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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에 관한 시
ㄱ 고전적인 봄밤 ㅡ 박이화
그를 꿈꾼 밤 ㅡ 김소월
ㅂ 밤ㅡ 김소월
봄과 밤 ㅡ 오규원
봄날에2 ㅡ 이수익
봄밤 ㅡ 고희림.김남극.김사인.김 소월.김수영.서영처.안도현.이기철.이면우.이상개.
이시영.장석주 .정호승.황동규
봄밤의 반가운 비 ㅡ 두보
봄밤의 회상 ㅡ 이외수
부석사 봄밤 ㅡ고두현
빛나는 은빛 옷을 입은 밤은 ㅡ 릴케
ㅈ 저마다의 느낌을 깊이 새기며 ㅡ 릴케
고전적인 봄밤 박이화
송도 기생 황진이의 사생활은 만고의 고전인데
신인 가수 백모양의 사생활은 왜 통속이고 지랄이야
내가 보긴 황진이는 불륜이고 백모양은 연애인데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가을밤 황국같은 황진이도 좋고 봄밤의 백합같은 백모양도 좋은데 좋기만 한데 왜!
이 시대엔 벽계수를 대신해줄 풍류남아가 없고 지랄이야
명월이 만공산 할 제 달빛 아래 휘영청 안기고픈 사나이가 없고 지랄이야
아, 일도창해 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길 어째서!
이 몸과 더불어 유장하게 한 번 뒤척여 볼 박연폭포 같은 사내가 업고 지랄이야
그를 꿈꾼 밤 김소월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들리는 듯, 마는 듯,
발자국 소리,
스러져가는 발자국 소리
아무리 혼자 누워 몸을 뒤채도
잃어버린 잠은 다시 안 와라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밤 김소월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맘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 듯 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둡는데요
이곳은 인천의 제물포,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닷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하이얗게 밀어드는 봄 밀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분이야요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맘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
봄과 밤 오규원
어젯밤 어둠이 울타리 밑에
제비꽃 하나 더 만들어
매달아 놓았네
제비꽃 밑에 제비꽃의 그늘도
하나 붙여 놓았네
현대시학 2004년 1월호
진시황릉 ..불로장생을 원했던 남자 ..천년이 하루(어젯밤)같거늘
봄날에2 이수익
화냥기처럼
설레는
봄,
봄날이다
종다리는 까무라치게
자꾸
울어쌓고
산마다
피가 끓어
꽃들 피는데
아,
나는 사랑도 말로 못하는
벙어리 사내
봄밤
꿈에서만
너를 끌어안고 죄를 짓느니 ...
렘브란트 ㅡ 탕자의 귀향
봄밤 고희림(1960 - )
봄밤의 신경은 온통 개구리 소리에 쏠려 있다
가끔 두꺼운 소리로 각갹각갹 거리지만 잠시 잔디 사이를 뚫고 올라온 풀을 뽑는데
개구리가 여기저기 튀어오른다
비오니까 더 잘 뽑히는 풀들의 젖은 뿌리를 만지면 소름처럼 별의 비명이 들리고
대문들을 슬슬 닫으며 안방으로 들어가고 있을 이웃들의 봄밤이 어리석게도 궁금해진다
봄밤 김남극
보풀 이는 이불 홑청처럼
달은 떠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마당엔
엄나무 가시가 한창
새순으로 물 길어올린다
탁상시계 소리 따라
달은 반 박자씩 가다가
엄나무 가시에 걸려
안간힘 쓴다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헤어날 수 없는
달은 밤새 낑낑거리다가
상처가 덧나
더 크게 몸 불렸다가
동산이 훤해질 때 겨우 풀려나
서쪽으로 간다
봄밤 김사인
나 죽으면 부조돈 오마넌은 내야 도 ㅑ 형
요새 삼마넌짜리도 많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형은 오마넌은 내야 도 ㅑ 알었지 하고
노가다 이아무개(47세)가 수화기 너머에서 홍시냄새로 출렁거리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아무개(47세)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 점잖은 식장 복판까지 쳐들어와 비닐봉다리를 쥐어주고는
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를 한 번 하자고 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대는 봄밤이다
죄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 혀 자슥들아 하며
용봉탕집 장사장(51세)이 일단 애국가부터 불러제끼자,
하이고 우리집서 이렇게 훌륭한 노래 들어보기는 츰이네유 해쌓며
푼수 주모(50세)가 빈 자리 남은 술까지 들고 와 연신 부어대는 봄밤이다
십이마넌인데 십마넌만 내세유, 해서 그래도 되까유 하며 지갑들 뒤지다 결국 오만넌은
외상을 달아놓고, 그래도 딱 한잔만 더, 하고 검지를 세어 흔들며 포장마차로 소매를 서로
끄는 봄밤이다
죽음마저 발갛게 열꽃이 피어
강아무개 김아무개 오아무개는 먼저 떠났고
차라리 저 남쪽 갯가 어디로 흘러가
칠칠치 못한 목련같이 나도 시부적시부적 떨어나졌으면 싶은
이래저래 한 오마넌은
더 있어야 쓰겠다는 밤이다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년
스페인 똘레도
봄밤 김소월
실버들나무의 거무스레한 머릿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 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는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어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봄밤 김수영(1921-1968) 서울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 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靈感이여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봄밤 서영처(1964 - ) 영천.
수상쩍은 기미가 몰려온다
최루가스처럼 묻어 온 꽃가루들이
다투어 내 몸을 빌리려는 것
폭도처럼 산을 내려와
밤에 더 기승을 부리는 가려움
붉은 삐라를 살포하고
봄은 나를 짓밟고 간다
꽃진자리 오래도록 얼룩얼룩 하다
봄밤 안도현
내 마음 이렇게 어두워도
그대 생각이 나는 것은
그대가 이 봄밤 어느 마당가에서
한 그루 살구나무로 서서
살구꽃을 살구꽃을 피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하고 그대하고만 아는
작은 불빛을 자꾸 깜박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
봄밤 이기철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 오르는 양은 그릇들이 날을 부딪치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으로는 전할 수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 여린 처녀가 삼십 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 소설을 읽는가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를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생을 살러 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둘기 울음이 기워지는 봄밤
잊혀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낫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돋는다
여기에 우리는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어느 집인들 한 오리 근심없는 집이 있으랴
군불 때는 연기들은 한 가정의 고통을 태우며 타오르고
근심이 쌓여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여기에 우리는 한줌의 삶을 기탁하러 왔다
봄밤 이면우
늦은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아이는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그래 그렇구나...하는데까지 삼 초 뒤 아이엄마를 보니
얼굴에 붉은 꽃, 소리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봄밤 이상개
홀로 밤길을 걷습니다
찬란한 밤하늘의 별빛을 가슴에 심으며
들길을 헤매다 돌아옵니다
자정의 불빛들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위해 눈을 감지만
그대 얼굴 아련히 떠오를 뿐
봄밤은 더디게 지나갑니다
찢어댄 편지만 쌓인 채 그리움 잔뜩 배어
아, 별빛처럼 별빛처럼 애처롭습니다
봄밤 이시영
동백꽃 꽃향기에 눈이 멀어서 밤새도록 잠 못 이루던
십리 밖 무논의 물개구리라는 놈들이
서둘러 더듬더듬 선운사 가는 길로 찾아 나섰다가
새벽녘 처참한 몰골들이 되어
아직도 온기 남은 아스팔트에 납작 엎드려 있다
어허, 시신이여!
봄밤 장석주
저녁은 늙은 어머니처럼 천천히 온다
빗방울 몇 개 후두둑거리다 서둘러 그치고
담장 아래 노란 개나리꽃 덤불이 등 켠 듯 환하다
마음에 응달이 그렇게도 많았던가
부치지 못한 편지가 들어 있는 호주머니 속에
손 넣은 채 서성거리며 그 꽃 오래 바라본다
혼자 보낸 그 많은 날들의 저녁
누구의 이름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입술
지병처럼 품고 살아온 이름들이 별로 떠오른다
가슴 덥히며 차오르는 내 안의 기쁨
오, 젖은 빵처럼 오래 희망이 없었구나
빈 병 속에 갇혀 우는 바람, 바람, 바람 소리 ....
달을 가린 회색 구름들이 가득한 하늘 아래
잎 피우지 못한 나무들이
고요한 죽음을 안고 서 있다
자금성
봄밤 정호승
지구여 봄밤이다
흔들리지 마라
꽃상여처럼 너울너울
길 가지 마라
새들이 꿈을 꾸며
잠들고 있다
지구여 봄밤이다
흐느끼지 마라
상주들도 상여꾼도
곡을 멈춰라
새들이 알을 낳고
잠들고 있다
봄밤 황동규
혼자 몰래 마신 고량주 냄새를 조금 몰아내려
거실 창을 여니 바로 봄밤,
하늘에 달무리가 선연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비릿한 비 냄새
겨울 난 화초들이 심호흡하며
냄새 맡기 분주하다
형광등 불빛이 슬쩍 어두워진다
화초들 모두 식물 그만두고
훌쩍 동물로 뛰어들려는 찰나!
봄밤의 반가운 비 두보
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때맞춰 내리기 시작하네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숨어들어
소리도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들판 길 구름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의 불빛만이 밝네
이른 아침 분홍빛 비에 젖은 곳 보니
금관성에 꽃들 활짝 피었네
봄밤의 회상 이외수
밤 새도록 산문시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애 언제 한번
꿀벌들 날개짓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 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부석사 봄밤 고두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가만히 손 대고 눈 감다가
일천이백 년 전 석등이
저 혼자 타오르는 모습
보았습니다
하필 여기까지 와서
실낱같은 빛 한줄기
약간 비켜선 채
제 몸 사르는 것이
그토록 오래 불시 보듬고
바위 속 비추던 석등
잎 다 떨구고 대궁만 남은
당신의 자세였다니요
빛나는 은빛 옷을 입은 밤은 릴케
빛나는 은빛 옷을 입은 밤은
한 웅큼의 꿈을 뿌린다
꿈이 속속들이 마음 속 깊이까지 스며들어
나는 취한다
어린아이들이 금빛 호도胡桃와
불빛으로 가득한 크리스마를 보듯
나는 본다, 네가 5월의 밤을 걸으며
꽃송이 송이마다 입맞추어 주는 것을
저마다의 느낌을 깊이 새기며 릴케
저마다의 느낌을 깊이 새기면서
감미로운 소망이 가슴을 설레게 하듯
별을 떨어뜨리며 5월의 밤이
차분한 광장 위에 내려 앉을 때,
너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집에서 나와
반짝이는 하늘을 취하여 바라본다
그러면 그윽한 너의 영혼이
순무꽃 피어나듯 활짝 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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