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알프스보존회 현판식 본격 활동
충북알프스보존회(회장 정중환)가 지난 14일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유림빌딩(2층)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이날 현판식엔 충북이 낳은 세계적인 탐험가 허영호씨가 참석, 행사의 의미를 더 해 줬다. 충북알프스라는 명칭은 보은군이 지난해 4월 4일 특허청에 업무표장등록(특허)을 마침에 따라 보은군에 배타적 권리가 인정된 것으로, 이 지역의 대표적 명산인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연장 43.9㎞를 의미한다. 충북알프스는 당시 보은부군수로 재직했던 정중환회장이 창안했으며, 보은군은 이 구간에 대한 관광상품화에 성공함으로써 매년 10월 전국적인 기념등반대회까지 열고 있다. 때문에 충북알프스의 특허와 관광개발은 자연환경이 뛰어난 충북이 창출해 낼 수 있는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은군은 충북알프스와 함께 이 지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황토를 이용한 상품과 이벤트까지 개발하는 순발력을 보여 타 시.군의 부러움을 샀다. 이미 속리산 입구의 잔디광장에 황토길을 조성해 관광,등산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황토상품으로 개발한 황토볼과 베개 비누의 대량시판에도 성공했다.
충북알프스는 지난 99년 월간 ‘山’지 10월호(169~177쪽)에 자세하게 소개돼 주목을 받았다. 정중환회장은 “충북에서는 그동안 관광개발에 대한 무성한 말만 있었지 이를 구체화는 결정체가 없었다. 충북알프스의 개발은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자원화한 좋은 선례가 될 것이고, 이의 명소화를 위해 뜻있는 사람끼리 민간 차원의 할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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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알프스 보존회 정중환 회장 |
보은 비경 알프스로 상품화하고 청주에 사무실 개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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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산에서 속리산까지 43.9㎞를 충북 알프스로 명명 지난해 업무표장등록까지 하게한 주인공인 전 보은군 부군수인 정중환씨가 충북 알프스 보존회를 창립, 지난 14일 청주시 사창동 유림빌딩에 사무실을 냈다. 이날 창립식에는 김종철 군수를 비롯해 유병국 군의회 의장도 참석해 축해해줬으며 허영호 탐험대장도 참석해 충북 알프스 및 충북 알프스 보존회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정회장은 “충북 알프스가 지역상품이 아니라 충북 지역의 명품으로 개발하기 위한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보존회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정회장은 그동안 청주권 등산가는 물론 전국 단위의 홍보를 계속해와 구병산등은 특히 부산, 울산, 대구지역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충북 알프스에 대한 식지않은 사랑을 내비쳤다.
정회장은 충북 알프스를 개발하면서 황토상품을 접목해 속리산 황토길 조성의 물고를 트고 전국에 황토길 조성 붐을 일으켰으며 이밖에 황토를 활용한 각종 상품을 개발, 보은이 황토의 본고장으로 전국에 알려지게 기여한 부분은 상당하다. 이에따라 정회장을 기억하는 주민들과 공무원들도 재임기간이 1년여로 짧았지만 지켜본 바에 의하면 공격적이고 능동적으로 행정을 펴나가는 경영가적 스타일이라며 칭찬하고 있다.
정회장은 98년 보은군 부군수로 재직하면서 속리산 등 아름다운 비경을 가진 보은군을 상품화하는것에 몰두 결국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관광루트를 알프스로 개발했다. 특히 울산 운문산·가지산·천황산을 잇는 영남 알프스, 일본의 경우 북 알프스, 남알프스, 뉴질랜드 남섬리 서던 알프스 처럼 알프스가 세계적으로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다운 산의 뜻으로 활용되는 점에 착안, 충북 알프스라고 명명한 것이다.
명칭과 로고는 다른 어떤 단체나 개인이 사용할 수 없는 배타적 권리를 보은군이 가졌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어 보은군은 실제로 음식점과 업체등에서 충북 알프스 로고를 사용하는데 따른 로열티를 받고 있을 정도다. 내년 6월 실시될 전국 4개 동시지방선거에 청원군수로 출마를 표명한 정회장은 충북 알프스 홍보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며 앞으로는 도민전체가 참여하는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며 지역 주민들도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http://cafe.daum.net/chongm/31MH/1533?q=%C1%A4%C1%DF%C8%AF.%C3%E6%BA%CF&re=1
정중환씨와 육영수여사의 추억 | 자유게시판
정길춘 | 조회 86 | 2013/08/15 21: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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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와의 추억 51년간 소중히 간직 |
광복절 특별한 인연, 한장의 사진과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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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환씨(71)에게 대한민국의 영원한 국모(國母), 육영수 여사는 37세의 나이로 기억된다. 사진 속의 육 여사는 그 때도 예외없이 우아한 미소로 너그럽게 바라보고 있다.
매년 8·15 광복절만 되면 그는 잊지 않고 이젠 색이 바랜 사진 한장을 기억해 낸다. 거기엔 대학시절 동아리활동을 같이 했던 옛 동료들과 육영수 여사가 가지런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에는 51년전의 추억이 하나도 빠짐없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박근혜 대통령의 편지는 이렇듯 한 순간에 그를 젊은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제천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정중환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편지 인연은 1962년 10월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 간다. 20세의 팔팔한 나이로 당시 청주대 상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는 산악부 활동을 했고 짙어가는 가을, 대뜸 속리산 산행을 기획하게 된다. 그 때만 해도 보은 읍내까지만 버스가 다녔고, 거기서부터는 말의 굽에 동티가 날 정도라는 험한 말티재를 하루 꼬박 걸어 넘어야 속리산에 들 수 있었다.
드디어 산악부 일행이 청주를 출발, 보은읍을 거쳐 지금의 말티재 입구의 장재저수지에 닿는 순간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검은색 지프를 만나게 된다. 일행이 손을 들어 차를 세우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뒷좌석에 앉은 여인의 화사한 모습이었다. 간혹 TV와 신문에서 보던 육영수 여사였다. 당시 부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직후 한시적으로 설치한 최고통치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맡을 때라서 얼굴이 익숙했던 것이다.
“언니라고 하는 분하고 둘이 앉아 있었는데 육영수 여사는 우리보고 자꾸 타라고 하셨지만 일행이 여럿이어서 그럴 수 없었다. 지프를 그냥 떠나 보내고 우리는 오후 내내 걸어 속리산에 도착, 다음날 문장대를 등반한 후 내려 오다가 복천암에 들렀더니 그 곳에 육영수 여사가 있는 게 아닌가. 그 때부터 법주사 경내를 같이 돌아 다니며 기념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육영수 여사에 대한 정중환씨의 기억은 이렇다. “아무래도 우리가 젊다보니 그저 천진난만하게 이것저것 물었는데 항상 웃음으로 대하셨다. 별로 말씀이 없이 그저 우리의 얘기를 들으며 물끄러미 바라보시기만 했다. 마치 어머니같은 푸근함을 느꼈고 참 고상한 분이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이때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에게 1974년 8월 15일의 뉴스는 지금까지도 소름을 돋게 한다. 그날 국립중앙극장에서 광복절 기념행사 중 재일동포 문세광의 저격을 받아 육영수 여사가 운명한 것이다. 정부는 전국의 지자체에 빈소를 마련해 조문을 받게 했고 충북도 역시 예비비 1500만원을 집행해 도청 회의실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그 때 주무를 맡은 사람이 당시 서무과 주사보이던 정중환씨다.
영부인에 대한 국장이 끝나고 국민들의 슬픔이 어느 정도 진정되던 그 해 10월 쯤, 정씨는 12년전 육영수 여사와의 속리산 인연을 떠올리게 됐고 곧바로 영부인과 같이 찍은 사진 중에서 한두컷만 남겨두고 나머지 10여장을 편지에 동봉해 박근혜에게 보낸다. 그는 “다른 뜻은 없었고 갑작스런 어머니의 사망으로 슬픔에 젖어 있을 이 나라 영애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밤새 고민하다 편지와 사진을 보내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달 후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쓴 답장이 도착한 것이다. 내용은 A4 용지에 타자로 쓰여 있고 끝에 친필로 서명까지 했다. 내용 전체가 간결하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슬픔과 정중환씨에 대한 고마움을 빼놓지 않고 표현하고 있어 할 말만을 똑부러지게 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세이던 해이다.
프랑스 그르노블대학에서 유학중 어머니의 비보를 듣고 급거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급한 전화가 온 후 대사관 직원이 왔다. 공항에서 신문을 봤더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있었다. 수만볼트의 전기가 홅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이었다.”
정중환씨가 끝내 걱정했던 건 바로 박근혜의 이런 충격과 상실감이었고 이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편지와 사진을 보내 준 것인데, 되레 장차 대통령으로부터 소중한 서신까지 받게 된 인연이 됐다. 그는 “앞으로도 집안의 가보로 여기며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각각 51년전과 39년전의 얘기이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을 당시 검사이던 김기춘이 수사했고, 그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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