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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 지옥에서 올라온 여호와
기독교의 신 여호와는 도데체 어떤 신인가? 여호와는 세계의 모든 종교의 어떤 신보다도 더
넓은 포용력과 자비로운, 고등종교의 신으로서 과연 자격이 있을까? 여호와는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한 수준의 신인가? 필자는 여호와를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호와는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듣기에는 수준 미달의 저질잡신이다.
목사들의 설교나 칼럼을 읽으면 '공의로우신 분'이니, '자비로우신분'이니 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온갖 철학용어들 까지 동원되어 여호와를 칭찬하기에 급급하다.
목사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히틀러'(Hitler)의 '나치즘'(Nazism)에 대해 입에 침을 발라
가며 찬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히틀러는 타민족에 대해 배타성이 강했는데, 특히 히틀러 집권전 독일경제를 장악했던 유대인
을 극단적으로 증오하며 대학살로 그들의 씨를 말려놓으려고 했다. 그런 그가 전쟁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호와도 이방민족에 대한 배타성이 강했는데, 이집트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들을
싹쓸이 죽여서 그들의 씨를 말려놓으려고 했다. 특히 아말렉과 모압족, 암몬족을 가장 경멸했
고 전쟁을 일으켜 대학살시킨다.
히틀러는 우수한 인종의 씨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장애인들과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들
을 학살했다.
여호와도 신체에 흠이 있는 장애인들을 부정한 존재로 여기고 성전 근처에 얼씬 거리지 말라
고 말한다.
히틀러는 성도착 증세가 있었는데 육체적으로 건강한 젊은 남녀에게 조혼을 강요하며 우수한
인종을 이어가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타민족과 피가 섞이는것을 히스테릭할 정도로 두려워했다.
여호와도 성도착 증세가 있었는데 성불구자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감과 함께, 형수를 물려 받아서라도
대를 이어가라고 명령한다. 마찬가지로 이방인과 피가 섞이는것을 히스테릭할 정도
로 두려워 했다.
히틀러와 여호와는 결코 다른 존재가 아니다. 하나는 독일민족의 파시즘(fascism)이고 또 하
나는 유대민족의 파시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히틀러는 여자를 차별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관점에서 보자면 여호와는 히틀러만도 못 한것 같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있다. 피 비린내나는 고대 유대민족의 민족신에게 범신론(汎神論)
이니 무소부재(無所不在)니 하는 온갖 용어로 치장해 놓는것은, 돼지의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
어 놓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처사이다. 이런 낡아빠진 유대 파시즘을 가지고 오늘날 입에 침
을 발라가며 찬양한다면 그것은 거짓이요 위선이 아니겠는가?
한국의 기독교는 자기네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것도 모자라, 기독교와는 아무관계도 없는 종
교와 사상에 까지 욕설을 퍼붓는다. '마귀', '사단'. '사탄', '가라지', '가증', '이단' 등등등...
온갖 아름다운(?) 단어를 동원하여 기독교가 가진 악마성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무슨 음악이 사탄의 음악이라느니, 미국의 모기업이 사탄교에 거금을 기부했다
느니 하는 루머를 퍼트리고 다니며 사탄의 존재에 대해 두려워하며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러나 사탄과 사탄을 숭배하는 사탄교는 다른곳에 있지 않다. 여러분이 그토록 숭배하고 있
는 여호와의 존재를 직시하라! 이제 필자는 목사들이 설교시간에 끄집어 내기를 두려워하는,
어두침침한 성경의 한쪽 구석에 파뭍혀진 성경구절들을 보여줄것이다.
제발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문자로 부터 해방되기 바란다. 성경이 인간의 손에 의해 씌어진 것
이라는것을 깨닫게 된다면, 기독교인들은 목회자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될것이며, 하나님을
들먹이는 목회자의 정치집회에 따라가지도 않을것이다.
또한, '마귀', '사단'. '사탄', '가라지', '가증', '이단' 등이니 하는 악성 루머를 퍼트리는 광신자
들의 추태에도 동참하지 않게될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성경의 문자로부터
해방되라!
▶ 여호와 산신령의 어원과 기원
기독교의 여호와(야훼)라는 신은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가?
구약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신이 스스로의 이름을 야훼라고 자칭하며 나타난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그렇게 알고 있지만 아브라함은 사실상 허구의 인물이다. 역사에 따르면 이집트와 가나
안 지방에서 '아피루'라고 불렸던 셈족계열의 유목민들이 유대민족의 시조로 알려져있다.
(이점은 4장에서 소개하기로 하겠다.)
최근 발견된 아마르나 문서등에 의하면 아피루들은 부족적, 가족적 유대가 없고, 국가 조직에
군인으로 고용되어 얽매이거나 제 스스로 행동하는, 다양한 기원을 가진 비정착인들로 등장한
다. 즉, 다양한 씨족출신이면서, 이주 시기 또한 제각각인 셈족 이주민 부족들이 유일신을 섬
기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타당치 않은 이야기다.
그렇다면 히브리 민족의 시조인 아피루들은 언제부터 여호와(야훼)를 숭배하게 되었는가?
출애굽 이전의 이야기를 제외해 본다면, 모세는 이집트인에게 학대받고 있는 동족에 대한 분
풀이로 이집트인을 죽이고 탈출한다. 그리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서 사제의 집에 의탁 했는
데,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산(山)' 호렙에서 여호와를 만나고 동포들을 구출하라는 사명을 받
는다. 이것을 시나이 계약이라고 부른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
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출애굽기 6장 3절]
여호와는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이름을 알려준적은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오류이다.
창세기 12장 8절과 창세기 21장 33절에는 아브라함이 산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고, 창세기 22장 14절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라는 뜻으로 '여호와
이레'라는 지명(地名)을 짓는다.
어쨋든 그런 사소한(?) 오류는 넘어가고, 위에서 인용한 출애굽기 6장 3절에 나온 '전능의 하
느님'이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문은 '엘 샤다이'(El Shaddai)이다.
기독교인들도 많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엘'은 신(神)을 뜻한다. '샤다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여러 이견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산(山)을 의미 한다것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샤다이의 어원은 산(山) 또는 산악지대를 뜻하는 아카드어(Akkadian)의 '샤드'(shad'um')에서
유래 되었다. 이 단어에서 '산에 사는 자'라는 의미로 '샤다'(sadda'u') 또는 '샤두'(saddu'a')
가 등장했으며, 저명한 신학자인 올브라이트(W. F. Albright)는 가나안의 산신으로 숭배되던
'엘 샤다이'가 야훼신앙에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엘 샤다이, 즉 산의 신은 시리아에 전래된 아모리인의 신으로 나중에 가나안의 바알-하닷이
된다. 그런데 야훼가 산(시내, 호렙, 시온, 모리아 등)과 연관되어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산신
은 아니다. 다만 산에서 자주 나타났다는 야훼의 속성이 아모리-가나안의 엘 샤다이와 유사한
관계로 두 신이 혼동되어 하나의 신으로 동화되고 말았다." [W. F. Albright / "The names of
Shaddai and Abram",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54]
또 다른 의견으로 '엘 샤다이'가 '평원의 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들판, 밭, 흙, 땅 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샤데이'(saday) 또는 '샤데'(sadeh)라는 단어가 있
다. 그 단어는 후기 청동기 시대 평야를 뜻하는 가나안 단어인 '샤다'(Shada), 우가릿 문헌의
'샤드'(sd), 아카드어 '샤데에'(sa-de-e)' 등에서 파생것으로 여겨진다.
'샤데이'(saday) 와 '샤데'(sadeh)는 드넓은 벌판이라기 보다는 구릉지대나 동산을 의미하며
경작하기 적당한 땅으로 구약에서 많이 사용 되었다. 이 단어는 가나안의 산악지역의 주민들
에 의해 자주 사용 되었으며 어원상으로 위에서 언급한 산(山)을 뜻하는 '샤드'와 관련이 있다.
'롤랑 드 보'(Roland de Vaux)의 저서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The early history of Israel)에
따르면, 아모리족은 평원의 신 '아무르'(Amurru)를 조상신으로 숭배했고, 아모리 문화의 영향
권 내에 있었던 초기의 유대 족장들이 그 신을 숭배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엘 샤다이'가 아모리족의 달의 신 '벨 샤데'(Bel Shade)에서 파생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발레이(L. Bailey)와 오울레테(J. Ouellette)등의 논문에 따르면 이 신은 한때 '폭풍과 전쟁의
신'이었으며 '산의 신'이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 신도 산신(山神)과 관련되어 있다.
[L. Bailey / "Israelite El Shaddai and Amorite Bel Shade",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87]
[J. Ouellette / "More on El Shaddai and Bel Shade",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88]
일부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은 '엘 샤다이'(El Shaddai)를 '젖가슴이 달린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샤다이'라는 단어가 '유방'(乳房)을 뜻하는 히브리어 '샤따임'(shaddayim)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계사회(父系社會)를 기반으로 유목 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젖가슴 달린 신'(神)
은, 곧 여신(女神)으로 오해받아 거부 되었을 것이다. 최소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구약
성경(유대교 경전)에서 여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잘 알고 있을것이 아닌가?
게다가 '샤다이'라는 이름은 족장(남자)들의 이름들에서도 나타난다. 민수기 1장에서 모세는
각 지파의 지도자를 임명하고 인구조사를 시킨다. 민수기 1장 5절~ 15절까지 등장하는 인물
들은 '엘리술'(신은 반석이다), '슬루미앨'(신과 평화롭게), '나손'(신께 예물 드린자), '느다
넬'(신께서 주심).....등과 같이 모두 종교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이중에 '수리삿대'(Zurishaddai)와 '암미삿대'(Ammishaddai)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개역한글
판에는 '삿대'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이들의 이름에는 들어간 명칭은 '샤다이'이다.
'수리삿대'는 라는 사람은 민수기 1장 6절, 2장 12절, 7장 36절, 10장 19절에 등장하며, '암미
삿대'라는 사람은 민수기 1장 12절, 10장 25절에 등장한다.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샤다이'가 '유방'을 의미한다면, 이들 족장의 이름인
'수리삿대'는 "나의 반석은 유방"이고 '암미삿대'의 뜻은 "나의 친척은 유방 이다"가 된다! 이것
이 말이 돼는가? 족장들의 아버지, 즉 남자들이 '유방'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것이 황당하
지 않는가!
페미니스트 운동은 반드시 필요한 좋은일이다. 그러나 성경을 토대로 페미니스트 운동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성경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나서야, 여러분들은 제대로 된 페미니스
트 운동을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젖 달린 신'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필자에게는 고추(男根)가 덜렁덜렁 달린 신(神)만큼이나 우습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가지 의견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엘 샤다이'가 '산신'(山神)
을 의미 한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어원학적뿐만 아니라 성경에 언급된 여러 가지
정황상으로 엘 샤다이는 분명히 산신령(山神靈)이 맞기 때문이다.
예컨데, 창세기 12장 8절에는 아브라함이 산(山)에서 여호와를 부르며 예배하고, 창세기 22장
2절에는 여호와가 "산(山)에 올라가 이삭을 제물로 바쳐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창세기 22장
14절에는 "여호와의 산(山)에서 준비되리라"라는 뜻의 '여호와 이레'라는 지명을 명명한다.
출애굽기 3장 1절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산(山) 호렙'에 올라간다.
특히 산(山)에서 예배나 제사를 지냈다는 일화는 물론, '여호와 이레'의 뜻이 "여호와의 산(山)
에서 준비 되리라"는데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받던 호렙이
'하나님의 산(山)'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으며, 그가 십계명을 받은곳도 산(山)이다.
어원학적으로나 여러가지 정황상으로 여호와의 정체는 산신령(山神靈)이 맞지 않는가?
어째서 '산신령'(山神靈)이 '전능의 하나님'으로 번역 되었는가? 보수 기독교 학자들에 따르면
높은곳(=山)에 있으니 '전능의 신'이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70인역이나 라틴어
판 벌게이트(Vulgate)의 영향을 받은것인데, 그 잘못된 번역을 아직까지도 고집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산신(山神)이라고 하면 기독교에서 미신으로 취급하는 애미니즘(Animis
m)이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그 '산신령'의 이름인 '여호와'를 살펴 보도록 하자.
유대 민족신 여호와는 헤브라이 글자 4자음 'YHWH'(모두 자음이고 모음이 없다)로 표기되어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이름이 약 7,000번 이상 나온다. 반면에 신약성경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전혀 나오질 않는다).
이스라엘의 신인 고유명사 '야훼'(Yahweh)의 본래의 뜻은 분명하지 않으나, 있다를 뜻하는 동
사 '하야'(hayah. 어두의 h를 강하게 발음하면 hayah가 되어 산다를 의미한다)가 변화한 말이
며 '있게 하는 자, 살리는 자'라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한편, 학계에선 모세의 장인이 미디안인 이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여호와 신앙은 미디안인들
로 부터 전해 받은 것이라는 가설이 대두 되기도 했다. 구약에서 미디안인들과 겐족속이 서로
동일하게 쓰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 것을 가르켜 '겐족속 가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학자는 여호와를 남쪽 네게브 지방과 아카바만 사이 지방에서 알려져 있던 신의 이름이
라고 추정하고 있다. 어쨋든 여호와는 분명히 사막과 산악지방의 신이었다고 할수 있다.
'야훼'가 '여호와'로 바뀌게 된것은 마소라의 유대인 학자들이 자음으로만 구성된 히브리어에
모음표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유대인들은 출애굽기나 레위기 24장 11절의 계명에 따라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이것을 읽어야 할 때는 '아도나이'(Adonai : 나의 주라는 뜻)라는 말로 대용해 왔다. 후에
'야훼'를 나타내는 자음과 '아도나이'를 표시하는 모음이 합해서 '여호와'라고 발음되었다.
즉 아도나이의 모음을 'YHWH'에 붙인 것이다.
단, 제1모음은 제1자음,아래서는 a로 읽지만 y 아래서는 e로 읽는다. 따라서 그것이 16세기의
기독교 학자들에 의해서 '여호와'(Yehowah)라고 잘못 읽히고, 이 독법이 기독교에 전해져서
기독교인들이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이것을 여호와라고 읽게된 것이다. 근년의 여러 연구에서
는 여호와(Yehowah)는 야훼(Yahweh)로 읽는 것이 바르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본서에서 여호와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 하겠다. 개신교인을 주요대상으로 삼은
본서는 개역한글판 성경에 의거해서 여호와라는 명칭으로 지칭하겠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경
우를 제외하고 '야훼'를 '하나님'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야훼신은 하나님이라는 우리민족의 숭고한 명칭을 들을 자격이 없는 고대의 편협한 신이다.
유대민족의 야훼는 결코 인류문명사에서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 (사실, 전지전능한 신에게 이
름이 붙어있다는 것부터 어이없는 일이다. 이름이란 사람이 붙여 놓는것이 아닌가?)
▶ 복수와 저주의 신 여호와
여호와는 기독교인들로부터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한 신인가?
그러나 구약속의 여호와에 대해서 고찰해 보면, 현대인들이 봐도 도저히 신의 행동으로 납득
할수 없는 일화들이 등장한다. 협박의 하나님(God of intimidation)이라는 신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용어처럼, 구약의 여호와는 가히 폭군이라고 평가 할만하다.
구약속의 사무엘 상을 찾아보면, 여호와는 사울왕에게 아말렉족과 전쟁을 선포하면서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어린이)와,
젓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사무엘상 15장 3절]
여호와는 어린이와 젖먹는 갓난 아기 까지 죽여 버리라는 참혹한 저주의 명령을 내린셈이다.
사울왕은 아말렛의 왕 아각을 끌어왔고 대승을 거두었지만, 아말렉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약탈하는데 치중하여 소와 양을 죽이지 않고 가져왔다. 이것 때문에 화가 난 여호와는 예언자
사무엘을 통해 그가 왕위에서 물러남을 예언한다.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
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 [호세아 13장 16절]
사마리아 지방의 사람들이 배신을 했다고, 어린이들을 죽이고 한술 더떠서 임신한 여자의 배
까지 가르겠다는 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갖난아기를 죽이는 대목은 또 있다. 기독교인들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모세의 출애굽기의 일
화이다. 출애굽기 11장~14장에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유대 민족을 풀어주지 않자 여호와는 분
노한다. 여러재앙을 이집트에 내려도 파라오의 마음이 변하지 않자, 여호와는 최후의 방법으
로 파라오나 이집트의 어른들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이집트의 천진난만한 갓난아이들을
죽음의 역병을 풀어 모두 죽여 버렸다고 한다. 전 이집트의 집집마다 죽어버린 아이를 부둥켜
안고 곡성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눈물을 흘린 파라오는 유대인에게 굴복하여 그들을 떠나
라고 말하게 된다.
어른들은 그렇다고 치자. 어째서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들이 희생 되어야 하는가?
그저 적대적인 이방인들의 씨를 말려 놓겠다는 저질스러운 저주에 지나지 않는가?
어째서 아기들까지 죽여야 하는지는 출애굽기 20장의 여호와가 모세에게 내린 계율을 보면 더
욱 확연히 드러난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 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애굽기 20장 5절]
오늘날에는 아기도 하나의 인간으로 취급하지만, 고대인의 관습 중 연좌제(緣坐制)라는 것이
있어서 죄인의 가족은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식까지 죽여서 대를 끊어 놓겠다는 실정법이
있었다. 성경속의 여호와 역시 그 당시 고대인의 생각을 전혀 벗어나지 못한, 매우 시대 착오
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갓난아기까지 죽이라는 저주는 새발의 피일 뿐이다. 이방인들에 대한 여호와의 저
주는 끝이 없다.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참
사실로 너희 중에 있으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거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중에 거하
는 모든 것과 그 생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얻은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
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영히 무더기
가 되어 다시는 건축됨이 없을 것이니라" [신명기 13장 13절~16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죽이
고,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
라. 네가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지
니라.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
하려니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
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
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신명
기 20장 13절~17절]
이방인 남자는 전부 죽이고, 여자와 재물은 약탈하라는 여호와의 거룩한(?) 말씀이다.
하지만 신명기13장에 있는 약탈한 물건은 전부 태워버리라는 구절과는 어긋난다.
이방인들을 죽여버리고 약탈한 물건은 태워버리던지 소유하던지는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화평하자고 외쳐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하기
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안에 있는 백성을 모두 노무자로 삼아 부려라.....(중략).....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붙이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중략)....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이민족들의 성읍들에서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 두지 말라.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살려 두었다가는 그들이 자기 신들에게 해
올리는 발칙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어 너희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신명기 20장 10~17절 / 공동번역판]
이 구절은 '공동번역판'에 의거했다. '개역한글판'이 이상하게 번역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개역한글판'을 제외하고 'KJV','공동번역판','표준새번역'은 모두 같은 내용이다.
"곧 네 사방에 둘러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
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
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신명기 13
장 7~10절]
다른 종교를 믿자고 하는 자들은 전부 돌로 쳐 죽이라는 내용이다. 위에서 제시한 '개역한글
판'에서는 비교적 온건하게 번역해 놓았지만,'KJV','공동번역판','표준새번역'을 보면 더욱 노
골적으로 잔인하게 나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
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신명기 7장 1절~5절]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단군상을 파괴하고 절에다 불을 지르는 목사들과 광신자들은 위의 구절
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킬수 있다. 기드온이 바알상을 파괴한 아래 대목에도 잘 나와있
다.
".........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사사기6장 25절]
"단들을 훼파하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역대하 34장 7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신명기 7장 16절]
위 구절은 그다지 잔인해 보이지 않지만,'공동번역판'과 '표준새번역','KJV'를 보면 원문에 충
실하게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넘겨 주는 민족을 전멸시켜야 한다. 그들을 가엽게 보
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아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가미가 되리라." [신명기 7장 16절 /
공동번역판]
이처럼, '개역한글판'은 상당히 노골적으로 잔인한 부분을 순화시켜서 조작을 한 흔적이 드러
난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 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
라.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가로 가서 졸지에 습격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
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고로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쫓고 동편에
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쫓아가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하솔
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
로 쳐 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
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
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수아 11장 6~14절]
여호와가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려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가기 위해서 타 민족을 멸망시키는
내용이다.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이라는 말이 정말 압권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열국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필경 그것을 얻고 그들의 각 성읍과 각 가옥에 거할 때에."[신명기19장 1절]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
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예레미
아 19장 9절]
예레미아서의 18장, 19장에 보면 예레미아가 여호와에게 원한을 갚아달라는 저주의 기도를
드렸는데, 그의 기도를 들은 여호와는 원한을 갚아 주겠다고 하면서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그들 일족의 고기를 먹게 하겠다는 끔찍한 저주를 선고한다.
특히, 끔찍한 저주는 신명기 28장이 가장 걸작이라고 생각 된다. 신명기 28장에서는 여호와가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데 지면관계상 일부만 요약해서 쓰기로 하겠
다. 신명기 28장 15~69절에서 여호와가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리는 저주는 다
음과 같다.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고 들에서도 저주를 받고, 치질과 옴과 습진에 폐병과 열병과 염병에 걸
리고, 무더위와 열풍을 몰아오고 깜부기병을 받고, 장님이 되고, 약혼녀가 다른 사내에게 강간
당하고, 악질 종기가 무릎과 허벅지에 나서 발바닥에서 정수리에까지 퍼지고, 전염병이 퍼지
고, 원수에게 노예로 팔려가려고 해도 사주는 사람도 없고,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
고, 자식과 곡식과 소 새끼와 양 새끼도 저주를 받고,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
고, 너의 시체를 짐승들이 뜯어먹고, 씨를 뿌려도 메뚜기떼가 먹어치우고, 곡식을 거두어도 다
른사람이 다 먹어치우고, 자식을 낳아도 포로로 끌려가고, 자기 아들딸을 잡아먹고, 자식의 고
기를 아무에게도 나누어주려고 하지 않고, 자식이 태어나자 마자 태째 몰래 먹어치우고.......
마침내 미쳐버리고.........
내용이 너무 길어서 요약을 해서 올리는점을 양해 바란다. 특히 '종기', '메뚜기', '망한다'등의
똑같은 단어와 내용이 계속 반복 되어서 엄청나게 길다. 여호와의 욕잔치를 제대로 음미해보
고 싶으신 분은 어서 빨리 성경책을 펴고 신명기 28장 15~69절을 탐독하기 바란다.
여호와는 이렇게 욕을 퍼붓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신명기 28장 63절]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욕잔치는 걸죽한 판소리로 한마당으로 구성해서 올리면 최고
의 명작이 될것같은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더니
." [사사기 20장 23절]
자신의 형제와 싸우라고 오히려 신이 시킨다. 화해와 용서가 아닌 자신에게 거역하면 전쟁으
로 모두 휩쓸어버리라는 것이 구약속의 여호와인 것이다.
이방인들을 가르켜 죽여야 할 대상, 전멸시켜야 할 대상, 갖난아기까지 죽여서 씨를 말려야할
대상으로 명령을 내리는 여호와는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흉을 보는 바알신만도 못한 고대의 잡
신이다. 이 대목들을 읽으면서 과연 이것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신이 할만한 말씀과
행위들인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
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출애굽기 21장 24~25절]
구약에서 보여주는 여호와의 말과 행동들은, 마태복음 5장 39~40절의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
마저 돌려대라"는 예수의 말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번엔 율법과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자에 대한 무시무시한 저주를 살펴보자.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
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장 27절]
웃기게도 박수무당이라고 번역을 해놓았는데 어쨋든 무속인을 죽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
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 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
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찌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
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니라." [민수기 15장 32절~36절]
율법을 지키지 않고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는 이유로 여호와는 사형판결을 내린다. 이런 사소
한 일로 사형을 선고 하다니 너무 어이없지 않은가?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
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 명을 찢었더
라." [열왕기하 2장 23~24절]
철없는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려 대자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고,
그러자 암곰 두마리가 숲에서 나와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고 한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 하였더라." [사무엘상 6장 19절]
블레셋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언약궤를 손에 넣었지만 여호와의 재앙 때문에 다시 유대인
들에게 돌려 주었다. 언약궤를 처음 발견한 벧세메스 지방의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여호와
께 번제를 올리는등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여호와는 언약궤안을 보았다는 이유로 5만 70명을
죽였다고 한다.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
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
라." [역대상 13장 9~10절]
다윗이 수레로 언약궤를 운반할 때 갑자기 소들이 뛰게 되었다. 그때 언약궤가 떨어질까봐 손
으로 붙잡은 웃사는 언약궤를 손으로 만졌다는 이유로 여호와가 그를 죽였다고 한다.
열왕기하에서는 아합왕의 후계자인 아하시야가 병에 들어 점을 보게 되었는데, 왕이 선지자
엘리야가 아닌 다른 신에게 묻게 하자 분노한 여호와가 왕이 죽게 되리라고 협박한다. 그러자
겁이 난 아하시야왕은 엘리야를 만나고 싶어서 오십부장(五十夫長)에게 엘리야를 만나 보도록
명한다.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
와서 너와 너의 오십인을 사를찌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인을 살랐
더라." [열왕기하 1장 10절]
결국 이런 짓이 두 번 반복되어 순식간에 100여명의 사람이 여호와의 불에 타죽는다.
허구(虛構)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기는 포악한 여호와와 사악한 선지
자의 모습이 과연 현대의 우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민수기 26장 61절]
아론의 두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집안에서 피우던 불로 제단의 불을 피우려다가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
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장 19절]
여호와의 힘으로도 철병거로 무장한 강력한 원주민은 몰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사
기 2장 2~3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않은 댓가로 이방인들을 쫓아내지 않
았다고 말을 바꾼다. 그건 그렇다치고 3장에서의 다음구절은 가관이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
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두신 열국은." [사사기
3장 1~2절]
중동 일대를 다 정복하지 않고 적을 남겨 놓은 이유는 전쟁을 모르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전쟁 교육을 시키기 위한 자료로 남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게 신(神)의 자격으로 할 수 있는
말일까? 여호와는 과연 공의로운 신인가?
그리고 이제 엉뚱한 사람들이 벌을 받는 내용을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사무엘하 12
장 11절]
다윗왕이 우리야를 최전방에 보내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자 여호와는 예언자 나단을
보내, 이에 대한 벌로써 다윗왕의 부인들을 빼앗아 만인들이 보는 앞에서 이웃들과 동침하도
록 하겠다고 위협하는 구절이다.
죄를 지은 것은 다윗왕인데, 그 벌은 아무 죄 없는 그의 부인들이 당하여야 한다니 너무 어처
구니가 없지 않은가? 다윗의 부인들이 다윗에게 간통을 저지르라고 부채질이라도 했다면 모
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어지는 사무엘하 12장 15~18절에는 다윗의 간통으로 태어난 아
이를 여호와가 병에 걸려 죽게 만든다. 죄를 지은 것은 다윗인데 왜 철모르는 갓난아기가 죽어
야 할까?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
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 [사무엘하 24장 15절]
다윗왕이 여호와가 시키지도 않은 병적 조사를 한 죄의 대가로 벌을 받게 된다.
여호와가 제시한 세 가지 벌 중에서 다윗이 선택한 벌은 전염병 이었다. 이로 인해 무려 7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백성들이 죽게 된다. 그것도 7만 명밖에 안 죽은 것은 여호와가 인정이 많
아서라고 한다. 천사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하려고 했는데 인정 많은(?) 여호와가 "이제 그만
하면 됐다. 손을 거두어라."고 말했다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은 마음대로 병적조사를 한 다윗왕인데 정작 벌을 받은 것은 아무 죄 없는 백성
7만 명이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까지는 이해 하겠는데 아무래도
이건 너무 멍청한 판단이 아닌가?
여호와는 다윗을 너무 편애한다. 너무나 관용적이다. 사울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부해서 왕위
에서 물러난 것보다 다윗의 죄가 더욱 크다. 백성을 7만명이나 죽일 정도의 죄와 간통죄를 벌
하지 않고 엉뚱한 사람들만 죽인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덧붙여 이야
기 하자면, 간통을 저지른 불륜목사들을 물러가라고 말하면, 그들은 안티 기독교인인 필자가
위에서 지적한 성경구절을 들먹 거린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 목사들이야 말로 진정한 안티
기독교인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이번에는 여호와가 내리는 믿음의 시험을 살펴보자.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노경에 얻은 귀한
아들을 죽일 정도의 모진 마음가짐을 요구하는가 하면(비록 죽이게 하지는 않았지만), 욥기에
서는 그의 믿음의 시험을 위해 자식들과 그의 종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성경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윗왕의 죄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7만명의 백성들과 다윗의 자식(솔
로몬의 형), 그리고 욥의 시험을 위해 희생된 욥의 자식들과 노예들에 대해서는 보상은 커녕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시험을 하거나 벌을 내리는 것은 좋은데 왜 하필 아무 죄 없는 사람을 희생 시키는가? 성경에
서의 인간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의 인간일 뿐이다. 결국 성경이란 인간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신을 위한 것이다. 인간의 목숨이란 한낱 파리 목숨일 뿐이다. 단지 하나의 교훈을 주
기 위해서, 하나의 시험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야만 했을까?
오죽하면 초대기독교시대 부터 시작되어, 5세기가 될때까지 약 400년 이상 소아시아에서 득
세했던 마르시오니즘(Marcionism)의 주장에 따르면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는 다른 존
재이다." 라는 주장을 펴면서 구약을 없앨 것을 주장하기도 했겠는가? (이점에 대해서 12장에
서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마르시온(Marcion. AD 144)은 구약의 여호와는 열등한 유대인의 잡신이며, 신약의 예수는 자
비와 사랑이 많은 진정한 하나님으로 제시를 했던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정말 허튼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기이하게도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이 신약성경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구
약성경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7,020회나 나와 있고, 여호와 닛시(출17:15)로 1회, 여호와 살
롬(삿6:24)으로 1회, 여호와 삼마(겔48:35)로 1회, 여호와 이레(창22:14)로 1회 나와 있는데
신약성경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이유는 신약이 헬라어로 적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대교인들이 말한 하나님은
구약속의 유대인의 고대잡신 여호와보다 더욱 보편적인 신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기독교인들이여, 제발 눈을 뜨라! 오히려 비기독교 신자인 필자가 기독교인 여러분들께 성경
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목사가 설교시간에 읽어주는 성경구절만 편식하지 말고 성경을
전부 읽어보라는 말이다. 성경의 어두침침한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사악한 구절들을! 그
리고, 여러분이 추종하는 신을 제대로 보라.
여호와(야훼)는 유대종족의 민족신에 지나지 않는다. 여호와는 유대교의 율법 속에 갇혀 있는
신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현대인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낡은 약속 속의 폐
기 되어야 할 고대 유대인의 잡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