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 대사(震默大師: 1562-1633: 이름은 일옥(一玉). 조선 인조 때의 승려로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으며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남기신 대 도인(大道人)이었다. 저서에《어록(語錄)》이 있다.
진목 대사에게는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고, 누이동생이 낳은 외동아들은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이 조카가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복(福)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스님은 7월 칠석날 조카 내외를 찾아가 단단히 일러 주었다.
“얘들아, 오늘 밤 자정까지 일곱 개의 밥상을 차리도록 해라. 내 특별히 칠성님들을 모셔다가 복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주마.”
진묵 스님이 신통력을 지닌 대 도인(大道人)임을 아는 조카는 “삼촌이 잘 살게 해주리라” 확신하고 열심히 손님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마당에다 자리를 펴고 일곱 개의 밥상을 차렸다.
자정이 되자 진묵 스님이 일곱 분의 손님을 모시고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하나같이 거룩한 모습의 칠성님은 아니었다.
한 분은 째보요,
한 분은 곰보,
절름발이요,
곰배팔이요,
장님이요,
귀머거리들이었다
거기에다 하나같이 눈가에는 눈곱이 잔뜩 붙어있고 콧물이 줄줄 흘렀다.
“외삼촌(=외숙부: 外叔父)도 참! 어디서 저런 거지 같은 사람들만 데리고 왔다니? 쳇, 덕을 보기는 다 틀렸네”
조카 내외는 기분이 크게 상하여 손님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쾅쾅 여닫고 바가지를 서로 부딪히고 깨면서 소란을 피웠다.
그러자 진묵 스님이 ‘어서 드십시오!’ 하고 권하는 데도 밥상 앞에 앉았던 칠성님들은 하나 둘 차례로 일어나 떠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칠성님까지 일어서려 하는데 진묵 스님이 다가가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철없고 박복한 조카입니다. 저를 봐서 많이 드십시오.”
일곱 번째 칠성은 진묵 스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밥 한술을 뜨고,
국 한 숟갈을 먹고,
반찬 한 젓가락을 집어 드신 다음 떠나가고 말았다.
다 떠나가고 난 다음에 진묵 스님은 조카를 불러 호통을 쳤다.
“에잇, 이 시원치 않은 놈! 어찌 너는 하는 짓마다 그 모양이냐? 내가 너희를 위해 칠성님들을 청하였는데 손님들 앞에서 그런 패악을 부려 다 그냥 가시도록 만들어? 도무지 복 지을 인연조차 없다니 한심하구나.”
그리고 돌아서서 집을 나오다가 마지막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그래도 마지막 목성 대군이 세 숟갈을 잡수셨기 때문에 앞으로 3년은 잘 살 수 있을 게다.”
이튿날 조카는 장에 나갔다가 돼지 한 마리를 헐값에 사 왔는데, 이 돼지가 며칠 지나지 않아 새끼를 열두 마리나 낳았고, 몇 달이 지나자 집안에는 돼지가 가득하게 되었다.
또 돼지들을 팔아 암소를 샀는데, 그 암소가 송아지 두 마리를 한꺼번에 낳았다.
이렇게 하여 진묵 스님의 조카는 3년 동안 아주 부유하게 잘 살았다.
그런데 만 3년째 되는 날 돼지우리에서 불이 나더니, 불이 소 외양간으로 옮겨붙고, 다시 안채로 옮겨붙어, 모든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3년의 복이 다하자 다시 박복하기 그지없는 거지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다소(多少)는 전설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새겨볼 수 있다.
담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갖추어져 있고,
또 정성을 다하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복(福)이다.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0월 12일 덕산 김덕권(길호). 출처: 뉴스 프리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