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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 아래에 놓여 있는 빈 의자, 그 건너에 홀로 놓여 있는 피크닉 테이블을 보는 순간 기다림이 떠오르며 한편으로는 기다림의 미학이 다가왔다. 그리고 평생 사람의 마음에 늘 기다림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빈 곳을 마주하게 되면 무엇인가 채우기 위한 준비가 아닐까 한다. 기다림 하면 연결되는 단어는 개인적으로는 그리움이 연상된다. 기다림이나 그리움은 채움으로 그 목적이 달성되지만 목적 달성만으로 기다림이 충족되었다는 결론과 기다림의 미학 완성으로 연결 짓는 것은 너무 본태적인 발상 같아 거부감이 생긴다. 적어도 지순한 마음으로 기다림을 모을 때 아름다움이 생성되며 기다림의 미학이 완성된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름답다는 것은 시각적인 면만 갖고 충분한 표현이 아니며 시각을 통해 감각적으로 느낀 아름다움은 설익은 아름다움에 지나지 않고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마음에 간결한 선의 밑그림과 그 위를 채우는 고귀한 색감이 조화를 이룰 때 수채화가 되는 것처럼 그리움과 아름다운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기다림의 미학은 결실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눈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귀가하여 미루고 미루던 책상과 책장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거의 작업이 끝나갈 무렵 손전화기 벨이 울렸다. 들어 응답 버튼을 누르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린다(Belinda) 자매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중간에 만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본 여행을 함께 하면서 작은 약속이 만들어졌었다. 트레킹을 하면서 간혹 쓰고 다니던 미국 water ship 모자회사 제품 모자와 덧 달린 인디언 문양의 색과 문양이 보기 좋았 던 지 하나 정도 소유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었다.. 그 당시 같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모니카 회장님도 함께셨다. 돌아와. 종로 관철동 부근에서 모자만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무역상 지기를 찾아 가 물건을 찾았으나 제조사가 폐업을 하여 단종되었으며 재고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비슷한 제품은 없느냐 하자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몇 가지를 선택하라 하여 임의로 결정하였다. 색상은 이끼색으로 흙갈색 가죽띠가 부착된 것으로... 주문 후 기다리자 거의 한 달 후 통관되어 도착하였다. 생산회사는 역시 미국회사였으며 생산지는 베트남이었다. 손재주가 뛰어난 베트남인들은 가방시장에서 주름을 잡더니 고급모자들은 거의 생산국이 되었으며 이 여세를 몰아 반도체공장도 많이 들어서게 된다. 우리나라 반도체 대표기업 삼성도 베트남에 공장을 갖고 있다. 도착한 형태로 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사용하는 모자 둘레 가죽으로 된 띠가 있었는데 오랜 시간 사용하다 보니 가죽이 갈라져 그 대안으로 인디언칼라로 직조된 띠를 미국에 있는 친구를 통해 구한 후 모자에 띠를 부착한 후 쓰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면서 그런 모자를 원했었다.
그렇게 나오는 제품이 없어 다시 미국 친구에게 부탁하여 띠 3m 정도를 공수받아 내가 한 방식으로 띠를 덧대어 수정하여 완성하고 보니 내가 보기에도 근사하였다. 주변인들이 이를 보고는 만들어 달라는 주문 상품 같은 주문품이 생기고 장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작하여 완성한 후 이 모자를 전해주려고 노력하였으나 서로의 시간이 쉽게 맞지를 않아 전달시기가 늘어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퇴촌에서 머물고 있는 Agnus 자매께서도 간혹 안부를 전해오면 집부근 생선구이를 잘하는 집이 있으니 점식식사나 한번 하자는 이야기를 수차 나누었으나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어 내친김에 퇴촌에 만난 후 천진암 성지를 순례하듯 천천히 걸은 후 미사도 참여하고 후 점심을 함께하고 헤어지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다. 내친김에 Monica 자매까지 연락하여 함께 만나자 하였으나 선약이 있어 이룰 수 없었다.
당일 모처럼 지하 3층 한 구석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몰고 지상으로 올라와 미사신도시 중심을 관통한 후 강변도로를 이용하여 팔당댐을 지나 검단산과 용마산 동쪽 기슭에 응거하고 있는 겨울바람을 가르며 달려 나갔다. 팔당호수 중 경안천 수면은 꽁꽁 얼어 있었다. 도마 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계속 직진하는 길을 선택하고 퇴촌면을 지나면서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건물과 함께 못 보던 업종들도 많이 들어차 성시를 이루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지명으로 불리던 퇴촌(退村)이란 지명을 신촌(新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기운이 꽉 차 있었다. 하긴 강산도 바뀌는 것이 세월의 무게인데 문명도 진화하며 발전으로 진행하다 새로운 문명에 모든 기운을 빼앗기고 다시 뒷 전으로 물러서는 것이 문명의 숙명 아닌가! 하며 천진암로 들어서기 위하여 우회전을 한 후 직진하여 옛 순두부 집을 찾았으나 사라져 버렸고 입구에 나대지와 함께 포장길이 흠집 투성이 였던 흙길을 유심히 살펴도 혼란이 일었다. 아지랑이 흙길에서 뿌여게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길을 감추든 나의 기억은 혼미를 거듭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아네스 자매님에게 전화를 걸어 보니 입구 길은 포장도로로 바뀌었고 나대지는 빌라 촌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손두부집은 영오빌라로 신축되어 분양 중이란다. 집으로 가는 길도 동안 많이 변해 버린 것이다. 다시 리턴하여 찍어준 포인트 따라 운행을 해보니 그제야 기억의 퍼줄이 들어맞았다.. 어렵사리 도착하여 차를 주차시키고 2층으로 올라 가 초인종을 눌렀다.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철컥 현관문이 열렸다. 침착한 하늘색 언더라운드 스웨터의 맵씨가 아주 오랜 과거에 만났던 소녀 같은 모습을 연상시키며 악수를 한 후 거실에 서서 살피자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계신 모습을 보니 반가움에 폴더 인사를 깊게 드렸다. 그리고 안내의 성격으로 지정해 준 나무 의자에 앉으니 커피와 다과상을 내주셨다. 몇 모금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자 벨린다 자매께서 도착하였다.
일어서서 반가운 맞이 인사를 대신한 후 2개월 만에 다시 보는 인정을 나누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났다는 사실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져 나갔다. 다시 오늘 일정 약속을 수정보완하여 정한 후 외부로 나와 차를 이용하여 대로에서 한 주름 반 안으로 들어 가 있는 식당을 찾았다. 너른 주차장이 마음에 드는 곳이다. 신발을 벗어 신장에 넣고 올라서자 식탁이 실내 모습에 따라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남향 양지바른쪽은 만석이라 북향 창가에 앉았다. 그리고 고등어, 임연수어 구이와 청국장 시켜 놓은 후 때를 기다렸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금방 나왔다. 찬이 골고루 나누어 나왔고 주식은 솥밥으로 그리고 구이는 접시에 청국장은 국자와 함께 냄비그릇에 소담하게 담겨 식탁에 올라 왔다. 나물무침을 입에 넣고 우물거려 보자 푸른색 나물 특유의 겨울향이 짙게 달라붙었다. 느낌이 봄동 같은 느낌을 몰고 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봄은 지척에 와 있었다. 구정이 다가오면 생전 어머님께서는 늘 나박김치를 담그셨다. 떠 있는 미나리 향이 김장김치를 압도하는 신선함 때문에 참 기분 좋은 마음으로 봄을 불러 모으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 어머님 음식이 나물 위로 겹쳐졌다. 특히 큰 일이나 명절이 다가오면 여지없이 어머님 얼굴이 보고 싶어 진다. 잊고 살다가 문득 다가오시면 참 견디기 어려운 곳이 부모님이 보고 싶음이다. 지금 어디 즈음 계실까? 참 궁금한 일이다. 믿음을 지닌 자로서는 응당 천국을 떠올려야 하는데 불심이 깊어 두 분은 당시는 경기도 광주지만 지금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유명사찰 대웅전 계단 위 너른 공간에서 혼례를 불교식으로 치르셨다.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에서 머물실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 것이 자식의 마음이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아네스 즉 양이 살고 계신 집으로 돌아와 후식을 챙긴 후 1시간여 대화를 나누다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 폴더 인사를 나눈 후 촌금을 아끼라는 의도에서 배웅을 거절하고 현관을 다시 밀어 닫았다. 그래도 문이 다시 들썩거린다. 아무래도 다시 나오실 모양이었다. 재차 나오지 마시라한 후 잰걸음으로 1층 현관문을 열고 나와 차를 몰고 벗어났다.
베린다 원장께서 침술로서 치유할 것이 있다고 하여 자리에 있기가 거북하여 빠져나온 것이다. 퇴촌면 주유소 들러 주유한 후 잠시 망설였다. 지척에 경안 ic가 있어 바로 산막으로 가면 5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그래서 잠시 망설인 것이다. 도마삼거리까지 도착할 무렵까지 혼란은 이어졌다. 그때 파이란 녀석이 떠올랐다. 이 녀석은 내가 며칠 안 보이면 좌불안석이란다. 이 녀석을 함께 가려면 다시 집으로 가야 한다.
외곽도로와 중부고속도로 양방향 차들이 겹쳐지는 곳은 늘 신경 쓰이는 구간이다. 그리고 정체에 신경 써야 하는 곳이다. 이런 정체는 제1, 2 중부선으로 갈라지는 곳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호법에서 밀리다 이런 정체는 남이천 ic까지 이어지거나 아니면 이천과 안성경계에 있는 언덕바지까지 지속된다. 그 후로는 정상적인 흐름을 유지한다. 일죽에서 빠져 국도 17번을 타고 다시 성환방향으로 잡은 후 면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소주, 막걸리 각 1병과 안주용 육류와 채소류를 챙긴 후 산막 문을 열고 들어섰다. 눈밭을 잔디 위에 연출하고 있었다. 눈이 많이 내렸던 모양이다. 실내에 들어 서자 말끔하게 정돈된 모습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보아 사용자가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짐 정리 후 먹거리를 만들어 챙긴 후 모두 정리 정돈하고 커피를 준비하여 테이블 의자에 잠시 앉았다. 참 고요하다. 이런 고요함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도 늦게 까지 교실에 남거나 강의실에 앉아 책을 보는 순간 그 정적을 너무 좋아했었다. 텅 빈 교정도 좋았고 홀로 앉아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인지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좋았다. 이런 모습을 본 지기들은 다들 중이 될 팔자라고 놀렸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차를 마신 후 카톡으로 몇 자 적어 보냈다. 파이랑 산막으로 내려왔습니다. 둘러보고 점검한 후 귀경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헬스에 많은 시간을 두지 마시고 휴식을 늘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글로 마음을 전할 때 나는 늘 경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나의 철칙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할 경우는 전부는 그러하지 않은데 비대면인 서신과 메모는 경어체를 사용하는 것이다. 잠사 후 즉시 답이 도착하였다. 헬스에 사용하는 시간보다 헬스 공간 한쪽에 사우나 시설이 있어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그리고 2월 초에 해야 할 딸 내 가족들과의 계획을 적어 보내면서 실수 없이 기억해 두라는 다짐도 들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고 답신을 한 후 손전화기를 밀어 놓았다. 다시 고요함이 유지된다. 내친김에 cd를 찾아 노래를 틀었다. 회상을 불러 모으는 노래의 선곡은 약 30분 이어졌다.
기다림 끝에 만난 걸음 여행 도반들 시작과 끝이 이어지도록 변화가 없을 것이라 예견해 보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추측이었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마음은 생물이기에 늘 변화를 요구한다. 잠시도 쉬지않고 궁리하고 궁리하며 마음이 결정되고 이끄는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사람의 육신이다. 심리는 꼭 바다의 표면과 흡사한 것이다. 자신이나 타인의 마음을 잡는 일은 구도와 같은 형극의 단심이 뒤 받침되어야 한다. 그래도 아직 몇 사람이라도 남아 인정을 나누고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행복한 일이다. 나이가 들면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는 것이 상팔자이다. 밤은 깊어져 가고 어두움 안에 고요함이 짙게 물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석양의 노을빛이 미세하게 남은 산능선 하늘가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샛별 또한 곧 어두움 속에 갇힐 것이다. 그러다 여명에 신분을 빼앗기겠지~~~ 모든 것은 천천히 사라져 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 완전한 나의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것을 기억해 주는 경우는 매우 적다. 그러나 나눔으로서 심어 놓은 봉사와 같은 공유성 짙은 자리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토록 남게 되는 것 같다.
첫댓글 벨린다 자매님과
모처럼 오신다는 소식듣고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임의 기다림~
10시 정각에 도착하신
대장님!
건강한 모습~
반가웠습니다
잠시후 도착한 벨린다님
이야기 꽃은 끝이 없었지요
그동안 쌓아온 옛정....
찾아 주시니
감사할 뿐이지요.
시간이 부족한
이야기 꽃~
담을 기약하며
건강 하세요.^^
어느 소년이 소녀와 개울을 함께 건너 간 후 소녀를 마음에 담아두는 글 그림 소나기를 떠올리며 징검다리 격인 경안천 앉은뱅이 다리를 건넜습니다. 강심을 가르는 장소에 설치된 다리를 우린 가교라 부릅니다.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역할이 참 부러운 풍경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에게도 마음가교가 있습니다. 바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지요. 그리움의 정 중앙에는 늘 이 마음이 손을 뻗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리를 건너갈 때 마음은 두근 거림이었 다면 넘어 올 때의 마음은 고요한 평화였습니다. 늘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큰 아름다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더욱 더 건강하시고요. 그틀 안에서 늘 행복을 모으고 나누시며 세월의 주인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밀린 일들이 전부 해결된 것 같은 마음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봄 소식이 무루익는 봄날, 철쪽이 좋은 산책 길에서 꽃 그늘을 함께 걷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늘 고맙습니다. 감사하고요. 평화와 선을 공유하며 산막에서 세베리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