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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거짖말
동생이 형에게 말 한다 " 형, 아까 돼지 저금통에서 꺼낸 돈으로 우리 아이스크림 사 먹자 " " 근데 있잖아 그 돈 다 잃어 버렸어 백원 짜리 하나만 남았어 " " 그렇게 많은 걸 잃어 버렸어 ? " " 으응 " 형은 거짖말을 한 것이다 형은 동생 모르게 백원 짜리 동전을 여기 저기 주머니 속에 몰래 감추어 두었다 금방 이라도 주머니 속 동전들이 짤랑 짤랑 소리를 지르며 나올것만 같았다 형은 미안한 마음에 동생과 재미 있는 놀이를 시작 했다 그러다 너무 신이 나서 주머니에 동전이 있다는 것을 깜빡 잊어 버렸다 그리고 물구 나무 서기를 한 순간 주머니 속에 꼭꼭 숨어 있던 동전 들이 알밤 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 형, 돈 찿았다 " 동그란 얼굴을 비비며 방바닥에 쏟아지는 동전들을 동생은 신나게 주웠다 동생은 그 돈으로 아이스 크림을 사기 위해 가게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형의 얼굴은 무척이나 허탈해 보였다 아랫목 에서 가파른 숨 소리를 내며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과 엄마 얼굴 만큼이나 창백하게 비어 있는 약 봉지를 떠올린 형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돼지꿈
뿌연 유리창 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경섭은 눈살을 찌부렸다 라면 이며 사탕 과자들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진열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경섭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경섭은 계산대 위에 팔을 괴고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무릎을 칠만한 묘책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경섭은 아파트 상가 옆에서 슈퍼 마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할 지경 이었다 바로 옆 가게는 손님들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장사가 잘 됐다 경섭은 틈만 나면 이웃집 가게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집 주인이 하는 대로만 하면 같은 장소에 있는 자신의 가게가 안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경섭의 아내가 계산대 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는 그에게 말 했다 " 저집 주인을 보면 손님을 꼭 왕 대접 하듯 한다구요, 손님 앞에 서는그저 뱀 만난 개구락지 마냥 나 죽여 달라고 설설 기는데 우리도 한번 그렇게 해 봅시다 밑천 드는거 아니잖아요 "
" 그놈의 주인은 자존심도 없나 ! 내시 처럼 그렇게 굽신 거리기만 하면 자기네 들이 왕이나 된것처럼 행세 할턴데 - - " 경섭은 아내의 말이 못마땅 하다는듯 투덜 거렸다 하지만 문 닫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자존심 따위를 내세울 처지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두사람은 거의 완벽하게 속 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정말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했다 그후로 예전보다 장사가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가게 새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뭔가 다른 대책을 강구 해야 했다 경섭이 이것 저것 고민 하고 있을때 그의 아내가 들어왔다 그의 아내는 뜬금 없이 카세트 하나를 내밀었다 " 저집 보면 계산대 옆에서 항상 찬송가가 흘러 나와요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죄다 저집으로 다 갈것 아니예요 우리도 못할거 없지요 뭐 예수를 믿어야 찬송가 틀라는법 있나요 ! 자꾸 비린내를 풍겨야 고양이가 오지요 " 경섭은 그럴듯한 아내의 생각대로 했다 그날 이후로 그의 가게 에서도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 했던것 만큼 장사가 잘 되진 않았다 어느날 경섭은 잠자리에 들기전 좋은 방법 한가지를 생각해 냈다 평소 보다 두시간 먼저 문을 열고 더 늦게 문을 닫는 것이 었다 작은 일부터 새로 시작해야 겠다고 다짐한 경섭의 마음은 조금 들떠 있었다 경섭은 다음날 새벽에 나가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그런데 꿈 속에서 커다란 돼지 한마리가 경섭의 앞에 나타났다 복 스럽게 생긴 돼지는 자기 식구들을 데리고 느릿 느릿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 오고 있었다 경섭은 깜짝 놀라 잠을 깻다 너무나 생생한 돼지 꿈이 분명 좋은 일을 가져다 줄것 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곤한 잠에 들었다 이른 새벽 거리는 아직 어두웠다 가을을 몰아낸 겨울 바람은 차갑게 함성을 지르며 거리 거리로 쏟아져 돌아 디니고 있었다 경섭은 잔뜩 몸을 움추리며 가게가 보이는 골목 길로 들어섰다 그 순간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옆집 가게는 이미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주인은 하얗게 입김을 내 뿜으며 가게 앞을 청소하고 있었다 경섭은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쭈뼡 쭈뼡 걸음을 늦추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옆집 주인이 하는 행동을 보는 순간 그는 분노하지 않을수 없었다 옆집 주인은 모아 놓은 쓰레기를 삽 으로 퍼서 경섭의 가게 앞으로 마구 뿌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쌓인 감정을 간신히 참고 있는데 잘 됐다는 심정 이었다 " 당신, 지금 뭐하고 있는 중이오 ? " 경섭은 옆집 주인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안녕 하세요 ? 추운데 일찍 나오셨군요 ! "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서있는 경섭 에게 천연덕 스럽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경섭은 그런 그의 행동에 잠시 어리둥절 했다 경섭은 자기 가게 앞에 뿌려진 것들을 다시 한번 살펴 보고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 이건 - - -? " 옆집 주인은 쓰레기를 뿌려 놓은게 아니었다 지나가던 취객이 밤 사이에 경섭의 가게 앞에 토해 놓은 것을 보고 옆집 주인은 공터 에서 모래까지 퍼다가 청소 뒷 마무리를 했던 것이다 경섭은 고맙다는 인사 조차 하지 못한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켜지지 않은 어두운 가게 에 앉아 경섭은 많은 생각을 했다 옆집 주인의 말과 행동은 흉내 낼수 있었지만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선량한 마음만은 흉내 낼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이익만을 생각하며 그가 지은 미소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이기심 만을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경섭은 문득 지난밤 꾸었던 돼지꿈이 생각 났다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허공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 돼지 꿈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게 틀린 말은 아니구먼 ' ' 그의 얼굴에는 다른때와 달리 온화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아무리 웃으며 손을 내밀어도 거짖은 사람을 감동 시킬수 없다
사람의 향기
어둠은 바람을 몰고와 잿빛 저녁 하늘을 몰아내고 있었다 , 곧이어 비가 내렸다 빗방울은 메마른 도시를 촉촉히 적셔 놓았다 원영씨는 오랫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아버지의 광고 회사를 물려 받아 사회적 으로 튼튼한 기반을 잡은 30대의 사장 이었다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 친구가 말하였다 " 원영아 ! 나 죽는줄 알았다 광고 하나 따 내는데 어찌나 애를 먹이던지 아주 혼 났다 " " 일은 얻어 냈어 ? " "너무 까다롭게 굴기에 중간 실무자 한테 돈좀 찔러 줬지 , 뭐 . 그랬더니 자동이야, 자동 " " 잘 됐다 요즈음 경기도 어려운데 - - " " 그렇게 사람 속을 태우더니 , 허긴 돈이면 안돼는 일이 없잖아 , 안 그래 ? " " 있으면 나쁠거야 없지 뭐 - - 그래도 돈이 전부는 될수 없잖아 ? " 원영씨는 기세 등등한 친구의 마음을 상하지 않개 하려고 조심 스럽게 말했다 " 그래도 세상에 돈 싫다는 놈 없잖아 !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해, 돈만 있으면 사람의 마음 까지 살수 있잖아 돈이 있어야 부모도 대접 받고 친구도 있는 세상 아닌가 ? " 원영씨는 돈과 우정까지 결부시키고 있는 친구의 말을 쉽게 이해 할수 없었다 잠자코 있자니 변두리 셋방 살이를 하고 있는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 내 생각은 좀 달라, 정근아 ! 내 말을 얺짢게는 듣지 마라 나라가 어려울때 그래도 돕겠다고 금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을 봐라 서민들이 장롱 속의 아기 돌반지 까지 들고 나올때 돈 있는 사람들의 금덩 어리는 눈감고 귀막고 꼭꼭 숨어 있었 다잖아 ! " " 만일 돌반지가 아니라 금괴 였다면 그 사람들도 그렇게 쉽게 들고 나왔을까 ? 그렇게는 못 했었을거야 " " 됐다, 그만 두자 생각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 뭐 " 더 이상 말하면 언쟁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에 원영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나 자리 에서 일어났다 술집을 나오자 말자 친구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 정근야 ! 너 많이 취한것 같으니까 같이 가자 화장실이 이층 이라 위험해 " " 아니야, 나 취하지 않았어 이 정도로 내가 취하냐 ? " 친구는 막무가네로 원영씨의 손을 뿌리 치고는 혼자 계단을 올라갔다 망가진 그네처럼 휘청 거리는 그의 모습이 왠지 불안 했다 그런데 잠시후 어두운 이층 통로에서 작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친구가 어두운 계단을 내려 오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굴러 떨어지고 만것이다 친구 얼굴엔 붉은 산호초가 피어난 것처럼 여러 갈래로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더욱이 다리 까지 심하게 절고 있었다 " 거봐, 내가 뭐랬니 ! 같이 가자고 했잖아 " " 어두워서 계단이 잘 안보였어 " 원영씨는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를 나무라며 손수건 으로 머리의 상처 부위를 감쌌다 그리고 친구를 부축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흔들었지만 여러대의 택시가 그들 앞에 멈추려다가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술에 취해 비틀 거리며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태운다면 요금 보다 시트 세탁비가 더 들기 때문 일게다 친구는 택시 요금을 두배, 아니 네배로 준다고 소리 첬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원영씨는 급한 마음에 119 에 전화 했다 바로그때 승용차 한대가 미끄러 지듯 달려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젊은 남자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 밀었다 " 많이 다치신거 같은데 어서 타세요, 근처 뱡원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 " 그래 주시겠습니까 ! 정말 고맙습니다 " 예상치 못한 친절에 그들은 몇번이고 머리 숙여 고맙다는 말을 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친구는 오른쪽 다리에 깁스 까지 하고 병원에 입원 하였다 " 그래도 이만 하기 다행이야 하나님이 도우셨지 ! " " 그러게나 말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어 그런데 그 사람 연락 처 라도 알아 놓지 그랬어 " " 참 고마운 사람 이었어 근데 우리 내려주고 바로 갔어,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서 - - " " 어떻게든 사례를 하는게 도리인데 , 어쩌지 ! " 친구는 얼굴 가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정근아 너무 아쉬워 하지마 그 사람이 사례를 바래고 우릴 태워준건 아닐테니까 " 원영씨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친구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 정근아, 아까 내가 그랬잖아 돈만 있으면 세상에 안되는게 없다고, 근대 피투성이가 된 너를 병원 까지 데리고 온건 돈이 아니었잖아 돈으로는 바꿀수 없는 사람의 착한 마음 이었지 "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 였다 친구 얼굴엔 여느때와 다른 밝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송이와 노란 우산
송이 엄마는 시장 좌판에 앉아 나물을 팔았다 일곱살 송이는 아침밥을 먹고 늘 엄마를 따라 시장에 나갔다 어른들만 있는 시장 에서 송이의 유일한 친구는 까만 때로 얼룩진 인형 뿐이었다 머리까지 듬성 듬성 빠져버린 인형은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엄마, 저 할아버지가 너무 무서워 할아버지 옆에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나 " 송이는 멀지 않은 곳에 힘 없이 서 있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엄마 등 뒤로 숨어 버렸다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는 지난해 까지만 해도 할머니와 함께 시장 에서 채소 장사를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병으로 돌아 가시고 나자 할아버지는 슬픔 으로 온종일 술만 마시고 아무데서나 쓰러져 잤다 할머니 병원비로 할아버지는 산
동네 집 까지 모두 잃고 말았다 시장 사람들은 말했다 할아버지가 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잊지 못해서 라고 - - " 술에 취한 할아버지는 대낮에도 방앗간 옆 땅바닥에 쓰러져 코를 골았다 시장 사람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예전 처럼 대해 주지 않았다 허구헌날 술에 취해 비틀 거리는 할아버지 에게 막말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장 입구에는 가게를 지으려고 파헤처 놓은 곳이 있었다 어느날 송이는 그 앞으로 뛰어 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송이가 넘어지는 순간 들고 있던 인형이 깊이 파 헤처진 웅덩이로 떨어져 버렸다 인형이 떨어진 곳엔 썩은 물이 고여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더러운 물에 빠져서 다리만 간신히 내민 인형을 바라보던 송이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송이는 훌쩍 거리며 사람들이 지나 갈때 마다 손가락 으로 인형을 가리켰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름한 낯빛으로 지나칠뿐 , 더러운 물에 들어가 인형을 꺼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닭집 아저씨가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 왜, 울어 송이야 " " 아저씨- - " 송이는 더큰 소리로 울었다 " 저긴 안돼, 송이야 더러운 물 만지면 병걸려, 엄마 한테 새 인형 사주라고 아저씨가 말해 줄께 " 송이는 억지로 팔을 끄는 닭집아저씨를 따라갔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가야 - - " 뒤를 바라보았을때 송이의 눈은 휘둥그레 졌다 술에 취한 할아버지가 몸을 비틀 거리며 인형 있는 곳으로 내려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신발을 신은채 냄새 나는 물로 첨벙 첨벙 걸어 들어가 인형을 주웠다 할아버지는 인형에 묻어 있는 더러운 물을 때 절은 옷 소매로 조심 조심 닦아 주었다 " 다치지는 않았냐 ? " " 녜 - - " 송이의 서먹한 대답에도 할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도깨비 뿔 처럼 마구 헝크러진 할아버지의 하얀 머리가 송이는 예전 처럼 무섭지 않았다 저녁부터 가을비가 보슬 보슬 내렸다 송이는 노란 우산을 들고 어둑 해진 시장길을 바쁘게 걸었다 비를 맞고 누워 있을 할아버지가 생각 났던 것이다 방앗간 뒤쪽 처마 밑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는 비바람 으로 얼굴까지 온통 젖어 있었다 송이는 자기가 쓰고 있던 노란 우산으로 잠든 할아버지의 얼굴을 가려 주었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에 얹은채 멀리 엄마가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런데 송이가 뒤를 보았을때 바람에 날아가 버린 노란 우산이 할아버지 옆에 벌렁 누워서 동그란 얼굴을 땅에 비비고 있었다 송이는 서둘러 할아버지 에게로 다시 달려 갔다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노란 우산이 날아 갈까봐 송이는 할아버지 옆을 떠날수가 없었다 노란 우산 밖으로 나와 있는 할아버지의 새까만 팔을 노란 우산 안으로 끌어 당기며 송이는 말했다 " 할아버지 비 와요, 여기서 자면 안되는데 - - " 송이는 여귀꽃 처럼 가는 팔로 비에 젖은 할아버지의 다리를 처마 밑으로 힘껏 당겼다 할아버지의 때 묻은 손을 송이는 꼭 잡고 있었다 때 절은 손 이지만 더러운 물에 빠진 송이 인형을 꺼내준 고마운 손 이었다 " 할아버지, 할아버지 - - "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할아버지의 눈가로 따스한 눈물 한 줄기가 흘러 내렸다 젖은 몸을 바들 바들 떨고 있던 송이 눈가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멀리 엄마가 있는 곳에서 조그만 불빛이 붉은 눈을 깜빡 거리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에선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송이는 엄마 옆에서 때 절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때 닭집 아저씨가 등 뒤에 무엇 인가를 감추고 송이 에게로 다가왔다 " 송이야, 선물 이다 " " 아, 예뻐라 - - " 예뿐 인형을 받아든 송이 눈가엔 어느새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 " 송이야 저기봐 ! 이 인형 저 할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사주신 거야 ! " 닭집 아저씨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개나리 꽃처럼 활짝 피어있는 노란 우산을 흔들며 송이를 향해 활짝 웃었다 할아버지가 끌고 있는 낡은 수래에는 펼처진 종이 상자들이 가득히 쌓여 있었다 그날 이후로 시장 사람들은 못 쓰는 종이 상자를 하나 하나 모아 할아버지 에게 주었다 할아버지도 더이상 술취해 비틀 거리지 않았고 길 위에 쓰러져 있지도 않았다 더럽고 냄새 난다며 모두다 할아버지를 멀리 했을때 어린 송이는 말없아 다가가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외로움과 절망으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던 할아버지는 송이의 사랑 으로 다시 일어설수 있게 된것이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오랜 기다림
중국 하난성 루오양 시 교외에 구어팡조 씨와 마음씨 착한 그의 아내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 농부인 구어팡조 씨는 우물에서 일을 하다가 깊이가 18 M 나 되는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겨우 구조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뇌를 다친 그는 혼수 상태에 빠졋다 구어팡조 씨는 여러날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했고 결국 식물 인간 이 라는 판정을 받았다 아내 주원샤 씨는 남편을 그렇게 보내야 하는 슬픔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다시 깨어날 거라는 희망을 포기 할수 없었다 6개월전에 남편과 결혼한 그녀의 뱃속에 아이까지 자라고 았었기에 절망 보다는 희망이 먼저 그녀의 가슴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주원샤씨는 남편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더 할수 없는 사랑으로 남편을 간호 했다 그녀는 따뜻한 물로 움직일수 없는 남편의 몸을 매일 같이 씻겨주고 마싸지도 해 주었다 때론 슬픈을, 때론 기쁨을 남편 에게 말했지만 남편은 건성으로 눈을 뜬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쩌면 깨어날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불안함을 떨치려고 더욱더 남편을 정성껏 간호했다 봄꽃이 피어나고 가을이 지나가고 눈이 내리고 세월은 아픔 으로 흘렀지만 남편은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무도 믿을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주원샤 씨가 방에 들어 갔을때 놀랍게도 남편이 두눈을 뜨고 해바라기 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의사 조차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이 돌아온
구어팡조 씨는 오래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아내에게 불러줬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몸을 조금씩 움직일수 있었고 2 더하기 3 은 5 라고 대답 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분명 기적 이었다 그가 몇년만에 깨어 났는지를 들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남편 구어팡조 씨가 잠에서 깨어난것은 23년 만이었다 20대의 푸르른 시절에 잠든 구어팡조 씨는 50살이 다 되어서야 긴 잠에서 깨어난것 이다 그 고귀한 사랑을 주위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말했다 남편이 깨어나 자기를 알아볼 거라는 한가지 희망 으로 23년의 세월을 바친 아내의 사랑이 하늘을 감동 시킨 거라고, 아내 주원샤 씨는 곱던 얼굴이 세월에 젊음이 실려가 나무 등걸 처럼 주름져 있었다 그러나 웃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내 뿜는 그녀의 얼굴 위로 아픈 세월이 햇살 처럼 부서져 내렸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 하게 변해 간다 해도 사랑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게 사랑 이다 슬픔에 어깨를 걸고 봄을 기다릴 줄도 아는 게 사랑 이다 희망을 포기 하지 않는 자는 세월이 보약을 선물하기 마련 이다
선생님의 꽃씨
선생님은 따뜻한 봄이 되면 학생들 에게 꽃씨를 나누어 주었다 " 이 조그만 꽃씨 안에는 꽃과 줄기와 잎이 들어있고 이 씨앗을 닮은 씨앗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속에 미래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씨앗 속에 꽃이 들어 있듯 현재 속에는 미래의 꽃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씨앗을 땅에 심지 않고 두면 말라 죽는 것처럼 현재의 시간들을 우리 마음 속에 정성껏 심어 두지 않으면 나중에 꽃을 보고 싶어도 볼수가 없는 겁니다 " 학생들은 선생님과 함께 교실 옆에 있는 햇볕이 잘 드는 화단에 꽃씨를 심었다 그리고 물을 하뿍 주었다 선생님은 아이들 의 이름이 적힌 표찰을 화단 옆에 세우며 말했다
" 여기서 싹이 나오든 안 나오든 예뿐 꽃이 피어나든 그렇지 않든 이 시간 이후 이 씨앗들의 운명은 바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선생님은 머지 않아 이 화단을 수 놓을 꽃들을 통해 여러분이 내일을 배워 나갈수 있기를 바랄뿐 입니다 "
따뜻한 손길
밍밍한 도시의 하늘 위로 잠자리 떼가 날아 다녔다 고추 잠자리 한마리가 유영 하듯 날아가는 잿빛 하늘 위로 가을이 미끄러 지듯
지나가고 있었다 미수씨는 저녁 찬 거리를 준비 하기 위하여 시장통 으로 분주히 걸어 갔다 그런데 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틈 사이로 표독 스러운 사내 얼굴이 보였다 " 아줌마, 내가 여기서 장사하면 안된다고 했지요, 아줌마, 귀 먹었어요 ? " " 거리질서 확립 " 이라는 완장을 두른 사내는 잡아 먹을듯 아줌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행 으로 보이는 또 한 사내가 뒷짐을 지고 그 옆에 서 있었다 " 죄송해요, 근데요 아무리 뒤저봐도 여기 밖에 장사할 곳이 없어요 높으신 분들이 저희 같은 사람 한번만 봐 주세요 " " 아니, 봐줄걸 봐달라구 해야지 이 아줌마 참 답답하네 벌써 몇번째 인줄 아세요 ? 윗사람이 보고 알면 내 목아지 다르면 아주머니가 밥 먹여 줄겁니까 ? " " 정말 죄송해요, 이거 없으면 우리 식구 모두 굶어야 합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어떻게 한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 " 죄송 이구 뭐구 여기는 정화구역 이라 대통령도 장사 못해요 " 두손을 모은채 고개를 조아리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마치 죄인 같았다 기세 등등한 사내는 말 없이 옆에 서있던 동료에게 침 까지 튀기며 말했다 " 지난번 애도 수거 차량 까지 갖고 왔었다구 여기 에다가 다시 좌판 한번만 더 벌이면 차로 실어 간다고 말 했는데도 이 모양 이니 말로는 도저히 안되는 아줌마야, 어서 실어 가자구 " " 요번 한번만 봐 주세요 " " 안돼, 한 두번 봐주다 보면 결국은 눌러 앉는다니까 어서 그쪽 들어 " 사내는 주황색 단감이 가득 담겨 있던 큰 플라스틱 통을 번쩍 들었다 감을 파는 아주머니는 사내의 팔뚝을 꼭 잡고 필사적 으로 매달려 사정 하였다 " 제발 부탁 드려요 이러지들 말어요 제발요 " 아줌마는 울면서 애원했다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미수씨가 참다 못해 끼어 들었다 " 아저씨, 그걸 가저가진 마시죠, 여기서 못하면 다른 곳에서 장사 해야 하니깐요 " " 아주머니도 참견 마시죠, 나도 하고 싶어 이러는거 아니니까 " 사내는 미수씨 말에 못을 치고는 감이 담긴 통을 트럭 뒤쪽에 내동댕이 첬다 그순간 단감들이 쏟아져 내리며 제멋대로 굴러갔다 아주머니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실밥이 팽이 버섯처럼 늘어진 옷 소매로 메마른 눈물을 찍어냈다 그때 한 젊은이가 급히 달려 왔다 젊은이는 차도 한쪽에 세워져있는 운반 차량의 뒤쪽으로 재빨리 뛰어 올랐다 " 지금, 뭐 하고 있는거야 ? 공무 집행 중이라는걸 몰라 ? " 사내는 위협적인 소리로 말했지만 그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감들을 주섬 주섬 통에 담았다 " 자네가 하는 일이 법에 걸린다는거 알아 ? " "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깨끗한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들을 거리 에서 몰아내야 합니까 ? " " 자네, 지금 나 한테 설교 하는 건가 ? " " 그렇게 생각 하셨다면 용서 하세요 하지만 감을 팔아야 생계를 이어 갈수 있는 아주머니를 생각 해서라도 가져가진 말아 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 " 내가 어디 한두번 말 했는줄 알아 ! " " 아저씨 부탁 드릴게요 사람 에겐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 용기 있는 젊은이의 말을 듣고 있던 사내의 얼굴은 이전 보다 많이 누그러 진듯 했다 그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 나도 하고 싶어 하는 일 아냐, 없는 사람 가슴에 못치는 일이 뭐 신나는 일이라구 ! 목구멍이 포도청 이라 할수 없이 하는 일 이지 " 사내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그곳을 떠나 버렸다 땅 바닥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젊은 이는 감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끌고 아주머니 에게 다가 갔다 " 고마워요, 학생 너무 고마워요 " " 많이 속상 하셨지요 사실 제 어머니도 이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시는데 처음엔 많이 쫓겨 다니셨대요 " 그의 눈빛 속엔 무어라 말 할수 없는 맑은 신념이 가득차 있었다 그는 아주머니가 봉지에 담아준 단감을 끝끝내 내려 놓고는 어스름 길을 따라 총총히 사라졌다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던 미수 씨의 얼굴 위로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미수씨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주머니 앞에 쪼그려 앉았다 " 아주머니 봉지 큰 걸로 하나 주세요 " " 감이 흙이 묻어서 어쩌나, 깨끗한 감만 골라 가세요 " " 어차피 깍아 먹을 턴대요 뭐 " " 그나 저나 어디루 가야 할지 걱정 이네요 이것 아니면 먹고 살기가 힘든데 - - - " 아주머니는 넋을 잃고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책 없는 한숨이 검붉은 입술을 비집고 쏟아저 나왔다 무어라 위로 할수 없았던 미수씨는 아픈 마음으로 비닐 봉지 가득 단감을 담았다 " 많이 파세요, 아주머니 " " 녜 고맙습니다 " 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길가에서 미수씨는 잠깐 가을 하늘을 올려다 봤다 조금전 보았던 젊은이의 용기 있는 모습이 일렁이는 물살처럼 푸른 하늘에 아른 거렸다 미수씨는 멍 들고 깨진 감들만 가득 담겨 있는 비닐 봉지를 열어 보았다 미수씨 얼굴위로 가을 햇쌀이 꽃송이 처럼 사뿐히 내려앉고 있었다 사랑은 언제나 낮고 초라한 곳에 있다 그리고 인간을 느낄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