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본 하늘소금길, 신안군 증도 (7/7)

[ㅋi 스]

비오는 섬길로 다녀온 하루였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한번쯤 가고 싶었던 섬들의 집합체. 우리나라 슬로시티 1번지.. 전체 섬이 금연구역..

그곳이 바로 신안군 증도였던 것이다.

신안군은 우리나라 남서쪽에 위치했으며 오직 섬과 섬으로 서로를 벗하는 고을이다.

목포와 무안이 그 섬나라의 벗이라지만 그들 섬은 서로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굳이 신안군 흑산도라 하지 않고 더불어 신안군 홍도라 하지 않으니 이미 그들은 섬으로서 온전했던 것이다.

그런만큼 섬들은 유별나게 바다 위에 방목되어 있다.

88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지만 '1004의 섬'으로 거듭난다는 착한 슬로건에 의해 '천사의 섬'으로 불리고 있다.

각 섬과 섬 사이를 떠돌던 강물 같은 바닷물 사이로 다리가 하나 둘 놓이며 3년 전부터 증도로 가는 길도 육지화 되었다.

지도라는 곳을 지나 작은 다리를 하나 더 건넌 후 만나는 곳이 증도대교였다.

빗방울 사이로 전라선 길게 이어 가니 함평을 지나 무안이 나오고

그렇게 난생처음 신안의 한 섬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다.

증도 여행은 사실 비가 많이 올 경우 산행을 감행하지 못할 것에서 긴급하게 마련한 대안이었다.

계획되었던 7월의 산행지는 경북 봉화의 청량산이었다. 청량사에 가서 단원 김홍도의 피리소리 같은 절경 감상해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지만 대안으로 내놓은 여행지 또한 상당히 구미가 당겼던 것도 사실이다.

전날 하루정도는 빨래 말리라고 쨍했던 날씨 덕분에 잠시 청량산을 떠올렸지만, 일요일 새벽에 굵은 빗소리에 깨어날 때

한 곳을 잃고 한 곳을 얻겠다는 갈림길에 서있음을 직감하였다. 모두다 어디든 괜찮아 보였다.

지나치게 대비되는 데서 오는 선택의 어려움이자 두 곳 다 양손에 든 떡처럼 갈등되는 곳이었다.

결국 차량은 경북의 산을 포기하고 전남의 섬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차량이 출발할 무렵, 티비 화면에서 아시아나 항공의 사고소식을 접했다.

비도 오는데 우울한 기분 더할 놀라운 사고소식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듯 보였다.

창밖으로 비는 소리도 없이 창을 타고 흐르거나 점을 뿌렸다.

우리가 가는 곳도 저렇게 섬들의 점이 바다를 수놓을 텐데, 비를 맞을 고요한 섬들이 퍽이나 아름답게 연상되었다.

그

렇게 고요한 빗줄기 바라보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휴게소라 하면 잠이 깨고 다시 비를 보고.. 또 다시 잠을 자고..

그렇게 신안군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식에 눈을 떴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편도 300km거리.. 네 시간 끝에 그 섬나라가 나타났던 것이다.

장맛비 사이에서 여행은 간헐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조금은 참아주기를 기다리지만, 단단하게 마련한 우비까지 갖추니 빗소리 들을 걸음도 좋을 것 같았다.

그동안 전라도 하고도 목포 방면은 유난히 닿을 운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 너머의 신안군까지 간다는 것은 설렘 그 자체였다.

비록 흑산도 홍도를 향하지는 않지만 그 중의 한 섬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떨린다니...

얼결에 가게 되었지만 너무도 기다리던 곳을 가는 것처럼 기분 좋아졌다.

잠시 걷고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짧은 스침들이었지만 비 머금은 하늘을 안았던 소금 들판,

개펄 위를 뛰놀던 짱뚱어들의 장난스런 모습과 짱뚱어다리의 고요함이 오래고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비오는 날은 세상의 모든 화려함과 여러 소리들을 빨아들이는 빗소리로

더욱 깊고 아득해지는 날이다. 그때만큼은 세상과 상관없는 고요한 빗속 세상인 것이다.

천사의 섬 신안군 증도로 가는 길 내내 그 고요함이 함께 했던 것 같다.

신안군은 우선 우리나라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었다. (2007년)

그런만큼 어느 곳에서는 한국인이라면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곳 중 2위라는 수식까지 붙어있다.

빨간 아치형의 증도대교를 건너고도 차량은 더 깊숙한 곳으로 미끄러져 갔다.

첫번째 목적지로 향하는 것 같은데, 차창 밖으로 염전이 하늘을 안은 원초적 들판의 모습으로 누워 있다.

한없이 아름답고 무언지 숙연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빗방울이 소리없이 스미는 풍경이라니.

첫번째로 도착한 곳은 신안 앞바다를 일약 유명하게 만들었던 보물선 발굴 유적 기념탑 앞이었다.

신안 앞바다에서 1975년 고기잡이 도중 그물에 걸린 도자기가 발견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로 해저유물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1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14세기 남송, 원대의 동북아 무역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청자, 백자를 비롯, 금속제품, 목공예품, 동전 등 수만점이 인양되었다고 하여 보물선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

발견 당시 선체 일부도 인양되었는데, 다른 보물들의 연도를 추정해 본 결과 1300년대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의 기법으로 복원한 배의 이름이 바로 '700년 전의 약속'이다.

보물선(트레져 아일랜드) 모형 카페.

그때 인양되었던 유물도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입장료 1,000원이라 겉만 구경만 하고 돌아나와야 했다.

진품은 어차피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인근의 큰 도시에 진열되어 있을 뿐인데 입장료를 왜 받는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조금 아랫녁으로 내려가면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지점이라고 굳이 말하는 곳이 있었다.

아마도 이 섬으로 비치는 낙조가 아름다웠다는 것 같았다.

흔히 볼 수 있는 바다 위의 섬... 이 바닷속에서 700년전의 보물이 발견되었기에 내면의 자신감 같은

보물의 자부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같은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2km지점인 저 작은 섬 근처에서

700년전의 해저유물이 발굴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도 저 말없는 바다에는 보물이 묻혀 있을까? 

원추리 꽃무리들이 바다에 쏟아질듯 위에서부터 구르고 있을 뿐, 말이 없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신안군 증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슬로시티 1호라는 것을 말함인지, 

도시환경마다 달팽이들이 느림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비가 와서 점심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버스 안에서 증도면사무소 당직자 분께 의뢰했더니

참 친절하게도 면사무소 앞 보건소 옥상에 이렇게 비가림막이 있다고 하신다.

장맛비 오는데, 보이는 것이라곤 하늘 담은 소금들판 뿐인 시골 마을에 와서

비맞고 밥먹으라는 서글픔을 없애준 증도의 가장 고마운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점심 후엔 짱뚱어다리로 자리를 옮겼다. 빗방울 사이로 바라보이는 짱뚱어다리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갯벌.

드디어 빗속 걷기를 할 장소를 만났던 것이다.

갯벌 위에 떠있는 470m의 나무다리인 짱뚱어다리는 갯벌의 가장 사랑스러운 친구인 짱뚱어의 이름에

다리라는 가장 보편적인 이름 하나 붙였을 뿐인데, 이 이름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물이 빠졌을 땐 뻘 속에서 농게와 짱뚱어가 뛰놀아 원초적 바다의 속살을 관찰하기 좋고

물이 들면 그 비밀의 이야기 덮어주는 바다 위로 또 그렇게 일몰이 아름답게 진다고 한다.

갯벌처럼 사랑에 빠지고픈 사람, 일몰처럼 아름다운 데이트를 꿈꾸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었다.

잠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해무에 가려진 섬이 희미하여 이렇게 빨간 우산으로 가려 보았다.

밤하늘이 맑은 날이면 별들의 들판이 될 것 같은 그런 바다.

목교 위에서 그 밤바다의 별들을 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였다. 언젠가 그런 바다의 자리에 서보고 싶은 꿈 하나 또 생긴다.

함께 간 작은꽃언니는 배탈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을 땐 활짝 웃어준다.

비가 와서 선글라스를 두고 올 수밖에 없어, 사진 찍을 때마다 결점을 커버해줄 무기가 없다면서도 그렇게 웃었다.

내가 준비했던 빨간 우산을 사진 찍을 때마다 바꿔치기할 줄 아는 센스까지....

그리하여 잠시 까만 빨간 귀신 될 뻔한 것을 까만 우산으로 막을 수 있었다.

뒤돌아본 짱뚱어다리의 마지막 모습.

아무리 봐도 가버린 젊음 같은 그리움일까. 돌아보는 자리마다 새삼 찾아오는 아름다움들!  

짱뚱어다리를 지나 우측으로 걸어가노라면 우전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난다.

비오는 날 공치는 날이라고, 한산해진 시골식 노천카페가 그대로 비에 젖고 있었다.

세상의 바쁨과 한가로움들이 비를 매개로 모두 하나가 되고 있었다.

그때 그 언저리 지날 때.. 은빛 모래사장 위로 어떤 풍경 하나가 나를 이끌었다.

우전 해수욕장의 아름다움을 이국적인 것으로 꾸며주는 짚 파라솔이었다

내겐 오로지 그림일 뿐인 낭만이요, 타인의 것이라 말하는 듯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다 더욱 그림 같은 연인들을 지나치게 되었다.

아무도 저렇게 청춘을 보낸 적 없었노라는 안타까운 옛이야기가 비 사이로 들려왔던가.

나는 해무에 쌓이는 산을 찍는 척하면서 그 아름다운 청춘들을 물끄러미 담아 보았다.

우전 해수욕장을 지나면 말없는 천년해송 숲길이 이어진다.

빗길에 가장 호젓한 걷기를 부르는 길이었다.

바다의 파도가 잠시 힘을 잃고 해송 숲에 와 부딪히지만, 모든 소리를 삼키는 빗소리가 제일 가깝고 청결하였다.

마치 섬이라곤 없는 듯이 아득한 곳에서 해무가 일면

정말 이곳 언저리로 섬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곳이 신안군이라는 생각을 잊을 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수욕장과 해송숲길 걷기를 마치는 어귀에 슬로시티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약 4km 빗속 걷기. 산행을 포기하고 얻은 귀중한 걷기였다.

차량을 다시 이동하여 태평염전으로 향하였다.

입구에서 태평염전을 바라보았지만 직행하지 않고 우측의 태평염생식물원부터 산책을 하였다.

이곳은 순천만보다 오히려 원형의 습지 풍경을 잘 보여주었던 것 같다.

습지에서 자라는 붉은 빛의 칠면초와 함초로 알려진 퉁퉁마디 등에 대해 가까이에서 비교 관찰할 수 있다.

이곳으로 하얀 삐비꽃이 습지의 칠면초와 함께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면 그 풍경으로 축제를 연다고도 한다.

정말 환상적인 풍경화가 그려질 것임을 느낌으로만 생각해 보았다.

가을날 붉게 물드는 칠면초와 붉은 노을 장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방금 그친 비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고 몇가닥의 비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우산과 우의를 벗고 가벼워진 기쁨을 누렸다.

아름다운 사진을 담아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해무처럼 펼쳐지는 인간의 원초적 대지를 만난 것만으로도 갯벌에 대해 기뻤다.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염전이라 일컬어지는 태평염전의 정문.

140만평이라는 크기는 여의도 면적의 2배라 하는데, 이곳 신안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국내 천일염 생산의 65%를 차지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6.25이후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고 소금생산을 늘리기 위해 조성했다는 태평염전은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이룩한 거대한 소금밭이었다.

한때 화학소금에 밀려 존폐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오직 햇빛과 바람으로 완성되는 천일염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소금으로 각광, 예전의 명성까지 되찾고 있다고 한다.

소금이 자연의 상태로 결정되기까지는 인간의 노동력보다도 천혜의 자연환경이 우선 갖춰줘야 하는데,

수심이 깊지않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큰 곳이 소금 생산에 적합한 자연환경이었다.

게다가 바람이 심하면 결정이 작아진다 하고 또 기온이 낮아도 쓴맛이 나므로

일조량이 많고 바람이 적은 날을 택해 소금을 얻는 것이 맛과 건강에 가장 좋다고 하였다.

건너편에 소금 저장 창고가 하얀 소금색 지붕을 하고 검은 목조건물로 서 있었지만

날씨와 시간이 여의치 못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우리는 염전의 노동은 담지 못하고 오직 견습온 학생들처럼 체험객을 위해 마련된 곳을 돌다 나와야 했다.

날씨 좋은 날, 제대로 된 염전의 메밀꽃 현상을 담는 장면은 오직 상상으로만 할 뿐.

이렇게 진열된 장화를 신고 체험을 하는 것 같았다.

수차의 풍경에 줄을 서 있지만 한계단씩 밟아가는 것도 의외로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소금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나이 들어도 줄지 않는 왕성한 호기심을 앞세워 맛을 보기로 하였다.

전망대로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는 용도려니 생각하였다.

이 작은 컵에 담아놓고 2,000원.

이것은 노란 망고맛 소금아이스크림. 소금맛 약간 섞인 단맛,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람들은 이 느릿한 고장에 와서 다시 바쁜 생활의 곳으로 가야만 했다.

하늘이 가장 많은 해를 담고,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공간으로 회색빛 하늘만이 가득 담겼으니

우리는 정든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빈 들판 같은 염전에서 흐린 하늘만 담아왔지만, 우리가 살아오면서 배운 염전의 노동력들이

그 위로 아로새겨지는 것 같다. 그 더운 막노동의 소금땀...

이대로 하를길과 맞닿을 것만 같은 투명한 소금의 들판, 그 엄중한 자연의 식탁을 지나간다.

태평염전을 벗어나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서로 많은지 갯벌이 따라오는 것이었다.

차 안에서 찍어보는데 이것이 신안 증도의 마지막 풍경으로 남았다.

어쩐지.. 그 뻘밭 깊숙한 곳에서 길이 꿈틀 일어서는 것만 같았다.

모든 길들이 바다로 와서 마지막 생을 부려놓았는지, 개펄은 늘 길의 지도를 품었었다.

생명이 숨쉬고 있다는 뜻인지, 개펄마다 숨구멍들이 있었으며 그 질펀한 땅으로는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어주는

천연의 생명들이 또 얼마나 경이로운 살이들을 펼쳐 보이던가.

멀리까지 가서 만났던 섬속의 섬, 증도.

그 귀중한 소금과 갯벌의 생명체들을 그냥 스치듯이 보고 와서 미안해진다.

느림의 미학을 부려놓은 고장에, 바쁘게 선걸음으로 그냥 지나치고 만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고도 작은 책임감이라고 다녀온 이야기 부려 놓으려니,

다른 날보다 수박 겉핥기 하는 것 같아 내 자신이 찜찜한 것이다.

깊숙히 들여다보지 못한 것에 대한 내 나름의 성찰 방식일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돌아온 것이 뒤숭숭한 세상에 대한 일말의 안도감이었던 것 같다.

모두 그나마 무안의 회산 백련지에 가서 시원한 초록바람 마신 것으로,

또 목포까지 가서 저녁으로 푸짐한 해물탕 먹은 것으로 남도의 풍경화는 아름다웠을 것 같다.

[야호]

김대통령의 고향 신안군. 천사의 섬 들 둥에 증도, 염전이 앞권일것 같은데 체험을 못해 아쉽네요
홍도 흑산도는 가 보았는데 증도에도 가 보고 싶게 하네요
즐감...

[ㅋi 스]

오타의 발견은 깨알같은 즐거움입니다.
오타처럼 귀여운 세상의 글이 또 있을까요?
천사의 섬들 '둥에'.. ㅋㅋ

[정(鼎)]

염전 장화걸이와 우중의 풍경이 인상적인 장문의 여행기 잘 봤습니다

[ㅋi 스]

염전 장화걸이가 참 예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