대표적인게 칭기스칸....우리식으로 말하면 칭기스한 이다.
어쨋든...이 한의 무리가 모여 이룬 나라중...마한은 백제가 통일하고, 진한은 실라가 통일 그리고 변한은 가야가 연맹세력으로....
지리적으로 보면 마한은 북쪽에 진한은 동쪽에 변한은 서쪽에 있다, 물론 강단 사학자들은 한반도 남쪽이라 말하지만, 그거 전부 구라이다. 사실 삼한은 대륙에 있었고 대륙 중앙에는 마한, 동남쪽에는 진한 그리고 남쪽에는 변한...
왜냐하믄 가야는 초기 부터 철과 옥의 생산으로 유명했거든 그래서 수출도 많이해 국제적 무역항이 있다고 했는데, 한반도 남쪽 영산강 근처를 암만 디벼봐도...여기에 무신 국제적 무역항이 들어설 곳이 있나??
지리적으로 고립된 지역이라 국제적 항구가 들어서기 적합지 않다. 인도와 동남아 그리고 중국을 대상으로 무역을 하려면 중간지역이 딱인데...홍콩인근 쯤 되야 말이 되거든...
어째건....중요한 건, 내 개인적인 생각에 의하면 차이나의 근간은 본래 진한에서 기인했다는 거다. 진한을 당시 주변국에서는 지나 라고 불렀던 거다.
한이란 발음을 당시 주변이 있는 나라들이 한을 난으로 발음했고 다시 난이 나가 된거다...즉 진한 - 지난 - 지나....그래서 진한이 지나로.....
근거?? 없다, 묻지마라...그냥 내 생각이다.
그래서 이 지나는 진한을 통일한 신라에게 그대로 통용된 거다. 지나를 양이들이 치나 혹은 차이나 라고 불렀던 것이고....
그러니까...차이나 라는 국호는 역으로 말하면 대륙이 본래 한의 백성들의 것이라는 역사적인 확증인 셈이다.
그러면 진시황의 병마용 무덤의 주인공은 원래 누굴까?? 물론 이를 위해서 고고학적인 관찰과 연대적 측정을 해봐야 하지만.... 일단...
병마용 인형은 모두 상투를 틀고 있는데, 상투는 동이족 고유의 풍습이거든..
또한 그 무덤의 위치가 오늘날 서안 인근이거든....서안, 즉 장안성은 오래된 도시이고 평안하다는 의미로 평양성과 그 의미가 같거든....
그러니까...서안은 곧 평양성이란 뜻인데... 아무래도 이상하쥐?
왜냐하면 서안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정중앙이지만 고대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북서쪽 지역이거든....그래서 그 지역은 고구려 관할로 보면 딱이다.
그니까...병마용 무덤을 처음부터 진이라고 본게 잘못되었다는 거다. 중국 애덜이 발견 초기에 충분한 조사 없이 무조건 진나라의 시황제 무덤이라 결론부터 내렸거든..이건 내 말이 아니라 당시 중국 역사 학자들도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던 내용이다.
병마용 무덤은 일단 전차가 나온다...전차는 바퀴와 수레를 이용했던 문화의 잔재이구.... 근데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할 때 전차부대를 운용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럼 일단 진나라는 패스~
그다음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당대에 이런 거대한 무덤을 조성했다면 강력한 중앙집권의 권력이 있어야 되겠지?? 근데 아쉽게도 만일 병마용무덤이 시황제와 비슷한 시기 그러니까...대충 기원전 200년 근처라면....고구려로 보기 힘든게.....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성립되었다고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일단 해당사항이 안되는 것 같은데....근데 잠시 브레이크 걸구 생각이란걸 해보자...
고구려가 정말 기원전 37년에 성립되었는가?? 그렇다, 라고 말하기 힘든게... 사서에 보면, 고주몽이 부여의 대소에 쫏겨 남쪽으로 도망가면서...구려국의 연타발을 만나고 그의 딸 소서노와 결혼해서 대권을 거머쥐게 된다.
이걸 다시 해석하면, 부여 즉 부리야트에서 갈라져 나온 고주몽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구려국에 이르러 구려국 수장인 연타발과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그 증표로 고주몽과 그의 딸 소서너는 혼례식을 올린다, 예나 지금이나 유력자들의 사돈은 그냥 사돈이 아니거든....
이건 몬 의미냐믄? 고주몽 이전에 이미 구려국이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이 구려국은 고주몽의 부여인들의 합류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는 거다. 고주몽은 구려국의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을 천제의 아들이라 칭하고 그래서 나라 이름도 고구려로 바꾼다....
높은 고자는 하늘을 뜻하는 글자 이므로 .... 이렇게 하면 연대는 대충 맞는 것 같은데 ...이런 논리는 우격다짐 식이라...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고로 병마용무덤의 고구려 설도 패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게, 부여설인데...근데 서안은 부여의 중앙과 거리가 좀 멀다.....따라서 역시 패스~ 그럼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한가지이다.
고.조.선 이다....기원전 200년 근처면 고조선 말기때 해당한다. 물론 한무제의 한사군은 엄청 뻥튀기 된것...구라는 아니자만 ... 지나치게 과장되 사실상 구라에 가깝다...
물론 한사군이 아니더라도...저 시기는 어쨌든 고조선 말기 시대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고조선은 전차가 존재했다. 유물도 발굴되었고... 그 유물은 적어도 기원전 1000 ~ 800년 정도 예측된다...바퀴살이 30개 즉 진시황릉에서 발견된 똑같은 실재 유물이 장도에서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어 전시까지 되 있는데... 중국넘들...쉬쉬 비밀로 한다. 즉 바퀴를 이용해 전차로 만들어 쓰던 최초의 사람은 고조선인들이었다,
통상 인류최초의 문명이라는 슈메르 ... 교착어를 쓰는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라는데...아직까지 누군지 확실하지 않다, 아니 사실 확실한데 그걸 서양 학자들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슈메르의 가장 큰 특징은 인류 최초로 바퀴를 이용해 수레를 이용했다는 거다,
당시 까지만 해도 수레는 고급 하이테크 물건이거든.... 근데 똑같은 수레가 고대 동아시아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수레가 극소수의 사람들만 쓰던 하이테크 물건임을 감안하면 이건 둘중에 하나이다, 고조선 사람들이 먼 옛날에 슈메르인에게 수레에 관련된 기술을 도입했든지..아니면 슈메르인이 더 먼 옛날에는 고조선과 같은 민족이었든지....
어쨌든 진시황의 것이라 알려져 있는 병마용무덤은 사실 진시황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고 그 주인은 사실 고조선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렇다면 서안의 병마용무덤은 사실상 단군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왕릉이 있었다는 것은 제국의 중심지라는 의미...고로 서안은 옛 고조선 시대부터 우리민족이 왕성하게 활동해온 성지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병마용무덤이 진시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중국측 학자중 일부도 주장하고 있는 것, 다만 중국당국이 쉬쉬하며...막고 있는 것 뿐이다.
근데 웃기는 건, 그 학자들도 진시황의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이무덤이 누구거인지 잘 모른다거나 확실하지 않다고만 하지만.....사실 알고 있다고 본다, 다만 말을 몬하고 있는 것일뿐 ....
아참..잊을 뻔 했네..중국 서안은 거대한 정체불명의 피라밋이 무대기로 있기로 유명하고 중국정부가 진시황릉으로 알고 있는 무덤도 피라밋 형식인데.... 만일 병마용 무덤이 고조선의 유물이라면 그 일대에 있는 피라밋 형태의 대형고분도 고조선 시대의 왕릉, 즉 단군릉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근거?? 전혀 없다...그냥 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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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미스테리 9 (아시아 Asia)
"아시아"(Asia)라는 말은 그리스어 "Ἀσία"에서 나왔으며, 기원전 440년경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와 이집트에 대비되는 지역 개념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가리키거나 혹은 아나톨리아 지방을 뜻하는 말로 '아시아'를 처음으로 썼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논평하기를, 거대한 세 땅덩어리에 왜 여성 이름(에우로파,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지칭하는 리비아)이 쓰이는지 의아스럽다면서, 그리스인 대부분은 아시아라는 이름이 프로메테우스의 부인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나, 리디아 사람들은 이 이름이 사르데이스의 한 부족 이름에서 나온 코티스(Cotys)의 아들 이름인 아시아스(Asias)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노라고 썼다. - 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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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잘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추측과 가정만 할 뿐인데, 내가 단언하기는 아시아란 본뜻은 동방에 해뜨는 곳, 고조선에서 유래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선 자체가 해뜨는 곳이란 의미가 있고, 또한 고조선의 도읍이 아사달인걸 고려하면 일면 타당해 보인다.
또한 내가 궁금한 건, 조선의 본래 발음이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조선앞에 고자를 붙인건, 후대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인데....
대륙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의 성이 애신각라...즉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말자...이런 뜻으로 풀이되는데... 즉 아이신지로 이다.
나도 이런 해석을 어느정도 수긍하는 편이지만, 그러나 다른 면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건 사실 한자를 어떻게 쓰고 활용하느냐, 의 문제인데... 예를 들면...이름이 돌쇠 라는 청년이 있는데, 이걸 한자로 표기하면, 어떻게 써야 할까? 왜냐하면 통상 말이 먼저 있고 문자는 그 이후에 따라온다는 건 상식이거든...
그래서 돌쇠의 이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돌석자에다 쇠금자를 써서 석금이라고 지었다면... 그리고 오랜세월이 흘렀다면, 석금과 돌쇠는 전혀 다른 인물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는 거다.
즉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사서의 여러 명칭들에서 이런 딜레마가 있다는 거다, 대조영의 아버지인 걸걸중상...즉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데, 일단 부자지간인데도 성씨가 다르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즉 걸걸중상은 본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차용했던 건데... 시간이 흐르자 본래의 발음을 잊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거다. 대조영도 그렇다, 앞의 큰대 자는 성씨라기 보다면 고구려의 높을 고자처럼 위대한 인물임을 나타내는 접두어일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대조영의 이름은 걸걸조영일 확율이 더 높다는거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직은 없다.
이건 사람 이름뿐만 아니라 지리학적 지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평양성이 어디냐, 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는데, 한가지 간과한 것은 평양성의 본래 발음이 무엇이냐, 에 대한 숙고는 거의 하지 않았다.
평양성은 장안성이고 장안성은 봉황성과 같다. 또한 봉황성은 아사달이다. 고로 평양성은 아사달일 가능성이 높은데, 문제는 아사달 역시 한자 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 한자 표기를 했다손 치더라도 초기의 기록자들은 본래의 발음에 되도록이면 가까운 한자를 차용했을 것이고, 이는 조금만 연구해 보면 그 본래 소리를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앞에서 애신각라의 본래 소리는 아이신지로 라고 했는데, 이건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말자라는 것, 보다는 아이신지로 란 본래 소리를 애신각라 라는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봐야한다.
아이신지로 즉 아이신은 신라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해뜨는 곳, 즉 조선과 같은 의미일 가능성도 있다. 아사달 – 조선 – 아이신…모두 같은 의미이다.
즉 누루하치가 계승하고 싶은 정통성은 신라 라기 보다는 고조선일 가능성이 더 높은데, 이는 고조선 이후 분화된 여러 열국들이 저마다 스스로를 고조선의 적통이라고 언급하는데서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원래 조선의 소리를 찻는데 상당한 관심이 있지만, 방법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본어의 발음을 주목하는데,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백제 패망후 다량의 백제 유민이 유입이 되었고, 그 이후 일본의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된 걸 감안하면, 일본에 백제의 문화적 언어적 요소가 깊이 있다고 본다.
또한 백제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계 이니 시간이 흘러 그 원래적 소리가 퇴색되었을지라도 기본적인 소리는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일본의 거대 미디어 구룹인 아사히 신문 및 방송은 한자 표기하면 조일이다. 즉 해가 떠오르는 곳,, 조선과 그 의미가 같다. 따라서 조일의 아사히 그리고 아이신을 참고로 해 보면 본래 조선의 발음은 아사히나 아이신과 비슷할 거라 보는 바이다.
따라서 오늘날 동양 대륙을 지칭하는 아시아는 사실 조선을 부르던 옛 소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을 지칭하는 차이나는 통상 아시아 속에 종속되어 있는 개념인 걸 생각하면 근대까지 차이나 즉 중국은 아시아, 즉 대륙조선의 통치를 받는 종속국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차이나가 현 중국의 직계냐는 또 다른 생각거리긴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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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미스테리 10 (한글과 이두)
나는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한 게 있다, 세종대왕께서 왜 훈민정음을 창제했을까?
너무나 당연한 일은 왜 쓸데 없이 생각하냐구?
알려지기는 조또 무식한 백성들도 글자를 익혀 자신의 뜻일 보이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글구 최만리등을 포함한 당대 사대부들은 문자 독점이 깨지는 것에 반발하여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는 거고…
근데 나는 세종께서 무식한 백성을 위한 글자는 사실 명분이고 진짜 목적은 딴데 있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이 들곤한다.
한글 이전에 이두 란게 있었다…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이른바 보조문자 라는데, 이두란게 알고보면 독자적인 문자 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한자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는 보조문자이다.
우리말을 가만히 살펴보자…일단 교착어 이다..교착어란 몬가? 말 그대로 본드를 쫙 ~ 발라서 붙인 말이란 거다…. 즉 여러가지 뜻을 가진 단어를 돼지표 본드로 발라서 병렬로 나열한 말인데…. 교착어란 본드를 사용한 말이란 뜻이다.
그럼 본드가 모냐? 한마디로 말하면 조사 이다. 즉 우리나라 말은 여러가지 뜻이 있는 단어를 쫙~ 나열한 다음…본드 역할을 하는 조사를 통해 … 내가 원하는 의미로 문장을 내 맘대루 짜집기 가능한 아주 재미있는 말이란 소리이다.
이제 교착어의 의미를 알겠쥐? 근데 문제는 한자에서는 이런 조사의 표현을 충분히 몬한다는데 있다. 우리말에서 가장 중요한게 조사인데… 정작 문자에서 이 조사에 대한 표기가 풍부하지 몬하다면…상당히 피곤하겠지?
그래서 이두가 필요한 것이다, 근거?? 역시 없다…그냥 믿어라…아님 말구.
근데 이두 역시 그 기반을 한자에 두고 있어서..똥싼 바지 처럼 몬가 불편하다.
그래서 생각끝에 드뎌 나온게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 즉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자 라는 뜻인데…이는 문장의 해석이 사람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본래의 의미대로 잘 살릴 수 있다는 거다.
오리지날 한자로만 쓰여진 문장이 있다고 치자… 여기에 물론 이두가 쓰여졌겠지만 이두가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문의 해석은 사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각 학파나 붕당들이 각자의 해석을 가지고 옥신 각신하면…대제학쯤 되는 대학자가..그건 이런 뜻이여~ 하면….깔끔하게 정리되는 시스템….. 그러면 지방의 선비들 에게 까지 영향을 미쳐…그건 원래 그런 뜻이여~ , 가 고착화 된다.
근데…훈민정음으로 이런 이두의 불확실한 점이 완벽하게 보완된다믄?
더 이상의 선비들이 이 문장의 의미는 본래 이런 의미여~ 라고 싸울 일도 없겠지..물론 개인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있겠지만…. 팩트 자체가 변하는 일은 없어진단 말이다.
따라서 최만리가 반대한 것은 문자 독점권 붕괴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는 문장 해석의 권위 상실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이기 않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이제 더 이상 문장의 해석 때문에 소위 고수를 찻을 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훈민정음으로 문장의 해석에 대한 걸림돌이 사라지자..학문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장을 정확히 읽을 수 있게 되니… 이제 문자 자체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문자가 뜻하는 바 그 의미에 대해 연구를 하니….당연히 학문이 발전하겠지…
이런 점에서 세종은 정말로 위대한 성군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초기 훈민정음으로 작성된 문장을 보면, 순수 한글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부 한자와 한글의 혼용체가 많은데…이건 초기 한글은 과거의 이두의 역할을 더 섬세하고 정확하고 폭넓게 하는 기능이 우선이었고…. 이러한 기능이 확대 되니까…순 한글 문장도 나오는 거다…즉 명사도 어느새 한글로 대체 되었다는 거다.
사실 오늘날도 순 한글표현의 역사는 그리 멀지 않다…1980년대 부터니까…. 그 이전에는 국한문 혼용이었거든…그래서 신문도 몬 읽는 사람이 부지기수….. 신문 읽는 다는 것은 한문 실력이 된다는 거구… 그 자체로 폼좀 잡았거든…. 알고보믄 한글의 이두 역할의 역사는 길고도 참 길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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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미스테리 11 (삼국사기)
현재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사서임에도 불구하고 강단 사학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인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유일한 책이, 삼국사기이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때 황명을 받들어 김부식이 편찬한 사서이다. 일단 생각을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김부식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 역사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고 하는데, 그건 논리적으로 문제가 많다.
왜냐하면 그때 중국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국제적 상황을 보자. 일단 아골타에 의해서 통일된 려진이(퉁구스) 거란을(키타이) 서쪽으로 몰아내고 북방을 평정했고, 송나라는(정체불명) 금나라에 밀려 양자강 이남으로 쪼그든 상태였다. 이른바 남송…
이런 상황에서 고려가 중국의 눈치를 본다?? 어느나라의 눈치를 본다는 걸까?
당연히 금나라이다. 금나라는 스스로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자임하고 고려 또한 그 이름에서 보듯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다고 했다. 즉 당시 금나라와 고려는 마치 고구려와 백제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른바 정통성 싸움…
그런데 금나라는 거란과 달리 고려와 그 오랜 세월 전쟁을 하지 않았다. 왜일까?
첫째는 초장부터 고려가 금나라에게 고개를 숙였을 가능성 … 그러나 사전에 전쟁 한번 치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둘째는 고려나 금나라나 서로 적대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를 위협적 존재로 보지 않고 보완적 관계로 인식했다는 것, 그러나 이것도 단기간이 아닌 그 오랜 세월 전쟁이 단 한건도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진 못한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는 애초부터 김부식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작되었을 가능성….
개인적으로 세번째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즉 고려와 금나라는 이미 전쟁을 치렀지만 고려조정의 사정 더 정확히 말하면 김부식을 위시한 개경문신들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그 내용이 의도적으로 삭제 혹은 왜곡 되었다고 본다.
왜?? 어떤 이유로 ??
고려 인종때 가장 큰 사건이 바로 이른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다.
이자겸의 난은 사서에는 왕의 장인으로 정권을 농락한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사실상 내전으로 봐야 한다, 사서에는 이자겸이 왕궁을 방화하고 왕은 피신했다고 하지만, 고려 황제를 지키는 금군이 동네 방위병이 아니다.
그 막강한 금군과 소위 수도방위군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왕궁에 난입하려면 수만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내전이다. 사서에서는 척준경이 이자겸을 체포하여 영광으로 귀양을 보냈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실재로는 척준경 이끄는 정부군에 이자겸이 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
고려시대 지방의 유력 호족들은 그냥 호족이 아니라, 실재적으로 그지방의 왕들이다. 이자겸, 즉 왕의 장인이라면 호족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호족일 것이고,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독단적이 아닌 그에게 호응한 호족들이 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고려에서 일어난 내전은 어렵게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이자겸의 반란으로 고려사회가 흔들리자 묘청은 개경은 이미 수도로서 그 기운을 다했으니 새로운 수도 즉 서경으로 천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언하여 인종으로부터 호응을 얻어냈다. 이때 묘청이 서경으로 천도하는 실질적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 태조의 유지를 받들어 북방을 적극적으로 경략하기 위함이다. 당시 북방에는 금나라가 이미 장악한 상태에서 묘청의 북벌론은 금나라와의 전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둘째는, 나라가 북벌모드로 흐르면 필시 문신보다 무신의 힘이 강성해져, 개경문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약화되면서 서경무신세력의 힘은 반대로 비대해진다. 즉 서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 묘청에게 정치적 힘이 쏠린다는 것이다.
수도를 천도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도 이미 겪어서 알듯이 (행정수도)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즉 기존 수도권의 기득권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천도를 하면 개경 문신의 힘은 약화되고 언제 정계에서 쫏겨날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개경 문신들은 필사적으로 묘청의 천도론에 대항했을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런 결과로 결국 묘청은 반란을 일으켜 결국 패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개인적으로 이 기록은 문제가 많다. 당시 이자겸의 난으로 황궁이 소실되었고, 새로운 궁터를 물색중이었는데, 묘청의 설득으로 천도를 결심한 인종이 별다른 이유없이 갑자기 묘청을 버리고, 이에 열받은 묘청이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를 선포하면서 이른바 새황조를 선포하는데 …
말이 그렇지 새황조를 선포하는 것이…쉬운게 아니다, 일단 지방 유력 호족들의 열렬한 지원이 있어야 하고, 막강한 군사력과 재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묘청이 즉흥적으로 땡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나는 거꾸로 본다. 즉 인종이 묘청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경으로 천도하면서 국호와 연호를 새로 선포한다. 그러자 개경이 있는 호족세력들이 반발하면서 반란을 일으킨다. 사견이지만 김부식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금나라의 군사적 지원을 받는다.
즉 남쪽으로는 김부식의 반란군이 북쪽에서는 금나라의 군대가 동시에 공격…. 양쪽의 측면공격으로 결국 서경성은 함락되고 묘청과 인종 그리고 서경 세력은 철저하게 제거된다. 이와 중에 서경 이북땅은 금나라에게 할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개경을 현재 중국의 남경이라고 본다면, 서경은 북경인근이 될 것이다. 이렇게 북경 이북의 모든 영토를 금나라게 할량하고 김부식은 정권의 안녕을 보장받는다.
그때부터 고려왕은 강력한 왕권을 상실하고 허수아비로 전락된다. 의종은 평생 술만 푸타가 디진다… 의종이 인종의 아들이라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옹립된거구…그래서 실권도 없구…따라서 할일은 술푸는거….. 모든 국사는 김부식을 위시한 개경의 호족들이 처리했다고 보믄 된다.
그래서 인종 이후의 모든 고려왕들은 대게 허수아비이다. 의종, 명종, 신종, 희종…. 아마도 고려개경 문신들은 금나라에게 철저하게 사대했을 것이다, 그 대가로 정권의 안녕을 보장받구 ….
삼국사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편찬된 것이다. 서경을 정점으로 하는 북방계 호족 세력을 우리 민족사에서 삭제시키고, 우리 민족사의 중심을 개경 즉 남경 인근으로 재편찬 하다 보니…자연스럽게 신라 중심 사관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김부식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을 하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이완용 보다 알질 역도임에 틀림없다. 이후 고려는 개경 문신들의 농간에 흔들리다가 무신들의 반란이 일어나 문신들을 도륙을 낸다.
이렇게 문신들을 도륙을 내는데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호족이 없다는 것은 그 만큼 개경 문신들이 악행이 도를 넘어섰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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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의 미스테리 12 (강화도)
가공할 몽골의 기마대군이 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텼던 곳….
병자호란때 인조가 토낄려다가…간발의 차이로 못간… 그래서 삼전도의 치욕의 한과 연관이 있는 곳…
본래 조선은 두개가 있다고 했다… 기억이 희미한 분덜은 이전의 글 복습..
대륙조선, 만주한반도조선…. 대륙조선은 이성계 계열이고, 만주한반도계열은 방언계열…. 결국 이 두나라의 대결은 이성계 계열의 승리로 끝나고…병자호란…. 인조는 만주한반도의 실질적 마지막 군왕….
그럼 인조 이후 … 만주한반도 조선은?
사실상 대륙조선의 속국으로 봐야 한다…이건 강단사학계도 인정하는 부분….
근데 대륙조선은 내전에서 승리한 후 만주를 봉금지역으로 선포하여 잡인의 출입을 금지했음… 사실상 사람의 출입금지….왜 그랬을까?
그건 동북아 지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만주지역은 사람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그곳으로부터 에너지가 모여서…대륙으로 치고 올라가거든…
즉 대륙조선은 만주한반도 조선이 훗날 강성하여 북진하는 것은 사전에 차단시킨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대륙으로부터 고립시킨 것이다. 만주를 차단하면 한반도는 사실상 섬이다.
물론 조상의 땅…이성계의 고향이라는 명분도 주요했지만 …
그래서 지금부터 강화도에 대해 풀어보자…
얼마전…경복궁에서 조선말기..궁궐 사진전시회를 했는데, 다행히도 봤다. 모 별스럽지는 않았고, 대형 흑백 사진이 쭈~욱 있었는데.. 이상한 건, 거기에 있는 모든 궁궐에 초목이 무성하고, 잡초가… 즉 사람이 살지 않는 흉가와 같았다는 것이다.
대원군이 나라가 절딴 나는 걸 각오하고 지은 궁인데… 왜 이리 관리가 않되었을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었는데, 실은…
현재의 경복궁은 대원군이 나라가 절딴날 각오를 하고 지은 경복궁이 아닐 가능성이 쪼금 있다는 거다.( 아니다! 라고 말하면..여러 넘들이 귀찮게 하기 때문에..일부러 이런 표현을 썼다)
즉 한나라의 궁궐이 이렇게 흉가로 변모한데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았으니 관리가 되었을리가 없겠쥐?
그럼 현재 있는 경복궁은 모냐?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 경복궁은 만주한반도 조선의 궁궐이다. 그러니 큰의미에서는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라는 말은 옳은 것이다. 의미와 범위가 달라서 그렇지….
잠깐 쉬어가는 시간…. 임진왜란에 대해 보자…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거의 멸망의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광해군의 놀라운 정치적 능력으로 겨우 망국을 면하고 왕조는 이어간다고 교과서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내 생각에는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절반은 망했다.
잘 생각해보자…임진왜란때 선조는 의주로 토껴서 몸만 사렸고, 실질적으로 광해군이 모든 상황을 통제했는데, 이른바 분조이다.
분조…즉 두개의 조정이 있었다. 이건 말이 안된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조정을 두개로 쪼개 각각 독립된 권력을 만들면, 사실상 나라의 분단이다. 위기때일수록 힘은 한군데로 모아야 하는 건,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은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다. 이 코메디를 어떻게 설명할까? 권력은 죽기 1분전에도 나누지 못하는 법이거늘…
즉 구라 라는 것이다. 분조는 없었고, 사실은 임란때 선조가 무능했던 아니던 통제했고 전란의 집중포화를 당했던 경상도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본다. 또한 이후에 또 한번 왜란이(정유재란) 일어나 전라도에 대한 통제권도 상실한다.
이렇게 해서 상실한 땅이 바로 오늘날 중국의 호북성과 호남성, 즉 전라도와 그리고 광동성 및 동해안 지역 즉 경상도이다. 이로서 양자강 이남의 모든 영토는 상실된 것이다.
그리고 병자호란으로 화북지방과 산동을 상실하고…. 결국 만주와 한반도로 쪼그라든 것이다. 이로서 이방언 계열의 조선은 대륙조선의 속국으로 전락된 것이다.
다시 광화도로 유턴하자.
결론부터 말한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고려시대의 강화도는 오늘날 한반도이다. 물론 강화도의 위치는 시대의 역사에 따라 그 위치가 조금씩 변한다, 마치 평양성 처럼 ….
즉 몽골기마대군을 피해 고려황조가 임시수도로 삼았던 강화도는 오늘날 한반도이고, 오늘날 경복궁 터는 그때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광화문 복원공사 할 때 발굴된 것이, 현재의 터 아래에 고대의 옛 성터가 있다고 당시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이건 의미가 깊다.
이 강화도 즉 한반도의 옛 임시궁궐인 현재의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 된건, 병자호란 이후로 봐야 한다. 즉 대륙의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만주와 한반도로 쪼그라든 조선이 옛 고려적 임시수도를 나라의 도읍으로 삼아 새로 시작했다는 것이 부채도사의 의견이다.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려다, 한발 늦어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는데, 이후 인조가 강화도로 아예 보따리 싸 옮겼다는 건, 대륙의 영토를 상실한 이후 기타 다른 선택이 없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2의 침략에 대비한 측면이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흥선대원군때 프랑스 넘들이 침략한 강화도는 오늘날 강화도일 가능성이 높지만 인조때 까지만해도 한반도가 강화도 였다는 거다.
두번째 가설은,
고려황조의 임시수도 였던 강화도, 즉 한반도의 경복궁이 인조때 조선의 정궁이 된게 아니라, 인조때 전란의 위험을 피해 현재 경복궁으로 임시 조정으로 삼았다. 즉 전쟁을 각오하며 북벌의 때를 보았던 것.
효종때 까지 이어지던 북벌 열기가 효종의 죽음과 함께 식어가자 ,,, 숙종때 다시 한반도 즉 강화도를 떠나 다시 대륙의 도성으로 복귀했다는 것.
즉 현종때만 해도 강화도에 각종 포대를 늘려 방비를 강화하는 정책을 썼는데, 숙종때에는 조선이 어느정도 안정되고 대신 환국정치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즉 오랜 임시수도 강화도(한반도 경복궁)를 떠나 다시 대륙으로 도성을 옮겼다는 것이다. 이건 대륙조선이 내전을 승리할 때 본래 만주한반도 조선의 영토인 화북과 산동지방에 군대를 주둔시켜 점령하던 것을 철군하여 다시 돌려주었을 경우이다.
즉 대륙조선이 판단할 때 당시 조선의 북벌 가능성이 완전히 죽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숙종 이후 대륙조선과 조선의 긴장 관계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숙종때 왜 붕당정치가 그렇게 지랄을 했을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즉 오랜 임시수도에서 벗어나 다시 대륙으로 환궁했으니 본격적인 권력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임시수도 강화도에서 권력을 키우던 세력과 대륙조선의 후원을 받았던 세력이 충돌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이 소위 붕당으로 혼란스러웠던 환국정치이다. 이경우 대원군때 프랑스 넘들이 침략한 강화도는 현재 서울의 경복궁이다.
그렇다면 숙종때 환궁한 대륙은 어디인가?
산동과 그 이남지역이다. 양자강 주변 지역은 산물은 풍부하나 습하고 지나치게 무더워 북방초원민족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도 대륙조선의 군대가 철군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땅이 임진왜란, 정유재란때 초토화 된 조선의 본래 전라도와 경상도이다.
본래 고려황조때 강화도가 오늘날 대만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것 보다 오늘날 한반도 라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까지가 두번째 가설이다.
가설은 가설일 뿐이다, 다만 가설이라 해도 현실적 역사적 내용을 토대로 그려나간 내용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한반도에 있는 신라시대와 백제의 고구려 유물은 몬가???
일단 대부분의 불교유적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봐야 한다. 즉 몽골침략때 임시수도를 30년이상 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유적은 전부 몽골침략시기에 조성된 거로 봐야 한다.
또한 일부 유물은 실재로 삼국시대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째거나 만주는 여진의 본향이고 여진은 곧 예족이며 예족은 곧 고려이니까… 하지만 일부 사찰등 문화재를 제외하고 대부분 즉, 오늘날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등은 고려시대 것이다.
세번째 가설은,
숙종때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환궁하지만, 일부 세력들이 환궁을 거부하면서 여전히 한반도에 잔류한 경우이다. 즉 사서에 보면 희빈 장씨의 소생이 보위를 이어받는데. 경종은 신체가 부실해….일찍 요절한다.
희빈 장씨가 죽기전에 자신의 아들인 경종의 거시기를 타격해 고자로 만들었다는데, 이건 분명히 소설이다. 즉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강력한 왕권을 자랑하는 숙종은 대륙으로 환궁하고 한반도에는 남은 귀족들이 경종을 왕으로 추대하고 여전히 강화도 조선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귀족에 의해 옹립된 왕이니..한마디로 허수아비 왕이었을 것이다.
대륙으로 환궁한 조선은 영조와 정조때를 지나면서 번성했지만 한반도 조선은 귀족들의 권력 쟁탈전으로 혼돈스러웠을 것이다.
나중에 일본에 의해 숙종이 환궁한 대륙 남쪽 조선이 1차로 멸망하고, 그 다음에는 한반도에서 개기던 또 다른 조선왕조가 망하고, 마지막으로 1912년에 대륙조선이 망하면서 모든 조선이 쫄딱 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진실을 알려믄?
조선사 편수회를 확실하게 디벼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게 불가능한게…일단 관련자들 자 디졌고… 모든 증거물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거나 아니면 감추어져있어….
결국 힘으로 해결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북미핵대결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참고로 이 모든 이야기는 가설이다, 읽을때 참고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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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미스테리 13 ("왜"의 정체에 대하여)
지난번 강화도를 마지막으로 한국사의 미스터리는 끝내고, 이제는 단편적인 역사글을 쓰려고 한다. 오늘은 첫번째로, 왜넘들의 미스터리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왜…. 한국사에 끊임없이 나오는 집단이다, 공통점은 일단 이넘들은 배를 타고 침략한다. 고로…바닷길을 통해서 오는 넘들이고, 또한 해적질을 주요 임무로 한다. 그리고 가끔씩 대규모 침략으로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시기상으로 보면, 고려말에서 조선초기때 가장 나댔다. 좀더 세밀하게 보면, 몽골 쇠퇴기부터 본격적으로 나댔다고 볼 수 있겠다.
세종대왕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이후, 왜넘들이 뜸해졌다. 즉 왜의 본거지를 쑥대밭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대마도가 어디인지 알면 자연스럽게 왜넘들의 정체도 대충 밝혀지겠쥐?
일단 대마도는 오늘날의 쓰시마 섬은 절대루 아니다. 일단 동남아시아에서 찻아본다. 이말은 본래 일본의 위치는 동남아시아란 말이 된다. 즉 태국부터 시작해서 인도네시아를 지나 보루네오 섬까지가 일본이라고 보믄 된다.
풍신수길이 통일한 일본은 바로 동남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대마도는 아마도 …필리핀이 아닐까..예측해본다. 오늘날의 동남아시아인은 당시 하층민이었고, 실질적 지배세력은 몽골로이드였다. 물론 혼혈이 성행했겠고….
지금부터 그 증거를 나열하겠다 ….잘 따라와라…
장개석… 대만의 국부인데 … 한때 대륙을 호령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사람의 이력이 재미있다. 중국 남부 지역에서 태어나 … 일본 육사에 입학해서 공부했고 나중에는 일본군대에서 복무하다가 1911년에 원세개의 친위 구테타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혁명군을 이끌구.. 대륙조선에 대항한다…
당시는 일본은 이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해..국운이 난리 지랄을 했을 때다. 엄밀히 말하면 장개석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매국노이다. 적국인 일본의 육사에서 공부하고, 육군에 복무까지 했으니 … 그런데 중국은 우리의 박모 소장과 달리 이에 대해 어떤 시비가 없다. 대륙적 관대함 때문일까????
아니다, 사실은 장개석은 일본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니면 재일 일본인2세…. 본래 동남아시아에 있던 일본은 18세기때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개박살 난다. 영국은 동남아시아 인근에다 동인도 회사를 설립한다.(오늘날의 인도는 서인도) 게다가 프랑스는 베트남.캄보디아를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지배하였다.
이렇듯 일본의 모든 열도가 서구열강에 의해 지배당하자…일본은 중국 남쪽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고종때이다. 오늘날 산동성 이남에서 티벳을 제외한 땅이 대륙남쪽의 조선으로 본다. ( 본래 티벳은 오늘날 알고 있는 티벳 영토보다 더 크다)
당시 일본이 국경으로 몰려들자, 당시 무능한 조선왕조는 삼남지방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고 본다. 당시 일본이 조선의 남부지방에서 임시정부를 꾸리며 살고 있을때… 이때쯤 태어난 사람이 바로 장개석이다.
조선이 종이 호랑이임을 알게 된 일본은 더 강력하게 무력행사를 하여, 결국 조선을 병합하게 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한반도에 있는 조선도 병합된다. 이때가 1910년이다.
그런데 장개석이 일본군에 공식적으로 복무한때가 1909~1911년까지이니… 장개석이 일일본군으로 복무할 때 조선이 망한셈이다.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장개석은 혁명군을 이끌었다고 했는데, 내가볼때…..일본 중앙군에서 이탈한 군부를 이끌고 당시 상당한 세력이 있는 손문에게 투항한거루 본다.
결국 손문에 의해 후계자가된 장개석은 주변의 군벌들을 장악하며 가장 큰 세력이 된다. 일본이 당시 조선의 도성을 장악하고 병합했지만, 지방에서는 여전히 군벌들이 살아있었고, 이 군벌들이 결국 나중에 중국 공산군과 국민당군의 내전의 주축세력이 된다.
그리고 이 군벌은, 우리 독립투쟁사에서 사라진 무장 투쟁사와 직접 연결된다.
그럼 오늘날 저팬은??
태평양전쟁때 일본은 본토인 인도차이나를 모두 잃고 현재의 일본 열도로 몰렸고 거기서 항복을 한 것이다. 또한 일본에게 한방 크게 당한 미국은 다시는 일본이 몬 일어나게 했는데, 그건 평화헌법이 아니고, 일본을 핏자 조각처럼 산산조각낸 것이다. 인도차이나를 북북 ㅤㅉㅣㅅ어서 독립시켰고…일본은 현재 열도에서 일종의 귀향살이 하고 있다고 보믄 된다. 물론 인도차이나 바다는 미국이 통제한다.
그러니까..현재 동남아시아가 개판인 것은…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를들면 강남개발때 농사꾼들이 갑자기 갑부가 되어 … 헤메는 것과 비슷하다…
상해임시정부가…. 왜 외국에서만 맴돌까? 생각도 해보았는데, 진실은…상해임시정부는 한번도 외국에 있어 본적이 없다. 상해인근 즉 남경이 본래 조선의 수도 였으니…임시정부는 원래 제자리에서 투쟁하고 있던 거다.
장개석이가 조선의 독립을 약속했다고 하는데, 만일 장개석이가 대륙패권했으면, 본래 조선의 땅인 산동이남의 지역의 독립을 승인했을까??? 여담이지만 김구 선생이 해방후 한반도로 오면서 감격했을까? 아니면 참담해 했을까? 내 생각은 참담해 했을거다. 대륙의 본토를 몽땅 잃고서 변방인 한반도로 올때….그것도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땅에….
그래서 김구선생이 위대하다는 거다…개떡 같은 쪼가리 땅이지만, 민족의 통합을 위해 삶을 내어던졌던 것…. 당시 김구선생은 민족의 통합을 이룬후에 다시 대륙으로 나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힘으로 우리끼리 지랄했으니….
어쨌든 왜넘들의 본거지는 동남아시아 전체이고, 이건 과거에 가야연맹국의 땅이기도 하다. 왜 가야가 우수한 문화와 기술에도 불구하고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에 비해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연맹으로 남았을까? 의구심이 있었는데, 결국 수백개의 커다란 섬으로 이루어진 지리적 특징상 통일은 죽기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의 감정과 관계없이 풍신수길의 정치적 능력은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대만이 일본침략을 겪고도 자발적 친일행적을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상할 것 없다, 대만과 일본은 이른바 친척관계니까… 물론 대만 오리지날 본토인은 제외하고 … 대만에서 독립파와 대륙파가 갈등하는 건, 대만의 헤게모니를 두고 싸우는 건데, 이주민과 본토인이…이주민은 장개석 잔당이고, 이들은 결국 일본인이다. 물론 정치적으로는 일본군과 국민당군은 적대관계지만 …
장개석의 스승인 손문은 조선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양반의 이력을 보면, 일단 하와이에서 유학했고..이승만도 하와이 출신 … 어쨌든 그 후에 홍콩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에 본격적으로 정치일선에 나서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중국의 역사는 모두 이 양반 작품이다.
그 어떤 기초없이 맨땅에 헤딩한 건데, 개인적으로 보면 대단한 양반이다. 일본 육사에서 탱자 탱자 하다가 픽업되어 정치스타가 된 장개석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손문의 본래 목적은 조선의 독립이다.
즉 병자호란 이후 대륙조선의 사실상 속국이 된 대륙남쪽조선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그는 일본군과 대륙조선의 입장에서는 제거해야할 일급수배자인 셈이다.
그는 1925년에 북경에서 죽었는데, 그의 죽음 이후 장개석은 조선의 독립이란 본래의 취지를 버리고 스스로의 왕국을 위해서 권력을 이용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그동안 함께 한 일부 군벌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이들이 모택동의 공산군에 합류함으로 한때 발톱의 때정도로 여겼던 공산군의 세력이 급신장한 것으로 본다.
손문 선생은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유일한 실책은 후계자를 키우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손문 선생이 주창한 중국은 사실상 독립된 조선을 뜻하는 말이었다.
결론적으로 손문의 조국인 조선은 한반도로 찌그러 졌고, 그것도 남북으로, 그 제자 장개석은 더 작은 섬인 대만으로 찌그러졌고, 그의 최대적인 일본은 외딴 섬으로 고립되었고 … 대륙조선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대신 대륙에는 손문이 신경도 쓰지 않은 작은 집단에 불과했던 모택동의 잔당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이다.
동아시아 역사가 이렇듯 개판인데 누구하나 언급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동남아시아 각국은 가만히 않아서 공짜로 주운 지갑인데, 돌려줄 이유가 없고 일본은 현실적으로 본토를 되찻을 힘은 없는데 진실이 알려지면, 그 뒷감당을 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 대만도 마찬가지…. 중국은 알려지면 재앙이다. 그래서 동북공정 하는거구 … 이참에 이 땅 굳치기 하는거 …
즉 모든 아시아 국가가 역사왜곡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2차 대전이후 이모든 것을 설계한 미국과 진검 승부를 벌이고 있는 나라가 북한이다. 과연 북한이 미국에게 이 지역의 설계변경을 요구할까? 무척 궁금한 사인이다. 중국과 일본이 빈번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몬가 있기는 있는 것 같 같은 …
2차 대전때 수많은 나라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독립을 했는데, 거기에는 정치적 논리가 없었을까? 특히 아시아에서 ...
# 참고로 이글은 모두 부채도사표 가설이다. 읽을때 혼동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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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가설과 팩트의 사이에서...
불과 100년전 사람들은 공룡이 몬지 몰랐다, 불과 20년전 사람은 공룡이 새의 조상인줄 몰랐다 그리고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공룡의 몸에 깃털이 있는줄 몰랐다. 그럼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후에 공룡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지금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이 영원불변의 진리 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사람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일이 조금만 상식으로 보면 어리석은 건데, 그걸 무신 신주단지 처럼 모시는 이 코메디 같은 일이 어디 티브에서나 나오는 개그 프로그램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자신의 꼬리를 자유 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크기와 관계없이… 그런데 인간은 불과 10년전에는 모든 공룡의 꼬리는 땅에 질질 끌고 다니는 것으로 여겼다. 왜 그랬을까?
공룡의 실재 사실과 관계없이 머리 속에서 상상하던 가공된 동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 인가?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 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우리는 불과 3만년전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어떻게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지게 되었는가, 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200만년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또한 우리는 석기시대 인간은 거의 동물취급한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네안데르탈인은 머리뼈를 절개해 두뇌 수술을 했고, 동료가 죽었을 경우, 부족이 모두 슬퍼하며 엄숙한 장례의식을 행했다는 거….
타임머쉰이 발명되지 않는한 … 과거에 대한 팩트를 얻기란 사실 불가능 하다. 모든 이론은 가설이며 팩트에 좀더 가깝게 가기위한 근사치를 얻기 위한 노력만 할 뿐이다.
만일 새로 발견된 공룡의 화석 지층대에서 인류의 뼈가 함께 출토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류의 기원은 거의 1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야만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차라리 그 지층을 다시 묻고 발굴 일지를 태워 버리는 편이 쉽지 않을까?
역사의 조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날 공룡화석에 인간의 뼈가 동시에 출토되었는데, 언론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로 보도된 것과 마찬가지로…
왜 중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거의 방치하며 의도적 훼손을 하며, 독립투사의 동상 및 기념하는 모든 것들을 방해할까? 선뜻 이해 하기 힘들다.. 항일독립투쟁이란 공동의 목표가 있었고… 일본이 항복할 때 까지 전략적 협력도 하였다.
언론에서 가끔 보도 되지만, 왜?? 라며 심각한 고민은 해보았는가?
이유는 그런 역사적 유물과 기념물은 거짓 역사를 고발하기 때문이다. 완전범죄를 위해서는 현장을 삭제하는 게 가장 쉽다. 만일 노근리가 개발 붐으로 불도저와 포크레인으로 모두 밀어내고 그 위에 신도시를 건설했다면, 과연 미군의 민간의 학살이 공개화 되었을까?
중국의 동북공정도 엄밀하게 보면,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나 왜곡이 아니라,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과 역사를 포멧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포멧만 하고 빈공간으로 남겨두면 대중들을 설득하지 못하니..그 위에 중화주의로 덥어쓰기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몰까?
모르는 일이다. 20년 후에는 공룡이 실은 모두 거대한 새 였을 거라고 발표될 지도 …. 1억년전 지구는 코끼리 보다 10배 무거운 거대한 새들이 창공을 누비고 다는던 이상한 시대 였을 거라고 ….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사실에 접근해 좀더 정교한 근사치를 얻으려고 하는 노력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 과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게 몰까?
아무리 허접한 조선말기 때라도…일본 깡패가 나라의 궁궐을 넘어 살육을 벌이는데…. 그리고 국모를 살해하는데, 그들을 막은 군사가 없다는 게…
그리고 이걸 아무 의심없이 믿어왔다는 게, 사실은 공룡이 새처럼 펄펄 날아다닌다는 것 보다 더 황당한 일 아닌가?
부채도사 출동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2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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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프라이즈 국제방에서 글을 쓰는 '출동'이라는 분의 글입니다. 많은 분량의 글이라 1편씩 따로 펌하려다 게시판만 차지할것 같아서 1페이지에 펌함니다.
글을 쓴 본인이 대륙조선사를 컨닝하지 않고 작성하였다고 하는군요. 건질만한 사항이 있는지 여러 선생님들이 검토하시라는 차원에서 업어왔습니다.
관련된 토론 댓글은 링크를 따라가서 보시면 되겠습니다.
많이 공감됩니다 / 부채도사님의 눈이 맑은거 같습니다/ 그러나 단제조선의 흐름과 일치해야 조선 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습니다 이씨조선은 양자강 쪽으로 남하 한 후에는 여진과 멀어져 친명정책을 썼고 그들의 역사무대를 한반도로 한정하는 왜곡조작을 하면서 동시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것 이라는게 저의 생각 입니다 고종의 친일세력들이 말년에 한반도 로 이주한 후 이 땅에 원래부터 있던 조선(타타르)이라는 높은 이름을 참칭한 것이지요
조합하시느라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단한 정성에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오래간만이십니다...김선생님...전 그전에 자주 출몰하시던 그 김재만 선생님과 혼동되어...친한척을 못 했습니다...광범위한 자료 고맙습니다...혹여...제가 아는 그 김재만 선생님이 아니신건 아니시겠져...?
홍선생님. '관'자와 '만'자를 햇갈리션군여.^^ 오랜만입니다. 김재만 선생님은 아시아문화사연구회(http://cafe.daum.net/asiaculture)에 계시면서 여전히 왜놈연구에 집중하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히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