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인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으며 빈 대학에서 의학과 철학박사를 받았다.
그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타인들의 수많은
죽음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체험하고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로고테라피는 자신의 시련을 품위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불행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자아에서
탈출하게 한다. 시련에 휘둘려간다는 것은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터득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강한 자라고
브레히트는 말했다. 그러나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연구조사결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고 증명하고 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적었는지를
계산하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까를
희망으로, 죽음과 맞서온 이들이 막상 풀려나자
무덤덤하기까지 했다. 시련이 무감각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흡족하지는 않지만
정신건강에 관한 소규모 강의도 했다.
과거의 즐거웠던 일들, 그 빛이 현재의 어둠 속에서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지를ᆢ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라!"
삶이 무한한 이유에는 고통, 임종, 궁핍과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며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번호로 불리는, 그마저도 없으면
손가락이나 턱으로 까닥하여 불리는, 시체 옆에서
수프를 먹고, 아직 온기가 남은 시체에 달려들어
그중 멀쩡한 것을 채가는, 12살 소년의 발이
동상으로 썩어 잘리는 것을, 무덤덤히 보고,
채찍으로 맞는 비명소리가 끝없이 들리고,
아파보이면 화장장으로 끌려가는 수용소에서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고, 볼을 꼬집어 생기 있게 만드는, 퉁퉁부워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발을
밤새 울어서 가라앉혔다는 말을 덤덤하게 하고,
듣는, 시체를 깡통 굴리듯 굴려서 홈으로 밀어
넣는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프랭클 박사는 누이만 제외하고 전 가족들이
죽거나 가스실로 보내져 몰살을 당했다.
그는 시련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와 좌절에
로고테라피의 초점을 맞췄다. 헐벗은 자신의
생명 외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을 때,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나뭇가지, 타 수용소로
이동 중 열차에서 보게 되는 노을, 그것들을
바라보며 굶주림, 수모, 공포, 불의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삭이는, 그러한 몰상식한 시련 앞에서
조차 큰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네가 잃은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는지
생각해 보라> 그렇다. 그 어떤 고통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남아 있었다. 아니 인간의 존엄성을 찾게 해 주는 시련이라는 덤이 있었던 것이다.
<신연옥>
첫댓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독후감을 아니 책담회 같은 소회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심정자 선생님♡
낭송회날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