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를 지나며(過石)
國破山河王氣殘(국파산하왕기잔)-나라가 망하려니 산하에 왕기가 쇠잔하고
天孫何處白雲間(천손하처백운간)-왕손은 저 흰 구름사이, 그 어디에 있는가.
只今宮漏秋鐘歇(지금궁루추종헐)-지금 궁중에서 물시계와 종소리가 그치니
千古月明江水寒(천고월명강수한)-하늘에는 달이 밝고 강물은 차기만하도다.
사명대사(四溟大師)
사명대사와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詩)로서 한판
임진왜란 중에 승병(僧兵)을 일으켜 왜적(倭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유정(惟政)
사명대사(四溟大師)는 그 이름이 유교(儒敎)를 국시(國是)로 정한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사회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위의 사명대사(四溟大師) 동상(銅像)은 동국대학교 후문 장충단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일화(逸話)나 게송(偈頌) 한시가 많이 전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4년에 전후(戰後) 처리문제로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2~1616)를 처음 만났을 때 주고받은 시(詩) 문답(問答)이 유명하다.
이때는 이에야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최고조로 달해 있던 시기에 사명대사가
방문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이에야스가 사명대사에게 시(詩)를 선제공격한다.
石上難生草(석상난생초)-돌에는 풀이 나기 어렵고
房中難起雲(방중난기운)-방안에는 구름이 일어나기 어렵거늘
汝爾何山鳥(여이하산조)-너는 도대체 어느 산에 사는 새이기에
來參鳳凰群(래참봉황군)-여기 봉황의 무리 속에 끼어들었는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당시 조선과 일본은 사용하는 언어는 달랐지만 한문(漢文)은 같이 썼기 때문에
붓으로 쓰는 필담(筆談)이나 시문(詩文)은 소통(疏通)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사명대사가 지체 없이 맞받아쳤다.
我本靑山鶴(아본청산학)-나는 본래 청산(靑山)에 노니는 학(鶴)인데
常遊五色雲(상유오색운)-항상 오색구름을 타고 놀다가
一朝雲霧盡(일조운무진)-하루아침에 오색구름이 사라지는 바람에
誤落野鷄群(오락야계군)-잘못하여 닭 무리 속에 떨어졌노라
사명대사(四溟大師)
사명대사의 시(詩)가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조선은 학(鶴)이고 일본은 닭 무리라는 내용이다.
사명대사는 과연 고승이다.
그 대담한 배짱과 칼날 같은 선기(禪機)가 이 시(詩) 한 수에 담겨 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잡혀간 조선포로 3000여명을 데리고 귀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이에야스와의 통쾌한 문답이 작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위에 머리에 있는 사명대사의 시(詩)는 당시 불안한 조선의 정치를 염려하는
내용이 절절히 담겨있다.
어찌 임진왜란 후의 일만이겠는가 !
지금의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다.
석가탄신일에 국민, 정치인, 공직자, 종교인이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인지 사명대사를 통해 돌아볼 일이다.
특히 정치인 공직자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