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8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하지 않는 성도가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이상하게 병들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가까이 가야지! 라고 마음먹으면 이상하게도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한 번 계산하는 습관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과 물질을 견주게 합니다. 영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과 견주게 만듭니다. 무슨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의 가치가 너무 비참하게 추락해 버렸습니다.
개그콘서트에 유행하는 신조어가 있죠? 꽃 거지라는 개그맨이 “궁금하냐? 궁금하면 500원, 더 올려서 1,000원!”이런 유행어를 만들었습니다. 재미있자고 하는 말이지만 왠지 보고 나면 씁쓸해집니다. 간단한 궁금증도 해결하려면 돈이 필요한 세상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찬송가 364장의 가사를 보면 이런 기도의 고백이 나타납니다.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 찬송의 기도는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과 같이 고생스럽지만 나의 소원은 그것을 감내하고서라도 주님께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이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교회 중에 윌로우크리닉 교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빌 하이벨스라는 목사님이 불신자전도를 위해 열린 예배 프로그램을 만드셔서 크게 호응을 얻어 한국에도 잘 알려진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설문조사에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영적인 성장, 즉 신앙의 성숙도와 교회생활의 관계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과 신앙의 성숙도는 다르게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열심히 교회는 다니는데 다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예배출석도 잘하고, 십일조 등 헌금생활도 잘하는데 믿음의 성숙함은 보이지 않는 교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니까, 교회에서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 대부분은 더 헌신적이고, 헌금생활이나 섬김이나 봉사의 그룹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자료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연륜을 묻지 않으십니다. 직분을 묻지 않으십니다. 흔히 말하는 성경을 얼마나 읽었는지, 기도를 오래 하는지, 금식은 몇 번이나 했는지, 헌금은 얼마나 하는지 등 이런 수치를 계산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상하게 이런 수치를 가지고 자신의 신앙의 성숙도를 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외적으로 드러나는 신앙과 함께 우리의 삶의 변화와 영적인 열매를 보시고자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유지하고 살아가느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 8절에서 제자의 기준을 열매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의 길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7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성도, 주님과 더 친밀해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두 가지를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깨끗케 하는 일입니다. 즉 신앙의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2절입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야고보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신앙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자신의 더러움을 보고도 씻지 않는 행함 없는 믿음을 꼬집은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신앙의 성숙함을 방해하는 육체적인 정욕, 욕심, 옛사람의 쓴뿌리 등을 쳐내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해져서 좋은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요즘 웰빙시대라서 그런지 집집마다 텃밭들을 많이 가꾸셔서 간단한 채소들을 직접 일구어 먹는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작은 공간일지라도 거기에는 잡초를 뽑아내고 거름을 주고 물을 공급해 주는이 없이는 열매는 불가능합니다.
신앙의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가기위해, 더 좋은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영혼의 발목을 붙잡는 것과 이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열매를 거두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히12:1-2)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영적인 의존도를 높여야 합니다. 더 주님을 가까이하고, 더 주님을 의지하고, 더 주님께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안에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불신앙은 스스로 살고자합니다. 자신의 모든 생활에 하나님의 손길을 잊어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의 바람이 불어오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이 생길 때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붙어 있어서 그분이 응답하실 때까지, 채워주실 때까지, 축복하실 때까지 떠나지 않고, 그분의 손과 발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떠나면 밖에 버리어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입니다.
김준곤 목사님의 예화집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 있는데 어느 농부가 밭을 갈다가 쟁기를 밭 한 가운데 놓아 두고 밭두렁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밭을 가는 농부가 쟁기를 한복판에다 놓아 두고 기도를 하고 있으니 일이 되겠습니까? 그날그날 빨리 해 버려야 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농부가 기도를 하는 동안에 천사가 쟁기질을 해 줍니다.
결 론
전도자 요한웨슬레는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남은 평생의 삶은 ‘주께 더 나아가 원합니다.’ 이 믿음의 고백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서 내 안에 남아 있는 옛 사람의 모습들, 육적인 쓴 뿌리들이 제거하며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더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맺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