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과 담대함]
조선 후기 효종 때 당대의 두 거물 정치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명의이자 영의정을 지낸 남인의 거두 허목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학자이며 정치가이기도 한 효종의 스승인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었다.
당시에 두 사람은 아쉽게도 당파로 인해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그러던 중에 송시열이 큰 병을 얻게 되었는데, 허목이 의술에 정통함을 알고 있던 송시열이 아들에게,
"비록 정적일망정 내 병은 허목이 아니면 못 고친다. 찾아가서 정중히 부탁하여 약방문(처방전)을 구해 오도록 해라" 하고 아들을 보냈다.
사실 다른 당파에 속한 허목에게서 약을 구한다는 건 죽음을 자청하는 꼴이었다.
송시열의 아들이 찾아오자 허목은 빙그레 웃으며 약방문을 써 주었다.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서 약방문을 살펴보니 비상砒霜을 비롯한 몇 가지 극약들을 섞어 달여 먹으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허목의 못된 인간성을 원망하면서도 아버지 송시열에게 약방문을 갖다 주었다. 약방문을 살펴본 송시열은 아무 말 않고, 그대로 약을 지어오라고 하고, 약을 달여 먹었는데,
병이 깨끗이 완쾌되었다.
허목은 "송시열의 병은 이 약을 써야만 나을 텐데, 그가 이약을 먹을 담력이 없을테니 송시열은 결국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송시열은 허목이 비록 정적이긴 하나 적의 병을 이용하여 자신을 죽일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송시열이 완쾌했다는 소식을 듣자 허목은 무릎을 치며, 송시열의 대담성을 찬탄했고, 송시열은 허목의 도량에 감탄했다고 한다.
서로 당파 싸움으로 대적을 하는 사이이지만, 상대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인정을 하는 허목과 송시열과 같은 그런 인물이 현세에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