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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금요일입니다.
어린이날 연휴가 끼인 샌드위치 연휴 잘들 보내고 계신가요?
전 오늘 병원 가는 일로 월차를 써서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연휴 때 쉬는 건 참 좋은데, 꼭 병원 가는 날이 되는 현실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쉬는데 쉬는 게 아닌 듯한.
이번 감상문은 원래 지난 4월에 등록하려던 건데요, 이런저런 업무에 치이다 보니 이제야 등록하게 됐습니다.
당분간 6월에 있을 선거 때 배포될 선거 공보물을 제작해야 하니 또 바빠질 예정입니다. 이번에 이 서평 올리지 않으면 6월에나 등록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더라고요. ㅎㅎ
도서명: 연풍당 수블아씨
저자: 오정은
* 이 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 사이트 아이프리 전자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문학에 판타지 코너에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어요.
* 소개글 서평
동양적인 소재를 좋아한다. 사람이 되기 위해 수행하다가 사랑에 목숨을 거는 구미호 설화, 보름달 밝은 밤에 뭍으로 올라와 세상 구경하고 주막에 들러 방울방울 흘린 눈물이 변한 진주로 음식값을 치른 인어 전설, 장생 복숭아인지 신선의 술인지를 먹고 몇백 년을 살며 저승차사와 술래잡기를 벌인 동방삭 이야기, 용이 되려고 수행하다가 정말 못 봐주게 양민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바람에 나라의 추적을 받게 된 이무기의 사연, 길가던 나그네를 붙잡고 씨름 권하는 도깨비 민담 등.
파면 팔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동양적인 소재는 참 정감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이런 동양적인 소재를 아낌없이 사용해 창작된 힐링 판타지 작품 《연풍당 수블아씨》를 독서하게 됐다.
주거난 청년과 투잡 뛰는 가신들, 그리고 술독에 봉인되어 있던 술신의 만남, 《연풍당 수블아씨》
“부동산이 또 어리숙한 청년 하나 골로 보낼 뻔했네. 연풍당 그 집, 들어가면 족족 망해 나오는 집이에요. 이웃에 한 번만 물어봤어도 알았을 텐데, 안타깝네.”
해준은 출판사 대표에게 최후통첩을 받는다. 집과 회사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출근길 러시아우어에 걸리든 지하철이 연착되든, 좌우지간에 매달 지각 신기록을 경신하는 그를 보다 못해 이사를 하든가 퇴사를 하든가 선택하라는 오더가 떨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200퍼센트 공감대를 깔고 들어갔다. 환경이 살짝 유사했기 때문이다.
나도 출판사, 그러니까 사회적기업 점자 출판사에 다닌다. 비록 해준처럼 회사와 집의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또 도보로 약 2.5km, 빨리 걸으면 40~50분 소요되는 적당한 거리지만, 출판사가 이사라도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긴장하게 된다. 집과의 거리가 멀어져서 복잡한 지하철 환승을 해야 한다든가, 2시간 걸리는 출퇴근 라이프를 시작하게 될까 싶어서 말이다.
시각장애인에게 무언가 위치가 변한다는 건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샴프는 욕실 바닥에 바디샤워 기준 좌측에 있어야 하고, 출근용 가방은 침대 끝에 베개 기준 우측에 놓여 있어야 하며, 휴지는 식탁 위에 밥통 기준으로 뒤쪽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반 물건들이 이런데, 하물며 직장은 더 말해 무엇하랴.
어쨌든 취업난이 극심한 오늘, 직장을 퇴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해준은 발품 팔아 새로운 집, 요컨대 출판사와 가까운 주거지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월세로 엄청 싸게 나온 한옥 ‘연풍당’을 접하게 되었다.
방도 여러 개, 정원에는 철마다 피는 꽃과 과실이 가득, 월세 저렴, 계절마다 정원에 피는 꽃을 따서 말려달라는 주인의 부탁도 쉬울 것 같고, 화장실이 바깥에 있다는 단점 빼고는 너무도 좋은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해준은 한옥집 연풍당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같이 생긴다 했던가. 연풍당에 살게 된 후 해준은 연거푸 불운한 일들에 마주하게 된다. 광고 사기, 보이스피싱, 소매치기, 자동차 사고 등 ‘무슨 마가 끼었나?’ 싶을 정도로 불행한 사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해준은 알게 된다. 연풍당에
살았던 이전 월세자들의 운명을.
한마디로 연풍당에 들어왔다 하면 줄줄이 망해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바로 이전에 살았던 청년은 현재 살인범으로 옥살이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아이구야,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월세가 저렴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해준은 이제라도 연풍당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마다 눈치를 채고 계약에 실패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 연풍당에 살던 청년의 어린 동생이 찾아오고 여차저차한 사건을 통해 해준은 집의 뒤꼍을 좀 팔 일을 겪는다. 그리고 거기서 웬 술독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항아리, 그러니까 술독에서 나온 것이 바로, 술 항아리에 갇혀 있다가 100년 만에 세상에 나온, 술의 신 수블아씨였다.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이는, 영원히 나의 노에로 살게 될 것이다.”
‘수블’은 술의 옛 우리말이라고 한다. 즉 ‘수블 아씨’는 물에서 일어나는 불, 일명 ‘술’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무당에게는 ‘조라가망’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오, 이런 거 좋다. 책 읽다가 우연하게 알게 되는 토막 지식 하나. 길에서 100원도 아닌 500원 득템한 기분!
그렇다면 수블 아씨는 명색이 술신이라면서 왜 100년 동안 술독에 갇혀 있게 된 걸까?
그건 소설 읽으면 나오니까 생략하고, 문제는 해준이 어쩌다 보니 다소 괴팍한 이 술신의 하인, 아니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갇힌 걸 꺼내줬으니 따지자면 은혜를 입은 건데, 갑자기 웬 노예란 말인가?
물론 수블아씨도 처음에는 그랬다. 자신을 풀어주면 모든 걸 다 주겠다는 맹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오래 갇혀 있다 보니 쌓이는 건 울화요, 어디 분출할 때도 마땅치 않은 원망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 항아리 뚜껑을 열어 자신을 풀어주는 이를 노예로 삼겠다는 저주를 걸게 되고 만다. 신이 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법, 운 나쁘게도 해준은 그 불특정인을 겨냥한 저주에 제물로 당첨되고 만 것이었다. 허이구야, 하다하다 참...... 복권도 아니고 하필이면 당첨된다는 게 저주냐!
그나마 다행하게도 저주에서 해방될 방법은 있었다. 수블아씨를 감동시켜 술신이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비쩍 마른 나무 지팡이에 꽃을 피우게 하면 노예 해방이란다. 해준은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본다. 주로 전통주를 진상하는 쪽으로.
하지만 그건 정성이 1그램도 없어서 효과도 없었다. 나중에는 정성을 들여 술을 빚게 되는데...... 물론 명색이 술신인데, 그 술신을 감동시키는 일이, 그것도 술로 감동시키는 일이 쉬울 리 없겠지만.
“성주신 알지? 집안의 모든 운수를 관장하고 책임지는 신. 업신 사라지고 집안이 흔들릴 때 저 성주신까지 정랑각시랑 바람나서 나갔다지 뭐니. 그때부터 이 집에 마가 낀 거야.”
그런 한편 술독에 갇혀 있었던 건 술신뿐만이 아니었다. 집안의 재복을 관장하던 ‘업신’도 함께 갇혀 있었다. 연풍당 비극의 이유는 업신의 부재였던 것이다.
사실 연풍당이 총체적으로 망한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업신이 실종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성주신’이 사라진 업신 찾겠다고 바깥을 떠돌다가 측신 ‘정랑각시’와 바람이 나면서 연풍당을 떠나고, 그 외에 다른 신들도 차츰 집을 떠나면서 망조가 든 것.
그런데 실종되었던 업신이 떠억 발견되자 공인중개사로 활동하며 연풍당을 어떻게든 되살려 보려고 노력하던 ‘조왕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식당에서 일하던 남편 성주신을 찾고, 미용실에서 음침한 헤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정랑각시를 데려오고, 업신은 유튜브 체널을 운영하며 행방이 묘연한 연풍당의 ‘터주신’을 찾는다. 나중에는 현직 변호사로 활동 중인 집안 뒤꼍 장독대를 관장하는 ‘철륭신’까지 연풍당에 합류하게 되고, 해준은 본격적으로 ‘신과 함께 슬기로운 전통 한옥 체험 일상물’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집을 지키는 가신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방식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명색이 신, 그것도 한 집안을 수호하는 가신인데, 현대에 접어들면서 투잡을 뛰다니. 뭔가, 갑자기 격한 현실성이 느껴진달까?
각자 고른 직업도 꽤나 절묘했다. 조왕신은 부엌을 지키던 솜씨를 발휘해 음식점을 경영하다가 부동산중개업까지 손을 뻗고, 성주신은 막노동 공사부터 식당 주방장, 마트 계산원까지 다양한 구직을 전전했다. 정랑각시는 긴 앞머리 때문인지 미용실에 취직해 있었다. 물론 실력은 별개의 문제고 말이다.
한편 철룡신은 좀 의외롭게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푹 숙성된 장처럼 경륜이 묻어나는 변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무려 일제강점기 시기에 취득했다는 변호사 자격이니까.
업신은 집안의 재복을 담당하는 신답게 요즘 핫한 직업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엄청난 구독자를 보유하게 됐다. 역시 재물신이다. 문제는 통장이 없어서 현금화가 안 된다는 점.
막판에 나온 터주신도 꽤나 절묘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말이다. 역시 묘하게 어울린다.
《연풍당 수블아씨》, 팍팍한 현실의 바다를 표류할 때 등대가 되는 ‘옛것들’
“술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인간에게 ‘위로와 망각’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소수의 존재들이 결탁해 인간 세상에 내려 보낸 ‘선물’이었다.”
한편 소설 《연풍당 수블아씨》는 현대의 이야기, 즉 해준이 겪는 일화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연풍당의 과거,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도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바로 김서율의 이야기이다.
간간히 여행기나 표류기처럼 짧게 등장하며 소설의 숨은 사연을 암시하는데, 나중에 현대의 해준과 이어지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진짜 환생이란 게 있지 않을까, 그래서 떠났던 이들이 돌고 돌고 돌아 끝내 연풍당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흩어졌던 가신들도 기어이 연풍당에서 살게 된 것처럼.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설정이었다.
물론 술신이 주요 등장 인물로 나오니 술에 대한 여러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오정주, 한산소곡주, 감홍로, 이강주, 죽력고 등 각종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술들의 설명이 재미나게 펼쳐진다. 전통주라고는 막걸리밖에 모르던 내게는 아주 신세계였다.
문득 술독에 갇힌 수블아씨의 ‘노에로 삼겠다’는 저주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노에 운운하기 이전에 인류는 이미 술의 포로가 된 것 같으니까.
한편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해준의 술 빚는 실력도 상승 곡선을 그린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슨 누룩장인기능문화재인가 문화인인가 기능보유자인가, 아무튼 그 비슷한 뉘앙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할머니에게 속아서 웬 저질 누룩을 사오는 어리바리한 면모를 자랑하던 게 어느새 이런저런 술을 빚고 효모를 사랑하는 양조장 직원 채용 1순위 청년이 되었다. 전생에 술 빚는 장인 아니었나 싶을 지경이다. 그러다 마침내 수블아씨의 지팡이에 꽃을 피우게 되는데, 그와 함께 양자택일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과 노예의 삶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
신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낼 정성을 보인 인간에게 하늘이 주는 포상이라고 한다. 죽어야 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해준의 경우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막느냐, 수블아씨의 하인 신세를 벗어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처음 그가 보게 된 생명은 가승이, 해준네 연풍당에 형을 찾으러 왔던, 왜인지는 몰라도 큼직한 화분을 들고 나타난 소년이었다.
어찌저찌 해서 결국 첫 번째 해방의 기회를 날린 해준은 또 금방 새로운 해방 기회를 얻는다. 무슨 영문인지 도도한 수블아씨와는 다르게 술신의 고목 지팡이는 쉽게 꽃을 피워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인물, 밀레나가 독일에서부터 연풍당으로 찾아오게 된다. 활달하고 용감한 소녀였던 밀레나, 하지만 어느날 당한 불의의 폭행으로 하루아침에 삶이 뒤바뀌고 만 소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밝히고 끝내 그 너머에 있는 진실마저 밝혔으나, 그 결과가 좋지 않았던 사건. 밀레나는 그 일로 충격을 받고 거의 은둔형 외토리 비슷하게 되었다. 그러다 체념과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연풍당의 초대를 받아들인 것.
그녀의 일화는 가승이의 형인 임현승 사건으로 이어지고, 간절한 바람과 약간의 신의 개입으로 ‘술’에 묻힌 채 조작된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술을 먹어 대리기사를 부른 남자, 사람을 친 대리기사 청년, 얼핏 보기에는 명확한 이 사건에 숨겨진 내막은 무엇일까?
술신이 등장하고 술에 대한 일화가 소개되면서 자연스레 ‘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주인공 해준처럼 술을 못 먹는다. 어릴 때 실수로 소주를 생수로 착각해 마셨고, 그 기억은 내게 ‘알코올 = 먹으면 고달픈 것’이란 공식을 남겼다. 그래서 술을 못 마신다. 정확히는 안 마신다. 성인이 되고 동생이 마시는 맥주가 궁금해 살짝 혀만 담가봤던 적도 있는데, 쓰기만 하고 맛도 없어서 이런 걸 왜 마시나 싶었더랬다.
그렇게 술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는 않은데, 범죄 사건에 술이 얽히는 경우를 보면 더욱 좋아지지 않는다. 술 먹고 운전했거나 누군가를 폭행했거나 그럴 때, 범인이 법정에서 ‘심신미약’을 이유로 죄를 감경해주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접했기 때문이다. 맨정신으로 술을 마셨는데, 술로 인한 범죄는 왜 감형해줘야 하는가.
애초에 술을 마셨을 때의 술버릇을 인지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술을 마시고 같은 짓을 반복했다면, 그건 의도된, 혹은 될 대로 되라 하는 식의 행위일 뿐이다. 심신미약이 아니라 ‘미필적고의’에 의한 행동이 더 맞지 않겠는가.
알코올 덕에 죄를 감해주는 풍토는 근절해야 할 악습이요, 술로 인한 심신미약은 법전에서 사라져야 할 규정이라고 본다. 소설 속에 술신 수블아씨도 선을 딱 긋고 있지 않던가. 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신 사람 잘못이라고, 술은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신이 내린 선물마저 핑계로 삼아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이란 생물은 참......
그래서 술을 배운다는 ‘주도’라는 게 나왔지 싶다. 주도만 제대로 배웠다면, 술을 예의 있게 잘 마시고, 잘 깰 수도 있을 텐데.
비단 술에 대한 것뿐 아니라 우리는 어쩌면 ‘옛것’에서 어떤 위안을,, 혹은 돌파구를 찾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막막한 바다 같은 오늘을 항해하다가 문득 힘들어지면 찾게 되는, 매달리게 되는, 막연하게 쉼을 얻으려 찾는 무언가.
그게 이 소설 《연풍당 수블아씨》에는 있는 것 같다. 그게 무엇이라고 콕 꼬집을 수는 없다. 뭐라 정의하기에는 불분명한 위안이다.
하지만 힐링, 따뜻한 정서가 필요할 때 이 책을 들길 권하겠다.
가승이의 아동학대, 해준의 복잡한 가족사 등 간혹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나 미성숙한 어른에 대한 대목은 씁쓸하기도 하고, 가신들의 마지막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참 다정하다.
솔직히 수블아씨 성격이 내 취향은 아닌데, 뭐 어쩌겠는가. 원래 ‘신’이란 건 좀 자기 멋대로인 성향이 있기 마련이다. 사신 주제에 강남 팬트하우스에 살면서, 취미로 꽃을 키우는 독특한 분도 있는데, 더 말해서 무엇하랴.
삶의 고단함에 지쳐 현관을 열고 들어왔을 때, 불 다 꺼진 집안은 어둡고, 머리 위에 센서등마저 꺼져, 아무도 없다는 적막함이 못 견디게 어깨를 짓누를 때, 답답함에 한숨을 토하기보다 삼킬 때, 술이라도 마시고 취할까 생각하지만, 그마저 구질구질하게 보일 것 같을 때, 시끌벅적한 연풍당의 동거인들이 펼치는 유쾌한 이야기가 있다면, 또 한편으로 가슴 먹먹해지고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있다면 잠시간의 쉼은 될 테니까.
바다를 밝히는 등대처럼 여기 섬이 있다고, 잠시 쉬었다 가라고, 여기가 당신이 찾는 목적지일 수도 있다고, 그런 힐링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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