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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미혜 작가님 추모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십자성
‘헬로우! 나 베트콩이우. 잘 계셨수?
‘아니........ 이게 뉘셔 언제 오셨을까?
‘이 개고 저 개고 복날 누렁이고 간에...나 술 고프오.
크리스마스 장사 잘 했으믄 순댓국에 막걸리 한 사발 사 주오.
‘장사 잘하긴 무슨...하하..
나도 점심전이니 전에 먹었던 그곳에서 만납시다.
한 살 아래지만 묘하게 생일이 나하고 같은 김 사장과의 대화다.
고향에 작은아버지와 큰 형님 병문안 가서는 아무 대책도 없이 보고만 왔고.
큰 형수와 밤 세워 열까지 세다가 바라는 만큼의 결실을 못보고 올라 온 뒤끝이라
맘이 영 개운치가 않아서. 카톨릭(목공예)아이템 공장을 할 때 물건을 만들어서
보내 주었던 거래처 김 사장을 붙들고 늘어진 것이다.
옛 벗과 앉아서 뜨끈한 순댓국에 후추와 들깨를 듬뿍 넣고 막걸리 한 사발 걸치니.
그렇게 맘이 편할 수가 없어서...막걸리를 조갈병 든 놈 물마시듯 했다.
김 사장은 운전을 해야 하기에 막걸리 두병은 내가 다 마셨다.
낮술이라서 그런지 막걸리 두병도 취기가 온다.
어허! 십자성도 많이 망가졌구나...한때는 20리더짜리 말 통을 마시고도
더 달래서 마셨거늘...세월 앞에는 장사 없당께~~꺼~억~
낮술에 취하면 할애비도 몰라 본다는 옛말 하나도 안 틀려서 주머니 사정은 뒷전이고
옛날 거래처 동지들이 생각나...일산 김 사장도 불러 내려서 연말 푸닥거리를 하게
모이자고 꼬드겼다. 일산에 연락하니..그쪽도 좋단다. 하하 그럼 좋시다.
좀 있다가 / 酒시에 / 酒여사 네로 모여 / 酒님을 모시는겨/
자! 김 사장 일어섭시다.
차를 타고 가다 시장 앞에서 내렸다.
남는 시간에 베트남으로 가져갈 물건들을 구입 할까 하고.
다른 하나는... 막걸리 먹은 것이 금세 밖으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이다.
화장실을 찾다보니...자연스레 고향을 가고오며 들른 휴게실 화장실 생각이 났다.
휴게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는 하나같이 똑같은 글귀가 붙어 있었으니...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이 글귀가...젊었을 때는 느낌이 별로였는데 이제는 절실하게 느끼면서도.
--젊은 시절로 돌아 갈수 없다는걸 알고부터는 소변을 보며 딴지를 건다.
‘야! 오줌을 누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누군 흘리고 싶어서 흘리냐 나도 한때는 담벼락도 넘겼다 야.
늙기도 서라라커던...변기 너 까지 우숩게 보냐?
이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야! 그리고 남자는 울면 안 돼냐?
신이주신 감정의 표현도 못하게 하냐?
그래서 울화 병으로 젤 많이 죽는 것이 한국남자 들이 라더라.
요렇게 변기 앞에서 궁시렁 거리면 나이든 것 맞다.
이때부터는 주머니는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단다.
후딱 볼일보고 돌아서면 무슨 잡념이 일컫겠는가.
밤이길면 꿈이 많더라고...그만큼 오장육보가 션찮아져서
더운 물 버리는 시간이 길어진 결과일지니..
주위를 돌아보다 줄지어선 건물 중에 노래방 간판이 있어 그리 올라갔다.
요즘 건물들은 계단에 화장실이 없다..야박한 인심들 같으니라고.
급한 김에 노래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주인이 뜨악하게 쳐다본다.
아마도 이런 것 가터...
"어라! 저 중늙은이가 이 대낮에 혼자서 노래방엔 왜 오지?
거두절미하고..아저씨 화장실이 어디라요. 물었더니.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과 함께 건너편을 가리킨다.
인사는 나중이고..션하게 볼일을 보고나니...
불가에서 변소를 왜 해우소(解憂所)했는지를 새삼 알겠더라.
다른것은 모르겟으니 '버리니 기쁘고 비우니 즐거운'것 맞다.
션하게 볼일을 보고 나와서 '아저씨 미안허요
낮술 한잔 했는디 요렇게 실례를 했구만이라우.
노래방 아저씨가 괜찮다 면서...고향이 남녘이시냐고 묻는다.
'야~그라지라~월출산 아래가 고향이어라..어라~당신도 그쪽이시란다...
같은 면소재지에 우리 마을에서 겨우 3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 고향이시다.
워메! 반갑소 이.. 손을 잡고 흔들다보니 얘기가 길어졌으며...
나 또한 옛날 동지들 만날 酒시간은 남았것다...
천둥에 개 뛰어들듯 하여 더운물 버린 댓가도 치러야 겠기에 노래방 하나 달라고 했다.
괜찮다고 그냥 가시라는 데도....‘아니지라....고향 분 장사하시는데 지가 더운물
버리러 왔을지라도 첫손님 같은디 그래서야 쓰것소.
이렇게 하여 막걸리 먹고 대낮에 무슨 청승인지 노래방에 혼자 들어가서 악을 썼다.
종로서 뺨맞고 한강가서 화 푼다더니. 고향가서 꽉 막힌 가슴이 노래방에서
확 뚫리나 보려고.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니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오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에 넋이 주인 되는 참세상 자유 이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저어가리다.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굿도 구경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맛이 난단다. 혼자 소리소리 지르다 시들하여.
가겠다고 나와서 혹여.. 누군가 에게서 전화가 왔나하고 전화기를 꺼내보니.
엥! 이게 뭐야...“국 정 원”이라고 전화기에 찍혀 있내.
그러니까 국정원 이라함은...옛 군부독재 시절에 그 사람들 말 한마디면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중앙정보부의 후신이 아니던 감. 이 인간들이 왜 나에게 전화질을 했지.
언젠가 귀국하자마자 광화문가서 ‘국민을 무서워하고...나라 제대로 건사 제대로 해라.
그리고 조작일보 폐간해라~~소리소리 친 것 때문인감...아니믄...
여기저기 인터넷에 ‘국민이 싫어하는 삽질은 그만하고
서민경제 살리라고...정부 성토 한 것 때문인감.
아니면 요즘 유행한다는 사기 전화인감.
여튼 확인 전화를 해 보면 알 것지.
국정원이라는 단어에 맞추어놓고 발신을 눌렀다.
신호가 가더니 어느 아가씨가 전화를 받더니 국정원이란다.
엥! 국정원 맞나벼...
나: 여보시요...국정원에서 왜 나에게 전화를 했으까 여?
국: 전화 안했습니다.
나: 그럼 어찌하여 내 전화기에 국, 정, 원 이라는 지금 이 번호가 찍혔다요?
나 국정원에 아는 이 하나 없는 사람인디...
국: 전화 안했습니다.
나: 아니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또 그곳, 다른 사람이 걸수도 있고..
어찌하다 보면 잘못 걸었을 수도 있겠거니..무조건 안했댜?
그럼 낫살이나 묵은 나가 할 일이 없어서 시방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당신들이 전화를 걸었으니 내 전화기에 당신네 번호가 찍힌 것 아니오?
국: 그것은 전화국에 물어보세요...
나: 오잉! “전화국에 물어봐라?
여기서 막걸리 먹은 것이 확 올라온다.
(군부독재 시절에나 있었던 개인 메일도 까발리더니.
이제는 대공, 해외 업무만 봐야할 국정원까지 동원해서 국민들 사찰을 하시나.
내라는 세금 잘 내서 자기들 봉급 가져가게 해준 중 늙은이 나에게까지 전화를
할 정도면 알쪼 아닌가.)
나 : ‘오호라! 전화국에 물어봐라 셨다?
개인 이메일도 까발리는 사람들은 그게 쉬울 줄 몰라도 나 같은 서민이
전화국에 확인한다고 전화국에서 알려준답디까..그런 것은 당신들이 전문이라
아무나 되는 것처럼 쉽게 얘기 하시는 구랴. 그라고 앞으로는 이런 쓰잘떼기
없는 전화는 하지 마시오.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려면 말이오.
요러고 끊었다.
오죽 궁색했으면 개인 사생활도 까발릴까.
왜? 고린내 나는 양발까지 벗겨보시지...발가락이 닮았나 보게.
빈총도 아니 맞는만 못 하다고 했는데...
좋지 않은 기분에 옛 동지들까지 만났으니 딥다 마셨다.
벗님들과 한잔하는데 또 재섭는 전화 올까봐... 전화도 꺼버리고..
요렇게 酒여사 집에서 酒님과 너무도 살갑게 지내고 갈지자로 집에 들어오니 마누라
눈치가 요상하다. 요럴뗀 납작 엎드려야 이사 갈 때 이불짐 위에 올라앉는 처량한
신세를 면한다 카더라.
“미안허요.마누라님! 전혀 상식이 안 통하는 곳을 다녀와서 맴이 지날 같아서 그렇게 되었소
거 뭐시냐 왜 있잖소 안소니퀸 주연에 영화 25시 알제라~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신의 시간 25시...나가 거그서 헤메다가 우리 마눌님 보고 싶어서 인간이 통제
가능한 시간 24시로 돌아온 것 아니것소~그걸 좀 학시리 확인하다보니~헤~헤~커억~
"그렇다고 전화기는 왜 꺼놓았어요?
큰 형님이 돌아 가셨다고 수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었단 말예요.
엥! 이무슨 소리람...병문안 갔다 올라 온지가 언제라고..어허..
그라믄...내가 병문안 가서...동생도 몰라보시는 큰 형님 머리를 손으로 빗기면서.
‘형님! 형님 머리카락이 저보다 더 까맣당께요. 그러니께 얼른 일어나십시오 이.
그라고 못난 동생이 형님 많이 놀렸지라...철없을 때 일이니 용서하십시오.
의식 없는 형님 옆에서 이렇게 30분 정도를 혼자 넋두리를 하니.
깜박임도 없고 촛점도 없이 반대편을 응시하시던 형님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고.
나중에 스르르 눈이 감기시기에 잠이 드신 줄 알고 ‘ 이제 그만 올라 갈라요.
인사를 드린 후 깨금발로 나왔는디...그 뒤로 영 깨어나지 않으신 게야..
못난 동생 보려고 그때까지 의식도 없이 견디신 겐가...아이고! 형님!
그 담날 아침에 수원에서 동생이 왔다.
이번에도 조카사위가 운전을 하여 내려간다.
지난번 병문안 갈 때는 큰 형님의 사위인 조카 사위였고
이번엔 수원 동생 숙이의 사위이므로 나에게는 이번에도 조심스러운 조카사위다.
일전에 고향가면서 경험을 했으니 “왜 웃소 처삼촌이 넘어지기라도 했소”
이런 소리 안 듣도록 조심해야지. 그리고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라고 해서.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내 앞에서는 행세를 못하게 해야지.
어제마신 술이 덜 깨서 머리가 깨질 것 같지만 술 냄새가 오죽 날까 싶어 고개는.
운전하는 조카사위 반대 차 창 쪽으로 꼬고...또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는...내 사위 차를 타면 좀 편하려나...
이제 대학에 갓 들어간 딸 사윗감 부려먹을 생각을 하는걸 보니 술이 덜 깬겨..
좀 더 두었더라면 딸 손주까지 안아보는 것인디...차속에서 몇 군데 전화를 하여
큰 형님의 상을 알리는 동생 전화질에 조카사위가 운전하는 불편한 차 속으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큰 오빠의 부음을 알리는 동생의 전화를 듣다보니.
오랜 타국생활로 전화 할곳 없는 막내 오빠가 직무 유기를 하는것 같다.
조카 사위도 옆에 있는데...자기 장모만 여기저기 전화 하고 처 삼촌은 조용하다니.
처 삼촌도 어디엔 가에 고인 부음을 알리는 전호를 해야 하는것 아니겠는가.
좁은 차가 더 불편해 지는데 다행히 생각나는 곳이 잇어서 전화를 걸었다.
베트남에서 함께 골프하고 운동이 끝나면 한잔술에 고스톱도 치던 후배가 생각나서
전화하여 큰 형님의 명복을 빌어달라고 부탁했다. 고인의 함자와 본을 알려 달란다.
이 후배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 여의치 않아 귀국하여 바로 부처님 품을 찾은 후배다.
정진하시라고 내손으로 흑단을 깎아 만든 목탁과 염주를 어느 보살 편에 보내준 적이 있었기로
부탁해도 무뢰한 짓을 아닐 것으로 생각이 들어서다. 그 어젠가 만들어서 보내드린 목탁과 염주가
이렇게 형님의 명복을 비는 일로 쓰일 줄이야 오래전 만들어서 보내드릴 때는...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간사 세옹지마라더니...세상사 내 모를 내라...나무 관세음보살!
인천을 출발하지 6시간 만에 형님이 입원하셨던 영암 병원에 도착했다.
형님 영전 건너에서는 오신지 오래인 고향 분들이 화투를 치고 계셨고.
두 아들 조카와 서산에 사는 두 딸이 먼저와서 손님 수발과 빈소를 지키고 있다.
수원에서 함께 내려간 동생이 한 없이 울기에...그만 울라하니
마을어르신이 그러신다. ‘상갓집은 곡소리가 나야 하는 겨’
밤이 되니 눈이 많이 내렷다.
내 고향 남녘에서는 결코 흔치않은 눈이...
아버님도 어머님도 가실때도 눈이 많이 내렸는데.
이제 큰 형님 가시는 날까지 저리 많은 눈이 날리니.
어째 우리가족들은 모조리 추운 겨울에 떠나시는가.
그래서 나는 혼자만 오래 살려고?
추운겨울이 없는 따뜻한 사이공으로 도망간 겐가?
망상에 사로잡혀 네모난 창틀에 걸린...가을 끝난 들녘을 본다.
강아지와 함께 뒹굴며 잡으려 뛰어다닌 눈도.
아버님이 돌아 가셨을 때 원 없이 내려서, 원망스럽던 눈도.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맞은 환희에 찬 크리스마스 때 내리던 눈도.
지금 창밖에 날리는 저 눈도.... 모두 한 결 같이 똑 같은 雪이건만.
내 처한 처지에 따라서 어찌 이리도 느낌이 이렇게도 서로 다를 꼬.
농자에게는 이로운 봄비도 먼 길 떠나는 나그네는 번거롭다하고.
휘영청 밝은 달밤도 남의 집 담을 넘은 도둑에게는 거추장스럽다는데.
창밖 밭모퉁이의 노송에 소복이 쌓이는 눈을 걱정하는 눈으로 보고 있을 즈음.
그 눈발을 헤치고 서산에서 많은 분들이 버스로 문상을 오셔서 나를 하늘에서 끌어내렸다.
큰 조카 사위와 작은 조카 사위 친구와 회사 분들이시란다.
일부는 눈 때문에 못 오셨다고 준비한 하얀 봉투를 내려놓으신다.
이 눈보라 속에 그 먼 곳에서 와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무슨 봉투냐고.
가실 때 버스 임대비라도 하시라고 드렸으나 막무가내로 놓고 가신다.
저분들에게는..
친구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것이다. 그것도 이웃이 아닌 먼 남녘 영암 땅에서.
그리고 이렇게 눈발이 날리는 날...먼 서산서 오셨다가 저녁 한 끼 드시고 올라가신다.
이것이 어디 보통 정성 이신가...보답하는 길을 찾는것은 우리의 몫으로 남기시고...
그분들이 올라가신 후 형님 영전 앞에 향불을 피우며.
고마우신 분들 이 눈보라 속에 무사 귀가하시길 빌며.
‘두 딸이 배우자는 잘 만났습니다. 형님!
이것은 우리가정에 복이라고 중얼거렸다.
두 조카사위에게 눈길이 갔다.
큰 조카사위는 벌써 귀밑머리가 희끗 거린다.
몇 일 전엔 나와 함께 차를 운전하여 처가를 찾았고
이번엔 도 내려와서 궂은일들을 모두 해 낸다.
입은 채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입관 식에 참석하였다.
병문안 와서 형님 이마에 손을 대고 넋두리 할 때는 눈에 초점도 없고
의식도 없었으나 따듯한 온기는 있었는데. 염할 때 다시 손을 얹어 본 형님의
이마는 그렇게 차가 울 수가...빠르고 느린 차이점만 있고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참으로 허망하다...있을 때 잘하라더니...
날이 좀 풀리고...장의차를 탄 큰 형님과 우리 모두는 고향으로 향했다.
목포 화장터로 가시기전에 고인이 고향을 한 바퀴 돌아 보셔야 한단다.
사실 큰 형님 고향은 일본 ‘나고야’시다.
나고야에서 도공으로 잘 사시다가 고려청자로 유명한 강진 고향으로
오게 된 것은...해방이 되어서 할아버님의 성화에 다시 찾은 것이다.
나야 사업 한답시고 수시로 드나들던 일본이지만 정작 한번쯤 가보고 싶었을
고향이 일본 나고야인 큰 형님은 한 번도 일본을 못가보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550년 전에 밀양박씨 17대가 마을을 형성했다고 마을현황에 적혀있다.
모두 타지로 떠나고 이제는 우리집 만이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제 큰 형님께서 하늘로 가셨으니 이산저산 천지 사방에 계시는
조상님들 산소의 잡초는 누가 돌보랴.
어쩌면 큰 형님께서 대밭골 마을을 처음 형성한
박씨 문중에 마지막 마을지기 이지 싶다.
고향 마을을 한 바퀴 돈 영구차는 목포 화장터로 향했고.
그렇게 한줌의 재로 형님은 우리 품에 안겼다.
이때부터는 별로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없었기로 내 자신 내 슬픔에 잠기도록 내버려두었다.
긴장을 놓아 버리니 눈물도 흐르고 이제 것 조심해서 사양했던 술도 찾게 되고.
산 사람들은 또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시고..또 우수게 소리도 하고..
다시 영구차는 고향으로 향했다. 목포 갈 때는 살았건 돌아 가셨건 열다섯 사람이 갔건만
돌아올 때는 열 네 명뿐이다 한명이 줄었다. 키 크고 속없다고 꺽쇠라는 별명을 가졌던
나보다 더 큰 장신 큰 형님이 가루되어 가슴에 안길 만큼 작아져 버린 것이다.
아버님 산소 곁 선산 낙락장송 아래에 흩날리는 눈송이와 함께 형님을 보내드렸다.
어찌 우리가족들은 이 추운 겨울에만 떠나시는가.
아버님은 그해 눈이 제일 많이 내렸을 때 떠나 셨고.
어머님은 구정 3일전 그때도 눈 오고 춥다고 사이공에서 국제 전화로 알았으며.
큰 형님까지도 눈보라 속에 하늘로 날아가시니..가족 모두가 백설과 함께 백학이 되어
회청색 천상으로 날아가신 것이다.
마을회관에서 아짐, 아제, 형님, 그리고 친구, 모두에게 술 한잔 올렸다.
가신 분은 가신분이고 이제 남은 식구 잘 부탁드린다고..
또 주시는 데로 받아 마시고 빛고을 비행장으로 행했다.
내일은 또 사이공으로 떠나야 하기에..
비행기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누가 깨운다.
왜 그러지...하고 눈을 떠보니...
스튜어디스가 다 왔으니 내리 시란다.
어! 벌써 사이공에 다 왔다고?
예? 사이공요...여긴 김포인데요.
어이쿠! 이거 미안합니다.
그렇지 내가 고향 다녀오는 길이지.
누군가가 사과를 담아준 가방을 메고 길거리로 나서는데 싸늘한 밤바람이
얼굴을 후려친다. 집으로 가는 차 찾아 비틀거리며 흥얼거린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어~추워~
누가 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 안 사주나~~
거기 누구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