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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가(債家)
박 태 원
혹, 누가 들으면 우리를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남이야 비웃거나 어쩌거나, 우리는 사실 그날,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천유불측지풍우(天有不測之風雨)하고 인유조석지화복(人有朝夕之禍福)이란, 우리가 늘 지나는 길거리, 남의 집 처마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 사주(四柱) 보는 늙은이들이, 자기네들의 영업 선전으로, 으레 내세우는 문자이거니와 그날의 우리의 신수는, 그 낡은 문자를 바로 새롭게 가슴속에 느껴 보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우리 설영(雪英)이가 유치원에를 가는 날이라, 그래, 우리는 그날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을 찾아가서, 가난한 아비의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는 그것은, 분명히 신중한: 고려를 필요로 하는 정도의 지출이었으나, 기위, 있는 집 자녀들 틈에다 우리 딸을 보내는 바에는, 결코 그 행색이 너무나 초라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라, 양복에 구두에 마에카케(앞치마), 사루마다(속잠방이), 커버(덧양말)는 아직도 성한 놈이 집에 있건만, 그것도 새로이 한 켤레를 사고 나니, 낭중(囊中)에는 남은 돈이 그 얼마가 못 되어도, 어린 딸의 두 눈이 자못 자랑스레 빛나는 것을 보고는, 가난한 아비는 가난한 까닭으로 하여, 좀더 그 마음이 애달프게 기뻤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설영이를 보고 말하였다.
“너, 아버지가 돈 마아니 딜여서, 존 거 마아니 사주셨는데― 소영(小英)이두 안 사주시구, 일영(一英)이두 안 사주시구, 똑 너 하나만 그렇게 사주셨는데, 낼, 너,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이 물어 보시는 거, 대답, 썩 잘해야 헌다, 응? 알었지?”
설영이는 결코 우리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 발을 재게 놀리어 언덕을 올라가며, 명쾌하게 대답하였다.
“응.”
아내는 다시 말하였다.
“너, 대답 잘 못 해서 유치원에 뭇 들어가면, 오늘 산 양복, 구두, 마에카케, 모두, 넌 안 줄 테니 그런 줄 알어라, 응!”
“나 안 주면, 그럼, 누구 줘?”
“누구 줘어. 소영이 주지.”
“소영이가, 나버더 쭈끄만 게, 커서, 그거 맞나?”
“안 맞어두 그냥 두지.”
“뭐얼, 부러 그러지.”
설영이는 우선 한마디 하고, 그래도 약간 의아스러이, 또 불안스러이, ‘엄마’의 얼굴을 흘낏흘낏 쳐다보다가,
“조것 봐, 조것 봐, 엄마가 부러 그러지. 웃는 거 보면, 난, 다 알어, 다 알어.”
하고 야살을 떨어, 우리는 잠깐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나 아내는 다시 정색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얼른 ‘선생님’이 되어 가지고 물었다.
“너, 이름이 뭣이냐?”
“박, 설영이에요.”
설영이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그도 이제는 ‘선생님’의 구두시문(口頭試問)에는 익숙하였던 것이다.
“너, 몇 살이냐?”
“여섯 살이에요.”
“저어, 아버지는 뭘 허시지?”
“소설가, 세요.”
아내는, 잠깐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로서 한마디 하였다.
“소설가세요― 그래두 좋구, 또 소설 쓰세요― 그래두 좋구…….”
설영이는 ‘딸’이 아니라, 여전히 ‘아동’으로서 대답하였다.
“소설 쓰세요.”
우리는 언덕을 마침내 다 올라왔다. 빠안히 집을 눈앞에 내려다보며 ‘선생님’은 다시 한마디 물었다.
“너희 집이 어디지?”
“돈암정, 사백 팔십 칠 번지의, 이십 이호예요.”
작년까지도 모집 인원과 응모자 수가 서로 어상반하여 입원(入園)을 원하는 아동은 이를 전부 수용할 수 있었는데 올에는 원서 마감 이전에, 이미, 백 명에 대하여 이백 명이 초과하는 현상이므로,
“불가불 시험을 봐야만 허게 됐에요.”
그러한 말을 보모에게서 듣고 돌아온 뒤로, 아내가 요 며칠 동안을 두고 열심히 설영이를 지도하여 온 보람은, 이제, 충분히 있다고 할밖에 없었다.
나는 내 딸이건만, 아니, 혹은 내 딸인 까닭에, 조그만 입이 그렇게 또렷또렷하게 통호수 외는 것이 신통하여 마침내, 나도 한번 물어 보았다.
“너희 집이 어디지?”
사실, 번지가 간단이나 하다면, 또 모를 일이다. ‘사백팔십칠번지’만 하여도 이미 엄청난 숫자인데, 거기에다 다시 ‘이십이호’까지 붙였다, 그래, 집의 행랑어멈은, 우리에게 들어온 지 팔 개월이 넘건만, 집의 번지를 외워 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설영이의 명쾌한 대답을 또 한번 들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때 이미 대문 앞에까지 이르렀었고, 설영이가 미처 다시 입을 열 수 있기 전에, 재빨리 우리들의 발소리를 듣고 분주히 문간으로 나온 어멈은,
“이제들 오시는구먼요.”
한마디 하고, 곧, 뒤를 이어,
“바루 조금 아까, 누가 왔다 갔는데요.”
하고, 나의 얼굴을 빠안히 쳐다보았다.
“누가?”
하고, 나는 마당에가 선 채 물었다. 그러나 나보다 한 걸음 앞서,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간 아내가, 이때,
“일영이 어디 갔어?”
하고, 한마디 하여, 어멈은,
“옥희가 업구 나갔죠.’:
하고, 대답하고, '
“그럼, 소영이두 쫓아 나갔군?”
다시 물은 말에,
“네.”
하더니,
“그래, 양복, 사셨에요?”
하고, 그는 쪼르르 마루로 올라가 버렸다.
“응, 일영이 울지 않었수?”
“아아뇨, 아주 잘 놀았에요.”
아내와 어멈이 다시 그러한 말을 주고받고, 설영이는 설영이대로, 분주히 사온 물건을 풀어 헤치느라 골몰인 방 안으로, 나도 들어가서 양복저고리를 벗어 건 다음에, 다시 한번 어멈에게 물었다.
“그래, 누가 왔었어?”
어멈은, 마악, 새로 사온 설영이 양복을 집어 들고,
“어유― 좋기두 해라. 아씨, 이거, 퍽 값이…….”
하고, 아내 편을 돌아보려던 고개를 즉시, 내게로 다시 돌리며, 대답하였다.
“웬, 누우런 양복 입은 사람인데요.”
“누우런 양복이라니, 국방복?”
“네, 그, 국방복이라나…….”
국방복 소리에, 마침 나들이옷을 벗으며, 뒤늦게,
“저게 십육 환이나 준 게, 글쎄…….”
하던 아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빠른 어조로 어멈에게 물었다.
“국방복을 입었어? 저어, 생김새가 똑 짐방꾼이처럼 생긴?”
“네. 똑 짐방꾼이 같은…….”
아내는 그대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게 또 왔군요.”
하고 나를 바라본 다음에,
“그래, 와서 뭐래?”
하고 다시 어멈에게 물었다.
“와서 복상을 찾겠나요? 그래, 안 기시다구 그랬죠. 그랬더니…….”
나는, 난데없이 집에 와서, ‘복상’을 찾는, 국방복 입은 짐방꾼이란, 대체, 어떠한 놈인고?― 속으로 괘씸하게 생각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말고,
“그게 누구게?”
하고 아내 편을 보니,
“아, 누군? 신당정(新堂田T)서 온 게지.”
하고 아내는 미간조차 약간 찡그린다.
나는, 나도, 순간에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며, 말없이 성냥을 확! 그었다.
신당정서는 사람이 그저껜가 왔다 갔었고, 사건은 그것으로 한 단락을 지은 줄로 우리는 믿고 있었던 터이다.
“그랬더니?”
하고 아내가 이야기를 재촉하자, 어멈은 저도 바로 이맛살을 약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그럼, 들어오시건 이쭈라구요: 하여튼 저희는 안 받었으니까― 댁에선 아무리 돈을 치르셨대두, 저희 수중엔 안 들어왔으니까, 두 달 칠 다시 내세야만 헌다구. 만약에 안 내는 날에는 처분올 헐 테니, 아주 그리 알라구요.”
‘뭐? 처분을 허겠다구?’
나는 그 말을, 다만 입 속에서 부르짖었으나, 아내는 입 밖에까지 내어 소리쳤다.
“원, 그런 경우에 없는 말이 어딨어? 너무 잘해 주니까, 아주, 먹을 콩으루 아남?”
어멈은 바로 제가 그 말을 전하러 온 그 ‘짐방꾼이’나 되는 것처럼 송구스러운 표정을 하고 말하였다.
“누가 아나요? 들어오시건, 그렇게 이쭈라니까…….”
아내는 저고리 끈도 잘 매지 않고, 장 앞에가 앉은 채 다시 말하였다.
“그래, 그따우 말이 어딨어? 늘, 받으러 온 놈한테 또박또박 내줬으면, 우린, 그만이지. 저희 부리는 놈이 짤러먹구 달어났거나 말거나 우리가 무슨 아랑곳이야? 저희가 사람 잘믓 써서 그렇게 된 걸, 우리더러 다시 물라는, 그따우 경우에 없는 소리가 어디서 나와?”
아내의 말은 백번 옳은 것이었으나, 어조가 격하고 음성이 또 높아, 그 내용이 이웃집에까지 전하여지지나 않을까?― 염려되었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담배 연기만 연해 뿜으며, 난데없이 엊그제 마감이 지난 잡지사의 소설을 생각해 내코, 오늘 밤에는 기어코 착수하려던 것이, 이러한 상태로는 영영 틀리고야 말지도 모르겠다고, 마음이 좀더 우울하였다.
어멈은 잠깐 망설거리는 듯싶더니, 홀낏 내 편을 곁눈질한 다음에,
“대체, 그게, 어찌 된 일인가요?”
하고 조심조심 물었다.
가정의 내막이란 불유쾌한 것이면 불유쾌한 것일수록에, 남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법이지만, 그렇게 묻는다고 우리는 섣불리 그것을 말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아랫것을 상대로, 그것은 될 뻔이나 한 말이냐?―아내도 그만 요량은 못 할 위인이 아니건만 이 경우에는 홍분이 지나친 모양이다. 바로 그렇게 물어 주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싶게, 그는 역시 격한 어조로 말하였다.
“왜, 작년 가을버텀 다달이 또박또박 찾어오는 애꾸 있지 않어?”
“네, 애꾸요.”
“그 애꾸가, 집이 이자를 받으러 댕기던 녀석인데, 글쎄 이 녀석이 우리한톄서 받은 둔을 전주를 갖다주질 않구, 잘라먹구 도망을 갔구먼 그래.”
“원, 저럴 데가…… 그래, 몇 달 치나요?”
“두 달 칠― 이월, 삼월, 두 달 칠 잘라먹었지.”
“그 에꾸가 댁에 드나든 지가 두 달밖에 안 되나?”
“두 달이 뭐야? 작년 시월― 양력 시월버텀이니까, 시월, 동지, 섣달, 정월, 이월, 삼월…… 여섯 달― 꼭 반년이 되는데…….”
“그럼 전에 내신 건 애꾸가 전주한테 전했나요?”
“그러게 입때 아무 말이 없다가 저어번에야 전주가 편질 했지? 우린 한 달 안 걸르구, 늘, 선변으루 꼭꼭 치러 왔건만, 전주 말은, 정월 달 치부터 도무지 이잘 안 내니 어찌 된 심이냐구. 삼월 그믐날까지 안 가져오면 집을 처분해 버리겠다구…….”
“원, 저럴 데가…….”
“우린 분명히 애꿀 줬건만 전주 쪽에선 안 받었단다!”
“원, 저런…… 그래, 영수증은 받으셨죠?”
“아암, 받구말구.”
“자알 위해 두셨죠?”
“아, 위해 두구말구.”
“그럼, 무슨 상관이에요? 영수증이 있는데…….”
“허지만 일이 공교로우려니까…….”
하고, 아내는 잠깐 말을 끊더니, 침을 한 덩어리 꿀떡 삼키는 수가,
이제도, 이야기가 한없이 길 모양이다.
그래, 나는 드디어 한마디 하였다.
“영수증이 있으니까 아무 상관 없어. 내, 낼, 신당정옐 갔다 올 테니 아무 염녜 말어.”
그리고 이번에는 어멈을 보고 명하였다.
“애기 좀 찾어 보오. 젖 먹을 때가 지났는데, 이년이 어디루 이렇게 데리구 댕기누?”
분명히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눈치면서도 하는 수 없이,
“글쎄요, 그만 들올 때가 됐건만…….”
하고, 어멈이 밖으로 나간 뒤에, 나는 불쾌한 빛을 구태여 감추려 않고 아내를 나무랐다.
“그, 왜, 주책없이 늘어놔아? 그, 뭐, 남 앞에 자랑헐 얘기유?”
아내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누가 언제 자랑이랬수?”
“그럼 왜 늘어놓는 게야?”:
“화가 나니까 그렇지.”
“화가 난다구, 아랫것 상대루, 혈말 뭇헐말 다아 허는 거야? 사람이 체면 생각두 해야지.”
“체면은 무슨 말러비틀어진 체면야. 집을 뺏기구 내쫓겨두 체면만 채리면 그만인가?”
“…….”
말 같지가 않아서 대꾸 않는 것을, 아내는 내가 말에라도 궁해서 잠자코 있는 줄로 안 모양이다. 더욱 기가 나서,
“애최, 자기가 잘믓 아니야? 내용증명인가 뭔가, 받었을 때, 전줄 곧, 가보면 아무 일두 없을 걸, 원 뭬, 그리 무서워서 뭇 가보는 거야? 그렇게 직접 가보래두, 그래두 일이 그렇지 않다구, 빌어먹을 애꾸녀석을 또 찾어가서, 그래, 일이 이렇게 된 거 아냐? 모두 자기가 그따위루 일을 해놓구, 이제 와서 체면은 무슨 체면이야?”
나는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것을, 순간에 느끼고,
“그, 웬 잔소리야!”
한마디, 꽥! 소리를 질렀던 것이나, 문득, 저편 구석에, 새로 사온 양복을 앞에다 놓고 앉아, 한껏 불안스러운 눈으로 우리들의 동정만 살피고 있는 설영이의 모양이 눈에 띄자, 나는 새삼스러이 당황하여 가지고,
“설영아, 나가서 동무 불러 가지구 놀지 않으련?”
하고, 한껏 부드러운 음성을 지어 한마디 하였더니, 설영이는 금시에 가만한 웃음조차 입가에 띄우고,
“아빠아.”
하고 부른 다음에, 고개를 얄밉게 갸우뚱하고,
“저어, 새 양복 입어 봐두 괜찮우?”
한다.
“웅, 입어두 괜찮지만, 내일 유치원 갈 때 입어야 더 좋지. 오늘 입었다 때묻으면, 내일 선생님이, 잰, 때묻은 거 입구 왔네…… 그러지 않어?”
“그럼, 뒀다, 낼, 유치원 갈 때 입어?”
설영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하는 말이 마악 끝났을까말까 할 때, 아내는 또 소리를 질렀다.
“네까짓 게, 그 꼴에, 유치원이 무슨 유치원이냐? 유치원엔 부잣집
아…….”
나는 끝까지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다시 높은 음성으로 그를 꾸짖었다.
“원, 어린것보구, 그게 무슨 수작이야?”
그래도 아내는, 좀처럼 홍분이 가라앉지 않아,
“왜, 내가 글른 말 했수? 글른 말 했어?”
하고, 아직도 말이 많을 듯싶은 형세이었으나, 마침 옥희 등에 업힌 일영이의 목소리가,
“엄, 마― 엄, 마―”
하며, 대문을 들어서, 그래, 아내가 그 문제에 관한 논란을 일시적이나마 중지하게 된 것은 우선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가 어리석다고 우리를 비웃는다면, 비웃어도 어쩌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내와 나는, 이날,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애꾸가 중간에서 떼먹은 두 달 치 이자를, 날더러 다시 물라……? 만약에 물지 않는다 할 것 같으면 현재, 우리가 들어 있는 이 집을 처분하여 버리겠다……?’
천부당만부당한 수작이었다. 애꾸는 당당히 전주를 대신하여, 다달이 내게서 이자를 받아 간 터가 아니냐? 그것도 한두 달이 아니요, 작년 시월부터 줄곧이었다. 그 애꾸가 이제 와서 두 달 치를 떼어먹었거나, 석 달 치를 떼어먹었거나, 그것은 마땅히, 저와 애꾸와 두 사람 사이에 해결을 하여야 할 문제이지, 결코 우리가 아랑곳할 것이 아니다.
‘가령, 전주는, 이제버텀은 애꾸에겐 돈을 내어주지 말라구, 내게다 대구 경고를 헌 적두 없었구…….’
그러니까, 내가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애꾸에게 이월분, 삼월분의 이자를 지불하였더라도, 그것은 결단코 우리 편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중으로 이자를 물어 놓아야만 할, 아무러한 이유도 없다.
이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그의 요구가 그처럼 부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당한 요구에 내가 응하지 않는 경우에, 만약, 그가 하려만 든다면, 능히, 우리집을 경매 처분(競賣處分)에 부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종시, 놀랍게 또, 어지럽게 하여 놓았다. 그에게 대한 나의 채무의 변제기일(辨濟期日)은, 문서상에 있어, 소화(昭和) 십육년 삼월 삼십 일로 되어 있었고, 그 삼월 삼십일이란, 이미 이틀 전에 지나가 버린 날짜인 까닭이다.
‘허지만…… 허지만, 제아무리 인정사정을 모르는 흉악헌 놈이라 허더래두…….’
내가 과거 반년간을 그처럼 다달이, 그처럼 또박또박, 어김없이 이자를 치러 온 터에, 설마하니 다만 변제기일이 지난 것 하나만을 내세워, 그렇게 악랄한 수단을 취하기야 하랴?―하고도, 나는 생각하고 싶었으나, 대체, 그것을 누가 믿을 수 있느냐?---―하는 불안이, 좀처럼, 나의 마음속에서 떠나려 하지는 않았다.
‘참말이지 그것을 누가 믿을 수 있느냐……?’
제가 사람을 잘못 두어, 그래, 돈을 떼어먹히고 나서, 사람의 경우를 몰라도 분수가 있는 법이지, 그것을 우리에게다 들씌려 드는 흉악한 자라, 오직, 변제기일이 지난 것만을 고집하여 가지고, 사실, 그는 나서서 법적 수속을 할는지도,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녀석이 우리를 만만히 보구, 아주 먹을 콩이나 생긴 줄 아는 모양 아니야?”
아이들이 모두 자니까, 낮에처럼 음성은 크지 않았으나, 아내의 어조에는, 여전히 흥분이 느껴졌다.
나는 아내 편을 향하여 등을 지고 누운 채, 아무 대꾸도 안 하였으나, 사실, 그자는 우리를 먹을 콩으로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하고 나도 생각하였다.
애꾸가 떼어먹은 돈을, 나보고 다시 물어 놓으라는 것이, 경우 밖의 일인 것쯤은, 혹은, 우리보다도, 제가 먼저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알면서도 억지떼를 쓰는 것은,
‘어쩌면, 우리집을, 송두리째, 집어삼키자는 수작이나 아니나……?'
문득,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순간에, 전신을 엄습하는 강렬한 오한(惡寒)을 느꼈다.
‘어림두 없는 생트집을 잡는 수가…….’
역시, 그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하고, 한번 그렇게 생각하여 보니, 꼭 그럴 것만 같고,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닐 성싶어,
‘그럼, 나는, 그 동안, 갖은 욕, 다아 봐오다가, 결국에는 이렇게 집을 뺏기구 물러앉어야만 되는 것이냐……?’
순간에, 나는, 한껏 구차스러운 우리들의 곁방살이를 머릿속에 꾸며 보고, 그악스러운 안집 식구들 앞에 매양, 떳떳지 못한 나의 아내와 어린것들의 모양을 정녕, 내 눈으로 보자, 나의 마음은 슬프고 또 아팠다.
“아빠! 안집 애가, 내걔 과자, 저, 안 준다구 날 때렸어!',
밤톨만이나 하게 부르튼 이마빼기를 보이며, 설영이가 울고 하소연 하여도, 변변치 않은 이 아비는, 가까스로 얻어 든 셋방을 잃기나 할까 두려워,
“울지 마래 울지 말어. 왜, 달라건 과자 좀 주지 않구……?”
“전, 내가 달라면, 은제 줬나?”
“넌, 걔 가진 거, 달라지 말어.”:
언제든, 안집의 전망나니 애녀석 앞에 비굴하기만을 나는 나의 귀여운 자식에게 요구한다…….
“안 될, 말!”
나는, 저도 모르게, 거의 입 밖에 내어 한마디 중얼거렸다. 설혹 나는 처자(妻子)를 위하여 비굴하여야 한다더라도, 나의 처자는 나 까닭으로 하여 비굴하여서는 안 된다.
“안 될 말이지!”
내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을 때,
“그럼! 될 뻔이나 헌 말이야? 낼은, 아무리 싫여두 좀 가서, 단단히 따지구 와요. 글쎄, 애꾸가 짤러먹은 걸, 왜, 우리보구 다시 물어노래?”
아내는 그렇게 또 한마디 하였다. 나는,
‘허지만, 따질 순, 없지. 따져선 안 되지…….’
아무리 우리 편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저편의 비위를 건드려서는 큰일이라고, 나는, 은근히, 속으로 그러한 것을 겁내었다.
‘빚진 종이라는데…… 아무리 저편에서 억지떼를 쓰더래두, 참을 때까진 참구, 내 편의 주장을 세우는 경우에두 그저 보든 것을 완곡하게…….’
오직 처자를 위하는 일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비굴하여도 관계치 않다고, 비장한 결심을 할 때, 쓰디쓴 침이 한 덩어리, 나의 목구멍을 거북하게 넘어갔다.
“돈이, 모두, 어디서 썩누!”
아내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참말, 어디서 썩구 있누!’
오천오백 원― 오천오백 원이면 모든 문제가, 순간에, 해결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내일 아침, 내가 저를 찾아갈 때, 만약 나의 품속에 그만한 돈이 들어 있기만 하다면, 나는 참으로 얼마나 어엿하고 또 떳떳할까. 그의 앞에서 나는 결코 비굴하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두 애꾸가 떼먹은 두 달 치 이자를 지가 요구한다면……?’
요구한다더라도 이제는 무서울 것이 없는 나였다. 요구할 테거든 법정에서 요구하라고, 나는 당당히 선언할 수 있을 것이요, 법정은 물론, 이 경우에 있어서, 어디까지든 나의 편을 들어 줄 것이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돈이…….’
그 돈이 나에게는 없었다. 돈이 없이 오직 나의 주장만 내세울 때, 그때에도, 법정은, 애꾸가 떼어먹은 두 달 치 이자를 내가 물지 않아도 좋다고, 내 편을 들어 주겠지만,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변제기일이 이미 지난 나의 부채에 대하여, 그가 그 저당물건(抵當物件)인 나의 집을 마음대로 경매 처분에 부쳐도 무관하다고, 법정은 저편에도 동의를 하고야 말 것이었다.
나는, 순간에, 격렬한 감정이 그대로 들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그래도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잘헌 것두 잘못했다구, 비는 밖엔 도리가 없다…….’
하고, 마음속에 비굴한 결심을 하였던 것이나,
‘하지만, 그래두, 종시, 그 아귀 같은 자가 듣지 않을 경우에는……?’
그 경우에는, 그러면, 오직, 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가슴에 깊은 한(l艮)을 머금으면서도 결코 지불할 의무가 없는 두 달 치 이자를, 나는 다시 지불하여야만 할 것인가? 그러나 오천오백 원의 푼 오 리는 팔십이 원 오십 전이었고, 팔십이 원 오십 전의 갑절은 일백육십오 원이었다. 일백육십오 원이란, 나에게 있어; 실로, 적은 금액 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의식하고, 한껏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았을 때, 다시 아내가 중얼거렸다.
“어리석지, 어리석어.”
나는, 드디어, 가만있지 못하고, 그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왜, 자지 뭇허구, 시끄럽게, 이러는 거야?”
그러나, 그는, 내 말에는 대답 않고, 같은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였다.
“어리석지, 어리석어.”
나는, 나와 아내와 사이에 누워,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일영이가, 혹은, 놀라 잠을 깰지도 모를 것을 도무지 상관 않고, 제법 큰 소리를 내었다.
“뭬, 어리석어?”
그러나 아내는 나의 험악한 표정에도, 격렬한 어조에도, 위압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럼, 어리석지 않어? 그때, 내용증명 받는 길루, 직접, 그 사람을 찾어가 봐야 옳을 일이지, 그 망헐 애꾸녀석은, 왜 또 가보는 거야?”
“온, 조런 소견 좀 봐. 결과만 가지구 얘길 허면 으떡허누? 그때 사정이, 애꾸를 봐야만 허게 되지 않었어? 내가 그렇게 말을 허니까, 저두 역시 그러는 게 옳겠다구 그러구서…….”
“허지만 애꾸한테 갔다 온 뒤에두, 내가, 직접, 전주를 찾어보라구 안 그랬어? ―그랬건만, 자기가, 찾어볼 필요 없다구…….”
“그래, 찾어봤더면, 무슨 뽀죽헌 수 있었나? 애꾸 땜에 이런 문제 생기긴 일반이지.”
“으째 일반이야? 그랬더면 이월달 치는, 온, 으쩌는 수 없다 허더래두, 삼월달 한 달 치는 떼멕히지 않는 거 아냐? 우리가 내용증명 받었을 땐, 아직, 애꾸한테 삼월달 치를 내주기 전이니…….”
“…….”
“온, 남자라구, 그런 거 하나 요량해서 똑똑히 믓 허구…….”
아내는 가만한 한숨을 토하였다.
“글쎄, 염녜 말어. 일이야 어떻게 됐든, 우린, 조끔두 잘뭇헌 게 없으니까…… 멀쩡허게 다시 물어 노랄 놈은 누구구 그런다구 물어 놀 놈은 누구야?”
“…….”
“하여튼, 아무 염녜 말구 어서 자우. 그 짐방꾼 겉다나 허는 자가 심부름으루 와서, 우리 행랑것보구 허구 간 말을, 우리는 또 한번 전해서 들은 게니까, 그걸 가지구, 지금, 뭐니뭐니 헐 게 도무지 없는 일이거든.”
“…….”
“하여튼, 내, 낼, 신당정엘 가서, 직접 그 사람을 만나 가지구 자세 얘길 들어 볼 테니…….”
“영수증, 가주가야 안 허우?”
“아암, 가주가야지. 하여튼, 내, 잘 처릴 헐 테니 당신은 아무 염녜 말구, 내일, 아이 데리구 유치원이나 갔다 오우. 이러한 처지에, 아이 유치원 보낸다면, 남은 웃을지두 모루지만, 보내 주마구 전버텀 약속두 했구, 옷두 오늘 새루 샀겟다, 내일 데리구 가기만 허면 그만인데, 그까짓 애꾸놈이 돈 떼먹었다구, 우리 허려든 거 뭇 헐 거 뭐 있겠수?”
아내는 그 말에는 대답 없이,
“온, 망헐녀석, 그 동안 다달이 물어 오기만두 뼛골이 다아 빠졌는데, 한번 문 걸, 다시 또 물래?”
하고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나는, 사실은, 꼭 자신이 없었으나, 그래도 이 경우에 말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물란다구 우리가 꼭 물어야 헐 까닭이 어디 있겠수……? 내, 낼, 가서, 모든 일을 무사허게 해놓구 올 테니, 어서 그만, 잠이나 잡시다.”
아내는, 그래도 좀처럼, 잠을 청하려고는 하지 않고 얼마 동안, 아무 말이 없이 자리에 반듯이 누운 채, 천장만 멀거니 쳐다보고 있더니,
“하여튼, 그놈의 애꾸녀석을 믿기가 불찰이지.”
하고, 나에게 대한 비난으로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의 한탄 비슷이 한마디 중얼거렸다.
생각하여 보면, 사실, 아내의 말마따나, 섣불리 그 애꾸놈을 믿은 것이 우리의 불찰이라면 불찰이겠으나 그보다도 먼저, 좀더 근본을 캐어, 우리가 이처럼 곤경에 빠지게 된 참말 원인을 찾는다 하면, 결국은, 나 같은 주제에, 가진 돈도 없이, 그처럼 집을 지은 것이 아주, 크나큰 잘못이었던 것이다.
원래가, 기유생(己酉生) 십이월 초칠일 미시(未時)인 사람은, 결코 큰일을 경영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필시 따르는 마귀들이 적지 않으리라고, 내가 수년 전에 본 관상론 총평(觀相論總評)에는 적확하게 그러한 말이 적히어 있었는데, 대체 어쩌자고 집 같은 것을 지으려 들었는지,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알아낸다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러지 않아도, 흔히들 이르기를, 죽을 수가 든 해에 집을 짓는다고 한다. 자기 돈 가지고 자기 집 짓는 데도 죽을 수를 때우는 것으로 치는 터에, 빚 얻어 가지고 짓는 집이야, 무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야, 나도, 그처럼 빚을 얻어 집을 짓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무모한 짓인 것쯤, 짐작 못 한 바는 아니지만 몇 해 동안 처가살이를 하여 온 몸은, 남유달리 제 소유의 집이 한 채 탐이 났었고, 우연히 어떠한 친구의 권으로, 이곳 돈암정(敦岩町)에다 하나 잡아 놓은 집터가, 산 지 서너 달이 못 가서 산 값의 거의 갑절로 오른 것을 보자, 가난한 아내는 그만만 하여도 적지 않은 횡재니 어서 팔아 버리자고 주장하여 마지않았던 것이나, 나는 그러면 또 그런대로, 그처럼 잠시 동안에 시세가 갑절이 된 터전을 그대로 남을 내어주기가 새삼스러이 아까워져서, 이것은 그럴 것이 아니라, 기어코 내 손으로 집을 한 채 지어 놓고야 말리라고, 물론, 아무 믿는 구석이 있을 턱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러한 비상수단이라도 취하기 전에는 언제 바로 내 집이라고 하나 지녀 보고 살겠느냐고, 매월 치러야 할 이자의 이삼십 원쯤은, 셋집을 얻어 든다 하더라도 우리가 마땅히 다달이 내어놓아야 할 액수의 돈이 아니겠느냐고, 한번 말을 꺼낸 이상에는 좀처럼 남에게 양보를 하려 들지 않는 나의 지나친 고집은, 어느 누구보다도 내 아내가 잘 알고 있는 터이라, 그래, 그 턱없는 계획에, 그는, 좀더 반대의사를 표시할 것을 단념하여 버리기는 하였던 것이나, 그래도 종시 버릴 수 없는 것은 그의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는 불안하고 또 미심쩍은 생각이어서, 대체, 그렇게 지내다가 이자를 제때에 못 내어 가는 경우에는 어찌할 터이냐고, 물론, 은행이나 조합 같은 데서는 개인에게서 얻어 쓰는 돈과는 달라서, 그 이자가 비교도 안 되게 싸기는 하다지만, 구 대신, 들여놓아야 할 돈을 제때에 들여놓지 못하는 때에는, 개인은 오히려 사정을 더러 보아 준다지만, 그러한 곳에서는 도무지 털끝만치도 용서가 없다지 않느냐고, 아마도 나의 장인 되는 분이, 그의 사위의 하겠다는 일이 아무래도 미덥지가 못하여서, 저녁 식탁에서라도 입 밖에 내어 한 듯싶은 말을, 아내가 바로 저 혼자서 궁리나 하여 낸 듯싶게 내 앞에 늘어놓았을 때, 나는, 그러한 것은, 이미, 나도 짐작하고 있는 터이라고 그러나 그 경우에는 곧 집을 내어놓으면 그만일 것이라, 그야 매간(每間)에 칠백 원 팔백 원씩이나 하는 명륜정(明倫町) 같은 동리와는, 우선, 지리적으보 함께 칠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들고 나더라도, 설마하니 육백 원이야 못 받겠느냐고, 만에 하나도 낭패는 없을 터이니 두고 보라고,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한다는 말이, 아내에게보다도 내 귀에 면저 솔깃하게 들리어, 사실을 말하자면, 그때까지는 돈 주선도 뜻 같지는 않아서, 무어, 꼭, 건축에 착수하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처렴 내가 하는 말을 내 스스로 듣고 보니, 만약에 이때를 타서 한번 단호한 결단이 없고 볼 말이면, 내 팔자는 영영 망치고야 말 듯만 싶어, 그래, 나는, 그 뒤부터는, 대체, 누가 무어라거나 결코 들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아는 이가 소개하여 준 한 청부업자에게 그대로 일을 내어맡기고야 말았던 것이다.
당시에 나의 수중에 준비되어 있던 돈은, 전 공사비의 삼분 일(三分一)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므로, 우선, 청부업자는 두말하지 않고 일을 시작하여 주었다.
상량시(上梁時)에 건네어 주기로 한 다시 삼분 일의 공사비는 팔방으로 주선한 끝에, 두 푼 오 리나 주기로 하고, 사사변을 얻어다 어김없이 갖다가 바쳤다.
이제 남은 문제는 준공과 동시에 그에게 내어 줄 마지막 삼분 일의 공사비인데, 그것은 나의 본래부터 예산이, 집이 거의 다 될 임시하여, 그 거의 다 된 집을 그대로 은행이나 조합에다가 집어넣고서, 더도 말고 전 공사비의 삼분 이 정도의 돈을 끌어내어, 절반은 이를 청부업자에게 주고, 다시 절반은 이를 먼저 얻어 쓴 사사변 청산에 충당할 작정이었다.
공사는 별 지장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거의 매일같이 동소문(東小門) 고개를 넘어다니며, 처음에는 멀쑥하니 빈 기둥만 우뚝우뚝 서 있던 것이, 차차 기와를 잇고 벽을 치고 하자, 하루하루, 제법 집 모양을 갖추어 가는 꼴이, 보기에 하도 신통하고 또 재미스러워, 그만, 나의 관상론 속에, ‘대사(大事)를 막영(莫營)하라, 수마불소(隨魔不少)니라’ 하는 글귀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설혹 나의 본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관상쟁이를, 정녕, 영(靈)하다고 할밖에 없는 것이, 오죽하여야 죽을 수에다가 견주기까지 하는, 그러한 크나큰 일을 경망되이도 시작한 까닭으로 하여 나는 갖은 곡경을 다 치르게 되고야 말았다.
나의 뒤를 따라다닌다는 마귀는, 우선, 집이 거의 준공될 임시하여, 나보다 한 걸음 앞서, 온갖 금융기관으로 달려가, 그 대부계(貸付係)의 창구멍들을 막아 버렸던 것이다. 그야, 근래 와서, 은행이나 조합에서 돈을 잘 돌려주려 않는다는 말은, 나도 이미 공사 전에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다. 그러나 ‘잘’ 돌려 주지 않을 뿐이지, 아주 ‘안’ 돌려주는 것은 아니요, 또, 전에 오천 원 보던 것이면 한 사천 원밖에 안 본다든지, 그렇게 방침이 변한 것뿐이라는 바로 모은행 대부계에 있는 한 친구의 말에, 나는 사천 원만 얻어 쓰면 고만인 노릇이라 마음 턱 놓고 공사에 착수하였던 것이,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어떻다고, 마루까지 다 짜놓고, 이제 창호(窓戶)만 달면 그만인, 바로 그때에 가서, 모든 금융기관은 내 앞에 굳게 문을 닫아걸고 말았다.
갑자기 당황하여, 사면으로 돌아다니며 비럭질을 하다시피 하여서 푼 육 리에 사사변을 또 얻어다가, 가까스로 청부업자에게 끝전을 치르고 나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랬다고, 갖은 구차스러운 짓 다 해서 된 집이기는 하여도, 그렇기 때문에 애착은 한층 더 강하여, 이렇든 저렇든, 이것이 분명 내 집은 내 집이렷다 하고, 곁방살이에, 늘, 자리가 군색하던 몸이, 갑자기 칸살 넓은 이 간짜리 안방 아랫목에도 누워 보았다가, 앞뒤가 툭 터진 사 간 대청 한복판에도 앉아 보았다가, 그래도 내다보는 경치는 사랑이 제일이야 하고, 바깥채에도 나가 보았다가, 도무지 안절부절을 못하고 나중에는, 그리 넓지도 않은 뜰 안을 갈팡질팡하였던 것이나, 한 머리는 푼 육 리, 또 한 머리는 두 푼 오 리, 두 머리 합하여 본전만 사천 원이 넘는 빚의 본전은 좀 천천히 갚기도 한다손 치더라도, 그 이자만도 다달이 적지 않은 것이어서, 내가 가만히 속으로 암산을 하여 본 결과에 의하면, 이 상태로 한 일년만 지내고 본다면, 암만 잘 받고 이 집을 팔아 버린다 하더라도 별로 떨어질 돈이 없기는 고사하고, 까딱 잘못하였다가는 들여놓은 본전도 성하게는 건지지 못할 모양이라, 속으로 자못 당황하였으나, 그래도 애초에 아내가 그처럼이나, 맹렬히 반대하는 것을 완강히 물리치고 오직 나 혼자서 저질러 놓은 일은, 누구보고 하소하기도 난처한 노릇이라, 그래, 나는, 입 밖에 내어서는, 예가 공기 맑고 경치 좋고, 딴은 좋기는 좋지만, 그래도 여름 한철이지, 겨울에는 필시 추울 게라, 우리, 어디 절간에나 간 듯싶게 여름 한철 잘 지내고 가을이나 되거든 그만 집을 내어놉시다, 하고, 그러한 말로, 되도록 가장된 자의 위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한편에, 정작 마음속으로는, 어느 하가에 가을까지 기다리고 있겠느냐, 지금 당장이라도 작자만 나선다면, 한시바삐 그저 팔아 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암만을 받으면 얼마나 떨어지고, 암만을 받으면 어떠한데, 아무리 급하더라도 하다못해 암만이야 받아야 안 하겠느냐 하고, 꿍꿍이셈이 매우 복잡하였으나, 한 달 지나 두 달 지나, 어느 틈에 봄이 다 가고 보니, 여름 들어서서야, 가뜩이나, 무슨 집흥정이 있을 것이랴, 느끈하게 차렸다가는, 정말 가을 안에는 가망이 없을 노릇이라, 암만은 애저녁에 그만두고서, 그저, 암만에라도 좋으니, 작자만 얼른 나서지라 하고, 내가, 차차 몸이 달 임시하여 정작 나서지라는 작자는 아니 나서고, 아니 나서도 좋을 듯싶은 장마 귀신이 나서 가지고, 억수같이 들입다 퍼붓는 비가, 그대로, 두 달을 계속이다.
그러면, 나를 또 따르는 마귀란 놈이, 이처럼 좋은 기회를 그대로 지나쳐 버릴 까닭이 없는 노릇이다. 집 안, 구석구석이 돌아다니며, 어떻게 작희(作戱)를 하여 놓은 노릇인지, 방 다섯이, 대체, 아니 새는 데가 없다.
장마에 막혀, 어른 아이가 집구석에 박혀 있어야만 되는 집 안이란, 설혹, 의식(衣食)이 족하고 마음에 근심들이 없어도, 자칫, 불화(不和)하기가 쉬운 노릇을, 우리는, 한편 안에서는 물난리를 겪으며, 또 한편, 밖으로는 성화 받히는 채귀(債鬼)들의 무리가 있어, 장마가 계속되는 그 두 달 동안을, 나도, 아내도, 또 어린것들도, 한날 한시 마음에 평화나 기쁨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를 따르는, 그, 악의에 찬 마귀는, 물론, 그것쯤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또, 역시 줄기차게 비 내리는 어느 한 어둔 밤을 타서, 한 명의 도적을 우리의 집 안으로 인도하여 들였던 것이다.
이, 이른바, 설상(雪上)에 가상(加霜)이요, 옹이에 마디라 할밖에 없지만, 우리가 그처럼 지난해에 장마 치르던 이야기는 「음우(淫雨)」라는 소설로, 또 도적맞은 이야기는 「투도(偸盜)」라는 작품으로, 각각 한 번씩 발표한 터이라, 이곳에서는 다시 잔사설 늘어놓지 않겠지만, 하여튼, 그 모든 재앙이 좇아 일어난 바는, 결국, 내가 팔자에 없는 집을 짓기 때문인 것이 분명한 노릇으로, 어느 날, 아내가, 생각난 듯이 나의 관상론 적은 종이쪽을 뒤져 보고,
“올 신수가 이러니 안 그렇겠어?”
하고, 한탄 비슷이 혼자 중얼거리기에,
“어디? 뭐라구 했게?” '
하고, 빼앗아 보았더니, 그곳에는, 정녕 ‘삼십 이년’에는 손재가우(損財家憂)라, 적히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어디, 명년 신수는 어떻게 되어 있나?―하고 그 아래를 보았더니, 그것은 뜻밖에도, 좋은 괘로 ‘삼십 삼년에는 녹득미초(鹿得美草)하고, 신영생남(身榮生男) 하고, 재왕심락(財旺心樂)이라, 나는, 속으로, “원,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그려.”
하고, 중얼거려 보았던 것이나, 마침, 한잠 자고 깬 일영이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있던 아내는,
“뭐? 생남이라구……? 아이, 또 아이야?”
하고, 한번은 쓴웃음도 지었으나, 다음에 즉시 떠름한 얼굴을 하고,
“뭐, 믿을 수 있나? 이런 건, 으레, 흉헌 말은 잘 들어맞어두, 좋은 말은 안 맞는 법이니까…….”
하고, 홱! 종이쪽을 팽개쳐 버리는 것을 보면, 명년에도 행운은, 결코 바랄 수 없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언제든 인생에 실망하여서는 안 된다. 설혹, 그것이 부질없는 노력으로 그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들의 행복을 위하여, 끊임없는 분발이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하여 가을 안으로 집을 팔아 부채를 청산하고, 좀더 건전한 생활의 설계를 하여야만 한다.
나는, 지리한 장마가 마침내 걷히자, 곧, 밖으로 나가, 다시 복덕방 늙은이들을 찾아보고 만약 그들로서 나의 집을 팔아 주는 데 정성만 보인다 하면, 나는 정한 구문(口文) 밖에 또, 술값을 아끼지 않을 것을 언명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부질없는 일이라, 할밖에 없는 것이, 요즈음의 장안 사람들은, 분명히, 집을 산다는 것에 흥미를 잃고 있는 모양이어서, 내가 그처럼이나 기대를 크게 가지고 있던 가을 들어서서도, 도무지 누구라 한 사람, 우리집을 보러 오는 이가 없었다. 나는 불안하고 초조하기가 한이 없었으나, 그러하기는 나의 두 명의 채권자도 일반이었다. 그들은 좀처럼 우리집이 팔리지 않는 것을 보자, 부썩, 더 극성스러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나는 그들을 무턱대고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둘이 다 나와는 약간의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고, 약간의 안면이 있었음으로 하여 ‘특별히 사정을 보아서’, 아무 담보도 없이, 그처럼, 나에게다 돈을 돌려 주었던 것은 확실히 그들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사이 그들은 나에게서, 한 달 치나, 혹은, 두 달 치, 겨우 그밖에는 더 안 되는 이자를 걷어들이는 것에 성공하였을 뿐인 것이다.
나와 같은 위인에게 담보도 없이 돈을 융통하여, 준 것이, 얼마나 경솔한 짓이었나?---하는 것을, 그들은 요즈음 와서, 절실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나는 박군이야, 물론, 믿지. 믿지만, 매양, 사람이 어디, 거짓말을 하나? 돈이, 똑, 거짓말을 시키지.”
하고, 그러한 말조차 그는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곧, 거리로 나갔다. 이미 집을 파는 것에 성공하지 못한 나는, 이제 집을 잡히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세상 일이란 함부로 예측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어서, 혹은, 내일 모레로라도 난데없이 작자가 나타나서, 나의 집을 사겠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단지, 그 며칠을 더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구문에 이자에 대서 비용에 수백 원을 손(損)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설혹, 그것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나는 내일 모레까지 기다리는 수가 없었다. 나는 오늘 당장 그네들에 대한 나의 부채를 청산하여야만 한다. 이제 하루라도 더 돈으로 하여금 나에게 거짓말을 시키게 하여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마침내, 어떠한 사람의 소개로 최모라나 일컫는 브로커와 만났다. 그는 불행히 애꾸이었다. 나는 애꾸 같은 것의 힘을 빌려 국면 타개를 꾀한다는 것이 종시, 마음에 떳떳지 않았으나, 그것은, 또한, 이 경우에 있어, 어찌하는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서 푼 구문, 푼 오 리 이자에 오천오백 원을 얻어 쓰기로 하고, 구월 그믐날 밤, 나는 권리서(權利書)를, 그는 지폐 뭉치를, 각기,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깊이 간수하고, 우리는 상왕십 리정(上往十里田丁), 어느 조그만 대서소에서 만나 한 장의 ‘차용증서’를 작성하였던 것이다.
나의 새로운 채권자는, 도변모(渡邊某)라는 사람으로, 신당정이라면 바로 지척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태여 그곳까지 나와 채무자인 나를 만나 보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나에게 있어서도 다행한 일이었다. 애꾸요, 또,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 최모 앞에서만도, 그처럼 비굴하고 자신이 없는 나는, 정말 채권자요, 또, 절뚝발이도 곰배팔이도 아닌 도변모와 서로 대할 때, 대체, 얼마나 딱하고, 또, 변변치 못한 꼴을, 남들에게 보여야만 할 것이냐? 그것은 어떻든, 선변 떼고, 구문 주고, 인지대, 대서비용, 모두 제한 나머지, 오천이백 원도 옳게 남지 못한 돈을 품에 지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마음에 가득한 것은, 육 개월 뒤에 갚기로 되어 있는 오천오백 원의 본전보다도 오히려, 당장 내월부터 다달이 치러야만 할, 이자―팔십이 원 오십 전에 대한 걱정이었다.
‘세월은 빠르다’―하고, 그것은 예부터 이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다아 한결같이, 한 번씩은 중얼거려 본 말이겠지만, 아마, 그것을 나처럼 절실하게 느껴 본 이가, 달리 또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날은 정하지 않고, 그저 되는 대로 만들어서, 내 편에서 갖다가 주마 하고, 그렇게 말하였어도 애꾸는 결코 듣지 않고, 돈암정에는, 또, 일수(日收)를 주어 놓은 곳이 있어, 자기는 그러지 않아도 매일, 동소문 밖을 드나드는 터이라, 달에 한 번씩, 자기가 몸소 이자를 거두러 내게까지 나오겠노라 주장하여 마지않았다. 어차피, 집을 잡혀 돈을 얻어 쓴 이상에는, 다달이, 어김없이, 그 이자를 치러 가야만 할 것쯤은, 나도 이미 각오하고 있었어도, 그것을 언제든 일정한 날에, 준비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자못 불안한 노릇이었으나, 나는, 역시, 그의 의견을 존중할밖에 없었다.
그는, 달에 한 번씩, 매월 초하룻날, 내게를 들르겠노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약속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달에도 몇 번씩, 혹은 열흘만큼씩, 혹은 보름만큼씩, 우리집에를 드나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때마다, 준비하여 두었던 한 달분의 이자를, 또박또박, 그에게 내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달에도 두 차례씩, 세 차례씩, 우리집에를 드나드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으나, 또 한편, 그가 나를 찾는 날이면, 언제고, 일력이 초하루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도, 역시, 엄연한 사실이었던 까닭이다.
나는,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하였다. 언제까지든 이러한 방식으로만 살아간다 하면, 나는, 앞으로 삼십 년을 더 살아도, 남의 십 년이나 십오 년 폭밖에는 안 될 것이 아닌가?―하고. 그리고 나는, 다시 가만히 한숨지었다. 십 년말고, 단 일년이라도 그것은 하는 수 없는 일이겠으나, 나의 삼십 년을 가지고, 남들의 일년과 맞비겨 떨어뜨린다 하고라도, 그것이, 과연, 참다운 생활일 수 있을까?―하고.
그것은, 사실, 참이고 거짓이고 간에, 애초에, 한 개의 생활이라 할 수 없었다. 애꾸에게 내어 줄, 팔십이 원 오십 전의 돈을 마련한다는 것이, 그달 그달 나의 생활의 전부이었고, 또, 오직 그뿐인 것이다.
이 땅에서 글을 써가지고 살림을 차려 본다는 것은 거의, 절망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건만, 그러나 나에게는 글을 쓴다는밖에 아무 다른 재주도 방도도 없었으므로, 아내의 눈에도, 딱하게, 민망하게, 또 가엾게까지 보이도록, 나는 나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 밤낮으로 붓을 달렸다. 내가 다달이 벌어들인 돈은, 예전 같으면 우리 살림에 쓰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으나 애꾸에게 이자를 치르기 위하여서는, 그것이 오히려, 부족한 금액이라 알 때, 니―보다도 아내가, 먼저, 그리고 좀더, 풀이 죽었다.
‘우리에게 빚만 없더래두…… 다달이 팔십이 원 오십 전씩, 내는 것만 없더래두…….’
우리들의 살림살이는, 얼마나 재미날 수 있을 것인가?―하고, 툭 하면, 아내는, 그러한 말을 뇌고 뇌고 하였다.
그러한 경우에, 남편 되는 사람까지, 그 의견에 찬동하고, 그리고 함께 인생을 서러워한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너무나, 딱하고, 또, 서글픈 정경일 것이다. 그래 나는, 나 자신, 입술을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억제하고, 곧잘, 웃음조차 입가에 지어 웃으며, 그에게 일러 주었다.
“어디, 팔십이 원 오십 전이라는 돈이, 그게, 그대루, 다아, 우리가 억울허게 치르는 둔이겠수? 설사, 은행이나 조합 같은 데서 우리가 둔을 얻을 수 있었다손 치더래두, 이자루, 한 삼십 원씩은, 안 치르군 못 배길 게라…… 그렇게 따져 본다면, 우린, 그저 한 사오십 윈, 다달이 손을 보는 폭밖에 안 되지 않수?”
그러나, 설혹,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경우에 마땅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아내에게 털끝만치도 위안을 주는 것이 못 되었다. 아내에게는 고사하고, 우선, 그러한 이치를 발견하여 낸, 나 자신에부터 그러하었다. 오직, 한 달이나 그밖에 더 안 되는 시일의 이르고 늦음으로 하여서, 우리는, 마침내 은행이나 조합을 이용 못하고, 이처럼 사사변을 무느라, 골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종시, 우리들의 마음을 애달프게 하여 주었다. 8,250과 5,000과 사이에는, 다만 숫자상으로 약간의 차이가 인정될 뿐이지, 우리로서는 그 억울하기란 매일반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초하루를 앞서서, 돈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는 좋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하여 보아도 그 정한 기일까지에 돈 마련이 안 되는 때, 나는, 내가 생각하여도 못나고 변변치 못하게끔, 불안하여하고 또, 당황하여하였다. 물론, 몇 달 치가 밀렸다는 것이 아니다. 또박또박 선변으로 치러 오는 터이니까, 나는 한 달쯤 거른다하더라도, 애꾸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 것이었다. 또, 설혹, 기한이 좀 지났다손 치더라도 수금하러 오는 사람, 한두 번쯤 허행시키기란, 으레 있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나는, 그러한 인물을 상대로, 구차스러운 소리를 하기가 싫었다.
그래, 나는, 정월 그믐을 하루 앞세워 놓고 이월 치는 이월 열흘날 받아 가라고, 그에게 속달을 띄웠던 것이다.
그는 내가 오라고 한 날 오지 않고, 그 이튿날 들렀다. 그리고, 그는, 내가 그처럼 속달을 띄워, 저로 하여금, 추운데 허행을 하지 않게 한 조처를, 매우 잘한 일이라 칭찬한 다음에, 이후에도 또 그처럼 정한 날짜에 돈 마련이 안 된다 하면, 그때에도 이번처럼 기별을 하여 주었으면 매우 좋겠다, 말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비록, 한 장의 엽서 위에서라도 나의 구차한 꼴을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 삼월 치는 전이나 한가지로 그달 초 하룻날 하여 주려 노력하였던 것이나, 역시, 모든 일은 뜻과 같지가 않았다. 나는 이월 그믐날 속달을 그에게 띄워, 이번에도 요전 달처럼, 열흘날 받으러 오라 말하고, 그 열홀에도 돈 될 가망이 없을 때, 나는, 아흐렛날, 다시 속달로, 스무날까지의 유예를 신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참으로 뜻밖이었던 것은, 내가 이미, 이월 치의 이자를 준비하여 놓고 있던 삼월 열여드롓날 신당정의 주민 도변모가, 나에게 난데없는 내용증명의 우편을 보내 온 사실이다. 받아 들 제, 이미, 놀랍고 또 불쾌하였던 나는, 그 내용을 보기에 미처, 다시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정녕, 선변으로, 이미 오래 전에 치렀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향하여 어인 까닭으로 일월부터 이자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냐?―힐문(詰問)하고, 만약, 변제기일인 소화 십육년 삼월 삼십일까지에 내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때에는 매우 유감이나마 경매수속을 취하겠으니 그리 알라고, 또 이제부터는, 이자거나 본전이거나 치르려거든 자기 집에까지 와서 치르라는 것이었다.
내가,
“흥!”
하고, 가만히 코웃음치고서, 편지를 방바닥에 내어던지자,
“뭐라고, 그랬수?”
하고, 의아스러이 나의 얼굴을 쳐다본 뒤에 제 자신 그 내용을 한번 살피어본 아내는,
“뭐? 일월버텀 이잘 안 냈다구……? 경매 수속을 허겠다구……?”
우선, 놀라고,
“왜, 또박또박 냈는데 딴 수작이야? 너무 잘해 주니까 이러나?”
하고, 분개함을 마지않으면서,
“어서 좀 가서, 단단히 따지구 오우. 참, 사람이 운수가 사나우려니까…….”
하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침내 이 집을 빼앗기고 말지나 않을까 싶게, 아내는, 그 마음에 근심이 적지 않은 모양이었으나, 그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내가, 오직, 미간만 잔뜩 찌푸리고 앉았었다고, 그가, 나도 같은 염려를 하고나 있는 줄로 알았다 하면, 그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정녕코, 치른 이자를, 자기가, 아직도, 받지 않았다 하면, 그것은, 중간에 든 애꾸 농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도변모에게 일월분, 이월분의 영수증을 보여, 내가 의무이행에 있어, 털끝만치도 소홀함이 없었다는 것만 증명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는, 나에게 보낸 서신 속에서, 분명히, 내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경매 수속을 취하겠노라 하였고, 나는, 이미, 나의 의무를 어김없이 이행하였던 것인 까닭에, 우리는 그 점에 관하여서는, 조금도, 겁을 내거나 불안해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이 극도로 우울하였던 것은, 용무의 성질의 여하를 막론하고, 내
일이라도, 즉시, 그 도변모라나 하는 위인을, 내가 심방하여 보아야만 된다는 일이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본다는 것은, 혹은,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지 모르나, 나에게는 남달리 그것이 심하였다. 더구나 나는 그 미지의 인사(人士) 앞에, 한 개의 채무자로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요, 그것은 자진하여서가 아니라, 저편에게 강요받고서이다.
“아마, 그 애꾸녀석 이, 필연쿠, 짤러먹구 달아난 모양이지?”
아내는 나의 기색을 살펴보며 다시 한마디 하였다. 그것은, 이 경우에, 가장 당연한 추측일 것이나, 그것이 그대로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는 아내와 더불어,
“온, 그 망헐녀석이…….”
하고, 애꾸를 욕하고, 또, 미워할 의사는 없었다.
그야, 나로 하여금, 그처럼 우울한 심방을 나서야만 하게 한 점에 있어서, 나는, 애꾸의 소행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나, 그 점만 제외하고 본다면, 한번, 나의 손을 떠난 돈이 그에게 의하여 어떠하게 처분이 되거나, 나는, 조금도 아랑곳할 것이 못 되었다. 그보다는, 자세한 사실을, 한번, 알아보려고도 안 하고, 댓바람에, 나에게다 대고 그러한 무례한 서신을 보내어, 나와 나의 아내의 마음을, 비록 한때나마, 어둡게 하여 놓았다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그 도변모라는 자를 괘씸히 생각하였다.
내가 그 도변모에게서 돈을 얻어 쓴 뒤로, 이미, 그 사이, 육 개월의 시일이 경과되었던 것이나, 나는 한 번도 그를 만나 본 적이 없어, 그래, 그와 불유쾌한 회견을 하루 앞두고, 속칭 종유동형(鐘乳洞型)으로 벗겨진 머리와 새앙쥐처럼 교활한 두 눈과, 악지세게 삐죽이 앞으로 내민 주걱턱과, 그리고 들창코 위에 위태스러이 걸리어 있는 금테안경 등속으로, 내가 가장 유형적인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면모를 눈앞에 그려 보고, 은근히 홍분을 금치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한, 어찌하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과연, 내일, 도변모를, 먼저, 찾아보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 전에, 우선, 애꾸부터 찾아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 것인가? 하고.
나는, 역시, 도변모를 만나기 전에, 이미, 낯이 익은 최모부터 찾아보고, 우선 자세한 이야기를 그에게 들어 보는 것이 옳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이미, 도변모가 그러한 내용의 편지를 나에게 보낸 이상, 그 사이에 아름답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에 틀림없으리라고는, 나도 엊그제 짐작 못 하는 바가 아니지만, 역시 우리는 언제고, 사건의 진상을 확실히 파악한 뒤에 행동하여야 마땅할 것이었다. 사건은 단순한 배임횡령(背任橫領)에 그치지 않고, 설혹, 그것에 틀림 없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 나는, 도변모를 만나 보기 전에, 먼저 최모를 찾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결코, 단순히, 위에서 말한, 그 이유만에서가 아니었다. 나는, 최모의 죄상이 역연한 것이 있어, 털끝만치도 이를 용대(容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 자신, 확실히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는, 섣불리, 그를 괄시하여서는 안 된다 하고 깨달았던 것이다.
어떠한 마지못한 사정이 있어, 그는 아직까지, 나에게서 받은 돈을, 미처, 도변모에게 전하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도변모는, 단지, 그에게서 돈이 돌아 들어오지 않은 이유만으로, 나에게 그러한 편지를 부치었던 것이지, 실상은, 아직도 그 최모를 신임하기,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때 내가 불쑥 도변모를 보고, 애꾸에게서 받은 영수증을 제시한다 하면, 그는, 응당, 나의 앞에서, 그 체면이 적지않이 손상될 것이요, 그래, 그는 그 앙갚음으로, 애꾸를 불러다가, 좀 도에 넘치는 문책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결과로…….’
그 결과로, 애꾸는 또 애꾸대로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서, 어떠한 보복수단을 강구할지도 모르지 않느냐? 하고 생각하면, 나는, 역시, 애꾸를 먼저 찾아볼밖에, 달리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애꿀 괄세헐 수 없지, 괄세헐 순 없어.’
나는, 만약, 애꾸로서 나에게 감정을 품고, 도변모를 충동이어, 정말 우리집을 경매 처분에 부치려 들면 들 수도 있는 일인 것에 불안을 느끼고, 이튿날, 부리나케 상왕십리정으로, 그 최모를 찾아갔다.
나의 취한 행동은, 역시, 옳았다 할밖에 없는 것이 정작 최모는 출타하고 없었으나, 대신, 문간까지 나온 그의 아내 되는 젊은 여인은, 나의 찾아온 뜻을 알자, 순간에 얼굴을 붉히고, 그것은 도무지가 자기네의 잘못이었노라고, 만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우리에게서 받아 간 이자를 먼저 급한 데 쓰고, 미처 그에게 들여놓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나, 그래도, 그러한 일은 전에도 몇 번 있었던 터이요, 그만한 사정은 피차에 알아줄 만한 사이면서도, 이번에는 특히 차용증서의 변제기일이 임박한 관계로, 그래, 그 사람이 자기네들에게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려고도 안 하고, 그러한 편지를 띄웠던 것에 틀림없다고, 바로 어제 그의 집에 갔다가 그 사실을 알고, 우리에게 대하여 여간 미안쩍고 또 송구스럽지가 않았노라고, 그러지 않아도, 오늘이라도, 곧 찾아가서 사죄를 하려 하였으나, 바로 내일이 이자 받으러 오라는 날이어서, 그래, 내일, 겸지겸지해서 가려던 차이었다고,
“이랬든저랬든, 저희 잘못입지요. 저희가 말없이 썼다구, 전주가 그처럼 댁에다 직접 대구 그럴 줄 알었다면, 벌써 찾어보구 얘기를 해 두는 걸, 그걸 누가 알었나요. 아이, 여간 미안헌 일이 아닙지요.”
하고, 최모의 아낙 되는 사람은 몇 번씩이나, 진정으로 미안쩍은 빛을 얼굴에 나타내고, 나에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나로서는 하여튼 도변이라는 사람에게서 그러한 편지를 받았으니까, 한번 찾아보든, 혹은, 서신으루래도 회답을 허든, 경우가 그래야만 헐 노릇인데·…….”
하고, 내가 물은 말에 대하여, 그는, 즉시 정색을 하고,
“그야, 물론, 댁에서 생각허셔서, 자유루 허실 일이겠습죠.”
하고, 우선은 말하였으나, 다음에, 약간 얼굴조차 붉히고, 제법 말하기 거북한 듯이 잠깐 망설거리다가,
“허지만, 제 생각 같애서는, 도변이를 만나 보신다 허더래두, 저희 애아버지와 같이 가셨으면 좋을 것 같은뎁쇼…… 물론, 지금이래두, 혼자, 가셔서 만나시겠다면, 저희루서는 마시랄 수는 없는 일입죠마는…….”
하고, 나를 살짝 곁눈질하였을 때, 나는 두말없이 그의 의견을 좇기로 하고,
“헌데, 또 한 가지, 이자거나 본전이거나, 앞으룬 자기 집까지 갖다가 달랬는데, 그럼, 이제부터는 그렇게 허기루 헐까요?”
하고, 내가 다시 한마디 물은 말에 대하여,
“그것두 처분대루 허세요. 허긴, 어제, 도변일 만나 얘길 했더니, 앞으루두 저희더러 받어다 달라기에, 내일 댁까지 가려구 했습니다마는, 직접 갖다 주시든, 전대루 저횔 주시든, 그건, 생각대루 허세요. 돈암정엔 일수 줘둔 데가, 있어서, 매일 나가는 터이니까, 댁에서 일부러 예까지 나오시지 않더래두 좋겠습죠만…….”
하고, 그는, 한번 신용을 잃은 사람의 구할 길 없는 비굴한 표정으로, 힘없이 말하기에, 나는 또 주저하지 않고,
“도변이두 그렇게 말을 했다죠? 그럼, 약속대루 내일 나오십쇼. 내, 해뒀다 드릴 테니…….”
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던 것이다.
이튿날, 약속대로 저편에서 이자를 받으러 왔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까지나 한가지로 애꾸가 아니라, 애꾸의 여편네로서, 그는, 나의 아내가 이끄는 대로, 방으로 들어와 앉자, 즉시,
“어제 저녁때, 밖에서 들어오시자, 즉시 댁에서 댕겨가셨단 말씀을 여쭈었습죠. 그랬더니, 여간 미안허게 되지 않었습니다구…… 허지만, 도변이한테 자세 얘길 했으니까, 일부러 찾어보실 것까진 없구 그저 편지래두 한 장 허시려건 허십시사구요.”
하고, 나와 아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왜, 인젠, 바깥양반이 받으러 오시지 않나요?”
하고, 나의 아내가 미심쩍게 물은 말에 대하여, 그는,
“네, 인젠, 어디구, 제가 이렇게 댕기기루 되었답니다. 벌써, 달포나 거운 되는뎁쇼.”
하고 말하고,
“그럼, 밖에선, 달리 무슨 바쁜 일이래두 생기셨나요?”
하고, 내가 물은 말에 대하여,"
“바쁘시긴요……? 그냥 집 이서 놀구 기시죠.”
하더니, 그는, 곧, 그 뒤를 이어, 그것은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구태여 입 밖에 내어 가지고, 말 안 하더라도 좋을 성싶은 것을,
“매일, 집에서 놀구만 기시답니다. 근래는, 작은마나님 재미에, 아무데두 안 나가시구…….”
하고, 바로, 입조차 한번 삐쭉이 내밀어 보이디니, 객쩍은 말을 하였다고, 별로, 뉘우치는 빛도 없이, 그 커다란 궁둥이를 연해 좌우로 흔들며, 그는, 돌아가 버렸다.
그가 돌아간 뒤에, 나와 아내는, 잠깐 동안, 서로 마주 바라보고 웃었다. 범죄의 이면에는 계집이 숨어 있다더니, 딴은 옳은 말이었다. 나는, 애꾸가, 그래, 작은마누라를 얻었으면 얻었다 치고, 그 재미에 요즈음은 바깥 출입도 별로 안 한다 하니, 재미가 있으면, 그까짓 것들이, 얼마나 있을 것이냐?―하고, 코웃음을 치다가,
“그놈이, 그럼, 바루 우리게서 받어 간 일백육십오 원으루, 그렇게, 첩을 얻어들였구려.”
하고, 그러한 말을 한마디 하고는, 다시, 아내와 더불어, 또 한 차례를 웃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꾸, 제가 첩을 얻었거나, 계집질을 하거나,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구태여, 강짜를 할 까닭도 없는 일이었으므로, 우리는 다시 두번 그것을 화제에 올리지 않기로 하고, 나는 아내가 권하는 대로, 즉시, 도변모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는, 이미, 최모에게서 들어 알고 있을 줄 믿지만, 나로서는, 일월분은 일월 십일에, 이월분은 이월 십일에, 삼월분은 삼월 이십일에, 각각 틀림없이 최모에게 전한 터이니 그리 알라고, 최모는 앞으로도 제가 받으러 오겠다 하는데, 그래도 역시 내가 직접 가져오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물론,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 하여간, 회답이 있기를 바란다고― 나는 그에게 보내는 서신 속에서 그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회답은 며칠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아내는, 그것이 다시 궁금하고, 또, 불안하여, 나에게, 어떻든 도변모를 한번 만나 보고 오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권하여 마지않았다.
나는, 그러나, 그의 의견을 좇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다시 아무러한 회답이 그에게서 없는 것을 보면, 그는 이미 모든 사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록, 문서상에 있어서의 변제기일은 삼월 삼십일이라 하더라도, 내가 이제까지 그처럼이나 성실하게 이자를 내어 온 이상 그는, 이미, 우리집을 경매 처분에 부친다거나 그러할 의사를 버려 버린 것이 분명한 노릇이라고― 나는 아내에게 향하여 그러한 말을, 가장 자신 있이 일러 주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가 그렇게 알고 안심하기를 바랐을 뿐이 아니라, 또, 나 자신도, 그렇게 굳게 믿고 있고 싶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부득이 도변모를 찾아가 보아야만 할 일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적지않이 우울한 사무이었던 까닭이다.
그에게서의 회답은, 마침내, 삼월 삼십일 아침에 이르러도 오지 않았으나, 나는, 그러한 것에 대하여는, 다시 물안한 생각을 품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고, 그날은 오래간만에 종로로 나가, 몇몇 친구와 만나서 같이 술을 마시고,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미 어린것들을 재워 놓고, 제 자신은 자리에 누워 부인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던 아내는, 나를 보자, 즉시 말하였다.
“오늘, 왔에요.”
나는, 마악, 모자를 벗어서 그것을 못에다가 걸려던 손을 멈추고,
“뭬? 편지가?”
하고, 분주히 물었던 것이나, 그것은, 편지가 아니라 사람으로, 그 신당정에서 심부름 온 사나이는, 나의 아내를 향하여, 최모는 이제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니, 설혹, 그가 다시 오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그에게는 돈을 내어주지 말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다달이 우리 편에서 직접 가지고 왔으면 좋겠다고, 그러한 말을 하고 돌아갔다 한다.
“가지구 가마구, 그러지.”
나는, 나의 자리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말하였다.
“가지구 가마구, 그랬죠.”
“그래, 인제버텀은, 애꾸에겐, 주지 말라구?”
“네, 우리 것만이 아니라, 여러 군데서 수금헌 걸, 수천 환이나 되는 걸 짤러먹었다구…….”
사실, 그러한 것이었던가?―그러하다면 삼월분은 결코 그렇게 애꾸 아내에게다 건네어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나는 새삼스러이 그러한 것을 뉘우쳤으나, 구태여, 입 밖에 내어 말하려 하지 않고,
“애꾸한테서 받은 영수징을, 뵈달라진 않습디까?”
하고, 다시 아내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는, 별루, 뵈달란 말은 안 헙디다마는, 내가 볼 톄냐구, 그랬지.”
“응, 그랬더니, 보자구?”
“응, 헌데, 참, 영수징, 어디다 두셨수?”
“어디다 두다니, 당신이 맡었지.”
“내가?”
“응…… 아니, 가만있자, 오오라; 내 양복 안주머니에 들었군.”
“그건, 왜, 거기다 너가지구 댕기슈. 온, 그런 걸 찾으니 있을 리가 있나? 그래, 찾다 뭇해, 사랑에서 어디다 두셨는데, 지금 알 수가 없다구 그랬지.”
“그래?”
“그러니까 제 말이, 보지 않어두 어련허시겠냐구, 하여튼, 앞으룬, 이자 치르려건, 직접 신당정까지, 가지구 나오라구.”
“가지구 나가마구, 그러지.”
“글쎄, 그랬다니까…….”
“영수징을, 당신한테 맽기구 나가는 걸 잘못했군. 그래두, 그자 말이, 보지 않더래두 어련허시겠냐구?”
“응.”
나는 그만하면, 인제는, 그 문제에 관하여, 다시 불안을 갖지 않아도 좋으리라 생각하고, 아주 묻는 김에 한마디 물었다.
“그래, 삼월달 칠, 왜, 또, 애꿀 줬느냐군 안 헙디까?”
“안 허긴, 왜 안 해? 그래두, 내가, 제 말이 전주한테 다아 얘길 했으니까 안심허라구 천연스레 그러구 우리루선 그 사람을 팔세헐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거랬더니…….”
“그랬더니?”
“그랬더니, 제 말이, 그러시겠다구, 그것두 개의치 않으시겠다구, 이제버텀이나 직접 갖다 달라구…….”
“직접 갖다 주마구, 그러지.”
“글쎄 그랬단밖에…….”
나는, 그 동안, 아내에게는 숨기고 있었어도, 역시,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일이 이제는, 완전히 해결을 보았다 생각하고 내일부터라도 마음을 가라앉혀, 밀린 원고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이제는 마음에 꺼리는 일도 없고 하니, 쓰려만 들면 좋은 작품이 써질 것이라고, 오래간만에, 가만한 기쁨조차 맛보았던 것이나, 그로서 오직 이틀이 지났을 뿐인 오늘, 그처럼 도변모가 다시 사람을 우리에게로 보내어, 일월분은 들어왔어도, 이월분, 삼월분은, 자기는 모르는 터이니까, 다시 내라고, 만약에 아니 낸다 하면, 처분을 하여 버릴 터이니 그리 알라고― 그러한 생트집을 잡을 줄은, 우리로서는, 전혀 꿈 밖의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아내가 설영이를 데리고 유치원으로 간 뒤에, 나는, 마침내, 비장한 결심을 하고, 신당정으로 도변모를 찾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거리는 이미 완전한 봄날로, 내가 지나는 길에 전차창으로 흘낏 내어다본 바에 의하면, 이날은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창경원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다. 나는, 사람이란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는 좀더 행복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나 아닐까? 하고 온갖 욕되고 또 시끄러운 현실에서 떠나, 그것이 비록 인생에 있어, 아무리 값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모름지기, 한때의 즐거움을 위하여 계획하고 또 노력하여야만 마땅할 것이 아닌가?―하고, 역시, 그것이 옳은 일이라 굳게 믿어졌던 까닭에, 나는, 나의 오늘의 용무를 생각하고, 좀더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나는 종로4정목에서 차를 내릴까?―하고, 한번은 그렇게 생각도 하여 보았다. 내가 이미 차장에게서 받은 승환권은, 정녕, 황금정4정목에서 왕십리를 바라고 갈아타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나, 나는 꼭 오늘 도변모를 찾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간밤에 아내가 그처럼 늦도록 잠을 못 이루던 것을 생각하고, 또 지금쯤 시험관(?) 앞에 나아가 섰을 설영이를 생각하고, 나는 어떠한 일이 있든, 오늘은 기어코 그를 만나 보아야만 하리라고 다시 한번 결심을 굳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당정 일대의 집들은, 그 호번(戶番)이 차례 바르게 매겨져 있다고는 못 할 것이, 내가 찾는 × × ×번지를 향하여 차차로이 전근되어 가던 숫자는, 중도에서 수십 호의 집을 건너뛰고, 다시 가까스로 옳은 골목을 찾았는가 싶을 때, 그곳은 이미 신당정이 아니라, 상왕십리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솟은 땀을 씻으며, 오늘은 그냥 이대로 돌아가고 내일이나 모레, 다시 나설까? 하고도 마음 한구석에서 생각하여 보았던 것이나, 즉시, 그렇게도 변변치 못한 제 자신을 비웃고, 세 번째, 그럴 법싶은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이번에는 옳았다. 기다란 양회담과 담 사이에 모조석 기둥이 서고, ‘渡邊’이라고 두 자만 쓴 나무 문패가, 향하여 왼편 기둥에 붙어 있는 집을, 나는 마침내 그 골목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잠시 망설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밖에 내객이 와 있다는 것을 그 집 사람에게 알리나? 하는 것이었다. 여섯 자 높이의 두꺼운 널쪽 문은, 손을 대어 밀어 보지 않았어도, 안으로 잠겨 있는 것이 분명하였고, 그 너머로, 수십 주(株)의 상록수 사이에, 그 대부분이 가리어져 있는 한 채의 문화주택은, 문에서부터는 약 삼십 미터나 실하게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살피어보아도, ‘벨’이라든 그러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던 까닭이다. 나는 잠깐 서서 귀를 기울여 보았다. 혹은, 누가 뜰에라도 나와 있는 것이나 아닐지, 인기척이라도 있어 주기를 기다리기 위하여서이다. 그러나 안으로서는 아무러한 소리도 들려 나오는 것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초조하고, 또, 불쾌하였다. 내가 이곳까지 찾아 이른 목적을 달하기 위하여서는, ‘고멘쿠다사이(실례합니다)’를 부르며 문을 잡아 흔들밖에는, 없는 노릇이었으나, 겉으로 잠깐 보기에도, 저렇도록 굳게 닫히어 있는 문은, 정작 흔들어 본대도 별로 큰 소리는 날 성싶지 않았고, 또, 이만저만한 ‘고멘쿠다사이’쯤 가지고는 백 척이나 가까이 떨어진 곳에 있는 그 집 사람들의 주의를 좀처럼 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이곳까지 이른 이상,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결과에 대하여 아무 기대도 갖지 못하며, 우선, 문을 잡아 흔들어 보았다. 예상하였던 바로 그대로, 문에는 굵은 빗장이 가로질러 있는 듯싶어, 덜컥덜컥 하고, 무겁기는 하나마 매우 낮은 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러한 집에도, 나 같은 사람말고, 주인으로서 정작 환대를 하여야 할 객의 심방(尋訪)이 더러는, 있을 일이었겠는데, 이 도변모는, 그러한 사람에게 대하여서도, 언제든 이렇게 굳게 문을 닫아걸고 백 척이나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기고서 태연할 수 있는 것일까?―하고, 나는 잠깐, 그러한 것을 속으로 괘씹하게 생각하려 ’들었던 것이나, 그것은 전혀 객쩍은 걱정으로, 이제까지 그 안의 어느 구석에 잠복하고 있었던 것인지, 멍! 하고 짖는 개와, 컹! 하고 개가 서로 앞을 다투어 달려와서는,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향하여 언제까지든 소리를 높여 짖는 것이었다.
딴은, 이러한 방법도 있었던 것인가, 초인종 같은 것은, 때로, 그 장치에 고장을 일으키는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언제까지든 그 효력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고― 한 차례는 은근히 감복도 하여 보았지만, 다음에,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개만 더욱 맹렬하게 짖었을 때, 나는, 내가 마치 무슨 크나큰 죄라도 저지른 듯싶게 얼굴조차 붉히고, 만나 보기도 전부터, 도변모에게 은근한 적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문에서 좀 떨어져, 다시 한번 수건으로 이마에 솟은 땀을 씻었을 때, 그래도, 안으로부터 한 명의 계집 하인이 마침내 나타나, 잔디밭 사이의 좁은 길을 이편으로 향하여 결어오는 모양이 문 너머로 보였다.
나는 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었으나, 우선, 사납게 짖는 개를 달래고 난, 그 젊은 ‘조추(가정부)’는, 그러나, 문은 열려고 하지 않고, 뜻밖에도, 땅으로부터 넉 자 가량 되는 위치에, 문짝 위에다 장치하여 놓은, 사방 오 촌 가량의 창을 드윽 열더니, 그 구멍으로 나를 빠안히 내어다보며,
“웬일로 오셨습니까?”
하고, 묻는다. 내가 쓴웃음을 참지 못하며,
“주인양반 계시오?”
하니까, 그는,
“네.”
하더니,
“그런데 누구신가요?”
하고, 다시 묻고, 내가, 동간초 사는 ‘보쿠’라는 사람이라 일러 주자, 그는 창구멍을 다시 탁! 닫치고 도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정작, 그 나무쪽문이 열리고, 내가 안으로 안내를 받은 것은, 계집 하인이 다녀 들어간 지, 다시 삼사 분이 경과된 뒤의 일이거니와, 이번에 나와서 문을 열어 준 것은, 먼젓번의 그 조추가 아니라, 동저고릿바람에 커다란 게다짝을 신은, 열대여섯 살 먹은 애녀석이었다.
“동간서 오셨다죠?”
“동간?”
오오래 계집 하인이 ‘동간초’라니까, 아마, ‘동관’으로 잘못 짐작한 모양이로구나, 하고, 나는 쓴웃음을 웃었던 것이나 구태여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내가 그 애녀석의 뒤를 따라, 마침내, 그 집의 현관 앞에까지 이르렀을 때, 문득, 저편 우물 뒤에서, 심히 탁한 남자의 음성이,
“누구 왔니?”
하고, 소리치고, 애녀석이,
“네, 동간서 손님이 오셨에요.”
하자,
“뭐? 돈 가지구 누가 왔어?”
하고, 허겁지겁 게다짝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침내, 당꼬바지에 고동색 잠바를 입은, 흡사, 짐방꾼같이 생긴 자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비록 국방복은, 지금, 안 입고 있어도, 두 차례나 나 없을 때, 우리 집에를 나왔다는 것은, 이자에 틀림없으리라 직각하려니까, 그는,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어디서 오셨나요?”
묻고, 내가,
“저 어 돈암정서…….”
하니까, 그는 단번에 얼굴의 긴장한 빛을 풀어 버리더니,
“네에, 그럼, 복상이시군요.”
하고, 순간에, 내가, 어쩌면 우리는 전에 한두 번 술이라도 같이 먹은 일이 있지나 않은가?―하고, 그러한 착각을 느껴야만 하도록, 그는, 바로, 나에게 대하여 퍽 친숙한 듯싶은 표정조차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은, 서양식으로 꾸며 놓은 응접실로, 이 집의 주인 되는 사람은 이 방을 꾸미는 데 있어 과히 인색하였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나, 전체가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에 싸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문에서 그중 가까운 곳에 놓여 있는 의자에가 앉아서, 도변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었던 것이나, 그는 좀처럼 내 앞에 그 모양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집에 있어서, 나와 같은 용무를 띤 사람이나마, 찾아오는 일이란, 지극히 드문 모양이어서 그래, 이 집의 식구들은 객을 응대하는 데 익숙하지는 못한 듯싶었다.
나의 앞을 서서, 나를 응접실로 인도한 애녀석이나 나의 뒤를 따라 그곳에 들어온 짐방꾼이나, 그들은, 그렇게 양식으로 꾸며 놓은 방 안에, 그 모양이 결코 어울릴 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맨발바닥으로 양탄자 위에가들 서서,
“유성기나 좀 틀어 보까?”
“이눔아, 시끄럽다구 야단 만나.”
“그래두, 손님이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손님 들으라구 트는데…….”
“언제, 손님이 들으시겠다던?”
하고, 그들의 주인이 그 방으로 들어올 때까지,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곳에 남아 있어, 그러한 수작을 하기에 골몰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나의 채권자인 도변모가 나타났다. 그는 방에 들어서는 길로, 그처럼이나 오랫동안, 나로 하여금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하여 용서를 빈 뒤에, 다탁(茶卓)을 격하여 나의 맞은편 의자에다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는, 곧 짐방꾼과 애녀석더러, 밖에 나가 있으라, 명하였던 것이나, 재떨이 위에 성냥갑이 꽂혀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자, 다시 애녀석을 불러, 자기 방에 가서 성냥을 가져오라 명하고, 애녀석이 그 자리에서 저의 조끼주머니를 뒤져 성냥갑을 꺼내어 놓고 물러 나가자, 그는, 또 생각난 듯이, 다시 한번 애녀석을 불러, 아무개더러 잠깐 오라고 그러라고, 눈치가, 아마도 짐방꾼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가, 진작 찾아오지 못하고, 두 번씩이나 사람을 보내게 하여 미안하다고, 그러한 뜻의 말을 하였을 때,
“아, 내지어를 아시는구먼요?”
하고, 그는 가장 뜻밖의 일이나 되는 듯싶게 놀라고, 다음에 짐방꾼이가 방문을 반쯤 열고, 그 아무렇게나 생긴 얼굴을 그 사이로 디밀자,
“아니, 그만둬라. 나는, 이 손님이 내지어를 모르시는 줄만 여겨서, 그래, 널더러 통역을 부탁할까 했던 것인데, 이 손님께서 잘 아시는 모양이니까…….”
하고, 그는, 혼자서 한 차례를 싱겁게 웃는 것이었다.
우리는, 얼마 동안, 애꾸가 잘라먹은 나의 두 달 치 이자에 대하여 토의하였다. 애꾸가 그의 고용인(雇傭人)인 이상, 그가 어떠한 짓을 하였든, 그 행위에 대하여 내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내가 주장하였을 때, 그는, 짐짓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가령 자기는 본래가 대금업자로 나선 것이 아니었노라고, 애꾸가 와서, 돈을 놀려 둘 것이 무엇이냐고, 그저 자기 말만 들으라고, 자꾸 권하는데 못 이겨 몇 군데 잡았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한 말을 한참이나 중얼거리다가는, 문득, 교활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고, 문제의 두 달 치 이자에 관하여서는, 자기 의견 같아서는 역시, 내가 다시 한번 자기편에다 그것을 물어 놓고, 다음에 우리 편에서 애꾸를 고발이라도 하는 것이 가장 옳은 조처일 것이라고 말하고, 내가 먼저 말한 대로 다시 또 한번 나의 주장을 고집하면, 그는, 또 잠시, 화제를 갈았다가는, 저도, 먼저 한 말을, 다시 한번 되풀이하여, 우리들은 그 문제에 관하여서는 쉽사리 결론을 얻을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그가, 그러면, 이 문제는 아직 보류하여 두기로 하자는 데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것에도 반대의사를 표명한다면, 우리는, 이제까지 한 시간 이상을 되풀이하였던, 그 어리석은 논쟁을 또 되풀이할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나로서는, 견디기 어렵게 피로한 교섭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성실하게 이자를 지불하는 동안은, 언제까지든 기일을 연기하겠노라는, 그의 언질(言質)을 받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와 설영이는, 이미, 나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있었다. 내가 문을 들어서자, 아내는 부리나케 앞창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
“그래, 만나 보셨에요?”
하고, 빠른 어조로 묻는 것이었으나, 나는, 이제 얼마 동안은, 그러한 문제로 하여, 나나, 아내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응, 무사해결!”
하고, 명쾌한 어조로 간단히 한마디 한 뒤에,
“그래, 설영이, 대답 잘 했니?”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대답을, 잘, 뭇 했대요.”
설영이는 소영이와 둘이서 소꿉장난하느라 바빠서 아무 말이 없고, 아내가 대신 대답하였다.
“대답을, 잘, 뭇 허다니…… 왜, 뭘 물어 봤기에?”
나는, 가만한 불안을 느끼고 아내를 건너다보았다.
“첨에, 이름을 물어 보는데…….”
“아, 이름쯤야, 대번일 테지.”
“네, 박설영 이에요…… 허구, 대답은 했지. 그런데 원장이…….”
“원장이? 원장두 직접 물어 봅디까?”
“원장이 혼자서 맡아 가지구 물어 봤다우. 그런데, 박설영이라니까, 그 이름말구, 왜, 새루 지은 이름 있지 않느냐는군.”
“당신두 옆에 있었수?”
“그럼, 으레, 보호자허구, 아이허구, 둘씩 불러들여다 물어 보는데…….”
“그럼, 왜, 창씨개명은 아직 안 했다구 당신이, 좀 그러지 않구…….”
“그렇게 말했지. 그래두 원장은 자꾸 입원 원서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기웃거리거든. 그래, 내가 넹겨다봤더니, 다른 아이 원설, 우리 건 줄 알구 그러는구먼.”
“그것은 저편의 잘뭇이니 상관없구…… 그래 그 댑엔 뭘 물어?”
“나이.”
“물론 여섯 살이라구 했을 테지.”
“응, 여섯 살이라니까, 원장 말이, 그럼, 내년에 학교 들어가겠군요? 허는군. 그래, 그렇다구 그랬지. 그랬더니, 다시 설영일 보구, 너희 집 식구가 몇 식군가 세보라는군.”
“식구, 참, 그걸 일러 주는 걸 그랬군. 허지만 안 일러 줬기루, 세 보면, 조게, 그걸 모를라구?”
“헌데, 여섯 식구루 쳤구려.”
“하 하아, 옥희년까지 친 게로구면.”
“네, 그나마두 첨버텀 소리나 내서 셌으면 졸 걸. 고개를 푸욱 수그리구, 하나, 둘, 손을 꼽구 나서 여섯 식구예요…… 그랬군.”
“그랬더니 원장이 뭐래?”
“원장이 설영이 새끼손꾸락을 가리키며…… 아, 여섯을 꼽았으니, 새끼손꾸락 하나만 펴졌을 거 아뉴? 그걸 웃으며 가리키구, 요건, 누구냐, 그러는군.”
“그래, 조게 뭐랬어?”.
“그게, 일영이라는구먼.”
“그래서?”
“그랬더니, 원장이, 소리를 내서 다시 세보라겠지? 그래, 아버지, 어머니 허구, 옥희까지 세서, 여섯 식굴 맨들어 놨구먼.”
“그럼, 당신이 한마디 허지 않구서?”
“왜? 했지. 옥희라구 아이 봐주는 기집에년까지 친 모양입니다…… 허구.”
“그랬더니?”
“그만 나가라구, 그러는구먼.”
“그래, 눈치가, 조걸 으떻게 보는 모양입디까?”
“그걸, 으떻게 아우? 궁금해 살 수가 있에야지? 그래 통지는 언제 쯤 해주시나요? 허구 물어 봤지.”
“그래서?”
“그래두 대답은 않구, 뭔지 종이에다 쓰기만 허는구려. 그래, 또 한번 물었더니, 그제서야 고개를, 들드니, 통지 언제 헌단 말은 없이, 설영이 머리를 둬 번 쓰다듬구는, 이런 앤 아무 염녜 없습니다, 그러는군.”
“응? 이런 앤 염녜 없다구? 그럼 통지 기대릴 거 없이, 다아 된 노릇이로군그래, 하, 하, 하…….”
나는 유쾌하였다. 설영 이는 ‘어머니’고, 소영이는 ‘손님’인데, 그 ‘손님’을 접대하느라고, 한참 ‘어머˘니’는 바쁜 모양이었으나, 나는 상관 않고, 곧, 앞으로 불러다 앉히고,
“너, 어디, 원장선생님 앞에서 허듯이, 손 좀 꼽아 봐라, 꼽아 봐아, 그래, 요게, 요 새끼손꾸락이, 일영이라구? 하, 하, 하…….”
다시 한 차례를 웃고,
“허지만, 입원 수속 허려면 또 돈이 들 모양인데…….”
하고, 아내는 그러한 것을∼염려하는 모양이었으나, 나는, 오직, 우리 설영이가 어느 틈엔가, 저만큼이나 커서, 그래, 벌써 유치원에를 다니게 되었나……? 하고, 도무지 남들에게는 없는 일이나 되는 듯싶게, 마음에 신기하고, 또 기뻤다.
(《문장》, 194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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