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025년 2월
신동엽 시의 전경인(全耕人)을 읽다
맹문재
저자가 말하다_ 『신동엽 깊이 읽기』 신좌섭․맹문재 지음 | 푸른사상 | 255쪽
『신동엽 깊이 읽기』는 신동엽 시인 50주기를 기념해서 시 전문지 『푸른사상』 2019년 봄호부터 2020년 가을호까지 대담한 것을 정리해 출간한 것이다. 대담집의 내용은 제1부 신동엽 시인의 생애, 제2부 시 세계, 제3부 장편서사시 「금강」 읽기, 제4부 산문 세계, 제5부 신동엽 시인의 아내이자 짚풀생활사박물관장인 인병선의 생애와 활동 등이다.
『신동엽 깊이 읽기』에서는 신동엽 시인의 생애와 창작 동기 및 배경, 창작 과정, 주제, 특이 사항 등을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신동엽 시인의 아들인 신좌섭의 의견들은 구체적이어서 신뢰성을 획득한다. 장편서사시 「금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서화 및 후화를 포함해서 총 30장 4,673행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금강」을 쓸 무렵의 상황에 대한 소개는 증언에 가깝다. 그리하여 「금강」이 동학혁명, 3․1혁명, 4․19혁명의 흐름으로 엮어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민중에 의해 이루어질 또 다른 역사를 꿈꾸도록 이끌었다는 신좌섭의 논지는 귀 기울일 만하다. 1998년 8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가극 <금강>이 초연(문호근 연출)된 사실에서는 「금강」이 다른 예술작품으로 결합 및 확장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동엽의 작품 세계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산문 「시인정신론」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신동엽은 현대를 맹목 기능자의 시대, 상품화 시대, 대지를 이탈한 문명, 앞의 모이만 쪼아대는 소원(小圓)만 있을 뿐 대원(大圓) 정신이 없는 시대 등으로 진단했다. 땅에 있는 씨앗의 마음인 원수성(原數性), 문명의 성취에 들떠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세계인 차수성(次數性), 땅으로 돌아오는 씨앗의 마음인 귀수성(歸數性) 등의 개념도 내놓았다. 그리고 차수성을 극복한 이상적인 인류의 모습으로 전경인(全耕人)을 제시했다. 전경인이란 대지에 뿌리를 내린(耕), 대원적인 정신(全)이다. 신동엽은 그 정신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장편 서사시 「금강」에서 구체화했다.
이와 같은 면에서 『신동엽 깊이 읽기』는 이전에 나온 연구 논문이나 여타의 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신좌섭은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연구자보다 신동엽의 작품 세계를 꿰뚫고 있다. 아버지 신동엽을, 또 선배 시인 신동엽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기에 남다르게 작품을 읽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 대담집은 앞으로 신동엽의 연구에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신동엽과 관련된 사진, 일기, 제적 등본 등을 비롯한 자료들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어 그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신동엽 깊이 읽기』를 함께 진행한 신좌섭 선생님은 편집된 원고를 교정 보는 동안 타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2024년 3월 30일의 그 일이 믿기지 않는다.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연수원 원장을 역임했고,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육상(교육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훌륭한 연구자이자 교육자였다. 또한 세계보건기구 교육개발 협력센터장, 한국퍼실리테이터협회 인증전문퍼실리테이터, 개발도상국의 인적 역량을 강화하는 개발협력전문가 등으로 활동했다. 선생님의 타계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손실이 크다. 선생님께서 살아 계실 때 이 대담집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물론 죄송함이 크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시인 정신을 바탕으로 신동엽 연구에 큰 역할을 하신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부디 영면하소서.
맹문재(안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