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촛불바다, 노무현 참여정부를 삼키다!"
부안민들이 피눈물을 흘린다. 12월13일 범국민
부안집중대회는 이글거리는 분노를 촛불에 담아 노무현 참여정부의 기만을 태우고 김종규 핵군수의 매향을 성토한 분노의 현장이었다. 대회가 열리는
도중 곳곳에서 '부안답게 살고 싶다'며 그동안의 애환과 격정에 몸을 떠는 이들이 굵은 눈물을 떨군다. 도대체 누가 왜 이들의 피눈물을 쥐어
짜내는가? 이 날 부안민들과 전국 각지에서 부안으로 몰려든 이들, 2만명 이상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들어 올린 '분노의 촛불바다'가 마침내
노무현 참여정부를 집어 삼겼다.
12월13일 새벽, 서해안고속도로 시속 150킬로의 속도 조차 부안으로 향하는 내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밤새 내내 함께 달리는 밤하늘은 맑다. 그 시각 서해안 고속도로는 텅비어 있었다. 주말인 점을 고려해 이른 새벽 길을
나선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인듯 싶다. 마음 속에 담아둔 부안을 찾아 떠난 길 위에서 나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져 있었다. 고속도로
이정표들이 점차 부안이 가까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오전 5시가 되어서야 마침내 부안으로부터 불과 20여분 떨어진 군산(하)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안으로 질주하던 내내 밤길을 비춰주던 달과 별들도 걸음을 멈춘 채 우두커니 서있다.
오전 6시, 마침내 부안에
도착했다. 전경떼들은 보이지 않았다. 부안시내 곳곳을 몇바퀴 돌았다. 이른 아침, 밤새 습기로 축축해진 동네 표정은 가볍지 않다.
부안군청쪽, 일단의 전경무리들이 곳곳을 빙둘러 서있다. 서울번호판을 단 낮선 차량을 유심히 경계하는 전경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얼음벽같은
부안군청이 차갑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얼음벽에 매달인 경찰들이 아슬아슬해보인다.
오전11시, 부안시장쪽 부안 주택가는
물론 상가들, 그리고 시장안 상점들마다 '핵폐기장 반대' 글귀가 인쇄된 노란 반핵깃발이 걸려있다. 경제불황이 가중된 탓인지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오늘 행사가 치뤄질 수협쪽 도로에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건장한 일꾼들이 대형 무대를 쌓아 올린다. 망치질, 톱질 켜켜히
분노가 엉겨붙은 채 수협네거리는 엄숙한 긴장감으로 차오른다. 수협네거리 양모퉁이에 단단히 자리잡은 문규현신부와 김인경 상임대표의 단식 31일째로
접어든 천막단식농성장, 단식 13일째임을 알리는 이강산 선생님의 단식농성장 두동이 부안의 현실을 말하듯 삭막한 겨울바람에 휘감긴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안성당 노란 핵반대 현수막들과 수십개의 촛불등이 부안성당 마당을 차지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단식농성과 핵반대 기도회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 1층에 설치된 대책위 작업장(이 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은 바쁜
모습이다. 반핵점퍼들과 핵반대 깃발, 손수건, 뱃지 등을 담은 상자들이 쌓이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핵없는 아름다운 세상' 자막이 인쇄된
촛불컵을 만들고 있다. 주방쪽엔 아낙네들이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주장으로 통하는 통로 한쪽에 쌓인 쌀포대들이 앞으로도 오랜동안 이 투쟁이
지속될 수도 있다는 듯 비장한 표정을 내보인다. 갑자기 가슴이 무거워진다...
부안성당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 책가방을 울러
맨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걸음을 멈췄다. 아침 햇살을 담은 맑고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여자 아이다. '학교에서도 핵 얘기 하니?" 느닷없는
질문에 생뚱한 표정을 짓지 않을까 조바심을 냈는데 그 아이는 오히려 아주 담담한 표정과 말투를 내보인다. "안 해요" 뜻밖이다. "그런 얘기
전혀 안 하니?" "..." "그럼 핵쓰레기장 들어와도 괜찮아?" "아뇨..." "그런데 그런 얘기 안 해?" "시끄러워서요..."
"시끄럽다?" 난 이 아이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뭐가 시끄럽다는 것일까? "맨날 핵페기장때문에 시끄러워요. 내 친구들 모두 핵폐기장
반대한다구요" 그제서야 꼬맹이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부안군민 반핵투쟁이 시작된지 12월13일로 꼬박 157일째. 현지 아이들에게 조차
핵폐기장은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부안의 슬픈 현실, 이들은 이런 모습을 상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시끄러워
싫다'며 고개를 젖는다.
대책위의 분노와 절규 대통령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이렇게까지 비민주적일 수 있습니까?
이렇게까지 부안을 죽이려 드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7월14일 이후 부안군수는 단 한번도 공식석상에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12월10일
정부발표는그 나마 정부가 '비민주적이었음을 최소한이나마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실질적인 조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기 주민투표제를 요구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는 주민투표시기를 유예할 공작만 꾸미는 것 같습니다. 그 권력과 한수원
등이 이 사실을 왜곡, 국민들을 호도합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결국 총선때 야기될 부담감을 없애자는 의도로 총선후 주민투표실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안에 핵페기장을 강행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달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늦어도 2월초순까지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야한다는 마지노선을 그어 놓고 있습니다. 부안군수가 신청한 핵폐기장 유치신청 자체는 이미 무효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고 정부는 이걸
유효하다고 자작극을 벌입니다. 지금 부안은 생난리입니다. 부안공동체가 파괴됐습니다. 청정지역인 이 곳에 핵페기장이 들어온다면, 온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국민들 누구나 핵폐기장하면 협오시설, 위험시설, 기피시설로 먼저 생각합니다. 정부는 국민들을 먼저 계몽할 생각은 않고
부안보고 죽으라는 겁니다. 한수원은 90억원 이상의 돈을 써가며 국민속이는 광고에 열을 올립니다. 그 돈으로 대안에너지 개발위한 연구는 왜 안
하는 겁니까? 조상대대로 지켜오던 삶의 터전, 부안공동체가 유린되고 있습니다. 얻어 맞고 터지고 깨지고 짖밟히고 연행되고 구속되고 쫒겨
다니고...
분노의 마디마디마다 담배 연기가 피어 올랐다. 바싹말라 엉킨 벼이삭처럼 건조하게 마른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눈물꽃이 피고 핏발 선 눈빛엔 분노와 절규만이 어른거린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부안실상을 더 알려내겠습니다.
전국이 연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각 정당들이 나서서 부안핵폐기장 강행반대 움직임을 보이고도 있습니다. 부안의 문제가 전국화되었습니다.
부안군민들과 국민들을 속인 부안군수를 퇴출시키기 위해 부안군민 8천여명 이상이 퇴출탄원서명을 하였습니다. 피해보상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조기에 실질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전국과 연대해 총선낙선운동도 전개할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비민주적이었습니다.
9월8일 내소사에서 부안군수가 얻어 맞는 사건이 발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 사건 전후 오히려 부안군수에게 개인적으로 전화해
핵폐기장 강행 지지를 독려했습니다. 부안군수에게 위로전화를 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게다가 정부 내부의 부안핵페기장에 대한 극도의
혼선과 혼란은 또 뭡니까? 그야말로 부안군민들을 대상으로 온갖 사기와 기만놀음을 벌였고 오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현재 대화채널은 (공식적으로)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대화채널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있는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위도 현지 주민들 70%
이상이 핵페기장 건설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위도지킴이들이 노 정권과 김군수, 한수원 등의 핵쓰레기장 유치강행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군의회 역시 항의의 뜻으로 공식업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내년도 군예산을 동결시켰고 부안군민 속인 군수가 돈 한푼 쓰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습니다. 국가원전정책도 전면 수정되어야 합니다. 에너지정책의 전면 전환이 요구됩니다. 부안 핵폐기장이 백지화될 경우 타지역에서 야기될 부당한
상황과 그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에너지정책 전면 전환을 주장하는 겁니다. 일본, 대만, 독이르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비롯한 해외 각국들과의 국제연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수원은 자신들의 핵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수십, 수백억의 돈을 선전홍보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돈을 대안에너지 개발을 위한 연구비용으로 전환항 생각은 왜 하지 않는지요? 한수원은 지난 5월 부안위도 지역에 연고가 있는
(한수원직원) 박00를 낚시꾼으로 위장시켜 위도 주민 등에게 (부안헥폐기장을 유치하면) 가구당 5억의 돈을 준다며 거짓소문을 생산 유포했습니다.
당시 일부 주민들이 이 말에 홀리기도 했지만 결국 한수원이 이와같은 거짓소문을 유포시켜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그 과정에서 핵쓰레시장을
무사유치시키시 위해 저지른 공작임을 알게 됐고 극심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한수원은 거액의 돈을 들여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심성
관광, 값비싼 홍보용 선물제공 등과같은 극악한 짓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범국민적협의기구가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나아의
핵폐기물 발생 현황과 보관저장 용량실태를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핵폐기물 포화시점을 제대로 예측해야 하겠고 정부가 숨키고 있는
지역의 안정성문제를 모두 공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관계자, 원자력전문가, 시민사회단체, 현지주민 등으로 구성된 범국민합(협)의기구가 필요한
겁니다. 필리핀이 훌륭한 사례입니다. 왜 정부는 이와같은 공정투명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지요?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이제 온
국민들께서도 이런 사실들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부안수협 네거리쪽 찻집안 분위기 발걸음이 무겁다. 대회시간이
임박할 수록 수협네거리쪽으로 군중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오후 2시경 대회가 열리는 수협네거리 가까이 있는 찻집을 찾았다. "요즘 경기
말이 아니죠?" "매상도 많이 줄었고 아주 죽을 지경입니다." "정부가 12월10일 사과발표를 했는데...?" "그거 믿을 수가 있나요? 도대체
정부가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네요" 찻집주인의 원성이 쉼없이 쏟아진다. 자리를 잡은 바로 옆쪽에 노인 몇 분이 핵폐기장 문제를 갖고
얘기를 하고 있다. "매일매일 촛불 드느라 사람들이 고생이 많지. 우리가 핵폐기장 반대하는 건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지. 이제 이 사람들 도와줘야 혀. 나두 일전에 2만원인가 성금을 냈지. 계속 성금을 낼꺼야. 한수원이 특정 주민들을 선정해
관광시켜 주곤 했었지. 나도 그때 당첨된 한 사람있어지. 그런데 난 안갔어. 거길 왜 가?"
오후3시경 대형무대에 노랗고
빨간 걸개그림이 걸렸다. '핵폐기장 백지화, 에너지정책전환, 노무현정권규탄" 슬로건과 함께 "반핵/평화/생명을 위한 범국민대회" 현수막이 겨울
바람에 나부낀다. 마침내 대회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발언에 맞춰 일제히 핵폐기장 반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수협네거리 광장이
가득 매워질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대회시작 시간이 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노란 점퍼를 입거나 (노란)망토를 몸에 두른 이들이 쏟어져 나와 금새
광장을 가득 채웠다. 한편 수협광장중앙을 향해 삼거리 각각에서 '핵폐기장반대 구호를 듬은 현수막을 들고 머리에 띠를 두른 ' 군중대오'들이 기세
좋게 성난 파도처럼 밀려든다. 그걸보는 대회참가자들이 한호의 박수와 함성으로 이들을 맞는다. 광장은 이내 노란물결로 넘실거린다. 집회참가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발디딜 틈 조차 없다. 빽빽히 늘어선 자작나무 사이를 조심스레 건너듯 인산인해의 틈을 찾아 걷는 것조차 쉽지 않다.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한여름 내내 녹아 내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짠바닷물 속에서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벌인 이들이다. 타들어간 구리빛 얼굴에 새겨진
깊게 패인 주름들이 지난 날부터 이어지는 분노와 투쟁을 각인시키듯 실룩거린다. 하지만 어디선 많이 본 듯한 낮설지 않는 정겨운 고향의 모습이다.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황산(黃山) 광장을 애워싼 농어민들이 대나무(죽창)에 노란 깃발을 매어 든 채 몰려들었다.
머리에 붉은 색의 핵폐기장 반대 띠가 둘러져 있다. 푸른 대나무 끝에 얼기설기 매인 노란 깃발들이 분노의 생생한 절개와 그 힘을 보이듯 거세게
나부낀다. 100여년전의 동학이 그러했던가? 사람이 앉으면 광장은 꼿꼿한 대나무가 서 오른 죽산으로 변했고 이들이 일어나면 광장은 노란 색으로
물든 황산으로 타오른다. 그 처음과 끝을 해아릴 수조차 없는 깃발들이 광장을 뒤덮었다. 죽산과 황산이 우똑 솟았다.
노무현 퇴진만
남았다! 전국민중연대 정광훈 상임의장이 격정 가득한 모습으로 개회사를 열어 재첬다. "오늘은 핵반대집회가 아니다. 승리집회다! 부안군민이
이겼으니까 투표할 필요도 없다. 이제 남은 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뿐이다. 노무현 퇴진할 일만 남았다!" 군중들이 일제히 연사의 격정을 받아
환호를 내지른다. 핵폐기장 결사반대!
오늘(12월13일)로 단식 31일째에 접어든 문규현 신부와 함께 수협광장 노상에서 25일째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인경 대책위 상임대표의 환영사가 이어진다. "부안군민 여러분 존경합니다. 오늘 대회에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게 바로 부안의 힘입니다. 그동안의 투쟁이 전국동지들을 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부안투쟁은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산자부장관의 12월10일 사과발표와 사퇴는 바로 부안군민들의 침찬 투쟁으로 얻어진 영광된 결과입니다. 150여일동안 쉼없이 이어진
'핵폐기장 반대투쟁'은 세계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투쟁입니다. 그래서 부안군민이 된 것이 자람스럽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도
참으로 뜻깊은 순간입니다. 이제 저들은 석양으로 기울어 갑니다. 민중승이를 알리는 아침의 첫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이 위대한 힘을 끝가지 지켜내고 보여줍시다. 결국 마지막 승리는 부안군민의 과제입니다. 우리의 승리는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저들은 우리를
폭도라고 내봅니다. 하지만 부안은 평화와 상생의 공동체로 상승되고 의식있는 부안공동체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승리의 그 날까지 함께 합시다.
우리모두 하나되어 이 나라를 지켜냅시다!"
노무현 속에 부안이 없다면 부안 속에 참여정부란 있을 수 없다. "모든
반민중적이며 비민주적인 악의 힘에 맞서 싸우는 건 정당하다. 이걸 폭력으로 내몬다니 말이 되는가? 이건 정당한 저항권일뿐이다." 그랬다. 권력의
힘으로 묵살되고 짖밟히고 으께진 민중의 저항과 불복종은 반민주에 대한 저항이며 불법을 합법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정당한 저항권 행사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분노와 절규, 피눈물이 대나무 끝에 매달려 거세게 요동친다. 광장에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그 열기가
더해갔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의 정치연설이 시작됐다. 자본과 국가의 부당노동탄압에 맞서 죽음으로 이어진 노동자들의 잇단
분신현장에서 마침내 눈물을 떨군 사내가 다시 한웅큼씩 맺히고 웅어리진 절규를 풀어 해치려는듯 무대에 올라섰다.
"들어 오면서
보니까 아직도 부안은 전경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한달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경찰공화국입니다. 노정권은 부안에서 전경들을 몽땅 철수시켜야
합니다. 부안을 평화의 땅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우선입니다. 투쟁은 부안주민들에게 배우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아름다운 땅 부안을을 지키기 위해,
노무현이 부안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려는 음모에 대항애 더욱 가열차게 투쟁하고 있는 부안입니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도 노정권은
부안핵폐기장 철회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사를 존중하고 부안군민들에게 사과한다고 하면서도 부안에 핵폐기장 유치 우선권을 주겠다고
얘기합니다. 음모는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완전 백지회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최후의 승리를 만들어 냅시다. 민주노총이 함께하겠습니다.
이 땅의 민중들이 희망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장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겠습니다. 바로 그 곳에서 민주노총이 끝까지 함게
하겠습니다."
부안의 눈물 '부안답게 살고 싶다" 분노와 절규가 쉼없이 이어지고 수만의 인파가 광장을 달구는 가운데 오후
5시 마침내 촛불이 피어 올랐다. 마른 벌판에 불번지듯 금새 번지기 시작한 촛불이 광장을 태운다. 마음 속에 응어리진 분노를 태운다. 한을
태운다. 부안군청, 청와대를 태워낸다. 광장은 금새 촛불의 바다로 그 모습을 바꿨다. 한과 분노가 서린 촛불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광장위 잿빛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민중가수 최도은과 박준 등이 무대에 오른다. 때로는 거센 격정의 소리로 중무장한 힘있는 노래가 칼의 노래를 부르고 또
때로는 부안의 한을 지지는 트로트로 심금을 울리게 한다. '가련다 떠 나련다... 부안답게 살고 싶다. 죽을 때까지 싸우련다..." 촛불을 든
채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들이 눈물을 흘린다. 애써 눈물을 숨키지 않는다. 촛불이 순식간에 광장에 번지듯 이 눈물이 촛불의 골짜기를 타고
넘는다. "부안답게 살고 싶다" 이들은 부안답게 살고 싶다며 굵은 눈물을 흘린다. 여기저기 흐느낌이 시작되고 어느새 촛불과 눈물이 뒤범벅된 채
흐린 밤하늘을 삼키고 있었다.
탄식과 한숨, 한과 분노가 눈물에 뒤섞인 가운데 12월13일 141일째 (전국집중)촛불집회 마무리를
짓는 기도문이 낭송됐다.
주님! 한방울 한방울의 물방이 모여 바다를 이룹니다.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티끌
하나 하나가 모여 태산을 이룹니다. 부안군민들이 시작한 이 아름다은 함성은 인근으로, 전국으로, 전 세계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각지에서 이곳을 찾아준 동지들이 있어 더욱 힘이 납니다. 이렇듯 당신의 뜻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141일째 하루도 빠짐없이 밝힌 촛불입니다. 그래서 우린 촛불이 되었습니다. 불꽃은 어둠을 밝히는 곳에 주었고, 촛농이 흐르며 타들어간 몸은
아스팔크 바닥에 주었으며, 연기는 탐욕에 물든 저들의 가슴을 아리며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우린 잃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핵없는 세상에서 모든
생명들과 다시 태어날 것이니까요. 부처님! 손으로는 태양을 가릴 수 없습니다. 핵마피아들은 돈으로 매수를 하여 어찌 해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니기에 반드시 추락하게 됩니다. 당신은 진실만이, 양심만이 세상에 서는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음을 우리들은 알기 때문입니다. 법신불
사은님! 우리들의 이 몸짓은 이나라 민주주의를 살려내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이 함성은 모든 생명들이 핵의 위험으로부터 지텨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이 투쟁은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며 생명을 살려내는 거룩함입니다. 이런 소명의식 아래 똘똘 뭉쳤사오니 우리들의 이 사명이 다하는
날까지 투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이 승리를 당신께서 증명화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소원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일심으로 비옵나이다.
(끝)
이 날 대회는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 마무리 됐다. 촛불로 비민주적 폭력을 꺼버리고 핵폐기장 백지화와 부안
생명공동체의 불을 밝히자는 이들의 한과 눈물로 가득찬 대회였다. 광장에 죽산과 황산을 세운 이들이 성난 촛불의 바다로 노무현 참여정부를 집어
삼킨 하루였다. 부안민들을 모질게 짖밟던 공권폭력, 국가폭력에 맞선 비폭력 평화의 힘을 보여준 하루였다. 부안의 힘, 부안의 생명공동체는 더욱
새롭고 힘차게 언 땅을 가르고 솟구처 오를 것이다. 부안의 고단한 싸움은 현재 진행 중이다. 핵폐기장 완전백지화의 그 날까지 촛불과 단식은
이어질 것이고 부안에 새 희망 공동체를 염원하는 부안군민들, 그리고 이를 묵도하는 민중들의 공동체적 저항은 그 힘을 모으고 또 모아내 마침내 더
큰 힘으로 자랄 것이다. 12월13일 내 기억 속은 부안은 피눈물로 뒤범범된 분노의 현장이었다. 황토와 바다를 개척해 낸, 거칠고 투박하지만
대를 이어온 순수하고 선량한 민초들에게 피눈물을 쥐어 짜내는 권력의 독선에 맞선 저항의 힘들임을 목격했다. 그들의 손에 들리워진 촛불 하나하나는
여전히 내 기억의 가장 깊숙하고 안전한 곳에서 피어 오르고 있다. 끝까지 간다. 죽을 때까지 싸운다. 이들의 외침은 이랬다. 이제사 부안에 대한
마음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것 같다. 서울로 되돌아 오는 길, 부안의 서러운 통곡이 발목을 잡는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사진은 민중의소리, 참소리, 격포넷 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