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함라출신 하당 이집천 (1899~1959) 만석을 누렸던 부호였을 뿐 아니라 생전에 호남 지방에서
명필로 유명하였고 교육사업에도 여러 업적을 남겼다.
집천씨의 서예 솜씨는 당시 조전에 3회 입선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으로 지금 남아있는 숭림사의
현판 및 함라산 기슭에 집천씨 자신이 건립했던 서벽정의 비문등 몇점의 작품이 남아있다.
집천씨가 어릴 때 글씨를 배울 때 놀고만 있는것 같아 생각한 선생이 홧김에
<그렇게 배울려면 그만두라> 붓을 들고 있던 손을 치자 집천씨의 손이 꿈쩍도 하지않은것을
본 글 선생이 그만하면 휼륭하다고 칭찬했다는 일화가 있었다 한다.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집천씨는 인촌선생과도 두터운 친분 관계를 가져
1920년대 동아일보 창간시 상당수의 주를 샀었다.
집천씨의 장남인 화영에 따르면 이 주는 계속 가지고 있다가 6.25후 모두 회사에 희사
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많은 부를 가지고 있던 집천씨는 1930년대 함라면 마을 뒤 함라산 기슭에 대규모
별장을 짓기 시작했다..
2만여평의 산 기슭을 인공적으로꾸며 요즈음 흔히 말하는 자연공원을 만들 계획이였다 한다.
아마도 함라의 다른 갑부들을 의식한 경쟁이였던것 같다.
가장 위에 위치 해 있던 연회용 별장이<윗산정> , 그 밑에 전망좋은 곳에 전망대용인
육각형의 육각정이 <가운데 산정>, 그 아래 본 건물인< 아랫 산정>이 있었으며 따로
살림집을 마련하였고 각 건물 사이사이에 3개의 육각정을 또 세웠으며 대규모의
온실까지 만들었다고 당시 집천씨의 집에서 일을 보아주던 최유순씨는 설명하고 있다.
건립비 만으로 당시 돈으로 2백만원이 넘게 들었으며 건립기간만도 4년이 넘게 걸린
대규모 공사였다.
대들보를 쓴 나무는 압록강변에서 정원석은 멀리 제주도에서 원석을 가져다가 사용하였고
층계도 전부 화강암으로 깍아서 설치하였다 한다.
입구에서 부터 겹벗꽃을 양쪽으로 쭉 심었고 정원을 온갖 화초와 휘귀목으로 가꾸웠으며
계곡의 물을 막아 인공 <풀> 장까지 만들어 그 호화스럽고 멋있는 경치가 한폭의
그림 같았다고 한다.
당시 이리 군산 등지에 와 있던 일본인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 구경하곤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일본의 그림 엽서에도 산정의 전경이 사진으로 소개 될 정도였다.
당시 이곳이 북적 댈 때에는 한 끼니에 쌀 한가마니씩의 밥을 할 정도였으며 연간 유지
관리비만도 1백만원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 할만하다.
도내 뿐 아니라 국내 최초의 이 자연공원 형식의 이 산정이 지금은< 棲碧亭> 이라고
집천씨 자신이 쓴 2m 높이의 화강암 비와 문기둥 굴뚝등만 남아 그때의 화려함을
말해주고 있다.
없애버려 현재는 밭으로 둔갑 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잘 보존되였더라면 휼륭한 관광 명소가 되였을것이라며 최씨는 아쉬워하고 있다.
집천씨는 해방 이후에 교육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함열농고 (현 함열 종고) 설립준비위원을 맡아 상당수의 토지를 희사 했으며 현 전북농대의
전신인 이리도립농대의 설립때도 준비위원으로 일하였다.
8남매의 장님이였던 집천씨는 동생들한데
어떻게나 잘해주웠던지 형제간에 우애가 그렇게 좋았었다고 집천씨의 두째 계수인 오씨는
회고하고 있다.
이중 서울 중앙고를 거쳐 일본대학 예술과를 마친 7곱째 집길씨는 해방 후 한국 영화계에서
원로인 김승호씨등과 같이 영화계 활동을 시작 영화 <성벽을 뚫고>, <애정산맥> 등에
주연으로 출연 해방 후 전북인 최대의 영화인으로 활약을 하였다.
집천씨는 늘 <자신이 닦은 부가 진짜 부> 라고 강조하고
<아버지가 부자니까 자식들도 부자라는 생각은 버려야 된다>면서 자식들의 자립적인
독립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마도 농지개혁과 같은 일을 예상하여 자립의식을 키워주려 했던 모양이다.
집천씨의 조부 석순씨 대에 모아진 재산이 집천씨 대에 실시된 농지개혁에 의해 기울어져
버려 우연이도 <부자가 3대 못간다>라는 속담과 들어맞아 버렸지만 오늘도 후손들은
이같은 조상의 명예를 지키면서 결코 남에게 떨어지지 않고 자신있는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고 화영씨는 부호 후손의 변을 털어 놓았다.
첫댓글 3대가 못가는 부자의 이러한 글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는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생해서 모아놓은 재산은 거저 부가 형성된줄 알고 흥청망청 대는 후손들에 의해
쫄딱이라는 단어를 만든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 때 하늘이 돕고
하늘이 도와야 사는 것을 모르고 현 세대의 우리들 상황, 나라의 상황들을 보며 잘못하면 쪽박을
타지 않기를 고대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