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만덕터널 가는 길
정 우 민
동래 지역에서 낙동강 쪽 구포방향으로 가려면 꼭 통과해야 할 터널이 두 개가 있다. 먼저 1973년에 생긴 제 1 만덕터널과 나중에 1988년에 개통한 제 2 만덕터널이다. 만덕사람들은 줄여서 1 터널 ,2 터널이라고 말한다. 2터널은 3000미터가 넘는 터널로 삭막한 콘크리트 사각 터널이다. 반면에 1터널 가는 길은 약 2km의 오르막길로 금정산의 아름다운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길이다. 먼저 미남 로타리를 지나 우측으로 오르면 좌우로 웅장한 벚나무 길이다. 3월말이면 양쪽에 벚꽃이 만발하여 부산의 남천동 길 못지않은 장관을 이룬다. 부산에서 가장 먼저 벚꽃이 피어서 가장 나중에 떨어진다. 진해 군항제 벚꽃구경을 못가는 대신 그나마 위로가 될 정도이다. 그 길을 넘어서면 철마다 개나리, 철쭉, 목련, 무궁화 나무 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 만덕에 개업한 의사들은 항상 출근길을 1터널 가는 길로 택하고 있다.
도로 양옆에 나무들이 울창하여서 주변에 오래된 암자나 절로 가는 샛길이 즐비하다. 출근하다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산 속의 숲길로 마치 먼 여행길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길 바로 옆 숲이 깊다 보니 밤새 ‘로드 킬(Road Kill)’ 당한 종류를 알 수 없는 동물의 사체들이 자주 눈에 띄어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특히 터널입구에는 아주 큰 아까시 나무(아카시아)가 척 늘어져 있는데 다른 넝쿨나무들과 함께 아예 터널 입구를 막을 작정인 듯 밀림을 이루고 있다. 터널입구에 황금색 ‘만덕터널’이란 글자가 겨우 보일 정도인데 아마도 터널입구 주변 가파른 산기슭은 수 십 년 동안 사람이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정글을 이루고 있다.
이 길에 얼마 전부터 ‘King of Road’가 나타났다. 5000cc급 독일제
검은 세단인데 그 큰 차체를 자유자제로 놀리며 다른 차들을 추월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움직임이다. 요즘 시쳇말로 ‘칼치기’의 ‘제왕’이다. ‘칼치기’란 차와 차사이의 좁은 틈사이로 그야말로 칼같이 파고들며 추월하는 기술을 말한다. 상습체증구간인 2터널과 달리 1터널 가는 길은 오전 8시40분에서 9시 사이에 차가 밀리지 않은 ‘틈새’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필자도 추월을 자주하는 데, 이 검은 세단은 도저히 추월할 수 없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아주 비웃듯이 앞서 가버리는 것이다. ‘오늘은 없나 보다’라고 방심하는 사이에 어느새 백 밀러에 나타난다. 그리고 절묘하게 내 앞으로 빠져 나간다. 그래서 이제 그 차가 나타나면 아예 포기하고 잘 빠져 나가게 선선히 양보해준다.
그 차가 옆으로 지나갈 때 유심히 보면, 짙은 썬팅 때문에 아무리 보아도 안을 볼 수가 없다. 번쩍번쩍 광이 나는 검은 차체 ,시꺼먼 썬팅 , 그리고 능수능란한 몸놀림은 가히 위압적이다.
필자는 상상하였다. 그 차를 모는 자는 아마도 스피드를 즐기며 덩치가 크고 퉁퉁하며, 아주 탐욕적으로 생겼으며 입가엔 잔인한 미소를 흘리고 다니리라.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내차 우측으로 지나던 그 차가 차량이 밀리며
서행하게 되었는데, 운전자 측 창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운전수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 곳엔 나의 상상과 전혀 다르게 깡마르고 목이 길며 메마른 인상의 기사가 촛점이 뚜렷하지 않은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각선 방향 뒷 좌석엔 작은 몸집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분은 사장님 ,아니 회장님인 듯한 모습이었으며 냉정한 얼굴이었다.
‘그렇다, 그 기사는 전문 운전기사였던 것이다.’ 잔인하고 흉폭스러운 드라이버가 아닌 주인의 명령에 충실하게 미션을 수행하는, 아마도
30년 이상 운전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였던 것이다. 바쁜 출근 시간에 맞춰 고도의 기술을 발휘했을 따름인 것이다.
‘스피드를 즐기고 퉁퉁하며 탐욕적일 것이다’고 생각했던 그 운전기사의 모습은, 사실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