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목민심서(정약용 저, 다산연구회 편역, 2016)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목민심서」는 지방관이 현지에 부임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교대하여 나올 때까지
목민관의 바람직한 일처리와 자세를 제시한 책입니다.
강진의 귤동(橘洞) 유배 시절에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유배가 끝나는 1818년에
쓰기 시작한 초고를, 고향 마현(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으로 돌아와 보완하여
1821년에 지금 전해지는 체제로 완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책의 편성을 살펴보면, 총 12부로 구성하고 각 부마다 6조로 분류하여 총 72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2부는 1부 부임(赴任) - 2부 율기(律己) - 3부 봉공(奉公) - 4부 애민(愛民) -
5부 이전(吏典) - 6부 호전(戶典) - 7부 예전(禮典) - 8부 병전(兵典) - 9부 형전(刑典) -
10부 공전(工典) - 11부 진황(賑荒) - 12부 해관(解官)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방대한「목민심서」를 정독하며 일독한다는 것은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독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각 부를
선별해서 읽는 것도 무방합니다. 지금 온 나라가 전염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시국과
관련하여 11부 진황(賑荒) 6조(六條)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진황(賑荒)은 비자(備資) - 권분(勸分) - 규모(規模) - 설시(設施) - 보력(補力) - 준사(竣事)에
관한 6조(六條)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부연하면, 구휼물자 준비하기 - 나누기 - 시기 맞추기 -
시행 계획 세우기 - 민생을 안정시키기 - 마무리하기입니다. 다산은 황정(荒政)이 잘돼야
목민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끝나는 것(305쪽)이라고 했습니다.
황정(荒政)은 기근을 구제하는 정치를 말합니다. 목민관의 가장 중요한 일이 황정(荒政)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며, 재난을 당했을 때 비로소 목민관의 진정한 역량을 알 수 있다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재난의 대처 능력이 어찌 지방관의 역량만으로 한정해서 볼 수 있겠습니까?
특히 인간의 활동영역이 국경을 넘나드는 지구촌 시대인 점에 주목해서 보면, 진황(賑荒)편에
나오는 목민관의 임무와 역량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도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진황(賑荒)편을 지금 시대에 맞게 확대해서 펼쳐보면, 다산이 각 조를
통해 경계하고 강조한 말씀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산은 진황(賑荒)의 첫째는 비자(備資)라고 합니다. 즉 구황(救荒)의 정사에는
예비만한 것이 없으니, 예비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구차할 따름(306쪽)이라고 합니다.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제일이라는 뜻입니다. 예비는 모든 나라에서 항상 힘써야 할
일이니 예비하지 않는 나라는 정치가 없는 나라(307쪽)이기 때문입니다. 다산이
살았던 농경사회에서 예비의 으뜸은 양곡이었습니다. 인간의 활동영역이 확대된
지금의 사회에서도 생필품은 여전히 중요한 예비 물자이지만, 그 외에도 예비할 목록은
무수히 많고 복잡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에서 코로나19
하루 확진자수가 50명 미만으로 유지되면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한다는 말에서, 50명이란
우리나라 현재의 의료진이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확보하고 있는 의료 인력이나 시설 및 약품 등에 따라 그 수준은 달라질 수 있다는 함의이기도 합니다.
다산은 권분(勸分), 즉 구휼물자 나누기는 권하는 것이지 위협하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의 권분(勸分)하는 법은 곡식을 팔도록 권하는 것이지 거저 먹이도록 권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베풀도록 권하는 것이었지 거저 바치도록 권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몸소 솔선하는 것이었지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상을 주어 권장하는 것이었지 위협하는 것이 아니었다(309쪽)
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권분법은 거저 주게 하고 따르지 않는 백성이 있으면 엄한 형벌을 내리고
곤장을 사납게 치는 것이 마치 도적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며(310쪽), 지금의 권분은 비례(非禮)의
극치이다(309쪽)라고 개탄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난상황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부자와 빈자 간의 갈등과 비난이 폭등으로 비화되기도 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독단을 능력으로
착각하거나 지나치게 행사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이를 상황을 빌려 자신의 일을 과잉홍보 하기도
합니다. 다산이 이미 200년 전에 경계한 포악하고 비열한 수법일 뿐입니다.
다산은 진휼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시기를 맞추는 것이요, 둘째는 규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313쪽)라고 합니다. 실기하지 않고 꼭 필요한 부문에 꼭 맞는 규모의 진황을 해야
공평하다는 뜻입니다. 재난의 피해는 사람마다 같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규모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세부계획을 세우고(規模), 적절한 시행방법으로 실행하는
것(設施)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 난국에 무슨 계획이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말들이 그럴듯해
보여도 미숙한 세부계획은 재난의 후유증을 키우는 일이고, 결국 재난을 연장시켜주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안과 관련하여 시사점이 많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재난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주는 것을 의미하고, 긴급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어떤 대상을 어떤 기준으로 지급해야 적절할 것인지가 관건일 것입니다.
재난시기에는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보력(補力)이라고 합니다.
다산은 흉년에는 도적을 없애는 정사에 힘을 쓰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실정을 알게 되면
불쌍해서 죽이지 못할 것이다(321쪽)라고 합니다. 굶주림이 백성을 폭도나 도둑으로 만들기도
하므로 가혹한 형벌을 금하고, 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준사(竣事)는 재난의 마무리입니다. 다산은 큰 흉년 뒤에 백성들의 기력이 없는 것은 큰 병을
치르고 나서 원기가 회복되지 않은 것과 같으니, 도와주고 편안히 모여 살게 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323쪽)고 합니다. 다산의 애민(愛民) 사상이 여과 없이 투영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강진의 유배지에서 자료 수집과 초안을 쓰기 시작하여 유배가 풀리고
남양주 능내리 생가에 돌아와 완성하였습니다. 60세를 바라보는 1821년입니다. 다산은
「목민심서」를 심서(心書)라고 했습니다. 목민관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처지이니, 실행으로
옮길 수 없는 심정을 토로한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거듭 후대로 이어지면서 책의 가치는 빛을
더하기만 합니다. 오늘(4. 15)은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당선된 선량들에게 우선
일독을 권하고 싶은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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