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달이다. 마음이 쓸쓸해지고 무엇인가 빚졌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과자 종합세트 한 상자씩을 네 남매에게 선물로 주셨다. 당시는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귀중한 선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기가 다가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어른이 되어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버지처럼 자녀들에게 선물을 많이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러지 못했다. 올해 미리 계획을 세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애들에게 전달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선물의 묘미를 극적으로 다룬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에는 가장 쓸모없는 선물을 한 바보 같은 부부 짐과 델라가 등장한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 누구보다 컸다. 돈이 없는 부부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몰래 팔아 상대가 좋아할 선물을 기쁘게 준비한다. 아내 델라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판돈으로 짐이 아끼는 시계에 달아줄 시곗줄을 사고, 남편 짐은 대대로 물려받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위해 예쁜 빗을 산다. 선물을 풀어보았을 때 서로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았지만, 서로에게 쓸모없는 선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마음을 선물한 두 사람은 눈물 어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크리스마스이브, 뉴욕시 경찰 심슨은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생을 마감하러 가는 길이었다.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가 된 그에게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부모님은 일찍 죽고 그에게 가족은 오직 형 하나뿐이었다. 심슨은 뉴욕시 경찰이 되었지만, 검문을 받던 용의자의 권총에 맞아 불구가 됐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바스러졌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빠졌다. 자신이 세상에 짐이 되느니 삶을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산 정상에 올라 목숨을 끊기로 작정하고 기차표를 샀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옆자리 60대 아주머니가 눈 덮인 나무를 가리키며 말을 걸었다. “예쁘지 않아요?” 뉴욕에 살면서 뭐가 가장 좋으냐고 물었다. 심슨은 “며칠이든 어느 인간하고도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살 수 있는 그 익명성이 좋다.” 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주머니는 괜찮다며 받아주더니 다음 역에서 “어디를 가는지 모르지만, 나중에 읽어보라.” 하며 쪽지 하나를 건네고 내렸다.
산 정상에 올라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려 했다. 그때 기차 안에서 아주머니가 건네준 쪽지가 삐져나왔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이었다.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 아래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젊은이, 삶은 나누라고 주어진 선물이라오. 절대 희망을 잃지 마시오. 메리 크리스마스!’ 몇 번이고 쪽지를 읽던 그는 산길을 내려와 술을 끊었다. 현재는 플로리다에서 참전 용사 재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51세가 된 지금도 아주머니가 건네준 쪽지를 간직하고 있다. 생명을 구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선물에 대해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요즘 현금이 선물로 대용된다. 어떤 통계에서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선물 1위가 ‘3금’이라고 한다. ‘현금·지금·입금’이란 우스갯소리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지만 마음 한쪽에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가장 좋아할 선물을 고루기 위해 며칠을 궁리하고 몇 시간 발품을 팔았던 그 사랑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꼭 필요하거나 남몰래 원했던 걸 선물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물보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감사의 마음은 또 얼마나 행복감을 주었던가.
따뜻한 선물은 상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의 배려에 감사하게 만든다. 크리스마스를 맞이 하며 선물이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새겨 본다.
첫째, 필요한 선물보다 원하는 선물을 주자. 영화 대사에서 크리스마스에 상사는 젊은 직원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답이 걸작이다. “필요한 것 말고 원하는 것을 선물로 주세요.”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 선물을 달라는 뜻이다. 금방 소비되는 것보다는 오래도록 지켜보며 선물해 준 사람의 뜻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둘째, 엉뚱한 선물을 하지 말자. 돼지에게 귀고리를 주지 마라는 뜻이다. 언젠가 나는 아주 귀한 원두를 선물로 받았다. 커피를 내리는 일에 문외한인 나는 그것을 개봉도 안 한 채 그대로 모셔 놓아 썩히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분이 원두의 향을 물어보는데, 적당히 얼버무렸다. 나의 말을 듣고 그는 안색이 변했다. 선물은 귀하고 비싼 것보다 상대의 취향과 소화 여부에 맞느냐가 중요하다.
셋째, 사랑도 내리사랑이듯 선물도 윗사람에게 하는 것보다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 좋다. 내리 선물이 한결 효과를 발휘한다. 한 번은 회식에서 젊은이가 술잔을 받으며 손을 떨었다. 이 모습을 본 선배가 다음날 그를 불러 수전증이 있는 것 같다면서 한약방에서 지어온 약을 건너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수전증 환자를 보면 도와라고 충고했다.
넷째, 선물 명단과 세목을 목록으로 만들어 인간관계에 실패하지 않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선물의 성의를 간직하고 보답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상대의 취향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선물에도 주고받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
마지막으로 선물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도록 해야 한다. 진심 어린 배려와 정성의 선물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매번 같은 선물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전략도 있다. 돌아가신 숙모님은 명절 때마다 화장품 스킨을 선물로 주셨다. 스킨이 떨어질 때마다 숙모님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감사의 마음을 서로 전하며 그리스도 사랑을 세상과 나누게 한다. 흔히 하는 연례행사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되고 감동의 산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선물의 본질은 마음을 전하는 데 있다. 가끔 진심이 초라해질까 번듯해 보이는 물건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선물의 가치는 정성과 세심한 태도에 있다. 선물에 깃든 저마다의 감사와 사랑이 잘 도착했기를, 그래서 조금은 따뜻한 날이 되기를 진정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