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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8> | |||||
현대적 기법으로 재현된 중세적 울림: 존 부어맨의 '엑스칼리버' | |||||
2004-11-29 오후 2:0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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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세는 무엇일까? 초라한 마을에 그로테스크하게 솟아있는 교회와, 신자들의 얼굴에 화려하고도 어두운 그늘을 던져주던 스테인드글라스, 미천한 현실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경건한 종교화와 무미건조한 그레고리안 성가,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통해 갖가지 빛깔로 덧칠된 온갖 영웅들의 전설, 성속(聖俗)의 구별이 모호한 다성 합창곡과 노골적인 세속노래, 남녀의 성적 유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음탕한 세속화, 그리고 시대의 퇴락을 비웃던 방랑 시인들의 시와 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중세는 빛과 암흑, 양 극단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시대인 것 같다. 빛과 암흑의 대조가 워낙 극명했기에 빛은 더욱 찬란한 것으로 느껴졌다. 특히 흔히 암흑시대로 불리던 6세기에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런 암흑과 혼돈의 시대에 홀연히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더왕이다. 1981년에 제작된 존 부어맨 감독의 <엑스칼리버>는 바로 이 아더왕의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데, 여기서 엑스칼리버는 아더의 왕권을 상징하는 마법의 칼을 말한다. 아더왕의 전설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1953년에 만들어진 <원탁의 기사>를 비롯해서 <카멜룻의 전설>, <엑스칼리버> 그리고 최근에 나온 <아더왕> 등이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아더왕은 게르만 민족의 침입이 있었던 6세기 경에 켈트인의 영웅으로 활약했던 인물로 나온다. 그는 켈트의 여러 민족을 이끌고 게르만을 격파해 켈트의 영국 지배권을 지켰다. 이런 아더왕의 이야기는 그 후 구전을 통해 수세기 동안 전해 내려오게 되는데, 그러는 동안 이야기가 보태져서 나중에 아더는 브리튼을 통일한 왕이 된다.
중세 암흑시대, 나라는 분열되고 왕은 없었다. 혼돈의 시대에 한 전설이 있었으니 마법사 멀린, 왕의 출현, 그리고 전능의 칼 엑스칼리버. 영화 <엑스칼리버>는 이런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위대한 영웅 이야기의 서막에 어울리는 웅장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는데, 이것은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의 제4부 <신들의 황혼>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장송곡>이다. 바그너는 전설과 신화, 영웅이야기를 광적으로 좋아해 그것들을 즐겨 자기 음악극의 소재로 삼곤 했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아더왕이 브리튼족의 전설적인 영웅이라면, 음악극에 나오는 지그프리트는 게르만 족의 전설적인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바그너의 곡은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마법의 칼 엑스칼리버의 위용과 신비를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처음에 ‘중세 암흑시대’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 음악은 아더의 아버지인 우더왕이 마법사 멀린에게 마법의 칼을 요구하고, 호수 속에서 엑스칼리버를 든 요정의 손이 나와 칼을 건네주는 장면까지 줄곧 이어진다. 도입부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북소리를 연상시키는 금관악기의 독창적인 사용이 압권이다. 바그너의 <지그프리트의 장송곡>은 엑스칼리버의 출현과 퇴장을 알리는 동시에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곡이다. 이 비장한 음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즉 아더가 아들을 죽이고, 퍼시벌이 엑스칼리버를 호수의 요정에게 돌려보내고, 아더의 시신이 배에 실려 멀리 떠나는 장면에도 나온다. 이름 그대로 영웅의 최후에 걸맞는 웅장하고도 비장한 장송곡이다. 사실 아더와 같은 민족의 영웅과 엑스칼리버와 같은 마법의 칼이 등장하는 영화에 바그너의 음악만큼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세계 자체가 온갖 비현실적인 공상과 신화, 전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일상적인 현실을 넘어선 그 무엇을 보여준다. 이 과대망상주의자에게 인간사의 희로애락은 한낱 헛된 푸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늘 음악을 통해 현실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지그프리트의 장송곡> 역시 그런 곡 중의 하나이다. <엑스칼리버>에는 바그너의 음악과 함께 중세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묘사한 또 하나의 음악이 나온다. 바로 독일의 작곡가 칼 오르프가 작곡한 <카르미나 부라나>의 제1곡인 <운명이여, 세상의 여황제여>이다. 지난 1803년, 독일 뮌헨의 베네딕트 보이에른 수도원에서 수백년 동안 암흑 속에 갇혀 있던 골리아드의 시가집이 발견되었다. 골리아드는 10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중반까지 유럽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라틴어 시와 노래를 직접 만들어 불렀던 방랑시인들을 말한다. 아더왕의 전설도 12세기 무렵부터 바로 이 유랑시인들에 의해 구전되었다고 한다. 골리아드는 프랑스와 독일, 잉글랜드,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 크게 성행했는데,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학자와 성직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학식을 갖춘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술, 여자, 사랑, 봄, 축제, 도박 등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현실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때로는 노래 속에서 종교적인 문제나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었으며, 토론과 풍자, 논쟁과 훈계를 즐겼다. 이 시대 골리아드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 다음과 같은 <골리아드의 신앙고백>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내 이상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죽는 것이다. 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기분이 우울할 때 필요한 것이 술이다. 천사들이 내 허약함을 손가락질하며 ‘주여, 이 주정뱅이를 용서하소서. 이 작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망나니입니다.’ 이렇게 외치지만 술잔은 정신의 봉화를 비추어주고, 향주 몇 모금은 내 마음을 하늘로 끌어올린다. 술에 물을 타지 말거라. 신경통 걸린 양반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아이구, 나는 물 탄 것이 싫어. 급사야, 내 말 알아들었냐? <카르미나 부라나>는 바로 이런 인생관을 갖고 있던 중세 골리아드들의 노래를 실어 놓은 것이다. 시가집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부에는 도덕적 풍자시, 제2부에는 연애시, 제3부에는 술잔치의 노래와 유희의 노래, 제4부에는 종교극이 실려 있다. 칼 오르프는 여기에 실려 있는 라틴어 시 중에서 24개를 골라 독창과 합창으로 구성된 극음악 형식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를 작곡했다. 이 작품은 193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되었는데, 그때 크게 호평을 받음으로써 칼 오르프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엑스칼리버>에는 이 작품의 제일 첫 곡인 <운명이여, 세상의 여황제여>가 나온다. 아버지 우더왕이 죽으면서 바위에 박아 놓았던 엑스칼리버를 뽑아 소년왕으로 추대된 아더는 기사들을 규합해 성을 공격하러 간다. 이때 말을 타고 전장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바로 이 음악이 흐른다. 오! 운명이여. 그대는 달처럼 변화무쌍하게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구나. 가증스런 인생은 한 순간 좌절을 안겨주고 그 다음 순간에는 위안을 준다.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빈곤과 권력을 얼음처럼 녹여 버린다. 공허하도다, 기괴한 운명이여. 수레바퀴를 돌리는 그대, 그대는 사악하다. 행복은 헛되이 무위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그대는 베일에 싸인 채 은밀하게 나에게까지 고통을 안겨주는구나. 그대의 맹공 아래 나는 헐벗은 등을 내보이노라. 그대 운명이여. 나에게 건강과 힘을 주었던 그대가 이제는 나에게 등을 돌리다니. 내 욕정과 연약함에 영원한 노예가 되어 버렸구나. 지금 당장 지체하지 말고 모든 이에게 악기를 연주하게 하라. 나와 함께 슬픈 노래를 부르게 하라. 한 용맹스런 인간이 운명에 의해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아마 이 노래만큼 듣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노래도 없을 것이다. 몇 개의 음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단순한 리듬,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중세적인 역동성. 중세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에 이것처럼 어울리는 음악이 또 있을까. 이 곡은 후에 퍼시벌이 가져온 성배에 담긴 술을 마신 아더왕이 다시 힘을 내 기사들을 소집해 전쟁터로 나가는 장면에서도 나온다. 화음을 최대한 배제하고, 단순한 리듬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이토록 생생한 중세적 울림을 재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이 노래를 통해 현대와 중세의 거대한 간극이 순식간에 메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 <엑스칼리버>에 사용된 바그너와 칼 오르프의 음악은 중세의 영웅 이야기라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을 고루 만족시키고 있다. 엑스칼리버로 대변되는 주인공의 영웅적인 면모는 악상을 거대하게 펼쳐나간 바그너의 음악을 통해, 중세라는 시대의 고졸함과 역동성은 단순한 리듬이 반복되는 칼 오르프의 음악을 통해 실현되었다. 현실과 비현실, 과장과 축소, 거대함과 단순함, 이런 것들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음악은 이 시대와 닮아 있다. ▶ 음악듣기 |
진회숙/음악평론가 |
첫댓글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들을수 있었어요...바그너의 지그프리트 장송곡?
어머...제컴이 이상 있는지 음악이 전혀 안들리는군요...클래식음악은 중세영화에서도 잘 어울리는만큼 많이 사용되고 있죠..영화내용이 썩 좋지 않더라도 음악에 따라서 그의 효과는 아주 큰것처럼 배경음악의 영향은 무시 못하는 부분입니다.
멋지군용~~관심쏠리네여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