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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다는 조주스님의 초상화입니다)
(조주선사의 12시가 중에서)
혼자서 마시는 차를 좋아 하는 분들도 많으나
차는 더블어 함께하는 찻자리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찻자리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는가
함께 거주하는 사람과 마주하며 나누는 찻자리
말없이 찻 한잔 놓고 마주하는 가족이 있다면 도반이 있다면 객이 있다면
그 찻자리가 최고의 찻자리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찻자리에 잔잔한 음악이 함께한다면 다화 한점 옆에 두고 나누는 찻자리는 더 깊은 찻 자리가 될 것이다.
옛 스님들은 찻 한잔에 우주가 들어있다고 노래했다.
더 블어 마주하는 찻자리에 우주가 숨쉬고 도와 행복이 숨쉰다.
물질적 부유속에 살면서 도는 이루고져 꿈을꾸나
가난속에 도가 있다는 조주선사의 끽다거는 모른다.
요즈음 수행자는 조주선사보다 물질적 풍요는 훨씬 풍족하면서도
도는 삼천리 밖에 있으며 조주선사의 끽다거를 잘도 흉내낸다.
조주선사는 청빈하게 수행하다보니 객승이 찾아와도 차 한잔 대접할 차는 없었으나
당당하게 수행자로서 청빈의 길을 간다.손수 탈박하며 총림을 이끌었다.
그런 조주선사는 잊어버리고 우리는 천하조주라 부르며 끽다거를 노래한다.
물질이 풍요로우면 도는 삼천리 밖이다. 가난한 수행자 이어야 천하를 호령하는 도인이 된다.
요즈음 내 자신을 바라보면 道 이루지 못한 것 걱정은 하지 않고 물질적 풍요로움과 명예만을 꿈꾼다.
이게 내 모습이다.이렇게 살다보니 道하고는 삼천리 밖이다.
더블어 함께하는 찻자리가 많아질때 도는 넘쳐나리라.
함께하는 찻자리에 도가 있고 행복이 함께한다.
조주선사를 생각할때 나는 물질적 풍요는 훨씬 많은데 도는 갖고있지 못한것이 항상 부끄럽다.
조주선사가 수행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다르나 수행하는 자세는 같다.
홀로 마시는 찻자리보다 함께하는 찻자리를 굼꾼다.
함께나누는 찻자리 때문에 내 살림살이가 부도가 나면 좋겠다.
부도가 난 그 찻자리가 道를 이루는 자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조주선사의 끽다거는 많이 이야기 하면서 청빈한 삶을 싫어한다. 끽다거 안에는 깨달음이 들어있는데,끽다거 안에는 철저한 청빈 수행이 들어있는데
그것은 망각하고 홀로 마시는 차가 최고라고 노래한다.
그러다보니 도는 삼천리 밖에 있는 것이다.
이 시대 진정 요구하는 찻자리는 함께 나누는 찻자리가 진정한 찻자리가 아닌가 한다.
내가 수행하는 공간을 찾는 이에게 차를 대접하면 부도가 날까요?
언젠가 이런 찻자리 때문에 내 찻자리는 부도 나기를 원한다.이렇게 살면 다음생에는 반드시
부처로 환생할 것이다.세상을 구제하는 부처로 출현할 것 아닌가?
우리가 이런 수행자로 살아볼만 하지 않을까?
함께 나누는 찻자리 속에 도가 있다고 조사스님들은 노래했다.
어느날 제자 숭신스님이 스승 도오선사에게 도를 가르쳐 달라며 따지며 왜 내게 도를 가르쳐 주지않느냐고 하기에 도오선사는 내가 가져오는 떡을 내가 먹었고,내가 가져오는 차를 마셨다며 언제 도를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고 답했다.도는 일상이 도라고 했다.도는 말로 가르칠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찻자리에 도가 들어있다. 도는 함께 나누는 찻자리에서 나온다. 일상사(평상심)가 도가 아닌 것이 없건만 우리는 일상사에서 도를 찾지않는다.
우리는 함께하는 찻자리에 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도를 찾지 않는지 모르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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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道를 이루는 부도는 나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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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찻자리라 아우르며....홀로 앉아 찻잔 어루 만짐니다..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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